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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집단 LAS <산책하는 침략자>

개념,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보편적인 관념?

송이원_연출가
152호 2018.11.22
지구를 침략하고 정복하기 위해 찾아온 외계인. 그들 중 한 개체는 금붕어를 거쳐 ‘신지(윤성원 배우)’의 몸에 침투하여 활보하며 지구와 인간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한다.
“그거, 내가 가져갈게”
지구를 침략하고 정복하기 위해 찾아온 외계인. 그들 중 한 개체는 금붕어를 거쳐 ‘신지(윤성원 배우)’의 몸에 침투하여 활보하며 지구와 인간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한다. 작품 속 외계인들은 위와 같은 말과 함께 인간으로부터 특정 ‘개념’을 추출해가는데, 해당 개념을 빼앗겨버린 인간은 더이상 그 개념을 인식하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게 되어버린다. ‘가족’이라는 개념을 잃은 인물은 가족과의 관계를 거추장스러워하고, ‘소유’라는 개념을 잃은 인물은 족쇄가 풀린 듯 편안함을 느끼며 자유를 만끽한다. 알고 있던 무언가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무언가를 모르는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것’이려나 하는 생각과 달리, ‘나’를 이루고 어떠한 방식으로 행동하고 살아가게끔 하는 ‘나’의 한 부분을 잃게 되는 것이 아닐까. ‘산책하는 침략자’ 외계인-신지, 어느 날 갑자기 변해버린 남편 ‘신지’를 맞닥뜨리게 된 ‘나루미(한송희 배우)’,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인물과 외계인들의 흥미롭고도 아리송한 이야기를 무대에 펼친 ‘창작집단 LAS’를 만났다.
송이원
이야기가 정말 참신하고 매력적이었어요. 작품을 처음 접하신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이기쁨
작품을 번역하신 이홍이 선생님과는 <손>을 계기로 계속 작업을 같이 해오고 있었어요. 종종 작품 추천을 해주시는데, 이 대본도 그런 작품들 중 하나였죠. 대본을 처음 본 건 3년 전이었던 것 같고, 재미있어서 제가 하고 싶다는 의사를 은연중에 내비치고 잡아놨어요. 잡아놨다는 건, 다른 데 뿌리지 않았으면 좋겠다(웃음), 이런 얘기를 하고 홀드를 해놨던 거죠. 그러다 이 희곡을 기반으로 한 동명의 영화가 작년 일본 개봉에 이어 올해 8월에 한국에서도 개봉하게 됐어요. 한국 내 흥행성적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는데, 개봉 시기가 잡히면서 더 늦어지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올 초에 공연을 어떻게 해서든 올려야겠단 생각을 하면서 작업을 진행하게 됐어요.
송이원
처음 접하시고 작업을 올리시기까지 많은 과정이 있으셨을 텐데, 일단 첫인상이 어떠셨을지 궁금해요.
윤성원
연출이 저한테 이 대본을 보내주고는 읽어보라고, 읽어보라고, 계속 얘기를 했었는데, 제가 그때 연습과 공연 일정으로 바빠서 못 읽어보고 있었어요. “봤어?” 물어보면 “못 봤어. 볼게”의 연속이었고, 계속 대본 좀 보라고 연락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렇게 재밌는 대본인가 보다’ 싶었는데 아직도 기억나는 게, 극장 가기 전에 아주 잠깐 시간이 나서 얼른 대본을 읽어 봤거든요. 쭉 한 번에 읽혔고, 읽다가 뒷부분에서는 거의 대성통곡을 하게 됐어요. 왜 자꾸 읽으라고 했는지 알겠더라고요. 작품이 주는 메시지와 울림이 좋았어요.
한송희
저도 연출이 읽어보라길래 처음엔 꼼꼼하게 읽지 못하고 조금 급하게 대충 읽었어요. 대충 읽어서인지 저는 별로 재미가 없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지쳐있던 시기라 ‘나는 사실 잘 모르겠다. 크게 와닿지는 않는다’ 정도의 마음이었어요.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몰랐는데, 또 대충은 알겠고, 그래서 ‘딱히?’, ‘모르겠다’ 이런 식이었어요. 그러다 지난 6월에 낭독공연이 먼저 진행됐었는데, 낭독공연을 봤더니 ‘아, 이게 이런 내용이구나. 굉장히 재밌네? 내가 잘못 읽었구나’ 싶더라고요(웃음). 하면서도 계속 느낀 게, 그냥 편한 쪽으로 읽었던 것과는 달리 심층적으로 깊고 다양한 의미가 많더라고요.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게 아니었구나’, ‘하면 할수록 다양하게 생각할 거리가 많구나’ 이런 걸 느꼈던 것 같아요.
이기쁨
처음 읽을 땐 마지막 장면이 굉장히 강렬하게 다가왔어요. 사랑 이야기를 되게 좋아하거든요. 이걸 계기로 흥미를 갖고 작품을 계속 보다 보니 사랑에 대한 지점도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지만, 그게 끝이 아닌 것 같더라고요. 굉장히 큰 얘기고, 거대한 개념과 관계들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연습을 하며 점점 더 재미를 느꼈던 기억이 있어요. 준비과정에서 더 재미가 붙었죠.
송이원
낭독공연이 먼저 이뤄진 공연이었군요. 낭독을 거쳐 동선을 긋는 ‘본 공연’에 이르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셨나요? 생기게 된 변화랄까요?
이기쁨
낭독이랑 이번 공연이랑 어떻게 달라졌는지 다른 분들도 많이 물어보셨어요. 무대에서 하는 게 굉장히 다를 것 같은 기대? 그런 걸 하신 것 같은데, 사실 저는, 이렇게 말하면 좀 그렇기도 하지만, 낭독 만들 때 거의 다 만든 기분이 들어서(웃음).
윤성원
저도 개인적으로 같은 생각이에요. 캐릭터들에 대해서는 낭독할 때 더 얘기를 많이 나누었던 것 같아요. 그때 잡은 ‘신지’의 캐릭터로 ‘본 공연’으로 왔고, 움직이면서는 다른 인물들과 만나고 주고받는 것이 더 자유로울 수 있게끔 만드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송이원
그럼 캐릭터 얘기를 해주신 김에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요? 외계인이 몸에 침투한 ‘신지’ 캐릭터의 말투가 되게 독특했는데, 어떻게 만들어내셨을지 궁금해요.
윤성원
말투 만들기가 정말 힘들었어요.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인간이 아닌 외계인’의 말투가 있잖아요. 예를 들어 높낮이가 없는 식으로, 로봇처럼 연기를 쉽게 표현하기는 싫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걸 감정이라고 표현한다면 감정일 수 있겠지만 ‘외계인도 말을 수려하게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이 지점에서 약간의 충돌이 발생해서 ‘감정’을 아예 배제했으면 좋겠다는 연출의 요구사항이 있었고, 배우의 입장에서는 말을 해야 하니까, 이게 연기를 못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 ‘왜 연기를 저렇게 하지?’라는 생각이 들게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접점을 찾기가 힘들었어요. 그래도 지금은 조금 안정권에 들어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아직도 정확하게 무엇이 이 외계인스러운 말인지는 사실 저도 잘 모르겠고요. 공연하면서도 잠깐 집중을 놓친다거나, 피곤하거나 하면, 저도 모르게 수려한 말이 나오는데 그게 ‘감정’이 들어간 거더라고요.
송이원
생각해보니 말이라는 게, 의식을 안 하고 뱉는 것이지만 높낮이나 속도, 리듬 같은 것들이 다 감정이나 상태의 표현일 수 있는 거네요. 한송희 배우님께서는 윤성원 배우님과 가장 많은 호흡을 주고받으셨는데, 어떠셨어요? 여기서는 계속 감정이 가고 있는데, 이쪽에서는 계속 외계인 같은 말투라고 해야 할까요? 예상치 못한 반응이 돌아오니 주고받음이 어떠셨는지요?
한송희
말투 자체라기보다는, 이 상태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별거 중인 남편 ‘신지’가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변해버렸다는 것에 대해 기존의 두 사람이 어떤 관계였는지, 또 지금 어떻게 받아들이고자 하는지에 대해서요. 이 지점에 대해서는 연출님과 긴 대화, 오늘까지도 이어지는 아주 긴 대화를 나누었고 나누고 있는데(웃음), 배우가 극 중 상황을 볼 때 개인의 성격이나 가치관 같은 걸 개입시키게 되잖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걱정이 될 것 같고, 심각할 것 같고, 놀랄 것 같아요. 반면 연출님은 황당하고, 어이가 없고, 바로 믿어지지 않는 상태를 이야기하더라고요. ‘신지’의 상태가 심각한 것과는 별개로 ‘진짜인가?’ 하는 의심의 지점과 상태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 같아요. 처음엔 그걸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던 것 같은데 이야기를 나누며 서서히 저도 이해를 하게 되었고요.
한송희 배우
송이원
‘나루미’에게 ‘신지’는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관계였을까요? 그리고 외계인으로 인해 바뀐 모습 중 어떤 것이 좋아서 다시 사랑하게 됐을까가 궁금했어요. 어떤 인물과 마음, 관계를 구축하시고자 하셨나요?
한송희
외계인 ‘신지’가 ‘나루미’에게 “지쳤어?”라는 말을 하는데, 예를 들자면 이런 말도 ‘신지’로부터 처음 들은 거라고 설정을 했어요. 이전의 ‘신지’는 ‘나루미’에게 “힘들어?”조차 묻지 않는, 공감 자체를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고 설정을 했고, 또 일본 같은 경우는 가부장적인 문화가 더 심하다고 들은 바가 있어서, 후반의 “누구랑 갔었어? 여자?”라는 대사를 통해 바람도 계속 피워오지 않았나, 그래서 별거 관계이지 않을까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연출님과 나누었던 얘기는, 사랑이 계속 이어져 온 게 아니라, 한 번 끝났던 관계가 새롭게 시작되며 다시 사랑에 빠지지 않았을까 였어요. 아마 더 복합적이겠죠. 다시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에 더 빨리, 더 깊이 사랑하게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송이원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저는 또 궁금했던 게, 사랑이란 개념도 감정도 모르던 ‘신지’가 자신을 깊이 사랑하는 ‘나루미’로부터 ‘사랑’의 개념을 빼앗아 가져왔을 때 어떤 상태가 되었을까 싶더라고요, 흔히들 사랑이란 감정은 스멀스멀 스며드는 것이거나 ‘빠져들게’ 되는 것인데, 그 개념을 알게 되면서부터 사랑이란 감정이 갑자기 몰려오면 ‘신지’는 과연 어떤 기분이고 느낌이었을까요?
윤성원
그 전에 ‘신지’가 알 수 없고 이해하기 어려웠던 ‘나루미’의 행동들이나 감정들, 또 그 표현들이 한꺼번에 이해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깊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가다가 갑자기 그 끝에서 빛을 만나는 것처럼요. 사랑이란 개념을 자기(나루미)로부터만 뺏어갈 수 있다고 하고, 알 수는 없지만 몸을 떨 정도로 무서워하면서 가지고 가라고 하고,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는데, 그 많은 것들이 하나로 딱 꿰어지는 순간이지 않을까요. ‘사랑이 이것이구나’ 하고 확실하게 단언할 만큼은 아니지만 ‘나루미’의 사랑과 어떻게 보면 희생이라고도 볼 수 있는, 엄청 큰 무언가를 받게 된 상태이다 보니 그 장면을 연기하기가 감정적으로는 상당히 힘들어요. 터널을 지나다 그 끝에서 너무나도 밝은 빛을 한꺼번에 보게 되는 것, 모든 것이 하나로 꿰어지는 것.
한송희
‘신지’ 입장에서는 희생이라고 말을 하는데, 제가 생각했을 땐 ‘사랑’이라는 개념을 줘버린다는 게 단지 숭고한 사랑이라고만은 말할 수 없고, 복잡하고 잔인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나루미’ 입장에서는 ‘사랑’이라는 개념이 없어지면 ‘신지’가 사라져도 더는 슬프지 않은 거니까요. 하지만 ‘신지’는 제(나루미)가 느끼는 이 아픔을 다 가져가게 되는 거잖아요. “복수다!”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어요. 예를 들어서 ‘사랑’이라는 개념을 모르는, 곧 지구를 떠나려고 하는 ‘신지’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아파해야 한다면 혼자 아파야지, 진짜로 숭고한 사랑이라면 ‘너 가져가. 그럼 나는 괜찮은 거지’는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요. “너도 (사랑을) 알았으면 좋겠어”가 아름답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너도 (나처럼 굉장히 아프게) 알았으면 좋겠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나루미’가 마냥 울거나, 마냥 애틋하지 않은 게, 그 상태나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을 것 같아요. 인간이란 존재는 한계가 있으니까 다만 숭고할 수는 없는 거죠. 어쩌면 앞으로 ‘나루미’가 가장 자유롭게 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우리를 얽매이게 하고 어리석게 만드는 건 사랑이기도 하니까 현명하게, 자유롭게 살 수도 있지 않을까요.
송이원
인생이 되게 편해질 것 같아요.
한송희
인생의 근심과 걱정이 반절로 줄겠죠. 물론 행복도 반으로 줄 수 있겠지만요. 한 사람으로부터 어떤 개념이 사라진다는 게 무조건 나쁘다거나 무조건 좋다거나 이분법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것 같아요. 모든 것은 양가적이고, 이 지점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생각할 게 많아지더라고요.
송이원
각 인물마다 빼앗기는 개념이 다르잖아요. 어떤 인물은 ‘가족’이라는 개념을 잃어버리고, 또 어떤 인물은 ‘소유’라는 개념을 잃어버리는데, ‘가족’ 개념을 빼앗긴 사람은 소중한 것을 잃은 것으로 여겨지는 한편 ‘소유’라는 개념의 경우엔, 어떻게 보면 정말 편안한 사람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송희
처음 대본을 볼 때는 ‘소유’라는 개념을 잃음으로써 초래된 상황에 대해 잘 이해를 하지 못했어요. ‘소유’에 대한 개념이 없어지는데 반전(反戰) 구호를 외치게 된다는 게 약간의 오버가 아닌가 싶었는데, 점점 다각도로 생각할 수 있는 게 많아지더라고요. 득도하는 기분이고 정말 편해지거나 자유로워지지 않을까요. 그리고 ‘너’와 ‘나’의 구별이 없어진다는 것도, 자꾸 저 사람의 말이 다 내 말처럼 슬프고, 기쁘고, 엄청난 혼란을 겪기도 하지만 대본에서는 좋은 사람이 된 거라고 다른 관점을 제시하기도 하죠.
윤성원
저는 좀 더 과하게 해석을 했을 때는, 각 개념들을 빼앗긴 인물들이 아마 각자로부터 자유로워야 했던 바로 ‘그’ 개념들을 잃어버리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를테면 ‘아스미’ 같은 경우는 가족을 너무 사랑하고 의무적으로 헌신해야 했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이나 상태를 돌보지 않는 사람이었고, ‘너’와 ‘나’의 구별이 없어진 의사도 그게 직업 때문이든 성격 때문이든, 그 개념을 빼앗기면서 더 자유로워지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어요. ‘나루미’ 역시, 저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얘기하는데, 저(신지)를 엄청 좋아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너무 힘들었던 거죠. 그녀에게 자유를 준 게 사랑이란 개념을 외계인에게 빼앗기는 게 아니었을까요.
윤성원 배우
송이원
약간 곁다리 질문을 드리자면, 혹시 본인이 빼앗기고 싶은 개념 같은 게 있으세요? 공연을 보면서부터 그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직 답이나 결정을 내리진 못 했어요.
이기쁨
나 자신? (웃음)
한송희
저도 그 생각을 했었는데 잘 모르겠더라고요. ‘뭘 빼앗기면 이렇게 되겠다’, ‘그런데 또 이렇게 되니까 안돼’ 이러면서 저희끼리 가정들을 이어가 본 적이 있어요. 우리를 괴롭히는 개념이 있어서 만약에 빼앗기고 싶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그게 또 다른 혼란을 줄 것이란 결론에 도달했고요. 예를 들어 명예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데 또 한 편 ‘명예’라는 개념을 빼앗기면 아무렇게나 막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를 나눴었고, 또 부끄러움을 너무 많이 느끼면 괴로우니까 수치심을 빼앗기고 싶다는 이야기도 나왔었는데, 그러면 수치심을 모르니까 발가벗어도 되지 않냐는 반론도 나왔어요. 어느 것 하나 단순하게 도달하기가 어렵더라고요.
송이원
말씀하신 걸 들으면서 생각해보니 개념이라는 게 되게 인간을 힘들게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을 이루고 있는 것이란 생각도 들어요.
한송희
네, 보호해주는 것일 수도 있고요.
송이원
또 보면서 생각이 들었던 게, 외계인이 개념을 빼앗아 가는 방법이, 그걸 말로 들어서 언어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이미지를 떠올리라고 하고 직관적인 한 부분을 빼앗아가잖아요. 이 외계인들이 되게 경제적이고 효율적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언어라는 게 되게 자의적이고 빈약한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을 종종 했었거든요. 이것이야말로 완벽한 소통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러다 들기 시작한 너무 큰 질문인데, 개념이란 게 도대체 무엇일까요? (웃음) 제작하시면서 어떻게 이야기를 나누셨는지, 혹은 어떻게 해석하셨는지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윤성원
좀 다른 이야기일 수 있는데,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우리 몸에 습관처럼 배어있는 생각과 감정의 방향들이 있잖아요. 저는 이 작품이 당연히 이러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들에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아요. 어떤 것의 개념이나 정의라는 게, 혹은 내가 당연히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던 게 얼마나 무지와 습관에 의해 틀지어진 생각의 방향들인지 질문을 던지는 거죠. 이 작품을 계기로 연극이라는 작업의 재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 것 같기도 해요. 말을 운용하는 거지만, 사실 그 말 속에 담긴 생각들을 운용하는 가치 있는 일이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송이원
작품에서 외계인 ‘신지’가 ‘신(神)’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사람들에게 물었을 때, 물론 일본이 다신교 국가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정말 하나의 완벽하고 정확한 개념이라는 게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론 ‘사랑’이라는 것도 그렇고요. 같은 명사, 예를 들어 ‘컵’에 대해 각자가 머그, 물잔, 맥주잔의 식으로 떠올리는 이미지가 다르듯이 개념이라는 것도 사람마다 다 다르게 형성되고 정의되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기쁨
한 인간, 그러니까 ‘나’를 구성하고 있는 것들이라는 생각이 계속 들어요. 대본을 보면서도 ‘개념이란 게 뭘까?’ 질문을 많이 했고, 저 자신 자체가 지금 인간이라는 게 도대체 뭔지, 또 나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고 있는 시기인 것 같아요. 제가 옳다고 혹은 그르다고, 아니면 좋거나 나쁘다고 믿어온 많은 것들이 남들에겐 아닐 수도 있고, 어느 순간부터 자신 안에서도 확답을 못 내리겠고, 오락가락하는 과정이죠. 개인의 질문에 대해 말로 풀어내고 언어로 설명하고자 하는 것들, 규정하고자 하는 것들이 과연 자의적인 것은 아닐까, 답을 내리기가 어렵고 내릴 수가 없더라고요.
한송희
작품에서 ‘하세베’가 ‘소유’라는 개념을 빼앗기고 난 다음 ‘마루오’에게 그런 말을 하잖아요. 너도 너를 묶고 있는 사슬을 끊어달라고 하라고. 그런데 마루오가 자신은 그 개념을 빼앗기지 않아도 그 상태를 따라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하거든요. 결국 개념을 빼앗기는 것도, 혹은 그 개념의 정의를 빼거나 다른 방향성으로 바꾸어 생각해보는 것도 모두 사고의 전환이랄까요, 이것과 연결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무언가를 빼고 생각해보면, 기존의 개념과는 달리 다시 새로운 개념을 얻게 되는 것 같거든요. 관습적으로 사고하던 것 혹은 맹목적으로 믿고 있던 것, 오해하고 있던 것에 대해 다른 방향으로 접근하고자 하는 작품인 것 같아요.
이기쁨 연출가
송이원
이야기를 듣고 나눌수록 작품이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정말 매력적이에요. 연출님께서 말씀하신 ‘뭘까?’에 대한, 또는 다르게 표현하자면 질문하기에 대한 이야기랄 수도 있는 것 같고요. 작품에서 ‘관객이 이건 꼭 생각하거나 느끼고 갔으면 좋겠다’ 싶은 게 있으세요?
이기쁨
‘어떤 걸 느끼고 갔으면 좋겠다’에 대해 생각한 바는 사실 없고, 저랑 비슷한 생각과 과정을 거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런 질문을 하는 제 스스로와 그 과정들이 굉장히 괴로웠기 때문에, 그런 걸 너희도 겪어봐라(웃음).
한송희
엉망진창인데? (웃음)
이기쁨
그런데 그런 생각과 질문들을 하게 될 때 굉장히 많은 것들을 뒤집어엎게 되는데, 그런 순간이 빈번하게 찾아오지는 않는 것 같아요. 사람이라면 종종 괴로움에 빠져 생각과 질문을 하고, 반성하고, 돌이켜 보고, 뒤집어 생각하고 등을 하는데, 이번엔 개인적으로 그 깊이의 폭이 굉장히 컸어요. 이렇게까지 근본적으로는 접근을 잘 안 해왔더라고요. 굉장히 큰 덩어리의 질문에 대해 아마 영원히 답을 못 내릴 테지만 그런 뒤집어 엎어지는 순간을 겪는 게 굉장히 크고 중요한 일인 것 같아요.
송이원
네, 고통스럽지만 한 개인에게는 정말 중요한 순간인 것 같아요.
이기쁨
그래서 어떤 걸 느꼈으면 좋겠다, 뭐가 맞는 것 같다…. 물론 말이야 만들 수 있겠죠. “사랑은 구원이다” 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그런 주제적인 문장이나 메시지보다는, 질문의 계기가 되는 작품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송이원
저에게는 이 작품이 생각과 질문의 ‘방식’에 대해 생각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 같아요. 그러면 작품을 준비하신 여러분에게 어떤 숙제가 생겼다거나, 아니면 어떤 변화 같은 게 있었을까요? 제가 왜 계속 거창한 질문만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웃음) 이 작품이 참여하신 여러분에게는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해요.
한송희
저 같은 경우에는, 작품 자체의 내용 때문이라기보다, 그냥 제가 얼마나 뭘 모르고 있는지를 많이 느꼈어요. 인터뷰 초반에도 얘기했지만, 이걸 보고 ‘무슨 말 하는지는 알겠는데 난 재미없는데?’라고 했던 것도 어떻게 보면 오만이었고, 자만이었고, 작품을 만드는 동안 그런 걸 되게 많이 느꼈어요. 작품을 해석할 때에도, 아직 나이도 어리고 미숙한데도 불구하고, 보고 ‘이렇게 하면 되겠네?’ 시기적으로 이런 마음가짐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해보니 아닌 거예요. 표현하기도 너무 어렵고…. 이전까지는 보통 연출이 알면 저도 대충은 아는데, 대사나 상황에 대해 연출은 아는데 저는 모르겠는 거예요(웃음). 그런 순간들이었어요. 배우이자 인간인 내가 모르는 게 엄청 많구나, 되게 자만하고 있었구나, 그런데 그게 막 ‘반성!’ 이렇다기보다는 ‘아 그렇구나, 이걸 알게 돼서 너무 좋다’, ‘그러면 잘 듣고, 생각을 많이 해야겠다’, 이런 식으로 본의 아니게 굉장히 중요한 기점이 된 것 같아요.
윤성원
저는 경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어요. 내가 무엇이길래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지 않는 사람, 불편한 사람, 싫은 사람, 이런 것들을 나누고 있었나 싶더라고요. 사실, 사람이라는 건 별 게 아니고 저 역시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인데, 뭘 그렇게 사람과 생각을 가리고 있었나 싶었어요. 그리고 공교롭게 아내가 영국으로 공연을 가서 3주 동안 떨어져 있게 되었는데, 결혼하고는 이렇게 길게 떨어져 있어 본 적이 없거든요. 작품을 하면서 경계에 대한 생각을 할 때쯤, 이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또 나에게 어떤 사람인가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어요. 예전에는 작품을 하면서 고민에 빠지면 어두워지고, 힘들어하고, 술 먹고 등등이었는데,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더라고요. 나이를 잘 먹어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공연하면서 수반된 생각과 느낌들이, 아주 아주 행복을 주는 작품이었어요.
이기쁨
저 같은 경우는, 저희 팀에서 하는 작품들과 팀이 가지는 고유의 색이라는 게 분명히 있을 건데, 그걸 언어로 규정하기가 굉장히 어려웠거든요. 그러다 이번에 프로그램 문구를 작성하다가 ‘동시대성’이라는 표현을 쓰게 됐어요. 작품이나 단체와 관련해서는 처음 쓰게 된 표현이거든요. 이 ‘동시대성’이라는 것이 우리가 하고 있는 작업인 것 같다는 생각이 이번 공연을 하면서 많이 들었어요. ‘우리가 이런 걸 하고 있구나’ 스스로 답 같은 걸 내린 것 같고요. 그런데 이건 또 이거대로 고민인 거죠. 저는 슬슬 문을 닫을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계속해야 되는구나’ 싶고요. 저한테는 이뿐만 아니라 여러 발견과 이에 이은 고민이 교차하며 이어지는 작품인 것 같아요.
송이원
고민이라는 것은, 그리고 그것이 결정체로 이루어진 공연이라는 것은 분명 힘든 일이고 과정이지만, 개인적으로 연출님께서 계속 힘들어 주셨으면 하는 이기적인 생각이 드네요(웃음). 아무튼, 답변을 듣다가 마지막으로 여쭤보고 싶은 게 생겼는데, 연출님께서 생각하시는 ‘동시대성’에 대해 생각을 공유해주시며 인터뷰를 마무리 지으면 어떨까요?
이기쁨
‘동시대성’을 거창하게 말하고 싶지는 않고, 현재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간, 2018년이라는 시간으로부터 멀지 않은 가까이 있는 생각들, 고민들, 그리고 인간들을 무대에 올리는 걸 저는 ‘동시대성’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여러 세대를 다 아우를 수 있는 그런 고민들, 굉장히 큰 이야기들일 수도 있을 테고, 아니면 어떤 주제나 이야기에 대해 누구는 좋아할 수도 있고, 누구는 싫어할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토론을 하고자 할 수도 있고, 그런 이슈의 지점들을 만들어낸다는 것 자체가,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게 되는 것 같아요. 관계에서도, 개인적으로도 오늘날의 가까운 생각과 고민들을 ‘놓치지 말아야겠다’, 또 ‘놓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동시대성’이란 표현에 담긴 것 같아요.
송이원
멋진 말씀이네요. 어떤 거창한 포부나 주장보다도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 그게 사실 되게 힘들고 어려운 일이니까요. 오늘 대화 나눌 수 있어 즐겁고 재밌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독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