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봄 작가, 겨울 무대>
종이 위 글자들, 극장 안 사람들
송이원_연출가
154호
2018.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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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등단 작가들에게 신작 집필 및 상연의 기회를 지원하는 <봄 작가, 겨울 무대> 전이 2013년을 마지막으로 중단된 후 5년 만에 다시금 개최되었다. 2018년의 초장인 봄부터 시놉시스 제출, 신작 집필, 프리젠테이션 등을 바삐 겪어낸 네 작가의 ‘따끈따끈한’ 작품이 지난 11월 9일부터 12월 2일에 이르기까지 ...
신춘문예 등단 작가들에게 신작 집필 및 상연의 기회를 지원하는 <봄 작가, 겨울 무대> 전이 2013년을 마지막으로 중단된 후 5년 만에 다시금 개최되었다. 2018년의 초장인 봄부터 시놉시스 제출, 신작 집필, 프리젠테이션 등을 바삐 겪어낸 네 작가의 ‘따끈따끈한’ 작품이 지난 11월 9일부터 12월 2일에 이르기까지 4주에 걸쳐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의 ‘겨울 무대’에 올랐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동시대 작가들의 주된 화두는 무엇일까. 2018 <봄 작가, 겨울 무대> 전 속 네 명의 작가, 최고나(2018 서울신문), 이수진(2018 동아일보), 이소연(2018 한국일보), 송현진(2018 경상일보) 작가를 만났다.

<향수>(최고나 작, 신동인 연출)
- 송이원
- 작품의 배경이 된 사건을 기사로 접했던 기억이 있는데, 실화 기반의 작품인 거죠? 이 사건을 다루시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 최고나
- 마감의 압박에 시달리다 보니…. (웃음) 제가 처음에 썼던 게 신동인 연출님과 의견이 잘 안 맞았어요. 아동학대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서 기사들을 리서치하고 여러 형식의 작품들을 썼는데, 그중에 <향수>가 연출님과 잘 맞아서 이 작품으로 지원을 하게 됐어요.
- 송이원
- 그러면 <향수> 이전에 썼던 작품도 아동학대에 대한 이야기였나요?
- 최고나
- 네, 그런 이야기였는데 조금 다른 형태의 이야기였어요. 결국 그 작품은 보류시키게 되었죠
- 송이원
- 원래 아동학대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으신가 봐요.
- 최고나
- 딱히 그렇지는 않은데, 제가 청소년 소설로 등단을 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그쪽으로 관심이 계속 가나 봐요. 이런 주제가 저에게 친숙하기도 하고요.
- 송이원
- 저는 작품을 봤을 때도 그렇고, 기사로 사건을 접했을 때도 그렇고, 사건에 경악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극심한 학업 스트레스라는 배경을 알게 되었을 때 마음이 아프기도 했어요. 작가님께서는 이 기사를 접하시고 어떤 생각과 감정들을 느끼셨나요?
- 최고나
-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작품도 아이의 감정선을 따라가게 되었고요. 직계가족 살해라는 희대의 살인을 저지른 아이지만, 연민이 느껴지게끔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보시면서 관객분들이 많이들 우시더라고요. 저도 사실 조금 찡했거든요(웃음). 그래서 사람들이 네 공연 보고 우냐고 놀리기도 했는데, 아무튼 아이가 안 됐다는 마음이 들게, 연민이 느껴지게 그려보고 싶었어요.
- 송이원
- 실화를 기반으로 한 이야기이지만, 작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연민이나 공감 같은 효과를 위해 캐릭터를 구축하게 되잖아요.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해서도 작가님의 상상이 많이 입혀졌을 텐데, 주로 어떤 방향으로 설정을 하셨나요?
최고나
- 송이원
- 저는 아들과 어머니 두 인물에 이입했던 것 같아요. 서로가 가해자이기도 하고 피해자이기도 한데, 너무나도 상황에 몰려간 사람들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최고나
- 아들은 평범했지만 학대로 인해 점점 괴물이 되어버린 아이라고 볼 수 있겠죠. 아들이 계속 시체 냄새를 가리기 위해 향수를 뿌리는데, 그 냄새는 순간적으로 없앨 수 있어도 죄는 덮일 수 없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 죄의식도요. 또 뿌리는 향수의 의미도 있지만 이중적으로 '무언가를 그리워하다'라는 의미도 담을 수 있게 의도했어요. 한때 단란했던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에서의 “향수”였죠.
- 이수진
- 작가님은 어쩌다 가족사진에 출연하신 거예요? 무대 위 가족사진에 떡하니 작가님이 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 최고나
- 연출님이 가족사진을 넣고 싶다고 하셨는데 캐스트에 엄마 역할이 따로 없었어요. 제가 그때 연습 참여를 잘 못 했기 때문에 죄송한 마음에 사진으로라도…. 보정이 정말 잘 돼 있죠?
- 이수진
- 정말 존재감 있으셨어요.
- 최고나
- 사진이 너무 잘 나왔길래 제가 나중에 사진을 따로 달라고 했어요(웃음). 그런데 너무 무거워서 결국 버려두고 올 수밖에 없었다는 사연이….
- 이소연
- 저는 시간이 없어서 공연을 못 보고 희곡과 기사 사진으로만 봤는데, 무대가 비닐로 이루어져 있더라고요. 시체 유기할 때 비닐로 싸는 그런 맥락인가 싶었어요.
- 이수진
- 사건 현장을 보면 폴리스라인처럼 비닐을 두르는데, 관객들이 백스테이지부터 훑고 객석으로 가게 되어 있었어요. 공연이 시작될 때 아들이 관객들이 지나갔던 길을 청테이프로 막으면서 시작하잖아요. 거길 정말 신나게 막기 시작하는데, 그 시작이 정말 좋았어요.
- 송이원
- 이런 식으로 희곡이 공연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인상 깊었던 점이 있으신가요?
- 최고나
- 가족사진으로 특별출연한 거? (웃음) 제가 연습에 참여를 많이 못 해서 공연으로 봤을 때 새로움을 많이 느꼈어요. 극으로 보면 영상이 많이 사용됐는데, 메시지 같은 걸 저는 다 연기로 표현하게 썼었거든요. 그런데 메시지들이나 카메라, 게임 같은 것들이 여러 형태의 영상으로 표현되어서 새로웠어요. 연출님이 표현하신 게 제가 쓴 것보다 더 잘 나왔다고 생각해요. 감사한 경험이었습니다.
<고시원연쇄화재사건>(이수진 작, 이우천 연출)
- 송이원
- <고시원연쇄화재사건> 같은 경우도 특정한 실화를 기반으로 한 건 아니지만 노량진이라는 공간이나 빈번하게 화재사건이 일어나는 고시원을 배경으로 두셔서인지 엄청 현실적인 감각으로 다가왔어요. 작가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집필하시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 이수진
- 실은 되게 오래전부터 구상을 해서 덧붙이고, 덧붙이고 하다 보니 이야기가 조금 산만해진 경향이 있어요. 1998년도부터 생각을 했던 주제거든요. 그때 주변에서 다들 연애를 하는 거예요. 전 거짓말일 거라고, 다들 이상한 것에 씌인 거라고 생각을 했었죠. 그러다 2001년에 '나도 대본을 한 번 써 봐야지' 생각을 하고 ‘삼국유사’를 막 뒤지다가 ‘지귀설화’를 읽게 됐어요. '역시 사랑에 빠진 게 아니라 그녀의 배경에 눈이 멀어서 사랑한다고 믿은 걸 거야' 싶더라고요. 아니면 이야기를 한 번도 안 나눠 봤는데 어떻게 사랑에 빠져 불에 타 죽을 수가 있겠어요. 2008년에 초고를 썼는데 그때는 그냥 한 고시원의 찌질한 남자애가 고시원집 주인의 딸을 좋아하게 된 이야기였어요. 건물 관리하느라 잘 해 준 건데 착각해서 혼자 분함을 느끼는 내용이었거든요. 그걸 연극반 친구들이랑 무대에 올려보자고 1년 정도 수정하는 과정을 가졌는데, 다 싫다는 거예요. 그래서 엎고는 다른 걸 또 썼어요. 고이고이 모셔놓고 있는 부채 같았죠. 그리고 작년까지 사고들이 계속 있었잖아요. 작품에서는 잘 안 나온 결인데, 착한 아이들이 죽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말 잘 듣고, 착하고, 책임감 있는 아이들이 자기가 할 수 없는 걸 하려다 죽는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콜센터 직원도 그렇고, 구의역 사건도 그렇고, 원래 두 명이 해야 할 일이고, 자기가 굳이 할 필요 없는데 애쓰다가 그렇게 되어버렸잖아요. 또 제주도 특성화 고등학교 학생이 실습 중에 기계에 끼여 사망한 사건도 있었고요. 착하고 말 잘 듣는 아이들이 왜 죽어야 하지 싶더라고요.
- 송이원
- 처음 초고를 쓰실 때도 고시원을 배경으로 쓰셨잖아요. 고시원이라는 공간에 관심이 많으신가요?
- 이수진
- 전에 두 달 정도 고시원에 살았어요. 되게 묘한 곳이더라고요. 기억이 강렬했어요.
- 송이원
- 저는 작품을 보면서 묘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노량진의 컵밥 거리, 사육신 공원 같이 되게 현실적인 공간에서 오늘날의 현실을 떠올리게끔 하는 이야기였는데, 또 동시에 큰 맥락을 잡고 가는 건 삼국유사의 설화였으니까요. 이 두 맥락을 합치실 때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 이수진
- ‘지귀설화’ 자체가 임팩트가 세잖아요. 서사구조 자체가 정열적이고, 아름답고, 마음이 아픈 이야기인데, 그래서 원래는 시놉시스 단계에서 이 설화를 뺐어요. 그런데 이우천 연출님이 이걸 살려야 된다고 주장을 하셔서, 결국 노량진의 역사 과목 강사 캐릭터가 등장하게 됐어요.
- 최고나
- 정말 잘하시더라고요. 저는 강연 듣는 줄 알았어요.
- 이수진
- 선종남 배우님께서 동영상 강의도 보시고 연구를 많이 하셔서 캐릭터를 잘살려 주셨어요.
- 송이원
- 저는 신기했어요. 학원 강사라든지, 대학생과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라든지, 고시생이라든지. 노량진이라는 맥락 안에서 이야기들이 다 꿰어지더라고요. 실제로 노량진에 답사와 조사를 나가셨던 건가요?
- 이수진
- 아니요. 7월 말에 첫 마감을 하고, 그제서야 한 번 갔어요. 겁이 나서 못 가겠더라고요. 제가 생각하고 썼던 그림이랑 다르면 어떡하지 싶어서요. 가보니 상상하던 거랑 다른 것도 있고, 비슷한 것도 있었고요. 그 전엔 다큐멘터리와 영화 같은 영상 매체를 참고했어요.

이수진
- 최고나
- 또 저는 '은주' 역이 등장할 때 나오는 음악이 정말 좋았어요.
- 이수진
- 그게 연출님의 큰 컨셉 중 하나였어요. '은주'가 '동민'의 판타지 안에 존재한다는 걸 짚어주며 가고 싶으셔서 등장할 때마다 음악과 조명으로 효과를 주셨다고 하시더라고요. 또 박미선 배우님이 머리를 우아하게 쓸어 넘기면서 상황을 잘 살려주셨죠. 저는 처음에 '동민'의 시각에서 본 '은주'를 그릴 거라고 하셔서 어떻게 하실까 궁금해했었는데, 그렇게 처리를 하셨더라고요.
- 최고나
- 그리고 극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동민' 아닌가요? 그런데 좀 착각하게 되어 있잖아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치현'이 주인공처럼 보이도록요.
- 이수진
- 연출님께서 그렇게 읽으셨대요. 시놉시스 읽을 때 추리물인 줄 알고 읽다가, 마지막에 이게 우스운 이야기가 아니라, 그러니까 흥미진진한 볼거리가 아니라 반전이 있는 이야기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극 초중반에 추리물처럼 보이도록 신경을 많이 쓰셨어요. 누군가의 죽음을 내가 흥미로운 이야기로 보고 있었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배신감? 당황스러움? 이런 게 좋으셨나 봐요. 그리고 작품 만드는 단계에서 사람들이 "고시원연쇄화재사건"과 "고시원연쇄방화사건"을 헷갈려 하는 게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아예 '치현' 역을 맡은 맹주영 배우님께 가서 그냥 "연쇄방화사건"이라고 얘기를 해 달라고 했어요. 방화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발화’이니까요. 누군가가 계속 죽고 있는데 아무렇지 않게 살고 있고, 사건사고라는 게 뉴스에 나오니까 사건이고 사고지, 들여여보면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니까요.
- 송이원
- 이 말씀을 들으니 작가님께서 쓰신 노트가 이해되는 듯도 해요. 연쇄적으로 ‘발화(發火)’하며 ‘발화(發話)’한다는 것이요.
<어제의 당신이 나를 가로지를 때>(이소연 작, 손원정 연출)
- 송이원
- 그러면 이제 <어제의 당신이 나를 가로지를 때> 작품과 관련된 질문으로 넘어가 볼까 해요. 여러 시공간의 인물들이 무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사건들을 진행시켜 나가는데, 옴니버스라고 하기에도 부족한 것 같고, 작가님께서는 본인의 형식에 대해 어떤 설명을 원하시나요?
- 이소연
- 개인적으로 되게 시도해보고 싶었던 형식이었어요. 제가 기본적으로 떠올렸던 건 도형 원이었어요. 구멍 같은 것이요. 거기서 더 나아가서, 손원정 연출님이 극장이라는 공간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이야기를 한참 나누다가, 저도 어쩌면 영상이랑은 다르게, 무대에서는 보통 시공간적으로 떨어진 이야기들이 나오기가 힘든데, 결국 이걸 묶는 것, 이걸 무대에서 해야 되는 건, 여기가 극장이기 때문이고, 극장 안의 감각이 한 순간 통하는 걸 그려보고 싶다는 도전이었던 것 같아요.
- 송이원
- 중간의 터널이라고 해야 할까요? 깊은 구멍이라고 해야 할지. 어떻게 원이라는 도형을 중심으로 작품을 구상하시게 되었나요?
- 이소연
- 흔한 말이기는 한데, 마음에 있는 구멍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마음의 구멍이란 건 그 순간에는 잊어버릴 수 있는 것이지만 계속 남아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저를 되게 힘들게 해서 계속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 순간에 다른 사람들도 다 구멍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 자체만으로도 제게 위로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어쩌면 사람들은 원의 둘레에서 살아가는 게 아닐까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이 원은 중심 같은 것일 수도 있고요. 사람들 사이에서 중심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어릴 땐 많이 했었는데,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만 결국 중심은 비어 있고, 우리는 그 둘레를 같이 부유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런 감각을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었어요.
- 송이원
- 말씀하신 걸 듣다 보니 인물들에 대한 궁금증이 들어요. 인물들이 다 구멍이 하나씩 있는 인물들이고, 모두들 주변부의 사람들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러면서도 동시에 배경과 설정들이 독특하더라고요. 해저 터널을 뚫는 인부들, 조선계 혼혈인 일본인, 시각장애를 가진 할머니와 심지어는 고양이 캐릭터도 있었고요. 이 인물들과 동물(웃음)을 구체적으로 구상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 이소연
- 그냥 그때그때 떠올랐던 것 같아요. 그리고 떠오를 때마다 받은 느낌이 되게 달랐던 것 같은데, 결국은 '그들의 원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에서 구멍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나오게 된 거죠. 저의 신춘문예 당선작(마트료시카)도 그렇고, 다중언어나 신체언어 같이 언어적인 소통의 방식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그들이 소통할 수 있는 건 우리가 말로 하지 않더라도 고양이가 한 번 핥아주는 것, 아니면 통하지 않는 일본어로 하는 '락쿠보'처럼 많은 걸 담고 있을 수 있는 거니까요. 이런 게 중심이 아닌 바깥에서 소통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최대한 다양한 인물들을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이소연
- 송이원
- 그러면 시공간을 모두 다르게 설정하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 이소연
- 극장이라는 건 결국 '지금, 여기'잖아요. '지금, 여기'를 드러낼 수 있는 건 오히려 지금의 여기가 아닌 것들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고, 그 느낌이 궁금하기도 했어요. 단순한 생각으로는 제가 그런 위로를 느꼈을 때, 조금 뜬구름 잡는 소리일 수도 있지만(웃음), 지금의 여기에, 옆에 있는 사람들 말고도, 어쩌면 내가 보지 못할 미래에도 사람들이 살아갈 거고, 내가 여기에 있기 전에도 누군가가 있었을 테니까요. 이 생각이 저에게 안정감을 주었거든요.
- 송이원
- 원시인' 캐릭터가 작품에서 마지막을 장식하는데, 작가님의 의도와 설정이 궁금했어요.
- 이소연
- 연출님이랑 '원시인'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원시인'이랑 '우주인' 같은 경우엔 계속 혼자서만 등장하잖아요. 각각의 시공간에서 소통하기를 되게 바라고 있는 인물들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연출님께서는 공연에서 '원시인'의 색채를 빼시면서 '계속 기다려온 오래 된 사람'이라고 설정을 하셨어요. 실존 인물로서 있다기보다는 저에게 어떤 상징 같은 인물이었던 것 같아요. 제 안에 있던, 계속해서 누군가가 나를 찾아주길 바라는 혹은 내 목소리를 들어주길 바라는 인물이요.
- 송현진
- 원래 지금의 제목이 아닌 다른 제목이었잖아요. 이번 제목이 나온 과정이 궁금했어요.
- 이소연
- 시놉시스를 낼 때의 제목은 "Place, Plate"였어요. 그다음 제목이 "우리는 멀거나 때로는 가까웠으므로"였고, 마지막에 지금의 제목으로 바뀌게 됐어요. 첫 번째 제목이 탈락하게 된 이유는 사실 급하게 막 지어서 '확 오는' 제목이 아니었어요. 제가 원래 글을 다 쓰고 제목을 정하는 편이라, 또 쓰고나서 마감 시간이 얼마 안 남았을 때 두 번째 제목으로 정했는데, 제목에 대한 평이 다들 비슷했어요. 나쁜 제목은 아닌데 너무 일상 언어 같다고요. 그래서 단어 몇 개를 놓고 고민하다가 지금의 제목으로 정하게 됐어요.
<달랑 한 줄>(송현진 작, 류근혜 연출)
- 송이원
- <달랑 한 줄>을 보면서는 근 몇 년 동안의 한국 페미니즘 흐름을 요약한 작품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가님께 이 작품의 계기가 된 마음은 무엇이었나요?
- 송현진
- 저는 이번 2018 >봄 작가, 겨울 무대> 전에 참여하면서부터 구상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 전부터도 여성들만 나오는 극을 한번 써보고 싶긴 했는데,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일상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더라고요. 제가 원래 여성 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여성들이 일상에서 듣는 말들을 가지고 연극을 만들어 봐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서 출발을 하게 됐어요. 그런데 그것만 가지고는 갈등이 안 생기는 것 같아서 시위라든가, 세대 간의 갈등도 첨가하게 되었고요.
- 송이원
- 저는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게, 최근 페미니즘 운동의 흐름은 2-30대인 젊은 층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극 중에서 주 갈등을 겪는 인물들을 장노년층으로 설정하셨더라고요. 제 옆에 앉아 계시던 관객분들이 중장년층의 여성분들이었는데, 그분들이 되게 공감을 하시는 걸 보면서, 그 세대의 분들에게는 이야기가 많이 없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었어요. 저희보다 윗세대의 이야기를 극의 중심으로 잡고자 결정하시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 송현진
- 일단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을 넣고 싶었어요. 처음에 구상을 한 건 '연실'과 '명희' 같은 50대의 캐릭터로만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것이었는데, 조금 더 다양한 연령층이 겪는 문제들을 써보고 싶어지더라고요. 10대는 교복이나 교칙 같은 부당한 규제를 받고 있을 테고, 20대 같은 경우는 회사에서 겪는 성희롱과 폭력들을 써보고 싶었고요. 50대 같은 경우는 자신이 하는 말이 어떻게 폭력이 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번역가인 '명희' 캐릭터 같은 경우는 책에서 여성혐오적인 문장을 발견하잖아요. 미디어에서 빈번하게 발견되는 여성혐오라든가, 다양한 시각들을 넣어 보고 싶어서 그런 설정들이 나온 것 같아요.
- 송이원
- <달랑 한 줄> 작품을 이야기하면서 마지막 시위 장면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관객을 객석에서 순간 시위 군중으로 끌어들이고 함께 하게 되셨잖아요.
- 송현진
- 관객 참여의 아이디어는 류근혜 연출님과 스태프분들이 내주셨어요. 아무래도 작품이 여성들의 공감을 필요로 하는 이야기이다 보니 관객 분들의 동참을 유도하게 되었죠. 촛불을 나눠드리는 건 공연 전날에 완성된 아이디어였어요. 원래 희곡에서는 시위 장면이 더 과격하게 표현되었어요. 책을 쌓아서 여성의 성기 모양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연출님께서 시위는 아름답게 표현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셨고, 굳이 세게 지르지 않아도 전달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신 것 같아요.
- 최고나
- 남자 관객분들의 반응은 어땠어요?
송현진
- 송현진
- 다양했어요. 여성 관객들 같은 경우는 공감이 많이 되었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았고, 남성 관객분들 같은 경우는 조금 안 좋아하시는 분들도 많더라고요. 저희가 로비에 포스트잇을 붙일 수 있게 했거든요. '불편한 한 줄을 써주세요'라고. 남성분이라고 확정 지어 말하긴 좀 그렇지만, "너희 여자들은 그렇게 대우받고 살아 놓고 무슨 불평불만이 그렇게 많냐"라고 써놓고 가신 분도 계셨어요. 아니면 타자의 이야기처럼 바라보시는 분들도 계셨고요. '그냥 재밌었어', '너무 과격하지 않아서 좋았어' 이런 식으로요. 그런가 하면 또 어떤 분들은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문제라서 몰랐는데 여성들의 삶이 이렇구나' 하시는 분도 계셨고요.
- 송이원
- 책 속의 한 줄을 바꾸는 것이 곧 세상을 바꾸는 것이란 대사/구호가 인상적이었어요. 중심 소재를 글 속의 한 줄로 하신 게 미디어 속의 여성혐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싶어서라고 아까 말씀해주셨는데, 아무래도 글을 쓰는 분이시다 보니 여러 미디어 중 글에 대한 애착이 있으셨던 건가요?
- 송현진
- 그런 것도 없지 않아 있고, 제가 친숙하게 접하고 대하는 미디어가 책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명희'를 번역가로 설정을 했던 게 꼭 쓰고 싶은 대사가 있었거든요. '명희'가 번역에 대한 경험을 공유하며 '연실'과 남편의 관계에 빗대어 말을 하는 대사가 있어요. "번역할 때 처음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는데, 그 문화를 알고 나면 조금 이해가 돼. 그런데 네가 네 남편이랑 말이 안 통하는 건, 네 남편이 알려고도 안 했다는 뜻"이라며 말하는 대사인데, 작가로서 꼭 쓰고 싶은 대사였어요.
종이에서 극장으로
- 송이원
- 송현진 작가님과 인터뷰를 하다 관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나니 다른 작가님들께는 이걸 왜 안 여쭸지 싶어요. 희곡으로 쓰신 작품을 관객분들이 무대를 통해 보시고 다양한 반응들을 보여주셨을 텐데, 인상 깊었던 관객의 반응이 있었을까요?
- 이소연
- 화가 난다는 반응이 있었어요. '이해가 안 된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작가랑 연출이 자기 하고 싶은 말을 하려고 자기들만 알아듣는 말을 한 것 같다' 이런 식으로 화를 내는 분이 계셨는데, 글에 울분이 느껴져서 너무 죄송하더라고요. 글을 보고는 상처받거나 이런 게 아니라, 죄송했어요. 기껏 오셔서 보셨는데 얼마나 속상하고 화가 나셨을까 싶더라고요.
- 이수진
- 일본어를 왜 번역해주지 않는지 궁금해하시는 관객분들이 많으셨어요. 일본어 대사에 자막이 안 나와서.
- 이소연
- 일본어에 대한 부분은 그렇게 반응하시는 분들이 계셔도 저는 어쩔 수가 없는 게, 애초에 자막을 쓸 생각을 안 했어요. 말의 '의미' 없이도 소통이 되는 걸 의도했었고, 관객분들도 감성적으로 가지고 가실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기대를 했어요. 반응들 중에 좋았던 건, 안 좋은 말씀을 앞에 많이 하셨지만(웃음), 좋아하는 선생님께서 '그래도 너의 세계를 만들었네'라고 말씀을 해주셨거든요. 그 말이 저에게는 위로가 되었던 것 같아요.
- 최고나
- 저는 제가 강연을 했던 중학생들을 초대했어요. 중학생 아이들이 이걸 보고 어떻게 느낄지가 정말 궁금하더라고요. 제가 그 아이들 뒤에 앉아 있었는데, 무서워서 눈을 가리고 보더라고요. 내용을 아예 모르고 봤던 애들인데, 그러다 나중엔 되게 많이 울더라고요. 자기들도 이해가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는데, 제가 그런 이야기를 써서 아이들에게 보여줬다는 게 조금 미안하기도 했어요. 어찌 됐든 극단적으로 치닫는 이야기이고 폭력적인 이야기니까요.
- 송이원
- 정말 한국 청소년들이 겪고 있는 삶은, 해가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으니까 감히 상상하기가 힘든 것 같아요. <고시원연쇄화재사건> 같은 경우는 어땠나요? 저는 객석에 있으면서 관객분들이 많이 웃는 걸 느꼈던 것 같아요.
- 이수진
- 나갈 때 분위기가 너무 안 좋지 않았어요? (웃음) 관객분들이 나갈 때 아무 말도 안 하고 계단을 올라가시더라고요. 보통은 한두 마디 하실 법도 한데, 사람들이 한숨을 쉬면서…. 결말의 반전이 충격적이다 보니 그 침묵이 제게 크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추리물인 줄 알았는데 이게 뭐야?' 이런 반응들도 많았고요. 사실 결말 부분은 제가 대본을 쓰면서도 제일 난관이 아닌가 싶었어요. LG아트센터 같은 극장이었다면 홀로그램을 쓸 수도 있었겠죠(웃음).
- 송이원
- 송현진 작가님께서는 아까 관객분들의 부정적인 반응을 주로 공유해주셨는데, 다른 반응도 많았을 것 같아요.
- 송현진
- 일단 관객참여형 공연이다 보니 매번 관객 분들의 반응이 달랐어요. 첫 공연 같은 경우는 여성분들이 유난히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4회 공연 중에 반응이 제일 좋은 공연이었어요.
- 이수진
- 제가 그 회차를 봤는데 관객 분들이 퇴장을 안 하시던데요? (웃음) 마네킹 앞에 촛불을 줄 맞춰 놓으시려고 다들 기다리시더라고요.
- 송현진
- 맞아요(웃음). 첫 공연 끝나고 나갔는데 제 또래의 여성 세 분이 오셔서 '잘 봤다'고 인사를 따로 해주시고 가시더라고요. 되게 감동적이었어요. 마지막 공연 같은 경우는 제가 뒤에서 모니터를 했는데, 옆에 중년 남성분이 앉으셔서 계속 한숨을 쉬시더라고요. 굳이 성별이 아니더라도 관객 분들의 반응이 되게 다양했던 것 같아요. 성별과 무관하게 촛불이 부담스러웠다는 분들도 계셨고요. 아무튼 관객참여형이라 다양한 반응들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 재밌었어요.
- 송이원
- 아까 이소연 작가님께서 이번 작품을 통해 작가님의 세계가 완성된 것 같다는 피드백을 받으셨다고 했는데, 작가님들께 이번 작품은 어떤 의미였고 과정이었을지 궁금해요.
- 이수진
- 저는 작품을 하나 쓸 때마다 오래된 고민과 헤어지는 것 같아서 좋아요. 불편한 것들을 오래 갖고 있다가 그게 어느 정도 역치가 차서 더 이상 갖고 있을 수 없을 때 쓰게 되는 것 같거든요. 사실 고시원 얘기도 사회가 만들어 놓은 구조가 불평등한데, 열심히 행복함을 추구하면 잘 살 수 있다는 게 말 그대로 거지 같아서요(웃음). 노력을 해야 잘 살 수 있다든지, 안 굶어봐서 그렇다든지, 그런 것들이 싫고 기분이 나빴어요. 저는 이번 계기로 이런 생각들과 헤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 최고나
- 저는 한편을 끝날 때마다 생각하는 건데 '좀 더 잘 쓸걸'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항상 아쉬움이 남고 이번에도 '내가 최선을 다했나?' 생각을 해보면 마감의 압박에 시달리느라 아쉬움이 좀 많이 남았던 것 같아요.
- 이소연
- 저는 대본을 하나 완성할 때의 의미보다는, 공연을 할 때 팀을 만나고 헤어지는 게 큰 의미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팀을 만날 때마다 제 인생에 획을 긋는 느낌인데, 이번에는 제가 손원정 연출님과 같이하고 싶어서 제안을 드렸던 거라서 인상 깊었어요. 또 오래된 극단이랑 작업을 한 건 처음이었는데, 기존에 제가 했던 작업이랑 느낌이 되게 달랐어요. 팀들을 만날 때 팀마다 다른 분위기를 가지니까 이런 부분들이 재밌고, 어떤 팀을 만나 작품이 그 색깔로 피어나는 게 참 행복했던 것 같아요. 한번 도전해 보고 싶었던, 차분하고 지긋하게 보는 템포나 분위기를 시도해봤다는 것 자체로 되게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 송현진
- 저에게도 의미 있는 시도였던 것 같아요. 페미니즘이나 여성들의 연대를 꼭 그려보고 싶었는데, 기회가 닿아서 좋았죠. 항상 잘 쓰고 싶지만 이번만큼 잘 쓰고 싶었던 적은 드문 것 같아요. 확실히 지금 공론화되고 있는 이야기이다 보니 정말 잘 쓰고 싶었어요. 잘 썼는지는 의문이지만(웃음),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한고비를 넘기고 성장한 느낌이에요.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