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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예술청년단 <로봇을 이겨라3>

너와 내가 다르지 않다면

김태희_연극평론가
126호 2017.10.26
인공지능이 바둑기사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기자 대신 기사를 작성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미 일각에서는 기존의 문학들을 조합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공지능이 새로운 문학 작품을 창작하는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다. 인간 고유의 능력이라 자부했던 창작 영역마저도 기계들이 넘보기 시작한 셈이다. 어쩌면 불과 몇 년 후에 우리의 직업들은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될 수도 ...

인공지능이 바둑기사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기자 대신 기사를 작성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미 일각에서는 기존의 문학들을 조합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공지능이 새로운 문학 작품을 창작하는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다. 인간 고유의 능력이라 자부했던 창작 영역마저도 기계들이 넘보기 시작한 셈이다. 어쩌면 불과 몇 년 후에 우리의 직업들은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될 수도 있다. <로봇을 이겨라>는 제목에서부터 노골적으로 이 불편한 로봇의 등장을 내세우고 있다. 튼튼한 신체와 명석한 지능으로 무장하고 우리의 영역에 침투하는 로봇들. 우리는 이제 인간들끼리의 경쟁도 모자라 로봇과의 경쟁으로 내몰렸고 인간이 그들보다 우월하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운명에 처하게 된 것이다. 윤서비 연출과 열혈예술청년단은 2014년부터 <로봇을 이겨라>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다. 이번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보인 세 번째 시리즈에서는 사랑을 다룬다. 배우들은 로봇들에게 인간의 사랑을 가르치기 위해 고군분투 한다. 이루어지지 못한 짝사랑에서부터 동성애, 페미니즘, 물건에 대한 애착까지 온갖 종류의 사랑에 관한 일화가 펼쳐진다. 과연 로봇은 사랑을 배울 수 있을까. 아니, 인간은 로봇에게 사랑을 가르칠 수 있는 걸까.

사람과 사물, 주체와 타자의 새로운 관계 맺기

김태희
시리즈물이다보니, 이번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전작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1편은 연기가 주제였고 2편은 정의가 주제였었죠.
윤서비
연기와 과학은 원래 제 관심분야였어요. 연기라는 예술은 저에게 익숙한 분야이다 보니 늘 관심 있는 분야였고요. 한편으로는 과학, 특히 로봇이라기보단 인공지능, 뭔가 새 시대를 대표할 신인류에 관심이 생겼어요. 그게 연기랑 접목이 되면 연기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궁금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구태의연한 연극인들을 놀리고 싶었던 것 같아요. 2편은 한참 블랙리스트 사건이 있었던 때라 자연스럽게 정의로 초점이 맞춰졌어요. 제 스스로가 주류에서 벗어나 있다 보니 제 안에 사람들을 약 올리고 싶고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그러다보니 작품이 끝나고 난 뒤 허전하더라고요. 복수심을 가지고 한 거라서요. 그래서 이번에는 철이 좀 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고 좀 더 철학적이고 깊이 있는 것들을 찾다 보니 모든 건 결국 사랑이 아니겠나, 싶었던 거죠.
김태희
김현주 선생님은 1편부터 같이 작업을 해오고 계신거지요?
윤서비
네. 처음 <로봇을 이겨라>를 시작할 때는 정말 막연한 아이디어만 있었거든요. 정말 다행인 건 그런 우연한 발상을 현실화 해주실 수 있는 김현주 선생님을 만나게 된 거에요. 원래 아는 사이는 아니었고, 제가 무작정 로봇을 만들어주실 분을 찾다가 건너 건너 우연히 소개를 받았어요. 1편 작업을 하면서 선생님이 저의 러프한 생각을 예리하게 다듬어 주셨죠.
김태희
김현주 선생님을 우연히 만났다는 지점이 흥미롭네요. 그렇게 우연히 만나서 3년 간 작품을 할 수 있었다는 건 공유하시는 지점이 명확했기 때문일 것 같아요.
김현주
저희의 작품은 전편이 모두 테크노소사이어티 내에서의 인간의 문제를 다루고 있거든요. 그건 제가 원래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주제이기도 해서 열혈예술청년단과 잘 맞았던 것 같아요. 특히 세 번째 시리즈의 주제가 사랑이라고 하더라도 단순히 인간 사이의 사랑이 아니라 테크노소사이어티에서의 사랑을 다룬 거거든요. 그래서 로봇에게 사랑을 가르치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이 로봇과 사랑을 한다거나 기계나 사물에 느끼는 감정 내지는 감정의 이입, 이런 부분들 역시 테크노 소사이어티 내의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작품 안으로 적극적으로 가지고 들어왔지요.
윤서비
저는 사람과 사람의 사랑만을 생각했는데 선생님과 이야기하면서 사물과 사람의 사랑으로도 확장이 되고 주제가 정리가 되더라고요.
김현주
제가 한참 사물 철학에 꽂혀 있어서요. 사물과 사물, 혹은 사람과 사물 사이의 인과관계적인 상호작용, 이런 것들이 재밌어요. 그래서 이번 작품과 연결해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판단했던 거죠. 러브 애널라이저라는 로봇이 작품 안에서 사랑을 데이터화해서 분석하잖아요. 그 때도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 사람과 사람, 이렇게 대상을 바꿔 가면서 총 3번의 판정이 씬 안에 배치가 된 거죠.

인간은 로봇에게 사랑을 가르칠 수 있을까. 수많은 에피소드들을 거치다 보면 딱 하나 분명해지는 대답이 있다. 인간도 인간의 사랑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인간은 로봇들에게 사랑을 가르치기 위해 애를 쓰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역설적으로 사랑에 대한 인간들의 무지가 드러난다. 헤매고 있는 인간들 사이에서 오히려 상대방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로봇들이 눈에 띈다. 로봇은 더 이상 타자가 아니다. 사물 인터넷이 보편화되는 이 시점에서, 로봇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정의는 처음부터 다시 세워져야 할지도 모른다.

무대 위의 현존, 작품을 만드는 퍼포머들

김태희
로봇이 다양하게 등장하는데 로봇들에 대한 소개를 좀 듣고 싶어요.
김현주
1편 때부터 나왔던 로봇으로는 DLL이 있어요. 1편 제일 마지막 씬에서 마치 그 외로운 인간을 돌보는 듯한 위로하는 듯한 돌아다니는 작은 로봇이 2편에는 정의의 여신이 되었다가 3편이 되면서 사랑을 배우는 DLL(딥러브러너Deep Love Learner)라는 걸로 바뀌는 거죠. 또 러브 애널라이저는 일종의 사랑 분석기예요. 그 양 사이드에 바이오센서 등으로 사랑을 감지하는 디텍터가 있고 센터에 있는 녀석이 CPU처럼 분석을 해요. 이런 분석 시스템은 첫 편부터 있었는데요, 이걸 통해서 인간이 주관적으로 정해놓은 개념들 요컨대 사랑, 정의, 진정성들을 사실은 매우 경험적으로 바꿔서 생각해볼 수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 외에도 매달려 있는 로봇은 조형적인 측면을 강조해서 만들었고요, 안무하고 어울리도록 코딩을 해서 2편에도 썼었죠. 이번에 새로 만든 로봇으로는 포옹하는 로봇이 있어요.
김태희
제일 강렬했어요. 그 로봇이 돌아가면서 사람들을 안아주는데 뭔가 울컥 하더라고요. 미적인 아름다움도 있었고요.
김현주
이건 기훈센 작가가 만든 거예요. 처음에는 팔을 한 개만 만들어서 포옹을 하는데 눈물이 나려고 하더래요. 로봇이 자기 몸을 꽉 누르는 느낌이 힐링을 줬다고 하더라고요.
윤서비
정말요. 저희도 그런 걸 느꼈어요.
김현주
커뮤니케이션 로봇이라고 해서 서로 마주 로봇이 보고 있다가 밀어내는 로봇도 있어요. 가까이 가면 뒤로 가기를 반복하다가 마지막에는 파국으로 치달아요. 그게 커뮤니케이션의 피드백루프를 보여주는 거죠. 제작자인 유소영 작가는 뭔가 계속 반복되어서 만들어진 미세한 차이들이 결국에는 매우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내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런 문제에 관심이 있어요. 이것도 그런 연장선에서 제작이 되었고 이번에 사랑 주제와 연결이 될 수 있는 지점을 찾은 거죠.
윤서비
김현주 선생님이 확장미디어스튜디오라는 팀을 가지고 있으세요. 거기에는 대학원생이면서 연구원이면서 스스로 본인이 작가인 사람들이 모여 있어요. 주로 2편까지는 선생님께 이야기하고 그분들은 같이 참여하는 스태프들이었는데 이번에는 의도적으로 작가로 그분들을 참여하시게 했죠. 저한테는 그게 보람 있는 일이었어요.
유재미
실제 퍼포머로도 무대에 등장하세요.
김태희
마지막 커튼콜 때 수줍어하시는 두 분이죠?
윤서비
네, 어떻게 보면 대사 몇 마디를 위해서 무대에서 3시간 동안 앉아계시는 거예요. 오퍼레이팅도 실제로 다 해주고 계세요. 저는 액팅을 경계해요. 이번 공연 중에 저희 배우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우리 모두 이 공연을 만드는 작가들 아니냐, 왜 자꾸 액터로서만 무대에 존재하려고 하냐, 스스로 작품을 수행하는 퍼포머로 존재해서 이 작품을 완성하기 위한 역할을 해달라, 이렇게 말했죠. 있지도 않은 상상의 세게에 집중하느라 분장실에서 골몰하지 말고 8시부터 시작되는 공연이라는 현실 그 자체에 집중해달라는 요구를 많이 했어요. 사실 그 안에서 제일 빛나는 존재가 기훈센 작가나 유소영 작가일 수 있어요. 그들은 제가 굳이 요청하지 않아도 무대 위의 현실 안에 가만히 존재할 수밖에 없거든요. 허구의 세계를 연기하는 건 그들에게 무지 어색한 일이니까요. 오히려 저는 그게 너무 좋아요.

신인류들의 탄생

김태희
저는 개인적으로 객석하고 무대하고 너무 분리가 되어 있어서 아쉬웠어요. 조금 더 친밀한 거리에서 보고 싶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유재미
그래서 첫날 공연 이후에는 원래 저희가 하는 형식으로 바꾸었어요. 관객에게 친숙하게 말을 걸고 무대 안에서도 뭔가 작업을 하는 것처럼 많이 바꿨어요. 그러니까 분위기가 또 확 달라지더라고요.
윤서비
애초 계획이 그거였어요. 저는 벽돌 극장을 생각하고 작업을 시작했는데 리모델링해서 많이 바뀌었더라고요. 극장이 너무 포멀하고 저희가 늘 쓰던 공간하고는 너무 다른 거에요. 당연히 관객이 코앞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다가 막상 극장에 들어가고 나니 객석 5줄이 너무 멀더라고요. 만약에 이걸 다시 처음부터 기획을 해서 할 수 있다면 인디아트홀이나 공장 같은 공간으로 들어가는 게 저희한테는 더 잘 어울려요. 극장에서 하는 건 너무 가짜 같아요. 공연이라는 형식을 너무 치밀하게 가져가다보면 런닝타임이 얼마냐 큐가 언제냐, 이런 것들을 고민하게 되거든요. 사실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닌데 말이죠.
김태희
특히나 아르코가 괜히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하는 건물인 것 같기도 해요. (웃음) 안무는 어떤 식으로 작업이 이루어졌는지도 궁금해요. 워낙 배우님들이 몸을 잘 쓰시다보니까 그걸 보는 재미도 있었던 것 같아요. 로봇으로 둘러쌓인 곳에서 사람의 신체가 부각되었을 때의 느낌도 독특하더라고요.
유재미
배우들이 각자 자기 작품들을 가지고 온 거기 때문에 제가 어떻게 하라고 선명하게 지시를 한다기보다는 각자 가지고 온 움직임들을 작품과 더 잘 어울리게 서포트 해주는 역할을 담당했어요. 로봇하고 안무를 맞추는 작업은 마치 하나의 즉흥 같아요. 저는 움직임을 만들 때 로봇 역시도 하나의 퍼포머로 바라봤거든요. 물론 로봇들은 선생님의 계획 하에 움직이는 거긴 하지만, 그 움직임의 다이나믹, 시간들, 그런 것들이 저한테는 일종의 즉흥으로 와닿았어요. 그리고 그 다음에 실제로 즉흥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 움직임들과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면서요. 로봇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저희가 그 로봇의 움직임에 반응하고, 마치 저희의 움직임에 로봇들이 반응해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면서요. 어느 순간에는 로봇에게서 감정까지 느껴지고요 또 그들도 사람의 손을 타는 것처럼 누구에게는 잘 움직이는 로봇이 누구에게 가면 갑자기 작동을 안 하고요. 그런 걸 실제로 경험했어요.
김태희
뭔지 알 것 같기도 해요. 제 물건을 누가 다루려고 하면 잘 안될 때 있잖아요.
윤서비
2편 때 개인적으로 재밌었던 게 유재미, 김현주 선생님 두 분이서 천장에 매달리는 로봇하고 안무를 하는 거예요. 선생님은 컴퓨터로 안무를 하고 재미는 몸으로 안무를 하고. 그렇게 타이밍을 조정하고 신을 구성을 했어요. 밤새도록요. 그게 진짜 특이한 경험이었어요. 저는 그 작업이 너무 웃긴 거예요.
김태희
굉장히 다양한 상호작용이 일어나네요. 기계와 유재미 선생님, 그걸 다루시는 김현주 선생님과 기계, 그걸 매개로 한 두 분의 상호작용까지요.
윤서비
열 받는 일들이 보통 많이 일어나는 게 아니거든요. 로봇들이 말을 잘 안 들어요. 사실은 로봇은 우리가 시키는 대로 하는 거고 우리가 잘못한 건데도 막 성질이 나고 감정이 이입되고 그래요. (웃음)
김태희
로봇으로 이야기하는 이 방식을 앞으로도 계속 하실 생각이신 거예요?
윤서비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저는 충분히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해요. 다만 몇 년 후에 충분히 숙성시켜서 이 방식을 통해 죽음을 주제로 다뤄보고 싶다는 생각은 해요. 그거 말고 개인적으로 욕심과 바람이 있다면 공연보다는 전시에 가까운, 즉, 설치작품 전시에 퍼포먼스가 살짝만 가미된 형식의 작품을 하고 싶어요. 이건 김현주 선생님이 하고 계시는 작업의 연장선이기도 해요. 제가 할 수 있는 연출적 기술을 가지고 와서 약간의 움직임이 가미된 전시를 만들어 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저는 그런데 선생님은 어떠신지 모르겠어요. (웃음)
김태희
뭔가 공유하는 지점이 맞아 떨어져서 몇 년간 계속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게 대단한 것 같아요. 같은 분야의 사람들도 아닌데요.
윤서비
로봇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선생님밖에 없어서가 아니에요. 로봇을 만들기 위해 협업자를 찾자면 있어요. 그런 문제랑은 좀 달라요. <로봇을 이겨라>의 콘셉트가 저에게서 출발은 했지만 숙성은 선생님에게서 된 게 되게 많아요. 3편도 사실은 사랑 이야기가 첫 번째 주제였던 건 아니고요, 사물인터넷이 유행해서 그걸 넣고 싶었어요. 그랬더니 사물철학이라는 저는 들어보지 못한 걸 제시하시는 거예요. 그거 때문에 제가 다시 공부를 하고 생각을 좀 정리하면서 이 작품이 출발할 수 있었어요.
김현주
요즘엔 그래서 연출님이 저보다 공부를 많이 하세요. 옆에서 보면 겁날 정도로 많이 해요. 제가 관심 가졌던 영역에 선생님도 관심을 가지니까 계속 작업이 가능했던 것 같아요. 3년 동안 세 번의 협업은 공유되는 지점이 없었으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김태희
(웃음) 그럼 몇 년 후의 <로봇을 이겨라> 죽음 편을 기대해도 되겠네요.

이미 50년도 더 전에 질베르 시몽동은 기계가 더 이상 사람의 도구가 아님을 선언했다. 그에게 있어 기계는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어야 할 대상이었고 그들과 만드는 네트워크는 우리의 삶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줄 든든한 안정망이기도 했다. 무섭게 성장하는 인공지능을 목격하면서 다시금 시몽동을 떠올린다. 그리고 로봇과 함께 춤을 추는 이들의 모습을 슬쩍 포개 본다. 어쩌면 이들이야말로 곧 도래할 신인류가 아닐까. 그리고 이들의 작업은 구(舊)인류와 신(新)인류, 나아가 자아와 타자의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는 데에 유효한 참고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독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