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이와삼 <신자유주의놀이-빈의자>
누구도 쉴 수 없이, 의자는 비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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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무언가 뒤쳐진 것 같다. 나는 항상 무언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항상 무언가를 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다. 나는 시간이 없고 항상 바쁘다. 나는 우울하다. 나는, 괴롭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극단 이와삼의 <신자유주의놀이-빈의자>는 그것이 나의 잘못이 아닌 신자유주의의 잘못이라고 말한다. 내가 능력이 부족하거나 못난 탓만이 아니라고. 그러니 한 걸음만 앞으로 나오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그렇다는 걸 알게 될 거라고. 트랙 B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찾아온 극단 이와삼을 만났다.

- 윤성호
- 간단히 공연에 대해 말씀해 주신다면?
- 황설하
- 사실 신자유주의라는 것이 우리 일상에 굉장히 깊숙이 들어와 작동하고 있는데, 실제로 그것이 무엇이고, 왜 그것이 우리를 우울하게 하는지에 대한 인식 없이 살고 있지 않은가라는 질문이 시작점이었습니다. ‘난 왜 이렇게 우울하지?’, ‘난 왜 이렇게 바쁘지?’, ‘난 왜 이렇게 못하고 뒤쳐지는 것 같지?’ 물론 이 모든 것이 신자유주의 때문만은 아니지만, 적어도 신자유주의 때문에 발생한 문제가 있고, 그것과 개인적인 것은 구별하자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연출님과 배우들 모두 우리 삶이 신자유주의에 잠식당하기 전후가 확연히 다르다, 라고 감각했고, 이 이야기를 연극으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하지만 상대적으로 시간이 더 걸리는 드라마적인 방식만으로 급변하는 시대상을 담아내는 것에 한계가 있다고 보고, 우리 배우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버바텀 방식을 차용하여 이야기해보기로 했습니다. 우리 배우들의 경험을 먼저 풀어내야 보는 관객도 마음을 열고 이를 공유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버바텀(Verbatim)은 영국을 중심으로 떠오른 연극 사조 중 하나로, 언론, 기록물 등의 실재하는 사회적 이슈들을 배우들이 대사로 발화하는 형식이다.)
- 황설하
- 배우의 말대로 공연은 드라마적 재현으로 작동하지 앉는다. 배우들이 공연 시작 전부터 나와서 관객들을 안내하고, 공연이 시작하면 각각 의자에 앉는다. 중앙의 한 의자가 비어있다. 빈의자는 아마도 지금은 함께 공연을 하지 못하는 동료 배우의 자리일 것이다. 왜 공연을 하지 못할까. 무대 위의 배우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인 것처럼 관객에게 말하기도 하고, 직접 재현하기도 한다. 거기에서 연극은 시작한다. 배우는 결혼을 해야했고, 돈이 필요했으며 다른 일을 해야만 했다. 영상으로 다른 배우의 사진도 나온다. 다른 사람 신경쓰지 않고 자신만의 연애를 하겠다고 선언했으나, 가난하고 다소 궁상맞은 남자친구를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고, 또 자신이 속물이 된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한다. 그들은 무대 위에서 토론을 하고, 달리기도 하며 그것이 모두 신자유주의 때문이라고 말한다.
- 윤성호
- 저도 글을 쓰는 작가의 입장에서, 다원화되고 급변하는 사회를 전통적인 드라마방식으로 얼마나 효과적으로 소화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많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극단 이와삼의 이번 ‘트랙 B’ 작업이 궁금합니다. 이번 공연이 첫 작업인거죠?
- 조연희
- 그간 이와삼에서 했던 공연들은 재현 위주의 드라마 작업이었어요. 그 작업들을 ‘트랙 A’로 명명하고 지속하는 동시에, 극단이 동시대적인 고민을 방금 말했던 다른 방식으로도 풀고자 하는 뜻에서 고안했습니다.
- 윤성호
- 극단 작업이 양식적으로 이원화된다는 것이 인상적인데, 그렇다면 트랙 B에선 배우들이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방식일까요?
- 김동규
- 특별히 배우들이 주체적이라기보다는 연출님과 배우들의 공동창작이었고, 구성의 경우 장우재 연출님과 황설하 배우님이 공동 구성을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 윤성호
- 다소 생소한 작업이었을 것 같은데 시행착오는 없었나요? 작업 과정도 궁금합니다.
- 조연희
- 작년에 이와삼에서 신자유주의를 주제로 세미나가 있었고, 배우들이 페이퍼를 작성하고 연출님이 구성을 하면서 워크숍 발표를 했었어요. 이후에 공연과 배우가 확정되면서 또다시 세미나와 페이퍼 작성을 하면서 텍스트를 보강하고, 움직임도 덧붙여갔죠.
- 김동규
- 이전 작업에서는 잘 짜여진 대본이 있었다면, 이제는 자기 대사를 배우 자신이 써야하는 상황이 된 거죠. 연출님이 ‘전체를 봐야 한다’라는 말씀을 많이 하세요. 배우들은 아무래도 자신 위주로 보기가 쉬워서 익숙지만은 않은 작업이었어요. 글을 쓴다는 것도, 신자유주의라는 주제도 사실 생소했고요. 나름 공부를 열심히 하며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연출님이 움직임 등을 넣으며 구성을 하셨고요.
- 황설하
- 그 과정에서 오브제의 필요성을 느꼈고, 빈의자가 들어왔는데 이게 신자유주의와 잘 맞아떨어졌던 것 같아요.
조연희
- 윤성호
- 제목에도 ‘빈 의자’가 있고, 신자유주의와도 잘 맞는다고 하셨는데 어떤 지점에서 잘 맞았나요?
- 조연희
- ‘빈 의자‘는 의자이긴 한데 빈 의자니까, 뭔가 채우고 있다가 사라졌다는 의미에 집중했습니다.
- 황설하
- 그리고 그것이 신자유주의랑 연결되는 지점은, 신자유주의는 한 사람을 한 자리에 고정시키지 않아요. 제가 언젠가 인터뷰를 했었는데, 그 인터뷰를 진행하는 기자님도 곧 바뀔 예정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어떤 노동자의 자리든 회전율이 빨라지면서 비정규직이 많아지고, 자기 자리가 없어지게 되는 거죠. 이 시대는. 내 자린가 싶어서 앉아보면, 다른 사람이 들어와서 비켜줘야 하고, 그건 누구도 마찬가지일거예요. 김군의 경우도 그런 사례라고 볼 수 있을 거고요. 결국 빈 의자는 이 시대의 수많은 사람들이 앉았다가 간 자리인거죠. 신자유주의가 구조적으로 사람들을 그렇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 윤성호
- 결혼 준비, 연애 등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하고 사소해 보이는 사례들까지 신자유주의와 연결시키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동시에 일면 의문이 생기기도 하더라고요. 이게 정말 다 신자유주의 때문일까?
- 황설하
- 그 부분은 저희로서도 우려가 되는 지점이었던 것 같아요. ‘그럼 모든 게 다 신자유주의 때문이냐’같은 질문이 나올 수 있거든요. 공연에서 그 연결지점을 모두 설명할 필요는 없지만, 연결고리가 있다는 것을 최소한 관객으로 하여금 느끼게는 해야 할 것 같았죠. 그런 의미에서, 연출님께서 리플릿에 그 연결지점을 쓰자고 하셔서, 제가 썼습니다. 공연에서는 약간 안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웃음)
- 윤성호
- (역시 웃음) 그럼 리플릿을 보지 못한 분들을 위해 조금만 말씀해주신다면...
- 황설하
- 공연 사례와 관련해 간단하게 말씀드리자면, 신자유주의가 문화적 취향이나 선호를 하향 평준화시키는 겁니다. 다른 사람 눈치 안보고 자신만의 기준으로 결혼 준비를 하려던, 그리고 자신만의 기준으로 연애를 하려던 커플들이 자신도 모르게 눈치를 보고 있고, 불안해지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설정된 하향평준화에도 미치지 못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에요. ‘이정도 결혼식장은 되어야지’. ‘연애를 하며 같이 한번쯤 해외여행은 가야지’ 등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매스컴 등을 통해 주입된 욕망을 내 욕망으로 오인하니까요. 조금만 더 부연하자면 신자유주의는 특성 자체가 제조산업이라기보다는 금융산업 중심입니다. 돈 놓고 돈을 먹는... 그건 단순히 노동자를 착취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의 욕망으로 자발적으로 소비하게 만드는 시스템입니다. 최근 티비에서 유행하는 ‘아빠 프로그램’들을 보면 아빠들은 또 우울해집니다. 거기서 나오는 것들은 기본적으로 해야 할 것 같으니까요.
황설하
배우들의 더 다양한 사례들이 등장하고 그들은 무대 위에서 또 토론하고, 달린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들 또한 신자유주의 때문이다, 라고 말한다.
그리고 배우 자신들의 이야기에서 뻗어나가, 스크린도어에서 수리 업무를 하다 열차에 치어 사망한 김군의 이야기로 도착한다. 그 또한 외주화와 잘못된 지연배상/안전 관리 시스템 속에서 그저 열심히 일하려 하다 참변을 당했다. 그 또한 신자유주의의 희생자였다. 그리고 이야기는 관객에게 도착한다. 배우들의 관극 회원들의 편지를 무대 위에서 읽는다. 그러면서 무대 위의 이들은 말하는 듯하다. 공유해야한다고. 혼자 괴로워하면 안 된다고.
- 윤성호
- 그런 신자유주의의 흐름이 연극에도 이어지는 것 같은데. 저는 그 대사가 기억에 남아요 ‘저는 연극하는 게 힘들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신자유주의가 힘들다고 말하는 겁니다’
- 황설하
- 보통 연극하는 사람으로서의 힘듦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 사람들이 그건 제가 연극을 선택해서 감당해야할 힘듦이라고 말할 때가 있어요. 마치 제 고민들이 다 연극 때문에 발생한 것처럼. 하지만 저도 한사람의 시민이고 국민이기 때문에 지금의 신자유주의의 영향을 어떤 식으로든 받는 것인데, 제 힘듦이 다만 연극을 하기 때문으로 발생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실상은 연극을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다른 직종을 가졌다고 해도 똑같이 발생하게 될 문제라는 것이죠.
- 김동규
- 좀 더 연극적인 이야기를 해보자면, 사실 극장에서 공연을 한다고 하면 대관료, 세트 등등을 생각하면 민간 극단으로는 수익은 생각도 할 수 없고, 운영조차 어려워서 결국 지원금 없이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구조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죠. 이것 또한 올라가보면 신자유주의와 연결되어 있는 구조니까.
또한 지원금은 경쟁률도 높고 지원 방식도 복잡하니까, 누군가 지원 방식에 익숙해지거나 전문 인력을 따로 고용해야 해요 그렇게 되면 결국 시간 혹은 자본이 들어가게 되어서 힘들고, 그렇다고 하지 않으면 지원금을 받지 못해 힘든 악순환이 계속되는 거죠. - 황설하
- 그래서 이번 트랙 B의 경우는 지원금을 받긴 했지만, 이 양식과 방식을 실험해보고, 이후부터는 점차 자본에서 자립해서 작품을 만들어가는 게 목표입니다.
- 윤성호
- 극단 이와삼의 트랙 B. 여러 가지 면에서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습니다. 배우 분들은 향후 트랙 B 작업을 어떻게 해가고 싶나요?
- 조연희
- 솔직히 전 잘 모르겠어요. 사실 이번 공연은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전 신자유주의에 대해서도 잘 몰랐는데 알면 알수록 기분도 안좋고 무력감만 느끼고... 결론적으로 말하면 지금은 잘 했다고 생각해요. 이제 우울의 다음 단계로 나아간 거 같아서. 트랙 A도 트랙B 각각의 재미가 있고, 그걸 잘 발견해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개인적인 지점이긴 한데 포스트드라마라고 해서 너무 날 것의 구성되지 않은 것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아요. 그렇게 발산해버리기보다는 어느 정도의 구성과 정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 김동규
- 저는 움직임이라는 요소를 통해 이 표현양식을 더 다듬어가고 싶어요. 그리고 연극을 하고 있긴 하지만 그 안에서 다시 ‘연극’을 다루는 것에서는 조금 벗어나서 누구에게나 더 보편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저희는 연극을 하고 있고, 관객도 연극을 보러 오신 것이니까 굳이 또 공연에서 연극에 대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고. 개인적인 생각일 수도 있지만.
김동규
- 윤성호
- 공연이 시작한지 며칠 되었는데 관객 반응들은 어떤가요?
- 조연희
- 자꾸 먹을 걸 사주세요.
- 황설하
- 공연 때 배우들이 계속 뛰어다녀서 그런지, 힘든 이야기들을 풀어내서 그런지 빵, 사발면, 귤 등등 다양하게 들어옵니다. 불쌍하게 보이는 건지. (웃음)
- 김동규
- 나이가 있으신 분들도 ‘애 많이 썼어’하고 봐주시는 느낌? 근데 속으로 어떻게 느끼시는지가 궁금하기도 해요.
- 황설하
- 단지 애쓴다 뿐만이 아니고 뭔가를 건드리긴 한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그런 피드백을 듣기도 하고. 힘든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무대 위에서 숨이 차도록 뛰어다니는 힘듦도 관객에게 무언가를 전달할 것 같고요.
- 조연희
- 관객과의 대화에서도 공연을 보고 실제 자신의 사연도 들려주고 싶다고 하신 분도 있었어요.
- 황설하
-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알바를 하는데 그것 때문에 그림을 그릴 수가 없다는 분이었어요.
- 윤성호
- 듣고 나니까 공연이 말하고자 했던 ‘너무나 많은 것들이 신자유주의 때문이다. 물론 그걸 안다고 해서 바로 무언가 바뀌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우리끼리 알고 서로 공유를 하자’라는 방향과 관객이 어떤 면에서 만났다는 생각도 듭니다.
- 김동규
- 작품 안에서 ‘네가 힘든 건 네 탓이 아니다. 현재의 구조와 시스템 때문이지 네 능력이 부족하거나 네가 잘못해서 힘든 것이 아니다’라고 말해주는 부분이 있어요. 거기서 위안은 받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자기 자신의 탓은 아니라는 것이 인식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렇다고해도 우울한 건 마찬가지겠지만, 더 큰 공유로 나갈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내 탓이 아니니까.
- 황설하
- 트랙 B의 의미를 다시 정리해보자면 자본으로부터 독립하는 측면이 아주 큰 것 같습니다. 끝없이 지원금에 의존하는 시스템 속에서 지원이 작업보다도 우선시 되어버리는 현상에서 벗어나서, 진정 하고 싶은 작업을 하는 것은 중요하니까요. 또 뉴스에도 못 담을 만큼 세상에서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고, 그저 못 본 척 하고 지나치지 않으면서 알아야 하고 취재할 것이 너무 많죠. 그리고 그것을 연극적으로 발화하고 싶은 욕망에서 트랙 B가 탄생한 것 같습니다. 저희는 현재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런 소재들에 대한 관심과 취재를 놓지 않을 것이고요. 장우재 연출님이 자주 하시는 말씀처럼 세상의 밭에서 계속해서 연극을 찾아갈 예정입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공연팀의 권유로 술자리에 합류했다. 공연 얘기도 하고, 개인적인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하면서 밤은 깊어갔다.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남긴다.
“무대 위의 의자는 비어있고, 그 옆에 누군가 와서 그 의자에 앉아 있다가 사라져간 사람 이야기를 한다. 그러다 말하던 누군가도 어둠 속으로 사라져가고, 그것이 계속 반복된다. 무대 위에서 그걸 보고 있는 나는 울 수밖에 없다.”
“우리뿐만 아니라 모두가 어떤 문제 제기를 한다. 모두가 화가 나있는 것 같다. 이 공연처럼 무언가 말을 하고 문제 제기를 하는 것도 좋지만, 누군가는 그저 보듬어 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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