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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명작옥수수밭 <블루하츠>

중력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사는 법

김태희_연극평론가
130호 2017.12.21
가족이라는 것은 이상하다. 같이 있으면 즐겁지만 또 너무 가까워지면 금방 다투거나 문제가 생긴다. 서로를 지독하게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때로는 말없이도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기도 한다. 지겹게 싸우면서도 영영 끊어버리지 못하는 이상한 관계, 그래도 힘들 때면 가장 먼저 찾게 되는 관계,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묘한 관계가 바로 ‘가족’이다. ...

가족이라는 것은 이상하다. 같이 있으면 즐겁지만 또 너무 가까워지면 금방 다투거나 문제가 생긴다. 서로를 지독하게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때로는 말없이도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기도 한다. 지겹게 싸우면서도 영영 끊어버리지 못하는 이상한 관계, 그래도 힘들 때면 가장 먼저 찾게 되는 관계,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묘한 관계가 바로 ‘가족’이다.
여기 정말 이상한 가족이 있다. 현직 정형외과 의사이자 퇴직 후 밴드를 창단하겠다고 공언하고 다니는 엄마 문영과 우주인이 되는 것이 꿈인 수진, 이혼 기념일을 함께 축하하며 이들 주위를 맴도는 수진의 전남편 민규까지. 겉으로 보기엔 쿨한 이 가족은 사실 수진과 민규의 아들 초롱의 죽음으로 인해 속은 너덜너덜해진 상태다. <블루하츠>(최원종 작/연출, 이시원 협력연출)는 서로의 상처를 쿨함이라는 단어 뒤에 숨기고 있던 이들이,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서로의 삶을 위로하고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엄마라는 특별한 이름

김태희
공연 재밌게 잘 봤습니다. 언뜻 창작하신지 조금 된 작품이라고 들었어요.
최원종
이 작품은 대략 8년 전에 썼던 작품이에요, 작은 신화의 신동인 연출님이 이 작품을 올린 적이 있었고요. 그때와 지금 버전이 크게 달라진 건, 원작은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거든요. 그런데 이번 공연을 앞두고 협력연출인 이시원 작가님께서 엄마와 딸의 이야기로 바꿔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셨어요. 듣고 보니까 엄마, 딸, 하나짱이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를 이야기할 수 있는 인물들로 느껴져서 흔쾌히 수락했죠.
김태희
제가 극중 수진이와 연배가 비슷하거든요. 그러다보니까 수진과 엄마의 모습에서 저와 엄마의 모습을 보는 순간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연기하시는 배우님들도 그런 지점이 많았을 것 같아요.
이정미
이 작품을 하면서 나하고 딸의 관계를 많이 생각했고 남편을 잃고 살아가는 많은 여성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게 얼마나 큰 아픔인지 최근에 작품을 하면서 알게 된거죠. 엄마와 딸의 관계는 시대를 초월하는 존재인 것 같아요. 내가 아픈 건 괜찮은데 딸이 아픈 건 너무 아파요. 동시에 재밌는 건 엄마는 그런 아픔을 딸에게 드러내지 않아요. 반대로 딸 역시 엄마하고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또 말하지 못하거든요. 그러니까 가장 가까우면서 가장 먼 존재인 것 같아요.
김나미
저는 원작을 읽어봤거든요. 극적 구성이나 대사는 전혀 고치지 않고 아빠를 엄마로 바꾸었을 뿐인데, 엄마라는 존재 자체가 주는 너무 큰 공감대와 친밀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연기하는 저도 엄마와 딸이 되니까 더 편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심지어 연습 때 너무 친해져서 연출님이 그만 친해지라고 할 정도였어요. (웃음)
김태희
엄마가 하필 정형외과 의사인 것도 재밌었어요. 그런 면에서 엄마는 되게 현실적인 거죠. 엄마가 정형외과니까 사진은 당연히 엑스레이로. (웃음) 극중에서 엄마가 할 수 있는 가장 엄마다운 사랑의 표현이었던 것 같아요.
이시원
작가님이 처음부터 그 장면에 힘을 주고 싶다고 했어요. 엄마가 딸을 위해 찍어 높은 사진첩은 뼈로 된 사진이었으면 좋겠다고요. 그것이 영화 <시네마천국>에서 사진을 통해 성장 앨범을 보여주듯이, 이게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라고 했어요.
이정미
그 부분에 굉장히 많은 사람이 울컥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정말 무심히 연기하거든요. 그런데 그게 엄마 마음인 것 같아요. 자연스러운 거죠. 자식에 관한 것들을 모아두는 거. 그 부분에 사람들이 많이 마음이 아팠다고 하더라고요.
김태희
딸의 뼈 사진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엄마가 엄마 인생의 전부였던 정형외과를 정리하는 씬이기도 하잖아요. 엄마가 병원을 닫는 것에 대한 서운함 같은 감정이 하나도 없고 오히려 그걸 정리하는 과정에서 딸의 뼈 사진을 보며 기뻐하는 장면을 보니까 그게 더 울컥하더라고요. 엄마도 이걸 정리하면서 엄마 인생을 돌아보는 시간일 텐데, 그 순간에도 엄마한테는 딸 밖에 없구나 싶어서요.
최원종
저도 그 장면이 제일 감동적이었는데, 조금 포인트가 달라요. 엄마의 짐 정리를 하다가 쌓여있는 과자를 발견하고 딸이 엄마에게, "심심했어?" 라고 묻잖아요. 사실 부모도 얼마나 본인 인생을 재밌고 즐겁게 살고 싶었겠어요. 하지만 오로지 딸을 위해서 자기 인생을 견뎌내는 거죠, 심심하더라도 말이에요. 그 장면이 저한테는 항상 감동적이었어요.
이시원
저는 엄마인 문영이, 지금의 저보다 젊은 나이에 딸 수진과 단 둘이 세상에 남겨졌을 때 무서웠을 것 같아요. 저는 가끔 그런 생각하거든요. 딸과 저만 남겨지면 어떻게 하나. 부모가 되면 세상이 무서워진다는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걸 이겨내고 버텨내기 위해서 딸을 키우기 위해서 얼마나 혼자 외롭고 쓸쓸한 싸움을 했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가끔 저보다 훨씬 연배로는 많은 문영에게 감정 이입이 많이 될 때가 있어요.

상처가 치유되기까지

김태희
아이가 죽고 4년 정도 흐른 거죠? 초롱이는 어떻게 죽게 되는 설정이었나요? 수진이가 아이의 죽음을 오롯이 본인 잘못으로 받아들이고 있어서 특별한 전사가 있는지 궁금했어요.
이시원
특별히 큰 사고는 아니고요, 아주 일상에서 있을 수 있는 작은 사고라고 설정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작은 사고로 아이를 잃더라도 엄마는 다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할 것 같았어요.
김태희
그래서 민규가 사실 조금 얄미웠어요. 당연히 민규도 아이를 잃고 상처를 받았을 텐데 수진과 차이가 나는 것 같았어요. 민규는 너무 빨리 상처를 극복하고 홀가분하게 재혼을 하는 것에 비해 수진이는 상처를 받아들이는 거 자체가 시작이 되지 않은, 외면만 하고 있는 인물로 보였거든요. 물론 마지막에 약을 먹은 수진 때문에 응급실에 와서 괴로워하는 민규를 보니까 일부러 얄밉게 굴고 있었다는 게 느껴지긴 했지만요.
이시원
일부러 얄밉게 연기해달라고 부탁했어요. 자식을 잃는다는 건 민규나 수진에게 똑같은 아픔이잖아요. 그래서 서로를 보는 것만으로도 아픈 기억이 떠오르는 사이가 돼버렸고요. 그럴 때는 둘 중 하나가 불쑥 찾아와 실없이 농담을 건네고 핀잔을 들어도 묵묵히 곁에 있어줘야 만남이 지속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바로 민규였던 거죠.
이갑선
다른 나라가 어떤지 모르겠는데 우리나라는 집안의 남성이라는 존재에 대해 어쩔 수 없는 의존도라는 게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흔히 농담으로 누군가는 아, 이래서 집에 아들이 있어야해, 라고 하잖아요.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극중 어머니한테는 아들 같은 든든한 사람이고 싶었고 수진한테는 가끔은 아버지이고 싶었어요. 비록 헤어진 아내지만, 수진을 위해 내가 진정으로 독립하고 바로 서서 잘 살아야, 수진의 상처도 조금 옅어질 수 있을 텐데, 그런 생각도 많이 했죠.
김태희
엄마와 민규의 관계도 색다르게 다가오는 지점이 있네요. 말씀을 들으면서 장면들을 떠올려보니 얄밉게 생각한 게 미안할 만큼 민규는 철이 든 모습이 있기도 하네요. 한편 수진은 계속 외면을 하는 거잖아요. 아이 사진을 다 없애면서까지 꾹꾹 눌렀던 상처가 갑자기 툭 터지면서 속마음이 폭발해서 흘러나오게 된 계기가 뭐였을까요? 초롱이의 사진이 계기일까요?
김나미
여러 가지가 복합적이었어요. 민규가 떠나는 게 초롱이를 떠나보내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민규가 곧 초롱이고 초롱이가 곧 민규였으니까요. 수진은 오랫동안 우주로 가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우주로 표현되긴 하지만 그건 죽음을 향해 가는 거거든요. 그런 계획이 있었으니까 죽기 직전에 또 마음을 다 털어놓을 수도 있었을 것 같기도 해요.
김태희
수진의 자살 시도가 결국 실패하잖아요. 응급실 밖에서 엄마와 민규가 기다리는 장면도 슬펐어요.
최원종
민규와 어머니가 수진의 토하는 소리를 듣잖아요. 원래는 더 길게 틀고 싶었는데 음향상의 제약 때문에 짧아졌죠. 제가 이시원 연출에게 물어봤어요. 왜 이렇게 기냐고. 그랬더니 지구로 돌아오는 소리라고 하더라고요, 그게 저한테 되게 강렬했어요.
이시원
우주로 떠났다가 돌아오는 소리가 처절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지구의 삶이 힘들어서 우주로 갔지만 다시 지구로 돌아오는 일이 쉬운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약을 먹고 게워낼 때 죽기만큼 고통스러운 일이래요. 그 소리의 처절함이 극대화되어야 문영과 민규가 수진이 자기들 곁으로 돌아오는 걸 같이 아파하면서 맞아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불이라도 실컷 뿜어낼 수 있다면

김태희
유미배우님은 실제로 재일교포이신 거죠?
강유미
네 재일교포3세예요.
최원종
극중 하나짱은 강유미 배우를 모델로 해서 만들어진 인물이에요. 예전에 강유미 배우가 일본에서 한국에 와서 막 연극을 시작할 때 제가 왜 일본에서 연극하지 한국에 와서 연극을 하려고 하는지를 물어봤거든요. 그랬더니 전 한국 사람이니까 한국에서 하고 싶어요, 라고 대답을 했는데 저한테는 그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그 일을 계기로 언젠가 유미배우를 위해서 작품을 쓰겠다고 생각했고, 하나짱이 그렇게 해서 탄생하게 된 거에요.
김태희
정말 흔하지 않은 경우네요.
이시원
하나짱은 아르바이트를 구하러 와서 그걸 계기로 엄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인물인데요. 저는 엄마가 수진을 보는 것처럼 하나짱도 딸처럼 대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녀의 꿈과 좌절에 대해서 듣고 나서 중력의 아름다움을 하나짱에게도 알려주고 있는 거죠. 작가님이 본인은 이 작품이 엄마와 딸 수진의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막상 무대에 올라가고 나니 하나짱의 꿈에 대한 이야기가 새로 와 닿았다고 하더라고요. 이 작품에는 엄마의 꿈과 수진의 꿈 그리고 하나짱의 꿈이 함께 펼쳐져 있는 것 같아요.
김태희
민규가 너무 소외되는 거 아닌가요. (웃음)
최원종
민규의 꿈도 있어요. 아까 갑선 배우님도 이야기했지만, 두 사람이 있을 때 내가 독립을 해야지만 상대도 독립을 할 수 있거든요. 민규는 그런 꿈을 꾼 것 같아요. 내가 독립해야 수진도 독립할 수 있다. 그래서 노력하는 것 같아요. 수진을 위해서요. 또 다른 사랑법이죠.
김태희
수진의 꿈은 우주인이 되는 거고 하나짱의 꿈은 불을 뿜는 거잖아요. 왜 그런 설정들이 만들어진 건지 궁금해요.
최원종
실제로 제가 젊은 나이에 불을 뿜고 싶었어요. 근데 불이 안 나오는 거예요. 제가 작가만 했던 시절에는, 제가 좋아하는 작품만 쓰려고 했어요. 그러다보니 연출님들도 힘들어하시고 관객들의 반응도 좋지 않았어요. 그러는 사이 불을 뿜지 못하고 나이가 들게 됐어요. 주변에 불을 뿜는 작가들을 보면서 늘 부러워만 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생각했어요. 나만의 불을 뿜으려면 어떤 작품을 써야 하나. 그렇게 제 작품 생깔도 점점 바뀌게 된 거죠. 작품에서 의사선생님인 문영이 지금도 불을 뿜고 싶냐고 물었을 때 하나짱이 “예, 뿜고 싶어요.”라고 대답해요. 그 대사가 늘 사무치는 것 같아요. 불을 뿜는 걸 포기하면 죽겠구나, 뭔가 삶의 희망이 꺾여서 서서히 사라지겠구나 싶었어요. 어떻게 보면 제 꿈을 담아서 쓴 것 같아요.
김태희
다들 누구나 그런 생각은 해봤을 것 같아요. 아, 진짜 불이라도 뿜고 싶다, 이런 생각이요. 그럼 우주인은요?
최원종
이것도 제 개인적인 서사가 담겨있는데요. 이 작품을 쓸 즈음 제가 작가로서 제 작품 세계를 펼치지 못하고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던 작가의 꿈을 접고 이 세상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면 사람들한테 우주에 간다고 이야기하고 다녀야지,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근데 실제로 우주인 선발대회가 있었던 거예요. 그게 우주에 진짜 가고 싶다기보다는, 할 수 있는 게 그거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 소재에 흥미를 느꼈던 것 같아요. 우주에 관련된 책, 우주에 다녀온 사람들의 후유증도 찾아보고, 평범한 사람들이 우주에 가기 위한 트레이닝도 연구를 하고. 저한테는 그게 하나의 도피처였던 것 같아요. 수진도 우주에 간다고 하지만 자신의 삶을 끝내는 곳으로 가는 거잖아요. 제가 그 때 그랬던 것 같아요.
이시원
저도 배우들하고 우주는 어떤 곳일지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죽음인가, 끝인가, 아님 진짜 꿈의 장소인가. 하나짱이 잠이 들면 영원히 눈을 뜨고 싶지 않다는 대사를 하는데, 사실 힘들 때 모두가 하는 생각이기도 하잖아요. 우주처럼 중력이 없는 곳에서 떠다니고 싶은 나를 땅에 발 디디게 하는 힘, 그 힘은 가족이 될 수도 있고 자식일 수도 있는데요. 많은 힘이 저를 땅에 붙들고 있잖아요. 그런데 그걸 놓고 떠다니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러다가 눈을 다시 떠서 아침이 오면 중력을 느끼면서 하루를 살고. 그런 게 인생이 아닌가 싶어요.
김태희
유미 배우님도 본인 캐릭터가 녹아든 이야기여서 각별하실 것 같아요.
강유미
아까 작가님이 말씀하셨지만 하나짱 이야기는 제가 한국에 온지 얼마 안 됐을 때 이야기에요.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이야기거든요. 제가 한국에서 공연도 많이 하고 이제 연기를 쉬고 싶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오랜만에 그 역할을 맡았더니 너무 어려운거에요. 나의 청춘과 열정이 사라져있는 거죠. 그걸 끌어올리기가 굉장히 힘들었던 것 같아요. 저도 잊고 있었는데 하나짱이라는 캐릭터를 처음 만들었을 때 제가 썼던 글이 있더라고요. 오랜만에 그 기록을 보면서 10년 만에, 예전의 내 모습을 떠올리고 덕분에 초심을 다진 것 같아요.

절망의 끝자락에서 나를 버티게 하는 건 무엇일까. 그것은 이시원 연출의 말처럼 가족일 수도 자식일 수도 있다. 또 어쩌면 잊고 있었던 꿈, 내 안에 간직하고 있는 절절 끊는 불씨일 수도 있다. 삶은 분명 아픔의 연속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런 순간마다 나를 잡아주는 중력이 있다는 거다. 내 두 발을 단단하게 붙잡아줄 존재들을 잊지 않는다면 그 아름다움을 느끼며 살아간다면 이 세상은 여전히 살아 볼 만한 게 아닐까.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