극단 的 <네더>
가상과 현실의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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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등장했을 때 인터넷은 그야말로 정보의 바다, 무한한 자유를 의미했다. 덕분에 매체를 둘러싼 환경은 급격하게 변화했고 자유로운 표현은 담론의 파급력을 확대시키곤 했다. 그러나 모든 현상에는 이면이 있을 수밖에 없듯이, 드넓은 자유의 지평은 이제 더 선명한 명암으로 우리의 시야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무한한 자유의 유토피아는 보다 빈번하게 끔직한 범죄의 온상이 되거나 가해자들의 은닉처로 악용되기에 이르렀다.
<네더>(제니퍼 헤일리 작, 이곤 연출)는 인터넷 세상 이후 도래한 ‘네더’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표면적으로 네더는 지상 낙원이다. 실제 세계에서는 미루나무가 멸종했지만 네더에서는 미루나무 숲을 거닐며 나무의 향을 맡고 쏟아지는 햇볕을 마음껏 쐴 수 있다. 비싼 등록금 대신 네더에서는 무상으로 대학 교육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혜택에는 대가가 따를 수밖에 없는 법. 심즈는 소아성애자들을 위한 은닉처를 설계하고 그곳을 방문한 손님들은 실제보다 더 생생한 아동들의 이미지를 통해 욕망을 해소한다. 실제의 논리로 가상을 통제하려는 이들과 가상과 실제를 구분하려는 이들이 첨예하게 맞붙는 사이, 사람 사이의 관계, 자유와 욕망이라는 묵직한 주제들이 흘러간다.

결과에 책임지지 않는 삶, 그곳의 두 얼굴
- 김태희
- <네더>는 소아성애라는 파격적인 사건을 중심으로 인물들 간의 관계, 무한한 자유의 명암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인 것 같아요. 특히 이 작품에서 가상하고 있는 ‘네더’라는 공간이 참 매력적이었어요. 은닉처를 방문한 손님들은 아동을 성애의 대상으로 삼을 뿐만 아니라 도끼로 살해행위를 반복하잖아요. 그 뒤에 ‘결과에 책임지지 않는 삶’이라는 대사가 따라오는데 그 말이 네더를 대변해주는 것 같아요.
- 마정화
- 지금 인터넷 환경이 조장하고 있는 일이죠. 그게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에는 네더를 조사하기 위해 그 곳에 발을 디딘 모리스조차도 나중에는 왜 사람들이 네더에 빠져드는지 알 것 같다고 하잖아요. 그게 이 공간의 매력이자 무서운 지점인 것 같아요.
- 김태희
- 무엇보다 그 공간의 가장 은밀한 곳에서 소아성애자들이 모여서 가상의 이미지를 통해 욕망을 해소해요. 소아성애를 다루는 것이 부담스러우시진 않았나요?
- 마정화
- 저는 많이요. 한국은 소아성애에 대해 확고하게 인식이 정립되어 있지 않은데 이 작품을 올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위험하지 않을까, 연습 전까지 걱정을 했어요.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도 고민이 되었고요. 아름답게 나와도 이상한 거고, 추악하게 나와도 이상한 거고 어느 방향으로 나와도 이상할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연습을 하면서 배우들, 연출하고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걱정이 줄었어요. 이 작품은 단순히 소아성애를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이야기가 아니거든요. 이것보다도 잔인한 범죄들이 현실에 많은데, 그런 문제를 무대에 올리는 걸 겁을 낸다는 게 나의 비겁한 생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 이곤
- 저는 오히려 이 작품에서 말하려는 문제들을 다루려면 가장 민감한 소재를 가지고 올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들어와야 가상 세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이 누구의 한 편으로 기울지 않을 수 있거든요. 사실 저는 작가가 심즈 편을 들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심즈 편을 들어도 모리스가 팽팽하게 유지될 수 있는 건 소아성애가 있기 때문이죠. 그게 사람들이 보기에 저질러지면 안되는 범죄이기에 심즈가 아무리 정당화 시켜도 균형을 잡고 갈 수 있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 김태희
- 듣고 보니 그렇네요. 심즈는 현실에서 범죄를 저지를 수 있기 때문에 가상에서 욕구를 해소하면 범죄를 막을 수 있다는 논리를 펼치잖아요. 확실히 그 논리는 그럴듯하지만 아무리 가상이라고 해도 소아성애는 쉽게 용납될 수가 없는 문제인 것 같아요.
- 마정화
- 소아성애라는 단어에 ‘애(愛)’를 쓰잖아요. 그 용어에 사랑이라는 말을 쓰는 게 얼마나 모순적이고 말도 안 되는 건지 심즈를 보며 깨달았어요. 심즈가 내가 낳지 않은 아이들, 조카들, 밖에 있는 아이들, 그들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본인이 얼마나 애쓰는지 아냐고 모리스에게 물어요. 어떤 사람도 사랑을 할 때 그렇게 당당하게 우위에 있지 않아요. 유일하게 소아성애만 자신이 가해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걱정해요. 어느 날 심즈의 대사를 듣는데 저 오만함은 사랑이 아니구나, 권력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 김태희
- 이 작품은 가정 상으로는 인터넷 이후의 세계를 다루고 있는데도 생각보다 우리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일인 것 같아요. 얼마 전 인천 초등학생 살인 사건도 그 아이들이 가상의 역할극을 하면서 빚어진 일이잖아요. 그런 것들이 겹쳐지니까 굉장히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부분들이 있더라고요.
- 마정화
- 제가 이 작품을 본 건 2년 전인데요, 작품을 준비하면서 그 사건이 벌어져서 사실 리서치를 하고 참고도 했어요. 사실 역할극이 이 정도로 몰입이 되는 구나 실감이 났죠. 또 이 작품을 번역하면서 미처 생각을 못했던 건데 다음 세대는 우리와 이야기 하는 내러티브 구조 자체가 다르겠구나 싶었어요. 전혀 다른 내러티브 구조 속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거죠.
- 김태희
- 실제로도 참고하셨군요. 그래서 마지막 대사가 너무 섬뜩했어요. 심즈가 모리스에게 이런 나를 밖으로 나오게 할 거냐고 하잖아요.
- 마정화
- 저는 거기에 대한 답이 좋았어요. 세상은 여전히 우리가 속하기 위해서 배워야하는 장소라는 모리스의 말이요. 그게 결국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아닐까 싶었어요.

도일 혹은 아이리스, 모리스 혹은 우드넛
- 김태희
- 현실에 있는 인물은 모리스, 도일, 심즈 세 명인 거잖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모리스가 제일 흥미로웠던 것 같아요. 모리스는 네더에서 벌어지는 소아성애 사건을 조사해야하는 형사죠. 처음에는 네더를 증오하는데 가상의 우드넛이 되어 그 공간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결국은 그 공간을 사랑하게 되어 버리잖아요. 모리스가 변화한 건 결국 가상의 아이리스와 진정한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반면 도일은 그런 관계를 꿈꾸지만 심즈는 아이리스의 이미지만을 쫓을 뿐이죠. 그런 의미에서 이대연 배우님이 아이리스가 되어 심즈와의 과거를 다시 한 번 재연하는 장면이 참 슬펐어요.
- 마정화
- 그래서 정말로 진실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배우를 고민했죠. 저는 도일 역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이 작품의 추라고 생각했거든요. 무게감으로 움직여주지 않으면 작품이 자칫 가벼워질 수 있기 때문에요. 원래 이대연 배우님하고 작업을 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요. 무대 위에서 이대연 배우님을 봤는데 굉장히 선한 거예요. 근데 어느날 저렇게 선한 사람이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일을 겪을 때 저 안정적인 나이에 얼마나 망가질 수 있을까, 궁금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작품 시작할 때부터 강력하게 이대연 배우님의 캐스팅을 주장했죠.
- 김태희
- 아이리스 역도 사실 힘들잖아요. 성인이 아동 역을 하는 것도 그렇고 소아성애의 대상이 되는 것도 그렇고요. 그런데 정지안 배우님은 작위적인 느낌이 들지 않으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되게 어른스럽다가도 또 어떤 면에서는 아이의 면이 나오기도 해서 놀랐어요.
- 마정화
- 쉽지 않은 역이었죠. 저도 깜짝깜짝 놀라는 게 그 배우 특유의 유연함이 있어요.
- 이곤
- 저도 지안 배우가 가진 느낌이 좋아요. 사실 연극 작업은 많이 한 편은 아닌데요. 인물의 감정이나 느낌을 잡아내는 걸 잘해요. 연극적 형식에 조금 더 적응해나가면 굉장히 좋은 연극 배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 마정화
- 아이리스와 우드넛의 배역을 두고 많은 고민을 했어요. 어린아이 역이어서 실제 어린아이부터 별 생각을 다했는데 PD님께서 추천을 해주셨어요. 우드넛도 추천을 받아서 처음 만났는데 이미지가 참 맑더라고요. 끔찍할 수도 있는 역이기 때문에 맑은 사람이 들어왔으면 했어요.
- 김태희
- 우드넛이 맑은 인물이어야 모리스가 설명이 될 것 같아요.
- 이곤
- 사실 그렇게 보면 재밌죠. 도일이 아이리스와 연결되는 지점, 모리스가 우드넛과 연결되는 지점이 굉장히 중요하더라고요. 현실에서는 모리스와 도일이지만 네더에서는 우드넛과 아이리스가 되잖아요. 그렇게 네더의 캐릭터들이 현실의 인물들을 대변하고 있는 거라서 연기적으로도 중요하더라고요.
- 마정화
- 연습실에서도 현실의 인물들이 두 배우의 동선을 거의 외우다시피 했어요. 또 감정선의 연결을 위해 의견을 계속 주고받더라고요.
- 김태희
- 취조실에 우드넛이랑 아이리스가 춤을 추면서 돌아다니는 것도 좋았어요. 그럴 때 네더라는 공간이 우리 현실과 밀접한 지점에 있다는 게 시각적으로 계속 확인이 되는 것 같았거든요.
- 마정화
- 사건이 일어난 순으로 희곡이 진행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것들이 마치 기억이나 이미지처럼 스며들어 왔다가 빠져나가길 바랐던 것도 있어요. 가상에서 있었던 일이기도 하지만 심즈나 모리스가 겪은 일, 도일이 겪은 일이 기억을 떠올리듯이 취조실에 스며들었다가 빠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어요.

연극이란 세계를 만들어가는 사람들
- 김태희
- 예전에 마정화 선생님하고 이곤 연출님이 작업하셨던 <퍼디미어스>(2014)를 재밌게 본 기억이 나요. 작품도 재밌었고 소극장 무대를 활용하시는 방법도 인상적이었어요. 작년에 <단편소설집>(2016)도 대본으로만 접했지만 두 인물의 미묘한 감정의 뒤틀림들이 인상적인 작품이었고요. 이렇게 매번 흥미로운 작품을 가지고 오시는 비결은 뭔가요?
- 마정화
- 우선 희곡을 읽었을 때 제가 재밌는 게 중요해요. 또 제가 워낙 배우들을 좋아하다보니까 무대에서 배우들을 보면서 저 배우가 이 배역을 하면 참 좋겠다, 생각이 들면 그 배우에 맞춰 작품을 찾기도 해요. 그런데 사실 <네더>는 처음 읽었을 때 작품이 너무 재밌었어요.
- 이곤
- 저는 요즘에 연극을 고르는 기준이, 관객들에게 토론까지는 아니더라도 서로 이야기해볼 수 있는 문제를 던져주는 작품들이 좋더라고요. 뭔가 확실한 한 방향이 아니라 두 개의 논점이 부딪히는 게 좋아요. 작년에 작업한 <단편소설집>도 그랬고요. <네더>도 그래서 끌렸어요. 또 번역극의 경우 조금 뻔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가족, 가정, 내 주변의 관계 같은 것들이요. 물론 <네더>도 관계의 이야기인데 소재의 면에서는 조금 더 확장시킨 면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 작업이 새로운 경험이 될 수 있다는 점이 끌렸던 것 같아요.
- 김태희
- 요즘이라면, 최근에 있어서의 변화인 건가요?
- 이곤
- 네, 몇 년 안 된 것 같아요. 고전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고요. 개인적으로 고전극을 하다가 보면 문제가 되는 건 그 고전이 이 시대에 어떤 의미를 던져주는가, 이더라고요. 제가 독일에 갔을 때 느낀 건데 독일은 연극이 단순히 엔터테인먼트, 즐거움의 장이 아니라 오히려 질문을 던지고 토론하는 장이 되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어떻게 보면 그게 연극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극이 보다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거기서 연극은 계속 문제의식을 던져줘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많은 관객이 오진 않겠지만 연극이 지속적으로 살아남겠구나. 이런 생각을 해요.
- 김태희
- 마정화 선생님이 이곤 연출님의 성향과 잘 어울리는 작품을 정말 적절하게 추천해주신 셈이네요.
- 이곤
- 이런 역할이 한국에서 드라마투르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아요. 외국에서 리터러리 매니저(literary manager)들이 극장에서 창작극을 개발하고 그러잖아요. 드라마투르그는 계속 이 시대에 필요한 작품을 발굴하는 역할을 하고, 연출은 그걸 만들고요. 그런 기능이 필요한데 마정화 선생님이 그런 역할을 잘하시는 것 같아요.
- 마정화
- 제가 알맞은 작품을 찾아서 연출이 그 작품의 구조를 만들어가는 걸 보는 게 즐거워요. 드라마투르그는 정말 각각 개성에 따라 움직이는 것 같아요. 제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줄 수 있는 연출과의 작업이 편한 것 같아요. 이곤 연출은 제가 이야기를 하면 열린 마음으로 들어주고 거기에 대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늘 대답을 해줘요. 연출마다 작업 방식이 다르긴 한데 드라마투르그와의 작업이 효과적으로 진행되려면 연출이 드라마투르그를 받아주는 마음도 필요한 것 같아요.
심즈의 욕망이 <네더>의 한 축을 이룬다면, 도일이 꿈꾸는 인간적 관계에 대한 욕망은 이 작품의 또 다른 한 축을 구성한다. 도일과 모리스처럼 네더에 빠져든 사람들은 현실에서 외로운 사람들이다. 그것은 비단 가족이나 애인의 유무와는 관계가 없다. 마음이 공허한 사람들은 네더에서 만난 이미지, 혹은 그 너머의 관계를 욕망하고 영원히 네더에 머물 것을 결심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관계로 확장될 수 있을지, 그 관계의 윤리성이 현실의 윤리적 기준에 준해야 하는지 우리는 여전히 답을 구하기 어렵다. 가상의 공간이지만 어쩌면 <네더>는 생각보다 가까운 시간의 일이 될 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삶을 파고든 인터넷은 언제든 네더처럼 확장될 여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작품이 던지고 있는 문제의식의 유효성은 여기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