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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통>

상실 이후의 시간들

김태희_연극평론가
151호 2018.11.08
갑작스러운 이별이나 상실을 경험해본 적이 있는가. 슬픔이나 애도와 같은 단어가 미처 끼어들기도 전,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사실 앞에서 응당 맨 먼저 나타나는 반응은 부정(否定)일 것이다. ‘믿을 수가 없어’ 혹은 ‘그럴 리가 없어’와 같은. 그 부정이 몇 번이나 거듭되다 확신이 되고 비로소 몰려오는 슬픔에 몸을 맡기고 나면 애도의 순서가 찾아온다.
갑작스러운 이별이나 상실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가. 슬픔이나 애도와 같은 단어가 미처 끼어들기도 전,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사실 앞에서 응당 맨 먼저 나타나는 반응은 부정(否定)일 것이다. ‘믿을 수가 없어’ 혹은 ‘그럴 리가 없어’와 같은. 그 부정이 몇 번이나 거듭되다 확신이 되고 비로소 몰려오는 슬픔에 몸을 맡기고 나면 애도의 순서가 찾아온다.
김풍년 작, 연출의 <숨통>에는 그 부정의 단계를 헤매고 있는 여성이 등장한다. 좁은 고시원에서 혼자 아이를 낳아 기르려고 했던 여인 오진희는 최근 아이의 상실을 겪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4.76센티 크기의 아이는 그와 모든 걸 함께 했다. 같은 노래를 듣고 같은 음식을 먹으면서. 그런 아이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당연히 그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그야말로 거짓말 같은 사건이었다. <숨통>은 아이의 죽음 이후 오진희가 겪는 지독한 부정의 시간에 대한 기록이자 동시에 그 부정 끝에 맞이하는 오롯한 애도와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부정에서 인정으로, 애도에서 위안으로
아이의 죽음을 선고받고 돌아서는 오진희의 눈에 들어온 것은 자동심장충격기(AED)였다. 응급상황에서 누구나 사용해서 환자를 살릴 수 있다는 공익광고를 보며 오진희의 머릿속에는 엉뚱한 상상이 들어찬다. 정말로 자동심장충격기가 심정지 상태의 환자를 살릴 수 있다면 내 아이도 살릴 수 있는 게 아닐까. 괴이한 상상이긴 하지만 죽은 아이를 품고 있는 엄마 입장에서는 한 번쯤 해봄직한 상상이 아닐까. 그날 이후 오진희는 자동심장충격기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김태희
처음에 죽은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 애를 쓰는 주인공의 모습이 괴이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게 아이 엄마의 마음이 아닐까 싶기도 했어요. 저는 감히 알 수 없는 마음이긴 하지만요.
김풍년
저 스스로 잃은 아이에게 헌정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절이나 성당에 다니면 종교적 의식으로 상실감을 해결하겠지만 저는 해결할 방법이 없었거든요. 김주혁 배우의 죽음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니 왜 가면 간다, 오면 온다, 말이 없는 거야. 안 되겠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던 찰나에 우연히 두 가지 뉴스를 봤어요. 하나는 한 중국인 아버지가 딸이 불치병에 걸리자 나중에 아이가 무덤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무덤 안에서 놀아준다는 내용이었고요, 다른 하나는 분만 중에 골반에 아이가 껴있는 상태로 죽은 미라가 파주에서 발견되었다는 거였어요. 순간 차라리 내가 잃은 그 아이를 끝까지 데려갔다면 어땠을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론 엽기적일 수도 있지만요. 그런 마음으로 만든 작품이었고 저 스스로 작품을 통해 위로받았던 것 같아요.
김태희
내밀한 개인의 상처에서 시작된 작품이기 때문에 오진희 역을 연기하실 때 어려우신 점도 많으셨을 것 같아요.
이미숙
처음 대본을 봤을 때 너무 어렵더라고요. 저는 임신을 해본 적도 없고 결혼 생각도 안 하고 있는데 어떻게 오진희라는 인물을 재창조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됐죠. 처음에는 좀 헤맸는데 나중에는 비혼모 이야기가 아니라 어쨌든 끈 하나를 잡고 삶을 버텨내려는 여자의 이야기로 정리가 되었어요. 그 끈이 이 사회일 수도 있고 저 스스로일 수도 있겠죠. 그리고 어쩌면 아이를 살리겠다는 게 그냥 제가 살기 위한 것일 수도 있고요. 거기까지 가는 과정들 속에서 고민이 많았어요. 오히려 연출님이 무언가를 표현하려고 하지 말고 담담하게 묵묵하게 이 친구를 느껴보라고 하셔서, 그 말이 큰 힘이 되었어요.
김태희
아이를 상실한 엄마는 절박함에 자동심장충격기를 구하러 돌아다니는데 공공장소에 있는 자동심장충격기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도 없고 중고로 구입해서 사용하는 과정도 녹록지가 않더라고요.
김풍년
공공장소에 마련되어 있어서 누구나 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홍보하지만 저는 그 말이 거짓말 같았어요. 예전에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프로그램에 삼둥이 엄마가 나온 적이 있었거든요. 우리가 알고 있는 대한민국만세랑은 전혀 다른, 그 집은 엄마가 가만히 앉아있으면 애들 세 명이 달라붙어요. 그 프로그램에서 엄마를 구출해주는 걸 보면서 누구나 애를 낳으면 슈퍼맨이 도와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배우들에게 계속 대사 중에 공공장소에 마련되어 있어서 누구나 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홍보 문구를 빼지 말고 넣어달라고 주문했어요.
김태희
주인공이 자동심장충격기를 어렵게 중고로 구입해서 배 속의 아이에게 전기충격을 주기 전에 물고기에게 먼저 시험을 해보잖아요. 저는 그 물고기가 아이처럼 보이기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물고기가 전기충격 때문에 죽고 난 뒤 주인공이 물고기에게 음악을 들려주던 이어폰을 자기 귀에 꽂고 울부짖는 장면이 정말 슬펐어요.
이미숙
연출님이 진희라면 물고기에게 무슨 노래를 들려줄 것 같냐고 물어보셨거든요. 그때 송창식 아저씨의 담뱃가게 아가씨가 떠올랐어요. 저는 송창식 아저씨 삶 자체가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그 사람의 묵묵함 같은 것들이 있잖아요. 진희라면 일상에 찌들어서 급식소에서 뜨거운 열기만 맡다가 쉴 때는 이런 노래를 듣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그리고 노래 가사 중에 그 ‘아자자자자자’ 하는 부분의 희열이 있거든요. 나를 자책하기도 하고 혼내기도 하는 것 같은, 그게 저한테 컸었던 것 같아요.
김풍년
어느 날 저희 작은 애가 학교에서 물고기를 가지고 왔어요. 그 물고기가 4.76센티였거든요. 그래서 얘를 잘 길러서 우리 애들이랑 잘 놀게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온갖 정성을 다해 길렀는데 금방 죽었어요. 애들이 놀랄까봐 자전거 타고 나가서 똑같은 놈을 사다 놓고 죽은 녀석을 위해 나름 장례식도 해주고 그랬어요. 근데 그다음에 새로 사다 놓은 녀석이 또 금방 죽은 거예요. 근데 그때는 너무 화가 나서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렸어요. 나는 왜 성마르고 뭐를 키우지 못하는 사람이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진희도 아마 그런 마음이었을 것 같아요.
김태희
진희에 대한 배경이 많이 드러나지 않는데 말씀하시는 걸 듣다 보니 비혼모라든지 급식소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설정들이 있네요.
김풍년
처음에 쓸 때는 그런 게 다 드러났어요. 대놓고 신파였죠. 자동심장충격기는 학교에서 훔쳐 오고 그거 시험해볼 때 입는 앞치마와 장화는 급식소에서 훔쳐오고. 몸에 좋은 걸 먹어야 되니까 편의점에서 생과일주스라도 사 먹고 밥이라도 먹으려고 삼각김밥을 사 먹죠. (웃음)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신파였는데 마지막 버전에서 다 필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태희
그런 게 안 들어가서 더 좋았던 것 같아요. 사회적 약자라는 사실보다 큰 상실을 겪은 인물이라는 것만 부각되니까 그 상실에만 집중하게 되더라고요. 무엇보다 관객이나 진희가 감정적으로 기울 것 같은 타이밍에 진희가 계속 “연민은 위험하다.”라고 얘기해요. 고시원 총무에게 선물 받은 책에서 나온 문구라고 하던데요.
김풍년
슈테판 츠바이크의 ??초조한 마음??이라는 책이에요. 이 작품 쓸 때 제가 좋아해서 읽으려고 빌려놨는데 우연히 그 뒷면 광고가 눈에 들어오는 거예요. 근데 거기 “연민이라는 거 위험한 겁니다.” 이렇게 써있는 거예요. 순간 아니 왜 작품의 주제를 츠바이크가 알려주지? 이런 기분이었어요. 츠바이크처럼 연민하지 말아야겠다. 내가 이 세상에 온 건 아무 의미가 없다. 먼지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밖에 없다. 한 줌의 재다. 연민하지 말아야지. 그게 주제가 되어버렸어요. 츠바이크가 저희 예술감독인 셈이죠. (웃음)

이미숙(좌), 김풍년(우)

비어있는 것들을 채워나가기
김태희
이렇게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주제와 달리 무대가 엄청 예뻤어요. 진희의 행동들이 아기자기하게 무대에 구현되고 있는데, 조명이나 음악도 인상 깊었지만 아무래도 배우님들이 움직임 연기로 채워주시는 부분이 많은 것 같았어요.
임주현
처음 시놉시스를 봤을 때 멋있더라고요. 뭔가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그런 무대와 극이 만나질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첫 모임 때 연출님한테 너무 좋을 것 같다고 얘기했거든요. 그러니까 연출님이 “어딜 꽁으로 먹으려 그래. 배우가 채워야지.” 이러시더라고요. (웃음) 이 말에서부터 저희 움직임이 시작된 것 같아요.
김태희
작품을 처음 구상하실 때부터 배우들의 움직임이 많이 들어올 수 있도록 구상하신 거예요?
김풍년
아니요. 저희 아이들이 초등학교 저학년이어서 저한테 허락되는 시간이 아이들 학교 보내고 잠깐 도서관 갔다가 아이들 돌아오는 시간에 집에 가 있는, 그 정도 시간밖에 없었어요. 그러니까 제가 할 수 있는 게 50~60센티 도서관 책상 안에서만 구상하는 거니까 쓸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물고기가 등장하고 파노라마가 펼쳐지고, 원 없이 썼어요. 그런데 막상 이걸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내가 왜 이렇게 썼지 싶더라고요. 타당하지 않잖아요. 깜짝 놀랐어요.
김태희
이미숙 배우님을 제외하고 나머지 세 분 배우님들은 극단 동 소속이시잖아요. 당연히 몸을 쓰는 일에 능하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물고기 연기는 정말 신기했어요. 제가 잘 모르는 영역이다 보니까, 움직임 만드는 과정이 궁금해요.
이미숙
보통 팀 내에 안무가가 있으면 안무를 짜준다고 하는데, 저희 작업은 그런 개념은 아니었어요. 배우들 각자가 캐릭터를 파악하고 움직임을 만드는 식이었어요. 안무가와 연출님이 뻔한 걸 싫어해요. 그래서 물고기도 그냥 물고기로 보이는 게 싫은 거예요. 어떤 날은 한량 물고기를 저희한테 주문해요. 인간에게 나올 수 있는 것들을 물고기 연기에 계속 적용해보는 거죠. 배우 입장에서는 캐릭터를 이해하고 만들어나가는 것도 힘든데, 기대고 싶고 뭔가 만들어 줬으면 좋겠고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이런 방식이 모두에게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김태희
한량 물고기 이야기하셔서 생각났는데, 진희가 물고기에게 노래를 들려주니까 갑자기 용희 배우님이 물고기 연기를 하시면서 리듬을 타는 거예요. 노래가 관객들 귀에는 안 들리는데, 이상하게 움직임만 보고 있는데도 노래가 들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엄청 연구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김용희
물고기 움직임을 관찰하고 발견하는 작업은 흥미로웠어요. 물고기는 꼬리를 먼저 움직여야 방향전환이 되거든요. 또 눈이 사선으로 보게 되어있어서 사시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스스로 보면서 발견하는 것도 있었고 안무 선생님이랑 맞춰가면서 바뀌는 것도 있었어요. 그렇게 함께 발견한 것들을 동작으로 만들고 다듬는 과정이 인상 깊었어요. 사실 처음에 연출님이 연락 주셔서 몸을 좀 많이 써야 하는 데 괜찮으냐고 물으셨을 때 조금 움찔했거든요. 그때 당시에는 신체를 사용함에 있어서 자신이 없었던 편이고 지금도 물론 앞으로 더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지금보다 더 위축되어있었거든요. 어쨌든 그런 상태로 작품을 만나서 무수한 수정을 거쳐 작품을 완성하게 되었어요. 어느 순간 그 많은 수정 과정들이 초석이 되어 켜켜이 쌓인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끝나고 나서 시원했어요.
임주현
저도 이번 작업하면서 스스로 해갈하는 기분이 있었어요. 개인적으로 움직임의 시작은 엉뚱함이었던 것 같아요. 엉뚱해 보여도 일단 시작하고, 계속 그 작품 안에서 엉뚱함들이 만나다 보면 그게 어느새 숨통이 되어 있는 거죠. 솔직히 완전히 따로 떼어놓고 보면 진희랑 저희 움직임이 아무 상관없는 움직임인 것 같은데 어느 순간 저희가 어우러져 있고 그 안에서 진희의 여러 가지 모습을 저희가 보여주게 되거든요. 그런 것들이 저희의 움직임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이러면 이상하지 않을까, 엉뚱해 보이지 않을까 연기하면서 막히는 순간들이 있었는데, 연출님도 안무가님도 그냥 놓게 해주시는 것 같았어요. 다른 작업 할 때는 잘 짜여진 것들이 아니면 자유롭게 못 풀어놨던 것들도 있었는데 이번 작업에서는 어느 순간 선배, 동기, 작품 이런 걸 다 떠나서 오롯이 내 안의 것들을 풀어내는 순간들이 많았고 그런 것들이 쌓여서 작품과 어우러지게 되니까 좋았어요. 그런 의미에서 저도 스스로 해갈하는 기분이었어요.
박은경
사실 그 엉뚱함을 그냥 놔버리는 데까지는 유연함이 많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저도 초반에는 많이 헤맸던 것 같아요. 캐릭터들이 워낙 다양하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고시원 총무처럼 인물이 확확 전환될 때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도 있었어요. 그래도 같이 작업해주시는 분들이 제가 유연해질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시고 믿어주셔서 조급하거나 망설여지거나 이런 게 겁이 덜 낫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차츰 작품을 바라보는 상상력이 생기고 유연함이 조금씩 생기더라고요.
김풍년
저한테도 어떤 의미에서 이 작품은 해갈 같았어요. 예전에는 지원제도가 와닿지 않는 공익광고 같았거든요. 연극을 쉬고 나니까 저한테는 기회가 돌아오지 않아 상대적으로 외로웠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런데 최초지원제도에 지원을 받게 되면서 많이 달라졌어요. 뭔가 물리적인 여유가 생긴 것보다 제가 이 작품을 하고 또 다른 작품을 할 수 있는 꿈이 생겼다는 거, 그게 가장 기적 같고 신기해요. 누군가가 무엇 때문에 이제 연극 못 하겠어, 이렇게 말한다면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도전해봐, 너도 받을 수 있어. 반드시 받을 수 있어. (웃음)

(왼쪽부터) 김용희, 임주현, 박은경

아이를 살릴 수 없음을 깨닫고 난 뒤 진희는 다양한 감정을 겪는다.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하고 미안해하기도 하고 온몸으로 슬퍼하기도 한다. 그 모든 감정이 휘몰아치고 난 뒤,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이제 아이를 보내 줄 준비를 마친다. 이제 좀 숨통이 트이느냐는 따뜻한 위로와 함께.
진희는 여전히 급식소에서 뜨거운 열기를 맡으며 하루도 맘 편히 쉴 수 없는 일상으로 돌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는 여전히 가난할 것이고 고시원에서 요주의 인물로 살아갈 것이다. 그럼에도 이별에 최선을 다했기에, 적어도 온전히 진희에게 의지했던 4.76센티의 아이를 지켜내려고 애썼던 기억이 있기에 그의 삶은 예전과는 분명 달라졌을 것이다. 그의 삶에도 이제 숨통이 조금 트였길 그것이 상실이 남기고 간 귀중한 선물이길 빌어 본다.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