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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씨어터 즉각반응 <유령 Live Stream>

유령, 보이지 않지만 살아 흐르는

송이원_연출가
138호 2018.04.19
대학로에서 벗어나 새로운 연극 패러다임을 구축하고자 기획된 ‘사계절연극제’가 어느덧 두 번째 봄을 맞게 되었다.

대학로에서 벗어나 새로운 연극 패러다임을 구축하고자 기획된 ‘사계절연극제’가 어느덧 두 번째 봄을 맞게 되었다. 작년의 축제 공간이었던 공간소극장에서 탁 트인 도봉산자락의 평화문화진지로 ‘극장’을 옮기게 되었고,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이어 올해는 근대 연극의 초석 ‘헨릭 입센’을 주제로 그의 작품들을 여섯 차례에 걸쳐 상연할 예정이다. 봄이라기엔 다소 쌀쌀했던 한 주말의 해질녘, 연극제의 시작을 알리는 봄의 작품, <유령 Live Stream>과 극단 ‘즉각반응’을 만났다.

송이원
방호시설로 사용되었던 공간에서 헨릭 입센의 공연을 관람하니 상당히 신선하기도 하고, 올해 사계절연극제가 아니면 다시 하기 힘들 인상적인 경험이란 생각도 드네요. 이 공간에서 공연을 하시게 된 계기나 연극제 이야기 등, 공연의 배경에 대해 짧은 설명 부탁드려요.
하수민
사계절연극제는 작년에 네 명의 연출(김정, 윤서비, 이세승, 하수민)이 처음 시작을 하게 됐고 올해 신진 연출가 두 분(신혜연, 주혜영)이 합류를 하게 되면서 올 회는 여섯 명이 함께 진행을 하게 됐어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여름과 가을 사이 한 팀, 또 가을과 겨울 사이 한 팀, 이렇게 여섯 작품이 상연될 예정이죠. 많은 페스티벌들이 기획자가 중심이 되고 공연팀들이 참여를 하고 가는 식이라 서로 만날 일이 없다면, 사계절연극제는 참여하는 연출들이 다른 팀의 공연에 드라마터그를 해요. 연습 과정에 와서 이야기를 해주는 게 작품 만드는 데 도움이 많이 되더라고요. 또 운영뿐만 아니라 진행이나 티켓팅 등의 모든 과정을 연출가 분들이 모여서 운영을 하기 때문에 동료애가 느껴지기도 해요.
올해 같은 경우는 연극제의 주제가 헨릭 입센으로 먼저 정해졌어요. 근대 연극의 아버지, 사실주의의 초석, 모더니티의 초석 등의 칭호가 붙는 작가이다 보니 일단 근대라는 키워드에 집중을 하면서 한국의 근대 공간을 찾아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죠. 그러던 와중에 이 평화문화진지라는 장소를 알게 됐고 연락이 닿게 되었어요. 입센의 근대라는 테마와 남북 분단으로 인해 원래 탱크 진지였던 평화문화진지가 만나면 재미있을 거란 큰 틀을 잡게 되었죠. 주거 공간과 탱크 진지가 함께 있었다는 발상 자체가 참 재미있더라고요.
송이원
극장 공간이 아니라 이야기를 풀어내기가 쉽지 않으셨을 텐데 작품이 공간에 녹아들었다고 해야 될 지, 공간이 작품에 녹아들었다고 해야 될 지, 공간 전반을 아주 재미있게 활용하셨어요.
하수민
저희 팀은 <유령>으로 작품이 정해지고는 함께 공간을 투어 했어요. 일부러 해질녘에 맞춰서 왔는데 도봉산에 황혼이 지더라고요. 그 광경을 보면서 공연을 해질녘 7시에 맞춰서 하자고 정하게 되었어요. 그때 장소를 보면서 얘기를 많이 나눴던 것 같아요. 블랙박스 무대 공간에 익숙할 수 있는 배우 분들이 공간들을 이동하면서 공연을 한다는 것에 호기심을 가지고 재미있어 해주셔서 먼저 제안한 입장에서는 큰 독려가 되었죠. 그렇게 좁혀진 게 복도 공간, 갤러리, 전망대 정도였고, 이렇게 장소와 같이 각색이 이뤄졌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송이원
각색을 모두 함께 하셨군요.
이주영
아이디어와 각색 과정이 섞인 것 같아요. 대본에 대한 마지막 편집은 연출이 하였고, 라이브 스트리밍과 같은 아이디어들은 그때그때 함께 하면서 쌓아온 식이었어요. 전통적인 방법으로 연습을 해온 건 아니고 이것저것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원작에서 알빙 부인헬레네는 방탕한 생활을 일삼는 남편의 모습을 숨기기 위해 어린 아들 오스왈드를 이른 나이에 유학 보내고, 남편의 사후에도 가문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고아원을 건립하는 등, 무너져가는 가문을 지킨다. 극단 즉각반응의 <유령 Live Stream>역시 큰 줄거리에 있어서는 원작을 충실히 따르지만 이야기를 동시대 한국으로 옮겨와 곳곳에 세심한 변화를 주었다. 알빙 부인 헬레네는 하수련으로, 오스왈드는 김옥석으로 각색되었고, 죽은 남편을 염두에 두고 건립한 고아원은 공연 장소에 알맞게 문화시설로 각색된 식이다. 공연은 3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유학생/영화감독 옥석이 집으로 가는 여정을 라이브 스트리밍하며, 또 관객들이 그와 그의 카메라를 뒤따르며 시작된다.

송이원
그렇다면 원작인 입센의 <유령>에서는 어떤 점에 주안점을 두고 접근을 하셨나요?
하수민
아무래도 제일 중요한 건 제목이기도 한 ‘유령’이죠. 즉각반응에서 고전을 가지고 작업을 할 때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동시대에요. 일단 원작의 글이 너무 잘 쓰여져 있기 때문에 인물들의 말을 그대로 가져와도 아무문제가 없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대신 한국에서 공연이 올라간다면 한국의 인물들이 서야만 이 인물들과 주제가 관객들과 잘 만나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다음으로는 이 시대의 유령은 뭘까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그 와중에 미투 운동과 더불어 SNS를 통한 고발과 공방 사건들이 일어났어요. 저희에게 제일 중요한 대사는 알빙부인의 "신문 한 줄 한 줄 사이에 유령이 들락날락 하는 게 보이는 걸요. (...) 모래알만큼이나 많은 유령들이 온 나라를 꽉 채우고 있는 거예요"라는 대사였어요. 그 시대의 사람들이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저희에게는 라이브 방송과 같이 절대로 만날 수 없는 수많은 시선들이 유령처럼 느껴졌어요. 사실 이 엄마와 아들도 결국은 만나지 못하잖아요. 엄마는 아들을 위해 무언가를 하지만 아들은 그로부터 철저히 버려져 있고, 서로를 안지만 제대로 안지 못하고, 시선이 끊겨 있는 상태랄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이 관계들이 유령 같았어요. 유령을 단순히 악으로 규정하기보다는 만나지 못하고 있는, 하지만 서로를 계속 갈구하는 상태로 보고 이것이 동시대의 유령이 아닐까 싶었어요. 파괴되어 있는 시선들이요.
이주영
원작에는 다섯 인물이 나오는데 인물을 두 명으로 축약하면서 장면에 어우러지게 하기 위해 다른 인물들의 대사를 이 둘의 대사로 가져오기도 하였어요. 유령에 대해 캐릭터의 입장에서 조금 덧붙이자면, 수련의 입장에서는 죽은 남편의 패악이 계속 남아 끊임없이 복기되는 게 바로 유령인 것 같아요.아들 옥석이 아빠를 흉내 낼 뿐만 아니라 똑같은 병을 앓게 되기도 하기 때문에 떨쳐낼 수 없는 공포 속에 살고 있고, 남편이 죽어서도 새겨져 절대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 끊임없이 뿌리박혀 있다는 것이요. 또 결국은 이 모든 걸 숨겼던 수련 자신 역시 살아있는 존재는 아니라는 생각도 들어요. 사람 같지만 사실 모든 걸 숨겨온 수련 역시 죽어 있는 존재와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저에게는 유령이라는 게 알빙 가족 전체로 귀결되는 것 같아요.
송이원
공연에서 공간과 방향성, 또 매체를 다양하게 활용하신 만큼 연습 과정도 일반적이진 않으셨을 것 같아요.
최영열
이 두 분(이주영, 하수민)은 가족이시고 저는 이 팀에서 유일하게 가족이 아닌 사람이어서 첫 연습을 자연스럽게 이 분들의 집에서 하게 됐어요. 테이블에 앉아서 같이 대본을 읽고 같이 식사를 하는 식으로요. 그래도 이 연습 방식에는 한계가 있으니 축약된 아이디어들을 가지고 평화문화진지 공간으로 와서 움직여보는 식이었죠. 관객들과 함께 이동을 하는 참여적이고 '라이브'적인 것이 텍스트가 있는 정극의 포맷과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 충돌이 없지는 않아 그게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관객과 함께 이 공간을 투어 하는 첫 장면은 초반에 아이디어만 짜놓고 거의 마지막에 연습을 하게 됐어요.
송이원
옥석과 함께 공간 전반을 투어하고 난 다음 전망대에서 두 사람이 함께 하는 장면을 보게 되잖아요. 그렇게 공간과 인물의 역사를 직접 걸으며 경험하고 나니 둘의 관계와 대사가 더 와닿았던 것 같아요. 그러면 라이브 스트림 같은 경우는 어떻게 도입하시게 된 아이디어인가요? 계속 카메라가 따라 다니다 보니 옆에 계신 관객 분들 외에도 몇 만 명의 시청자가 함께 장면을 관람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이주영
요즘 개인 방송들이 워낙 많잖아요. 저는 요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저희 세대가 아닌 세대들이 어떻게 소통하는지 관심이 많아 찾아보는 편이에요. SNS도 즐겨 하고요. 이제는 소통이란 것이 글을 쓰는 행위에서 방송으로 옮겨 갔고,또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정말로 누구나 방송을 하는 시대가 되었더라고요. 아이디어 회의 과정에서 연출이 오스왈드/옥석을 칸 영화제에서 수상한 영화감독으로, 알빙 부인/수련을 작가로 바꾸자는 제안을 했을 때, 만약 옥석이 '자비에 돌란' 같은 젊고 핫한 감독이라면 이야기하는 방식도 다를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 사람들에겐 라이브 스트리밍이 전혀 낯선 게 아니니까요.
라이브 스트림이 작품에 들어오면서 이 집을 고발하고 폭로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이뤄진 것 같아요. 요즘 시대가 자기 일상생활을 공개하면서 공감되기를 원하고 또 서로를 불특정 다수와 공유하고 있는 시대다 보니 우리 공연도 그렇게 파국에 이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둘이 숨기고 있어도 되는 말을 카메라 앞에서 다 떠들어버리고 파국에 이르는 식으로요.
하수민
결정적으로 촉발된 단서는, 라이브 방송으로 자신의 죽음을 생중계한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 이상한 방식의 고발이고 도발이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원작의 마지막에 오스왈드가 자신만 알던 자기의 죽음을 엄마 알빙 부인에게 알리고 죽어가는 장면을 라이브 스트림을 적용하면 어떨까 하는 촉이 왔어요. 그렇게 라이브 스트림을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최영열 배우가 집에 가는 길에 라이브 방송하는 영상을 찍어서 메시지를 보냈는데, 그걸 보는 순간 되겠다, 하자, 싶었죠.
송이원
아참, 최영열 배우님은 원래 교포세요?
최영열
아뇨. (웃음) 사실 두 분한테는 말씀을 안 드렸는데, 처음에 <유령>이란 작품을 현대의 한국으로 또 오스왈드를 유학생 영화감독으로 각색한다고 했을 때 교포 말투를 써야겠구나 싶어서 연습 시작 전에 연구를 하고 준비를 했었어요. 그런데 리딩을 할 때 이 말투를 꺼내기가 쑥스럽더라고요. 이 카드를 꺼내야 진행이 될 텐데…. 그래서 집에 가는 길에 차에서 교포 말투로 라이브 스트리밍 하는 걸 찍어서 보냈던 거죠. 옆에 사람이 있는 척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에 대해서 얘기도 하고 하는 식으로.

송이원
관객과 함께 투어를 다니기도 하고 또 상당히 가까운 거리에서 연기를 하셨는데, 두 배우 분도 많이 부담스러우셨을 것 같고, 연출님 입장에서도 어떻게 관계를 만들어야 될까 많이 고민하셨을 것 같아요. 실제로 관객들을 만나보니 어떠셨나요?
하수민
관객들과 접촉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에 관한 고민이 있었는데, 관객들이 본인들 또한 라이브 방송에 참여를 하고 있는 사람이란 걸, 접촉을 하는 건 연극적인 장치라는 걸 알고 이해해주실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접촉 없이 가면 계속 멀어지기만 하는데 이 작은 전망대 공간에서 가까이 있기가 힘들잖아요. 이렇게 접촉을 해야 공간에 의해 물리적으로 주어진 이 가까운 거리가 부담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주영
전에도 이렇게 가까운 공연을 한 번 해본 적이 있는데 숨소리 하나도 부담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또 묘한 게, 나를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에 의한 긴장감과 그 현장성이 참 묘하더라고요. 제 눈빛 하나, 숨소리 하나가 사람들에게 더 정교하게 보이고 들리니까 이걸 관객이 쫓아오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쾌감도 있고요. 관객 분들이 저희들에게 카메라인 거죠. 끝까지 저와 옥석이 이야기만 하고 있는 것 같지만 관객과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했어요. 벽을 치고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집’에 온 거잖아요. 그 느낌을 가지고 가려고 했어요.
최영열
극장에서 공연을 하면 그 극장에서 통용되는 연기 문법이 있잖아요. 예를 들어 혜화동1번지에서는 성량을 어느 정도, 시선을 어느 높이에서의 식으로 문법들이 공유된 상태에서 연기를 시작하는데, 이 공간에서는 그런 게 전혀 없이 새로 문법을 만들어야 되는 상황이고 또 매 공연마다 새로이 만들어지고 발견하게 되는 것 같아요. 처음엔 되게 막막하기도 했지만 연기하는 맛에 있어서는 굉장히 맛있는 공연이 아니었나 싶어요.
송이원
처음에 입센이 사실주의 연극의 초석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공연을 보고 또 이렇게 대화를 나누면서 사실주의라는 것도 새롭게 정의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어요. 프로시니엄 액자 뒤에서 사실적으로 꾸며져 벌어지는 것들이 사실 가장 비사실적이기도 한 거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같이 걷고 이 집에 초대를 받고 둘의 대화를 관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매체의 개입이 또 다른 사실성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수민
사실 이 공간에서는 실제 라이브 스트리밍까지 들어가게 되면 시선이 너무 분산될까봐 하나의 장치로써만 활용을 했는데, 공연을 하면 할수록 라이브 스트리밍을 정말로 해보고 싶더라고요. 동시대의 유령이 시선이라면, 생방송 매체를 통해 저기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고, 나는 그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얘기하고 있는 이 소통방식이 뭘까, 더 예민한 유령이란 뭘까 하는 걸 찾아보고 싶어요. 특정 공간에서 관객과 만나 표현하고 공유하는 것, 그게 연극이 가장 재미있는 순간이니까요.
아무튼 이 공간으로 이야기할 것 같으면, 이 공간에 흐르는 언어와 무대의 언어는 좀 다른 것 같아요. 관객들과 만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상황적인 언어를 쓰자는 합의를 했어요. 어떤 상황을 만들어 보자고 했고 그게 표현이 되고 이해가 됐을 때는, 또 관객들에게도 이게 이해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전달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아서 과감히 생략을 했어요. 그렇게 가야만 관객들과 같이 호흡할 수 있는 언어가 되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송이원
일방적으로 의미를 전달하기보다는요.
하수민
그렇죠. 무대에서는 분명 의미를 찾고 그 관점을 전달을 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여기선 계속 흐르는 공간이다 보니 의미를 찾으면 분위기가 딱딱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송이원
그런 맥락에서 옥석이 발작을 하고 장면이 전환되는 부분, 그리고 이어 전망대 유리에 빛을 반사시켜 환영의 상을 만들어낸 부분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어떻게 보면 상상의 공간일 수도 있고, 수련의 대사대로 유령이 걸어 다닌 걸 수도 있고, 아픈 옥석의 뇌 속 공간일 수도 있을 테고요.
최영열
이 장면이 만들어질 때 제가 정확하게 뭘 연기하고 있는지, 어떤 설정인지, 뭐 예를 들어 이건 상상이거나 환상이다, 이런 지점에서 서로 합일점을 찾지 않았어요. 그래서 여러 가지로 읽힐 수 있는 것 같아요. 아마 제가 생각하고 하는 연기랑 연출님이 원하는 게, 서로 상상하고 있는 면에선 다를 거예요. 굳이 언어로 합일점을 만들지 않아도 되는 게 연출님이 말씀하신 상황적인 언어 덕인 것 같아요.
이주영
공간이 저희에게 많이 열려있고 지원을 많이 해주셔서 저희가 이 ‘평화문화진지’에 거의 상주하다시피 했어요. 공간을 사용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많이 사용했죠. 이렇게 공간에 대한 친숙함이나 익숙함이 기본적으로 전제되어 있어서 ‘살다 보니’ 나온 장면들이 있는 것 같아요. 만약 연습실에서 설정을 하고 의미론적으로 접근을 했다면 무언가를 ‘만들어’냈을 텐데, 여기서는 “이러면 어떨까?”하는 것들이 자연발생적으로 툭툭 튀어나오더라고요. 공간에서 저희에게 많이 열려있고 지원을 많이 해주시니 좋은 기운을 많이 받아가는 것 같아요. 물론 지금은 저희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있지만 대학로에 국한되지 않고 지역에서 문화적인토양이 만들어지면 어떨까 하는 기대가 들어요.
송이원
전망대 밖으로 비치는 도봉산과 도로들 경치도 그렇고, 만드신 분들이 이 공간에 가지는 친밀감도 그렇고, 작품 내외적으로 누군가의 집에, 그것도 전망 좋은 호화저택에 초대받고 간 기분이 드네요. 인터뷰 감사합니다.

극이 시작되면 관객들은 옥석과 함께 아버지의 흔적이 베인 저택(평화문화진지) 곳곳을 거쳐 수련이 기다리는 전망대에 이르게 된다. 이 짧은 여정 가운데 관객들은 옥석의 카메라에 자신의 모습이 담기는, 흔히들 말하는 ‘제 4의 벽’이 허물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카메라 건너편의 누군가가 극중 인물과 더불어 관객인 자신까지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함과 동시에 현장의 관객은 ‘보다 가까운’ 사람들로 존재하게 되고, 따라서 ‘무대’와의 안정적인 거리감도 함께 사라지는 듯한 경험을 한다. 셀 수 없는 시선들이 흩어지기도 하고 또 겹겹이 겹쳐지기도 하는 ‘극장’ 공간에서, 파국에 치닫는 비극을 지켜보는 한 관객으로서, 어쩌면 자신 또한 감시자이자 방관자인 유령이 아닌지, 반문하게 되는 시간들이었다.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 즉각반응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