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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돌곶이 <일종의 알래스카>

이곳도, 저곳도 아닌, 일종의 어딘가

윤성호_극작가·연출가
125호 2017.10.12
어렸을 적 수면병에 걸려 29년 간 의식이 없다 중년의 나이에 이르러 깨어난 데보라. 그리고 그 데보라를 돌보는 주치의 혼비와, 혼비와 결혼한 데보라의 동생 폴라인. 듣기만 해도 어려울 것 같은 작품을 그동안 무대 작업으로 활동하던 박상봉 디자이너가 연출로서 어떻게 풀어냈을지 궁금했다. 극장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건 몇 개의 테이블을 ...

어렸을 적 수면병에 걸려 29년 간 의식이 없다 중년의 나이에 이르러 깨어난 데보라. 그리고 그 데보라를 돌보는 주치의 혼비와, 혼비와 결혼한 데보라의 동생 폴라인. 듣기만 해도 어려울 것 같은 작품을 그동안 무대 작업으로 활동하던 박상봉 디자이너가 연출로서 어떻게 풀어냈을지 궁금했다. 극장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건 몇 개의 테이블을 이어붙인 하나의 거대한 테이블이다. 그 위에 수많은 잔들과 테이블 매트처럼 깔려있는 거울, 얼음이다. 그리고 조명이 꺼지며 심장박동 같은 소리가 공연 중 거의 끊임없이 들려오고 작품은 이 다양한 물성과 배우들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하며 진행된다.

윤성호
<일종의 알래스카>, 어떤 작품인가요?
박상봉
처음부터 질문이 너무 어렵습니다.

다들 웃는다.

윤성호
그렇다면... 작품 선정의 이유는?
박상봉
김동현 선생님 수업을 들었었어요. 연출 수업이었는데 연출에 관심이 있다고 하니 듣게 해주셨어요. 수업을 하는 과정에서 이 작품을 추천해주셨죠. 원래 베케트 등 부조리극에 관심이 있었어요. 이미 연극성을 드러내놓고, 은유와 상징을 쓰는 면에서 저한테 더 맞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일상과 언어를 토대로 한 핀터의 작품을 소개시켜주셨을 땐 좀 의아했어요. 어쨌든 작품을 읽어보니, 핀터의 다른 작품들보다도 은유적으로 다가오고 관심이 가기 시작했죠. 지금도 선생님한테 여쭈어보고 싶어요. 왜 이 작품을 추천하셨는지.
윤성호
무대디자이너 출신 연출답게 무대가 인상적입니다.
박상봉
원래 작품은 빈 무대에 침대 하나 두고 조용히 진행되는 극이라고 소개되어 있는데, 왜 이렇게 커다란 테이블 위에 데보라를 올렸냐하면, 긴 기간 누워 있다가 깨어난 데보라의 내면 안에 일어나고 있는 커다란 에너지를 외부로 표출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확장시키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제가 평소에 관심이 많던 오브제와 물성을 풍부하게 함께 사용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지금도 처음 얼음을 연습실에 가져왔을 때 배우들 표정을 잊을 수가 없어요.
최희진
얼음뿐만이 아니라, 얼음, 거울, 마이크, 이 수많은 컵들 들어왔을 때 정말 당혹스러웠어요.
이종무
혼내는 거야?
최희진
비난하는 거야.
윤성호
말씀하신대로 공연 전반에 걸쳐 무대, 사운드, 조명, 소품 등 다양한 물성들을 제시하고, 배우들과 이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흥미롭게 진행됩니다. 연출적으로, 혹은 공연적으로 그를 통해 관객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싶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박상봉
물성이라는 것이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지만, 시각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얼음이라는 것 또한 녹으면 액체가 되고, 기화되어 기체가 될 수 있는 등 다양한 속성이 존재합니다. 그러한 속성들을 대본 안의 여러 대사, 행동들에 녹여내고 싶었어요. 부조리극들 또한 대사 이면에 존재하는 논리들을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관건인데, 배우의 연기에다가 이러한 물성이라는 또 하나의 층을 넣고 싶었습니다.
윤성호
저도 예전에 대본을 읽어봤었는데, 아마도 흔히 침대와 책상 정도 있는 비어있는 방에서 대사만으로 진행될 수 있는 극을, 급작스럽게 29년이라는 시간의 부재를 경험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데보라의 내면을 표현하기에 다양한 통로를 보여준 점이 좋았어요. 그리고 본 사람들마다 다양한 반응들을 할 수 있던 공연이었던 것 같아요.데보라가 극 안에서 무엇을 경험하고 마지막에 어디에 도착하는지도 궁금합니다.
박상봉
그 지점에서 팀이 고민을 많이 했어요. 데보라가 자신이 잠들어있던 동안 돌본 혼비나 동생 폴라인의 말을 받아들인다고도 볼 수 있지만, 어떻게 보면 선택적으로 받아들인다고 볼 수도 있거든요. 혼비나 폴라인의 말에 진실뿐만이 아닌 거짓이 섞여 있을 수 있잖아요. 각자의 입장에 따라서 수많은 말, 진술들이 뿌려져 있고, 데보라는 그 안에서 치열하게 다시 자신만의 취사선택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데보라 자신의 29년의 공백을 경험이 아닌 다른 이들의 이야기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거잖아요.
최희진
이번이 세 번째 공연인데, 처음에는 혼비 말이 진실이고 폴라인 말이 거짓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공연을 하면서는 반대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번에는 폴라인과 춤을 추는 장면도 추가되면서 더 믿음이 생기기도 했고요. 또 데보라의 잠이라는 것도 단지 ‘수면증’이라는 병 때문만은 아니고, 별 문제 없어 보이는 종교적인 중산층 가정 안에서의 데보라가 겪는 일들, 가령 아버지의 애인, 헤플 수도 있는 언니와 수다스런 동생 사이에서의 위치, 등의 크고 작은 갈등 안에서 어려움을 겪다 스스로 잠에 든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데보라가 깨어난 후에도 스스로 믿을 것, 하고 싶은 것들을 자기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선택하고, 살아가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박상봉
개념적으로 조금만 더 정리를 해보자면...
최희진
내 설명이 부족했어?
박상봉
아 그건 아니고... 모든 인물들이 모순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데보라도 자신의 가족을 사랑하지만 동시에 미워하기도 하고. 예전 애인이었을 수 있는 잭과의 일들도 그리워하지만 가족에겐 숨겨야 할 것 같기도 하고. 많은 면에서 경계에 서있는 인물인 것 같아요. 혼비 또한 의사라는 위치에 따라 사실에 기반을 둔 말을 하지만, 이면에는 데보라가 가있는 일종의 알래스카에 대한 부러움도 순간순간 내비치는 것 같고. 폴라인 또한 언니 데보라를 기다려왔지만, 정작 잠에서 깨어난 언니를 보며 묘한 감정이 생기기도 하는 것 같고. 그 안에서 데보라에게는 어떤 실체가 잡히질 않을 것 같아요. 또한 다른 두 인물을 그러한 모순을 적당히 잘 감추고 있다면 데보라는 그러한 모순의 감각이 바로 표출되어 알 수 있는 것 같고요.

윤성호
조금 사적인 얘기를 해볼까요? 두 분이 부부시잖아요. (박상봉 연출과 최희진 배우) 작업 과정은 어떠셨나요?
이종무
상봉이는 희진이에게 일을 주고 부부관계는 파탄을 냈죠. 그리고 한 사람의 여러 이중성을 부부만큼 잘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이 공연이 이중성, 경계를 표현한다고 할 때 적합하지 않았을까요?
강민백
전 그거 궁금해요. 대체 연출이 이 대본을 갖고 왔을 때 기분이 어떠셨을지.
최희진
어떻게든 힘이 되어야지 생각은 했어요. 학부 때 데보라 역할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땐 대본을 이해 못하고 했었거든요. 어찌되었건 남편이 아내를 전면에 내세우는 게 약간 꼴불견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어쨌든 첫 작업이고 이렇게 대학로에 나올 거라고 생각을 못하고 학교 졸업 공연이고 지인들을 모아서 하는 공연이었으니 했죠. 그렇지만 배우한테는 매력적이었어요. 데보라라는 역할이. 얘기하다보니 내가 굉장히 이중적이네. (모두 웃음)
박상봉
고민을 많이 했죠. 캐스팅할 때도.
윤성호
혼비라는 인물 또한 흥미로운데요. 이 사람의 목표가 수면병을 연구하는 것뿐만이 아닌 것 같거든요.
이종무
어쨌든 병은 맞는데요, 혼비에겐 데보라가 환자만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것 같아요. 어느 순간은 눈을 마주치고, 몽유병처럼 움직이기도 하고, 분명 이 사람은 의식이 없는 게 아니라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현실이 아닌 어떤 곳에 가 있는 것 같기도 하거든요. 거기에 어떤 호기심, 혹은 어떤 부러움을 느꼈던 것 같아요. 긴 시간 그녀를 돌보며 자신만은 교감한 것 같기도 하고.
마치 데보라가 테이블에서 처음 바닥으로 내려올 때 마치 현실로 돌아오는 것처럼 조심스레 내려오는 것처럼 공연에서 묘사되었는데, 반대로 혼비가 데보라가 있던 테이블에 올라갈 때도 마치 일종의 알래스카에 가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올라가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현실과 환상의 알 수 없는 경계를 연출로서 잘 담아냈다라고 칭찬해주고 싶어요.
강민백
드디어 30분 만에 첫 칭찬 나왔어요. (이번 작업은 연출 박상봉의 입봉작이다)
이종무
왜냐면 혼비가 테이블에 올라오는 건 대본에 없는 거거든요. 연출이 혼비가 테이블 위에 올라와서 뭔가를 했으면 좋겠다, 라고 했던 것이 핀터의 주제를 더 극명하게 확장시켜놓지 않았을까요.

윤성호
자연스럽게 다시 작품 얘기로 돌아온 것 같은데, 29년 간 언니를 잃고, 그 언니를 돌보느라 남편마저 잃었다고도 볼 수 있는 폴라인이라는 인물에 대해 궁금합니다.
김은정
처음 대본을 봤을 때는 뜬금없이 왜 자신이 과부라고 하는지 의아했어요. 그런데 이번에 다시 보니까 결혼 한지는 20년이 되었는데 남편과의 관계는 데면데면해져있고, 깨어난 언니는 계속 날 부정하려고 하고, 그 순간 내가 나를 인식할 수 있는 말이 20년을 과부로 산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데보라의 동생, 혼비의 부인인 폴라인이야, 라는 말이 안 통하는 상황에서 20년을 과부로 산 여자라는 말이 나를 자각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윤성호
어찌보면 폴라인이 가장 큰 알래스카의 피해자일수도 있겠네요.
김은정
어떤 지점에서는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양면성이 있는 존재죠. 언니는 나를 계속 부정하고 기억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단절감과 내 속에도 언니를 부정하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언니 데보라가 깨어나서 내 삶으로 돌아왔을 때, 이미 20년을 데보라를 향해 있는 남편의 존재에 자신감이 없어요. 잠들어 있을 때는 나와 혼비 사이에 데보라가 있는 거였지만 깨어난 후에는 데보라와 혼비 사이에 내가 갈 방향을 잃어버릴 것 같은 불안함이 있었던 것 같아요.
박상봉
예전부터 이 작품을 보면서 만들고 싶었던 얘기는 각자 정말 외롭다는 거였어요. 개개인의 고민들, 외로움이 더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가뜩이나 어려운 작품에 물성에 오브제도 들어오고 혼란스러운 시간이 지나 정리가 되어가면서 배우들이 장면들을 만든 것들이 많아요. 물성이나 오브제를 이용해서 씬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볼 때 놀라웠어요.
최희진
민백이가 농담처럼 이렇게 공연하려면 최소 6개월은 연습해야 된다고 했었어요. 얼음을 얼리는 것, 깨는 것, 광택위에 얼음이 녹았을 때 거울이 되는 것, 흐르고 번지고 튀기는 것, 녹이는 방법 등등 물성에 대한 것들을 자유롭고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아쉬웠어요. 새롭고 재미있는 작업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장기간 프로젝트로 해야 하는 작업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윤성호
사운드 디자이너께 여쭤볼게요. 물성으로 가득 찬 공연에서 연출님이 어떤 것을 요 구했고, 배우들과 어떻게 만나셨는지 궁금합니다.
이승호
맨 처음에 상봉이형 만나서 얘기했을 때 두 가지를 얘기하셨어요. 배우들이 느끼는 것 혹은 배우들에게 가는 자극을 관객들에게까지 확장하고 싶다는 것과, 공간을 만들어 달라는 이야기를 하셨어요. 지금 사운드들이나 곡들의 질감은 얼음 속에 쌓여있는 이미지, 알래스카를 감싸고 있 는 얼음벽 바깥에서 곡괭이로 파내는 것 같은 것, 그것이 데보라의 심장일 수도 있구요. BGM이라기보다는 공간에 대한 느낌을 만들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최희진
라이브 연주하는 것 알고 있었어요?
윤성호
어느 부분은 그럴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BGM처럼 안 들리고 현장감이 느껴졌거든요.
이승호
여느 공연보다 큐가 많습니다. (공연 시간 동안 잠시를 제외하고는 일정한 심장박동 같은 소리가 들려온다.)
박상봉
사운드 디자이너 처음 만나서 공연시작부터 끝까지 소리가 안 끝나고 유지되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했어요. 사운드 자체가 이 무대의 공간을 설정해줘야 하는 것 같다. 들리는 것을 넘어서 공간으로 체험시키고 싶다. 나도 디자이너 출신이기 때문에 각각의 디자인 파트에서 해석하고 표현하는 것에 제약을 안주려고 노력했고 충분하게 대화를 하고 개념설명을 했죠. 다들 워낙 감각들도 있었어요. 그래서 디자이너가 가지고 오는 것들을 적절하게 사용하려고 했어요. 나중에는 “형 이건 제가 연주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더라구요. 이 심장 뛰는 소리를 현장감 있게 만들려면 1시간 내내 연주를 하는 거니까.

윤성호
드라마터그님께 질문할게요. 이번 작업 어떠셨나요?
강민백
광범위하게 대답하면 공연이라는 게 하나의 주제나 의미로 정해져서 전달되는 과정에 익숙한데, 일단 박상봉 연출님은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걸 공연을 보고 가신 분들은 느끼고 가셨을 것 같아요. 그게 박상봉 연출의 큰 장점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직 우리가 익숙하지는 않지만 예술은 근본적으로 의미가 다양하게 확장될수록 좋은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가능성을 갖게 되는 거니까. 그 부분에는 자신감을 가지고 해 나가셨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윤성호
마지막으로 각자에게 있어 알래스카는 어떤 것인지 듣고 싶습니다.
이종무
대사에 “잠들었나요? 깨어있었나요? 아니, 잠든 것도 아니고 깨어있던 것도 아니다.”라고 얘기하는 것이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지점이 있다. 없는 줄 알지만 있다.’ 가 알래스카의 의미인 것 같아요. 늘 그 밖에 다른 여지가 있다. 살아가면서 늘 답을 찾고, 답이 없으면 잘못된 것 같고, 판단을 내리려 하는데 이성적이거나 논리적으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그런 것이 있다는 것 같아요.
박상봉
기본적으로 작품을 크게 통과하고 있는 것은, 경계를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 같아요. 경계에 있다 보면 양쪽을 다 보게 되니까. 경계의 넘나듦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가? 거짓도 아니고 진실도 아니면 어떻게 판단해야 하나, 진실이 만족스럽지 않을 땐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원래 이 작품은 ‘타지들’이라고 지금 발을 딛고 있는 곳이 아니라 다른 곳에 가게 되는 세 작품을 엮어 놓은 것 중 하나에요. 데보라의 마지막 선택이 혼비가 원하는 것도 아니고 폴라인이 원하는 선택도 아니듯이, 이들이 이해할 수 없겠지만 데보라가 예전엔 잠이 드는 걸 선택했고, 지금은 깨어나서 치열하게 자신의 진실을 만든다. 경 계에서 벗어났다. 알래스카라는 공간은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는 곳이고 경계에 있는 곳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종무
그래서 내가 혼비를 잠든 것도 아니고 깨어있는 것도 아닌 걸 연기로 해보려고 했는데 망했지. (모두 웃음)
최희진
난 잘 모르겠어요.
김은정
우리가 자기 존재를 자각하고 인식할 때 타인을 통해 확인받고자 하는 게 있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이 생각하는 나와, 그 사람이 나를 이렇게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 하는 사이에 갭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 사이가 존재하는 공간, 빈틈이 아닐까요?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무대를 보면서 어쩌면 일종의 파티가 끝난 장소 같기도 했다.
커다란 테이블과, 그 위의 빈 컵들, 남아있는 얼음들.
작품의 데보라 또한 인생의 가장 중요할 수도 있는 시기가 사라진 채, 이미 끝나버린 파티장에서 표류하고 있고, 그녀를 둘러싼 작품의 다른 인물들 또한 서로에 대한 인식과, 진실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는 점에서 데보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지점이 박상봉 연출이 말했던 경계 사이에 있는 이들의 외로움, 혹은 쓸쓸함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