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두산아트랩, 원지영 <원의 안과 밖 : 탄생비화>
[작품리뷰] 집을 찾아가는 길 위에서
목정원
156호
2019.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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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집이 없는 시절에 이 연극을 보았다. 실은 집도 없고 아빠도 없는 시절. 나 역시 오랜 외국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왔으나, 귀국이라는 말 자체에는 집에 대한 함의가 없다는 것을 불현듯 깨달은 시절에. 8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국의 도시들을 떠돌며 껍질을 잃은 소라게처럼 집을 찾아 헤매던 원지영이 1년 전 마침내...
연극in은 지난 공연을 기억하고, 다시 보고, 발견하는 즐거움을 공유하고자 다양한 형태의 리뷰를 제안합니다. [작품리뷰]는 최근 공연된 작품들을 여러 필자가 리뷰하는 코너입니다. - 연극in 편집부
집. 집이 없는 시절에 이 연극을 보았다. 실은 집도 없고 아빠도 없는 시절. 나 역시 오랜 외국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왔으나, 귀국이라는 말 자체에는 집에 대한 함의가 없다는 것을 불현듯 깨달은 시절에. 8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국의 도시들을 떠돌며 껍질을 잃은 소라게처럼 집을 찾아 헤매던 원지영이 1년 전 마침내 한국에 돌아왔을 때에도 사정은 비슷했을 것이다. 돌아온 땅에 우리의 집은 없는 것. 우리가 떠났을 때 이미 우리가 살던 집도 소멸하였던 것.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로 돌아왔는가. 집이 없는데, 돌아온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이때 부재하는 것은 물리적 공간이지만, 무엇보다 마음을 뉘일 숲이기도 하다. 집이 없는데, 돌아와 버렸으니. 우리는 스스로 집을 찾아 나갈 수밖에 없다.
이 연극은 그러므로 원지영이 집을 찾는 이야기이다. 아빠이기도 하고, 극장이기도 한 집. 그리고 그 과정에 관객들이 동참한다. 여기서 동참한다는 말은 단순한 추상이 아니다. 그것은 귀국 직후의, 돌아왔으나 돌아오지 않은 그 서먹한 감각, 모든 스며듦에 전제되는 불편한 지속의 시간을 관객도 함께 살아낸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공연의 형식 자체가 그것이 품은 이야기와 흐름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연극은 원지영이 처음 한국에 돌아와 아버지의 일터를 찾은 지점에서 시작된다. 아버지는 두산아트센터의 경비원으로 일하시고, 원지영은 커다란 트렁크와 뚱뚱한 배낭을 메고 거기 막 도착했다. 그리고 십여 명의 관객 역시, 그 극장에 막 도착했다. 우리는 스페이스 111의 빅보이 라운지 공간에 앉아 연극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계단으로 올라오신 아버지가 조금 더 기다리라 내뱉듯 말한 뒤 밖으로 사라지시는가 하면 태연히 화분에 물을 뿌리셨다. 기다리라시기에, 우리는 다 같이 조금 더 기다렸다.

(사진제공: 두산아트센터)
이후 이 ‘이동식 공연’은 관객으로 하여금 원지영과 함께, 아버지를 따라 극장 곳곳을 누비게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장소를 거니는 일에 포함되는 방황의 감각은 모두 실제의 것이다. 우리는 엉거주춤 트렁크를 함께 든 부녀를 따라 계단을 올라 회의실에 들어가고, 다시 스페이스 111의 로비를 지나 방재복도를 통과하여 연강홀 밖에 걸린 옛 포스터를 구경하고, 손전등을 하나씩 받아들고는 공연 중인 무대 뒤편의 의자보관실에도 들어갔다가, 비상구 계단을 내려가 지하 연습실에 도착하고, 거기서 다시 주차장으로, 주차장 한켠에 위치한 아버지의 컨테이너로도 이동했다. 그때마다 좁은 공간에 옹송그려 모여 있기도 하고, 넓은 곳에서 멀찍이 아버지와 딸을 건너다 보기도 하면서. 두 사람 사이를 감도는 어색한 공기에 함께 휩싸이거나, 때때로 터지는 작은 웃음으로 노곤히 여유로워지기도 했다. 그렇게 아버지와 딸이 흔들며 걸어가는, 두 손전등의 크고 작은 원을 따라 우리는 걸었다. 보이지 않는 원의 안과 밖을 기웃기웃 드나들면서. 오직 그 같은 듬성한 드나듦으로써만 하나의 탄생비화에 닿을 수 있다는 듯이.
그러나 공연은 단지 이 같은 실제적인 이동으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저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던 길들의 모퉁이에서, 관객은 공들여 마련된 연극적 가상의 풍경들을 맞닥뜨린다. 칠흑 같은 지하 연습실, 탈의실 쪽으로 아버지가 사라지면 딸이 혼자 남아 허공을 휘휘 비추고, 관객은 어둠 속에서 녹음된 딸의 음성을 듣는다. 이국의 도시들에서 극장에 가는 길을 잃던 이야기, 1992년 아빠가 가족들 앞에서 갑자기 사라진 이야기. 다시 걸어 나오는 아버지가 커다란 손전등을 앞으로 비출 때, 이청준의 소설 속 전짓불 같은 그 눈부심은 빛 너머의 얼굴을 가늠할 수 없게 만든다. 주차장 옆 컨테이너에서 아버지는 딸이 살았던 도시를 떠올리며 거친 음질의 ‘헝가리 무곡’을 틀고, 때마침 CCTV 화면에 혼자 매달려 고치를 말고 있는 애벌레 한 마리가 포착되어, 춤추는 듯한 현란한 몸짓이 음악을 따라 커다랗게 확대된다. 유령처럼, 연극처럼.

(사진제공: 원지영)
무엇보다, 원지영의 아버지가 두산아트센터의 경비원이라는 것부터가 명백히 연극적인 장치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는 실제로는 서울의 한 아파트 관리인이셨는데, 원지영은 그를, 가족을 지킨 적 없으면서 다른 이들의 집을 지키는 그를, 극장으로, 그가 한 번도 속해본 적 없던,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공간으로 모셔온 것이다. 그리하여 공연의 끝자락에서 아버지는 마침내 스페이스 111의 무대 한가운데 선다. 딸이 그의 손에 대본을 쥐여 준다. ‘연극의 마지막 장면. 아버지와 딸이 함께 불 꺼진 극장으로 들어온다.’라는 지문이 그의 입에서 발화되는 순간, 그때껏 우리가 가졌던 모든 실제적인 체험은 일순 연극 속으로 흘러 들어간다. 연극이 된다.
만일 모든 것이 실제이기만 했다면, 그런즉 연극의 틈입 없는 현실 장면들의 나열일 뿐이었다면, 도리어 관객은 끝내 구경꾼에 불과했을 것이다. 물리적 걸음으로는 참여하나, 마음은 멀찍이 남의 이야기처럼 서먹했을 것이다. 그런 우리에게 원지영은 마음을 기댈 장면들을 잊지 않고 던져주었다. 자갈밭에 몰래 심은 것을 보러 나가 먼 그림처럼 다투던 부녀, 딸이 찍은 영상 속, 연강홀의 객석에 누워 잠을 청하시는 아버지, 그 객석의 문을 아버지가 닫을 때 캄캄해지는 영상, 그렇게, 영상이 투사되던 극장의 벽 속으로 사라진 아버지, 극장이 된 아버지. 그 모든 장면의 극적인 조형성이 종종 우리의 몰입을 허했고, 때로 각자의 슬픔을 허했다. 마지막 장면, 콘솔박스에 들어간 딸이 무대 위의 아버지에게 동그란 조명을 비추자, 아버지가 대사한다.
“무대 위에 선 아버지는 딸이 태어나던 날을 기억한다. (아기를 안듯 손전등을 안으며) 1984년 11월 17일 대학로 서울대학교 병원 2층 분만실. 3.14 kg. 다음 날 곧바로 작명소에서 딸의 이름을 지었습니다. […] 으뜸 원, 갈 지, 비출 영. ‘내가 가는 길을 처음으로 비춘다.’ (손전등으로 극장을 훑으며) ‘내가 가는 길을 처음으로 비춘다.’ 원. 지. 영. 지금은 내가 매일매일 마치 딸의 이름처럼 살고 있습니다.”

(사진제공: 두산아트센터)
프로그램북에서 원지영이 밝힌 바 이 공연의 장르는 ‘홈메이드 연극’이다. ‘일종의 가족형 워크숍’을 통과하여 ‘누구나 집에서도 만들 수 있는 가장 작은 단위의 연극’. 일찍이 연극 바깥에 살고 있던 아버지를 극장으로, 쓸쓸한 가상 속으로 모셔와, 슬며시 화해의 몸짓을 건네는 일. 그리고 이때 집은 극장이 되고, 극장도 집이 된다. 실제는 가상이 되고, 연극은 현실이 된다. 모든 것이 섞여들 때에, 비로소 어떤 것들이 선명해진다. 본디 연극이란 갈등이 진행되고 진실이 폭로되는 장소인 바, 그렇다면 여기서 선명해지는 진실은 무엇인가. 사라졌던 아버지의 행방에 관해서라면, 관객은 끝내 그 내막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전해진 진실은 이미 그 행방과는 무관한 쪽으로 빛을 비추고 있었다. 진실은, 그 모든 혼연한 과거를 딛고, 지금 여기에서 그들이 다시 만나 서로의 길을 비추고 있다는 것. 우리는 앞으로도 언제까지고 다만 길들을 떠돌 뿐이라는 것. 그러다 이따금, 서로가 서로에게 집이 될 수 있을 뿐이라는 것.
나는 앞서 이 연극이 원지영이 집을 찾는 이야기라 썼다. 그 말을 이제 이렇게 고치고자 한다. 이 연극은 원지영이, 그리고 우리가, 집을 찾아 나가는, 영영 끝나지 않는, 그 길의 이야기이다.

(자료제공: 원지영)
원의 안과 밖 : 탄생비화
- 일자
- 2019.2.28(목)~3.2(토)
- 장소
-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작/연출원지영 출연원세종 원지영 빛김지우 공간디자인신승렬 드라마터그김지혜 관찰채민 책 편집전민진 책 디자인조희영 촬영감독이진근 무대감독김성수
관련정보 https://www.doosanartcenter.com/ko/performance/1376?q.displayStatus=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