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아어 <죽음의 집>
죽음이 머물다 가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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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공연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삶과 죽음의 거리는 얼마쯤일까.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혹은 갑작스러운 사고에 휘말려 본 사람이라면 죽음과 삶의 거리가 생각보다 가깝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종이 한 장 차이, 찰나의 지연. 아니 어쩌면 그것보다도 더 미세한 차이가 삶과 죽음의 거리 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죽음은 지척에 널려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죽음을 등한시하며 살아간다. ‘웰다잉’이라는 스스러운 단어가 유행이건만 아무리 대비를 해도 죽음은 여전히 우리에게 낯선 존재 일 뿐이다. 극단 아어의 <죽음의 집>(윤영선 작, 윤성호 각색·연출)은 이렇게 새삼스러운 죽음을 전면에 내세운다. 죽음과 집이라는 조합은 슬프다. 망자는 필연적으로 떠나야하는 자들이기에 죽음의 집은 분명한 이별을 내포한다. 산 자의 입장에서는 온전한 삶을 추구하는 곳이 망자들의 공간으로 전치될 때, 그 공간에서 우리는 무엇과 마주하게 될 것인가.
- 김태희
- <죽음의 집>은 원래 미완이었는데 새롭게 원고가 발견되었다고 들었어요.
- 윤성호
- 예전에 윤영선 페스티벌에서 낭독공연으로 이 작품이 올라간 적이 있었어요. 그 때는 부부가 들어온 시점에서 잠깐 이야기하고 끝이었거든요.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USB 정리를 하다가 완고 파일이 발견된 거예요. 그게 부부 들어와 가지고 지금 공연으로 치면 춤추기 전까지 내용이 나와 있는 거였어요. 이번 공연은 그대로 올린 게 아니라, 뒤에 부분을 추가하고 앞부분은 톤 맞추는 정도로 수정되었죠.
- 김태희
- 미국이 그리스로 바뀌었더라고요.
- 윤성호
- 두 버전이 있었던 거예요. 저도 그게 왜 일까 아버지가 남긴 일기를 보니까 그리스를 가셨을 즈음 쓰셨더라고요. 그리고 그 때 죽음의 집 3부작 완성 계획을 써둔 게 있었더라고요.
- 김태희
- 그럼 이번 공연은 미발표 대본을 발표하는 데에도 의의가 있었겠네요.
- 윤성호
- 완결이 발견 된 건 4년 정도 되었고요. 코타르 증후군이라는 실제 병이 있는데 환자는 자신이 스스로 죽었다고 생각해요. 원고가 발견되었을 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이 증후군을 알고 대본을 보니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마침 이번에 페스티벌에 참가하게 되면서 이 작품도 공연으로 올라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선택을 했는데 지옥길을 걷고 있어요. (웃음)

죽었지만 살아있는, 살았지만 죽어있는
작품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음을 맞이한 상호(이강욱 분)가 친한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면서 시작된다. 초지일관 불안한 모습을 보이던 상호가 동욱(백석광 분)에게 자신의 죽음을 고백하지만, 동욱에게는 그저 상호의 장난으로 보일 뿐이다. 하지만 뒤이어 등장한 영권(박경구 분)과 문실(문현정 분) 역시 죽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동욱은 더 이상 이들의 죽음을 부정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만다. 산 자와 망자가 뒤섞여 술잔을 기울이는 이곳에서 누가 산 자인지 망자인지 알 수가 없다.
- 김태희
- 굉장히 일상적인 곳에 불쑥 죽음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새삼스레 충격적이었어요. 특히 상호에 이어 뒤늦게 등장한 경구와 문실도 죽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관객들이 크게 동요하더라고요. 조금은 황당하면서도 묘한 느낌이었어요.
- 윤성호
- 실제 원작도 시작 부분은 굉장히 일상적이잖아요. 그러면서도 산 건지 죽은 건지 확신할 수 없는 순간들이 이어지는 거죠. 그래서 배우와 스텝들에게도 처음은 일상적인 공간으로 시작해서 차츰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물론 무대가 딱 변하지는 못하지만 무대와 조명이 만나면서 이 공간이 앞에 시작했을 때와는 다른 공간으로 갔으면 좋겠다고요.
- 김태희
- 그래서 앞 장면에 시계 소리나 차가 지나가는 소리를 부각시키신 건가요?
- 윤성호
- 상호의 독백 중에서 소리가 무섭다는 게 있어요. 그 독백 때문에 왜 무서울까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시계 소리나 차 소리는 사실 일상적인 소리인데 앞에서 나오는 내용은 살아있는데 살아있는 게 아닌 죽은 사람들 이야기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상호가 일상적인 소리를 무섭게 느끼는 걸까 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또 이 소리를 들은 상호는 무서워하는데 산 사람은 인식조차 못하잖아요. 그 사람들에게는 그냥 평소에 듣는 일상의 소리들인 거죠. 소리에 대한 반응으로 그렇게 대비 시키고 싶었던 것 같아요.
- 김태희
- 동욱은 유일하게 살아있는 자고 나머지 인물들은 망자잖아요. 그런데 이들의 죽음에도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상호는 사고로 죽었고 영권과 문실은 홧김에 약을 먹고 죽었고요. 그런데 한편 또 영권과 문실의 죽음은 또 달라 보여요. 영권과 문실이 다툴 때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둘 사이의 갈등이 오랫동안 누적되었기 때문에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것 같아요.
- 윤성호
- 여러 가지 죽음이 겹쳐졌으면 했어요. 우리가 죽음에 대해서 평소에 잘 생각해보지 않게 되잖아요. 그러니까 일상적인 곳에 나타난 죽음이 낯설 수밖에 없는 건데, 이 안에서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 김태희
- 그러고 보니 동욱도 마지막에 자기 삶에 대해 생각하잖아요. 똑같이 출근과 야근만 반복했을 동욱이의 삶에 문실이 살아있을 때의 모습이 겹쳐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작가의 말처럼 이 집에는 여러 가지 죽음이 존재한다. 그것은 비단 생물학적인 죽음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극중 문실은 영권이 자리를 비운 사이 자신의 지난 삶에 대해 털어 놓는다. 사랑하려고 노력했지만 불행했던 결혼생활과 그로 인한 다툼의 연속, 그야말로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시간들이었다. 내일이 되면 나아질 것 같지 않은 절망 속의 나날들. 희망이 사라진 삶, 의미를 잃어버린 삶, 그것이 곧 죽음이라면 어쩌면 문실은 애초에 망자였던 것이 아닐까.

죽음의 승인, 망각의 이면
- 김태희
- 이 작품은 춤추는 장면을 중심으로 나뉠 수 있을 것 같아요. 관객들이 오늘 박수까지 치면서 좋아하시더라고요. (웃음) 춤을 추고 나서 문실이 밖으로 나가고, 다시 들어 왔을 때 집에 있었던 사람들은 문실을 알아보지 못하잖아요. 이어서 다른 사람이 나가면 또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을 잊고요. 그걸 보면서 산 자가 망자를 잊을 때가 진정 죽음이 되는 건가, 그런 생각을 했어요.
- 윤성호
- 만들면서 그런 생각도 했어요. 춤으로 전반부 후반부가 나뉘는데, 전반부는 살아있는데 죽어있다고 느끼는 사람들, 후반부는 죽었는데 살아있다고 느끼는 사람들로 잡았어요. 작품을 만들면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었거든요. 죽는 건 어떤 의미일까 이런 어려운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아는 사람들이 나를 잊어버리면 죽은 게 실감이 날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뒷부분은 그렇게 만들어진 셈이죠.
- 백석광
- 그 설정이 나올 때까지 거의 매일 즉흥이었어요. 처음에는 산 자가 죽은 자를 알아보고 또 다음날은 반대로 해보고요.
- 박경구
- 저는 연극을 약속이라고 배웠는데 연극은 즉흥이었더라고요. (웃음)
- 윤성호
- 제 컴퓨터에 80개의 버전이 있어요. (웃음)
- 김태희
- 어쩐지 대본 보내달라니까 기획님이 당황하시더라고요. 근데 산 자가 죽은 자를 알아보는 것보다는 반대가, 지금 버전이 더 좋은 것 같아요.
- 백석광
- 원래 옛 애인 버전도 있었어요. 동욱과 문실이 과거 연인이었다는 설정이었죠.
- 박경구
- 그건 진짜 너무 했었어.
- 이강욱
- 원래는 은행원이 아니라 시 선생님이었어요. 개인적으로는 그게 제일 설득력 있었어요.
- 김태희
- 어쩐지 아까 동욱이랑 문실이가 인사하는데 약간 이상한 느낌은 있었어요.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 문현정
- 저는 그런 부분이 재밌었어요. 보통의 연극은 인물이 무대에 등장할 때 어떤 의도, 전사를 가지고 들어오잖아요. 그런데 이 작품 같은 경우에는 뭔가 있을 것 같다고 물음표가 생기잖아요. 뭔가 있을 것 같은데 결국에는 없는 거죠. 원래 처음에는 이걸 확정 짓고 하려고 자꾸 전사를 만들고 했었는데 어느 순간 그걸 놓게 되니까 이렇게도 보이고 저렇게도 보이고 해석의 가능성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 김태희
- 작품을 만드시면서 어떤 게 진짜 사는 건지, 어떤 게 진짜 죽는 건지 고민해보셨을 것 같아요.
- 백석광
- 영권의 대사가 답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 이런 게 사는 거야.”
- 윤성호
- 무대 올라가서 그 대사가 좀 다르게 들리더라고요. 뭔가 울컥하는 게 있었어요.

산자와 망자의 사이
- 김태희
- 연기하시는 입장에서 죽음을 다루는 게 어려운 일이었을 것 같아요.
- 이강욱
- 죽은 사람을 연기하려고 하니 어렵더라고요. 대본을 보면 사실 황당한 죽음의 연속이잖아요. 어떻게 보면 희극적이기도 하고요. 만약에 주제가 사랑이라면 조금 가볍게 나갈 수도 있을 텐데 지금 우리가 다루는 것이 죽음이라고 생각하니까 한 없이 진지해지는 거예요. 그런 부분이 어려웠던 것 같아요.
- 박경구
- 제 경우에는 조금 다른 고민인데요. 처음 초고를 받았을 때 영권이가 드센 인물이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하지만 그렇게 풀고 싶진 않아서 연출이랑 이야기를 많이 했죠. 착해 보이고 싶었어요. 일상에 흔히 있는 부부들처럼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게다가 저희가 싸우게 된 계기가 영권이 유흥업소에 간 것 때문이잖아요.
- 문현정
- 그것 때문만은 아닌데 남자들은 그렇게 생각하더라고요. (웃음)
- 박경구
- 그래도 어쨌든 싸우지만 애정은 좀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말로는 애들 때문에 산다고 하지만 영권이가 문실을 사랑한다는 걸 조금은 보여주고 싶었어요.
- 문현정
- 저는 평소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 작품을 하면서 정말 어려웠던 건 죽었다고 믿고 연기하는 거였어요. 그러니까 죽음이랑 연결된 대사들은 다 어려운 거죠. 영권과의 관계에 대해서 저는 좀 다른 포인트를 가지고 있었어요. 약을 먹는 순간까지 이걸 먹게 될 정도의 극한으로 내적이든 외적이든 갈등이 있는 상태여야 했기 때문에요. 영권의 입장에서는 다정함을 보여주고 싶었을 수도 있지만 저는 그걸 염두에 두지는 않았어요. 문실은 남들이 보기에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인데, 그런 사람이 자신의 삶을 마치 죽어있는 삶처럼 느끼잖아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것에 포커스를 맞췄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저지른 애들 어떡하지, 그런 고민이 있는 상태로 보이길 바랐어요.
- 박경구
- 맞아요, 저는 아직 결혼 전이라 모르겠지만 정말 애들이 있었으면 우리 연기 톤이 많이 틀려졌을 거라는 생각은 했어요.
- 이강욱
- 개인적으로 특별한 느낌을 받았던 순간이 있어요. 극 중 상욱이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진짜 친한 친구인 영권과 동욱을 부르잖아요. 그런데 저랑 동욱이, 영권이 형이 진짜 친하거든요. 실제로 친한 사람들하고 같이 연기하니까 기분이 이상했어요. 더 특별했던 건 예전에 <외계인들>이라는 공연을 했었는데 거기에서는 석광이가 죽고 제가 남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제가 죽고 석광이가 살아 있는 거죠. 그런 경우가 흔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 윤성호
- 서로 한 번씩 보내는 거죠. (웃음) 스탭들도 둘을 알거든요. 마지막 장면에서 이강욱 , 백석광을 보는 건지 황상호, 이동욱을 보고 있는 건지 내가 지금 뭘 보고 우는 건지 헷갈린다고 하더라고요.
- 김태희
- 작품 내용도 현실과 비현실을 오고가는데, 등장인물과 실제인물들도 경계를 자꾸 넘나든 셈이네요. (웃음)
모든 사건의 시작이자 최초의 망자인 상호는 왜 하필 술병까지 들고 집으로 돌아왔을까. 생전 가보고 싶었던 곳도 많았을 테고 하지 못한 일도 많았을 텐데 말이다. 그러다 문득 이 집에 모여든 사람들이 그의 가장 친한 친구들이었다는 사실이, 그리고 그 친구들과 상호가 술을 넘으면서 희희낙락하는 장면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상호는 친한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고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살아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미처 이루지 못한 꿈과 같이 거창한 것이 아니라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가능한 일들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지나치는 소소한 순간들이 삶을 자각할 수 있는 때가 아닐까. 죽음과 삶의 거리가 가깝다면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일은 사실 삶에 대해 생각하는 일에 다름없을 것이다. <죽음의 집>이 던지는 기괴한 질문은, 그래서 산 자인 우리에게 더 없이 중요하다.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