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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집단 푸른수염 <이방인의 만찬 - 난민연습>

실패하기, 주저하기, 그리고 마주보기

김태희_연극평론가
153호 2018.12.06
<이방인의 만찬 - 난민연습>(이하 <이방인의 만찬>)은 이상한 연극이었다. 처음 <이방인의 만찬>이라는 제목을 접했을 때는 그저 난민에 관한 연극 중 하나 일거라고 생각했다.
<이방인의 만찬 - 난민연습>(이하 <이방인의 만찬>)은 이상한 연극이었다. 처음 <이방인의 만찬>이라는 제목을 접했을 때는 그저 난민에 관한 연극 중 하나 일거라고 생각했다. 예맨 난민에 관한 사회적 이슈가 한창인 시점에 이방인 문제를 다루는 것은 시의적절한 문제 제기라고 여겨졌지만 결론이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찬성에서 크게 벗어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주 솔직히 말하면 난민 문제를 얼마나 설득력 있게 풀어낼지 지켜보겠다는 약간 모난 생각도 있었던 것 같다. 사회적 이슈를 소재로 다룰 때, 그 연극이 쉽게 다른 사람들의 관심과 지지를 얻는 것을 종종 목격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방인의 만찬>은 시작부터 대놓고 실패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10개도 족히 넘는 대본을 모두 찢어버리고도 무엇을 할 것인지 명확하게 얘기해주지 않는 연출 덕분에 배우들은 난민을 이해하기 위한 이상한 실험을 반복해야 했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난민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전에 이미 실패해버린, 일종의 실패담이었다.
<이방인의 만찬>에서 또 다른 <이방인의 만찬>으로
김태희
사실 난민 혹은 이방인을 다루는 것이 굉장히 시의적절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어떤 개인적인 계기가 있었을까 궁금해졌어요.
안정민
계기는 아주 단순해요. 제가 이방인이었던 적이 너무 많았고 이방인이라는 저의 정체성이 저에게 늘 문제였기 때문이에요. 저는 국제 사회에서는 동양 여자라는 이방인이었고 서울에서는 지방에서 이주한 이방인이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저의 시선이 한 번도 변방이 아닌 적이 없었고 내가 이 사회에 소속되어 있다는 감정을 느끼기 힘들었어요. 그런데 돌아보니, 내가 이방인이라고 나서서 말하기에는 진짜 이방인인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들의 말을 들어보고 나에 대해 점검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방인이 사회문화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는 것인지, 저에게 스스로 화두를 던졌고 그래서 처음 시작한 게 이방인의 만찬이었어요.
김태희
작년 변방연극제에서 <이방인의 만찬>을 공연하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저는 작년 작품은 보지 못했지만, 아마도 많이 다른 작품일 것 같아요. 그때와 지금은 사실 이방인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인 맥락이 많이 달라졌으니까요.
이관목
초연하고 이번 작품하고는 결 자체가 너무 다른 작품이에요. 저희가 초연 때 만났던 이방인들은 원래 있던 곳에서 머물 수 없어서 오는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그러니까 처음 만났던 이방인들의 고민은 인종적인 차별 같은 거였다면 이번에 만난 이방인들의 고민은 그 이상이죠. 정말 전쟁과 죽음을 무릅쓰고 온 사람들이고 다시 돌아가면 죽을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작품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어요.
안정민
초연 당시 <이방인의 만찬>은 자국의 음식으로 서울에서 레스토랑을 하고 계시는 외국인 사장님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어요. 배우들은 그 녹음을 들으면서 그 사람의 제스처, 억양, 어눌한 한국어 말투를 최대한 살려서, 본인의 의견은 제외하고 온전히 그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달했죠. 그때는 뭐랄까 이 사람들 자체를 보여주고 그걸 통해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김태희
난민이라는 맥락의 변화 외에 작품 만드는 방식도 달라졌네요. 그런데 이번 작업에서도 배우가 그대로 인터뷰 속 목소리를 흉내 내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 장면에 대해서 굉장히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셨잖아요?
안정민
맞아요. 이번 작업은 일종의 반성이었던 것 같아요. 초연 때는 제가 버바텀 연극의 윤리성에 지나치게 집착해서 학술적인 개념으로부터 탈피하지 못했어요. 제가 버바텀을 배울 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덕목이 윤리성이어서, 연출자가 드러나는 순간 잘못된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번 작업을 할 때는 그게 더 나쁜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내가 어떤 시선으로 이 문제를 보고 있는지, 내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보여줘야 사실 제대로 화두를 던질 수 있는 거거든요. 전작은 오히려 질문을 던지기보단 그들의 인생에 너무 기대고 있었던 것 같아요. 이번에도 처음에는 난민들의 인터뷰를 지난번처럼 전달하는 일을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막상 저들을 그렇게 던져놓기엔, 저들이 너무 약자더라고요. 그리고 저는 그렇게 착한 사람이 아니어서요, 무조건 찬성하고 싶지 않았어요. 제 안에 있는 갈등을 얼마나 철저하게 드러내고 솔직해질 수 있는지 이번에 실패하더라도 해보자, 그런 목표가 있었어요.
이관목
제 개인적인 목표는 조금 달랐어요. <이방인의 만찬>을 처음에 준비할 때 경험한 게 하나 있어요. 인도, 티벳, 중국 등 다양한 지역에서 오신 분들을 인터뷰하느라 그 음식점에 가서 밥을 자주 먹었어요. 그러면서 제가 향신료에 대해 갖고 있었던 거부감이 없어지더라고요. 덕분에 직접 맞닥뜨리지 않고 상상만 하면 서로에 대해 알 수 없다는 걸 발견하게 된 거죠. 그래서 문화나 예술이 유입되면 그들에 대한 시선이 유연해질거라는, 이게 목적이 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작품이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감이 있었어요.
안정민
그래서 이번 작업이 저와 관목씨에게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예전 <이방인의 만찬> 작업을 했을 때 저희는 공감이 어렵지 않구나, 이런 걸 느꼈는데 이번에는 그게 정말 공감이고 이해인지를 물어봐야 했거든요. 난민에 대해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에서 정말 공감이 가능한 건지, 이해라는 것이 가능한 건지 지난번엔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너무 흔들리고 의심이 되는 거죠.
안정민
동정과 연민이 아니라
김태희
이번 작품이 실패담으로 구성될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이유가 있었군요.
이관목
네, 사실 연출님이 처음에는 드라마로 풀어나가려고 했었어요. 그들을 대상으로 드라마를 만들어서 공연을 본 관객들이 난민 문제에 대해 찬성할 수 있는 방향으로 공연을 만들어보려고 했죠. 그런데 막상 이 드라마가 쉽게 안 풀렸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연출님이 배우 개인이 실질적으로 난민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더 많이 알아야 되겠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그때부터는 드라마를 잠깐 놓고 난민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먼저 난민을 받았던 유럽의 사례도 찾아보고 우리에게 어떤 제도가 필요할 것인지 개개인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 그런데 찾아보니 생각보다 부정적 사례도 많고 그 문화권을 알면 알수록 이슬람이라는 이 종교가 생각보다 너무 멀더라고요. 그때부터 더 힘들어지기 시작했죠.
김태희
지금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 십여 개의 대본이 있었다는 대사가 기억이 나요.
이관목
정말 수많은 드라마가 있었죠. (웃음)
안정민
드라마가 성립되려면 상황이 있어야 해요. 상황이라는 건 인간이 헤쳐나갈 수 있고 인간이 자기 자신을 바라볼 수 있고 나아갈 수 있는 벽이어야 해요. 그러니까 한 사람의 개인성이나 개인으로서의 찬란함이 드러나야 그게 연민이 아닐 수 있거든요. 근데 지금 그 사람들은 너무 불리해요. 너무 약자고요. 저는 그건 상황이 아니라고 봐요. 자기 자신의 개인성을 드러낼 수 없는 것은 억압일 뿐이지 상황은 아니에요. 그러니 드라마를 아무리 써도 이상한 거죠. 이들은 기다림에 놓여 있는데 <벚꽃동산>의 기다림은 아니거든요. <벚꽃동산>의 기다림은 기다리면서 그들의 개성을 발휘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이 존재해요. 하지만 예맨인들은 개성이 억눌렸기 때문에 드라마로 만들 수 없고 만든다면 폭력일 뿐이라고 생각했어요.
김태희
그래서 그때부터 작품 창작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군요.
안정민
극 중 등장한 연습과제들은 실제로 저희가 연습하면서 수행했던 과정들이에요. 진짜로 알고 싶었어요. 우리가 예맨인들을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계속되는 토론과 연습과제들을 통해서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고 다시 연기해보고 무엇이 달라지는지 이런 걸 체크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게 저한테는 예술가로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어요. 물론 실패했지만. 난민들을 대할 때 연민과 동정이 아닌 다른 방식의 공감의 결을 찾을 수 있을까. 그걸 공유하는 연습과정이었던 것 같고 그래서 이번 연습과정에서 나의 밑바닥을 보여주면서까지 이야기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서 힘들었어요.
김태희
‘나의 밑바닥’이라는 게 결국 아까 말씀하셨던 얼마나 솔직해질 수 있는가의 문제였겠네요.
이관목
네. 극 중에는 연습과제가 3개만 나오지만, 정말 무수한 과제들을 거쳤어요. 그 과제들을 통해 연출님이 계속 우리를 난민에 관해 상상하게 만들었어요. 그런데 계속 알아가고 상상할수록 쉽사리 찬성이란 말이 안 나오더라고요. 난관에 부딪혔던 게 아까 말씀한 것처럼 분명 공감하는 지점이 있긴 한데 그게 완전한 공감은 아니었고, 또 그 공감을 바탕으로 난민 문제에 대해 긍정의 의견을 보이는 일이 결국에는 동정, 연민으로 빠지는 일 같았어요. 그렇게 되는 건 정말 안 좋다고 생각했어요.
안정민
찬성하는 연극을 만들고 단순히 이방인의 고통을 이야기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닌 것 같아요. 근데 제가 원했던 건 어려운 찬성이었거든요. 제가 유럽사회를 지켜보면서 느꼈던 심각한 도덕적 회의가 있는데요, 그게 ‘좋은 사람 되기’거든요. 좋은 사람 되기는 되게 쉬운 것 같아요. 저도 그런 욕심이 나고. 진보적인 것에 대해서 찬성을 말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닌 것 같아요. 근데 그렇게 뾰족하지 않은 찬성을 하게 되면 상처 받는 건 그 사람들이더라고요. 난민이 유럽 사회에 들어갔다가 다시 전쟁이 나는 자기 국가로 돌아가고 있잖아요. 저는 그 이유가 결국 찬성하는 사람들이 그들을 사회 일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동정과 연민의 대상으로만 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우리가 난민을 받아들인다면 유럽과는 다른 방식으로, 정말로 차가운 공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이관목
결국 나로부터
김태희
동정과 연민이 아니어야 한다는 지점에 공감해요. 동정과 연민은 쉽지만 그다음 단계는 실질적인 행동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죠.
안정민
더 나아가서 나의 한계를 인식해야 그들을 건강하게 받아들이고 그들도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공감이 충분히 하나의 폭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난민을 소재로 연극을 만들어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는 쉽죠. 그런데 그건 공감의 시선을 저한테 돌리는, 결국에는 난민을 이용하는 거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제가 자신 있게 예맨인들이 좋은 사람이고 우리가 오해하고 있다고 말하는 게 혐오스럽더라고요. 일단 그런 연극을 안 만들겠다는 게 목적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난민에 대한 연극이 아니에요. 오히려 이것은 우리에 대한 연극인 것 같아요. 사회적 약자에 대해 얘기할 때 이렇게 시작하는 게 가장 맞다고 판단한 것 같아요.
김태희
약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결국 힘이 있는 다수 때문이니까요. 어쩌면 그게 가장 맞는 방법일 것 같기도 해요. 극 중 연습과정에서 난민 심사를 직접 해보는 장면이 있잖아요. 결국은 우리가 그렇게 경험해보지도 않고, 잘 모르면서, 혹은 어설픈 감정으로 약자를 만들고 배제하는 거니까요.
이관목
그 장면을 만들면서 만드는 저희도 진짜 많은 생각을 했고 관객 분들도 그 장면을 많이 기억하시더라고요. 이렇게 우리가 난민에 대해 더 고민할 수 있는 과제를 주는 연극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유럽의 사례는 유럽의 사례일 뿐이에요. 결국 우리는 아직 실제로 그들과 맞닥뜨리지 못했다는 거죠. 그래서 계속 고민하고 준비해볼 수 있는, 이제 이 난민을 어떻게 받을지 경우의 수도 헤아려 보게 하는 그런 연극이 만들어져야 하는 타이밍이라고 생각해요.
분명 실패담인데, 다 보고 나면 조금 속았다는 기분도 든다. 이들은 난민을 찬성해야 한다고도, 반대해야 한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그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나를 흔들어 놓을 뿐. 다 보고 나서 난민에 대해 골몰히 생각해 보고 있는 나를 보고 있노라면, 이들은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는 확신이 강하게 든다. 나는 과연 약자를 동정과 연민이 아니라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그것은 분명 무수한 실패를 겪고 타인에 대한 완전한 공감은 불가능하다는 뼈아픈 사실을, 생각보다 가증스러운 나 스스로를 인정해야 조금이나마 가능성이 열릴 수 있는 일인 건 아닐까.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