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검색

검색영역

서울시극단 플래시 온 창작플랫폼 <포트폴리오>

[작품리뷰] 심해어는 스스로 빛을 낸다

김상옥
156호 2019.03.28
고등학생 예진과 시나리오 작가 지인은 어둑한 시야, 노이즈 속 웅성거림 안에서 첫 만남을 갖는다. 깊은 “바닷속” 같은 노래방에서 타자의 존재는 뚜렷한 의미로 곧장 식별되지 않는다. 대학교수 오경이 딸 예진을 유학 보내려 일본군 ‘위안부’를 소재로 한 포트폴리오 제작을 계획했고, 영상 촬영에 앞서 작가는 예진을 만났다. 옅은 그림자만이 비쳐드...
연극in은 지난 공연을 기억하고, 다시 보고, 발견하는 즐거움을 공유하고자 다양한 형태의 리뷰를 제안합니다. [작품리뷰]는 최근 공연된 작품들을 여러 필자가 리뷰하는 코너입니다. - 연극in 편집부

고등학생 예진과 시나리오 작가 지인은 어둑한 시야, 노이즈 속 웅성거림 안에서 첫 만남을 갖는다. 깊은 “바닷속” 같은 노래방에서 타자의 존재는 뚜렷한 의미로 곧장 식별되지 않는다. 대학교수 오경이 딸 예진을 유학 보내려 일본군 ‘위안부’를 소재로 한 포트폴리오 제작을 계획했고, 영상 촬영에 앞서 작가는 예진을 만났다. 옅은 그림자만이 비쳐드는 사각 무대 위에 두 사람이 서 있다. 지인은 늦게 도착했음에도 사과를 건네는 대신, 예진이 노래 부르는 걸 얼마든지 들어주겠노라 호언한다. 그러나 그날 노랫소리는 들려오지 않았고, 이후 위안부 피해자 귀녀 할머니와의 만남에서도 지인은 듣는 자 보다는 묻는 자가 된다. 극 중 지인이 언급한 자신의 단편영화 ‘바닷물 맛 여행’은 실제 <포트폴리오>의 작가 장정아의 전작 제목과 일치하는데, 이는 작가의 짙은 자기반영성을 보여준다. 런웨이 형태의 무대 양옆엔 객석이 자리하고, 관객 또한 무대뿐만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서로를 마주해야 한다. 안팎이 뚜렷이 구분되는 사각 패널은 객석의 이목을 끌지만, 시선들은 하나의 소실점으로 모이지 않는다. <포트폴리오>는 일방향이 아닌 응시 구조 속에서 진행되며, 픽션 너머 연극을 관망하고자 하는 ‘우리’를 시각장 안으로 끌어들인다.
‘포트폴리오’에는 ‘자산의 모음, 구성, 배치’라는 뜻이 있다. 오경이 짜놓은 판에서 귀녀는 취재 목적도 알지 못한 채 포트폴리오의 구성요소로 섭외된다. 작가와 감독은 귀녀의 존재에 집중하기보다 연출과 편집을 통해 자기중심적인 의미를 만들려 한다. 이들이 위안부 피해자를 파악하는 방식은 개별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수량화이다. 위안소, 피해자, 생존자를 숫자로 제시하고 피해 당시의 연령대별로 섭외 대상자를 결정한다. 피해자의 트라우마 사례는 효과적인 재료로 소비된다. 오경은 연출부에게 ‘위안부’ 할머니보다 딸의 인권 의식이 돋보이도록 강조할 것을 주문한다. 이는 오경 한 사람만의 악랄함이 아니라 작가, 예술가, 우리가 타자 재현에서 되풀이해온 대상화의 문제를 고백한다. 윤리적 인격으로 재현되려는 ‘나’의 욕망은 자기서사를 벌충하는 데에 타인의 고통을 끌어온다. 죄의식을 자극하는 타자의 형상은 그들을 바라보는 정의로운 ‘나’의 자의식으로 이어진다. 이때 말하고 있는 건 누구일까? 누군가의 “진정성”을 드러내기 위해 무대 위로 호명되는 “당사자”들은 말할 수 있을까. 지인이 심해어의 ‘비정상적’ 생김새를 얘기하자 예진은 그것이 압력이 높은 바닷속 환경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캄캄한 바다에서 심해어가 스스로 빛을 내듯, 타자들은 말을 한다. 하지만 그들의 말은 주위의 억압으로 인해 잘 들리지 않는다.
극 중 작가, 감독, 배우는 어느 정도 선의와 그에 우선하는 각자의 목적을 위해 귀녀를 설득하려 한다. 귀녀는 이 호명을 거부하듯 쉽사리 취재와 질문에 응하지 않는다. 포트폴리오 제작이 파투 난 뒤에야 귀녀는 더 이상 ‘소녀’가 아닌, 귀향 이후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작가는 생존자의 침묵 앞에서 증언을 강요했었지만 다소 변화된 모습을 보인다. 벤치에 앉은 할머니보다 낮은 바닥에 자리해 그 얼굴을 마주한다. 귀녀가 꺼낸 수첩에는 나이, 가족관계, 고향까지 모두 다른 이름들이 여럿 쓰여 있는데, 이는 모두 한 사람을 가리키고 있다. 생존자인 귀녀는 그 이름이 뜻하는 바대로 산 사람도 죽은 사람도 아닌 경계인이 되어 살아왔다.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여러 곳을 떠돌아야 했다. 한곳에 정박하지 못한 이주자의 삶은 자신에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낳게 했다. 그녀는 단일한 이름으로 환원될 수 없는 존재였기에, 다만 ‘나는 여기에 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귀녀는 “나도 당했다”고, 나도 말할 수 있다(Me too)고 용기를 낸 다른 생존자들을 보고,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귀녀는 그 모든 이름의 역사를 간직해주길 바라지만 지인은 더 이상 쓸 수 없음, 재현 불가능성을 자백한다. “오늘은 내가 말한 거야. 그냥 들어주기만 하면 돼.” 귀녀의 대답에 비로소 작가는 묻는 자에서 듣는 자가 되어간다.
예진은 위안부 역사를 얼마만큼 아느냐는 작가의 질문에 “스토리텔링”이 아닌 또 다른 질문으로 대답했다. “사람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어요?” 사람들은 할머니와 과거를 캐릭터와 내러티브로 바라보고 “소녀와 소녀” 컨셉을 기획하지만, 예진은 현재의 귀녀와 만나고자 한다. 카메라는 종종 두 사람의 측면을 담는다. 귀녀가 위안소에 가기까지의 기억을 더듬는 동안 화면은 클로즈업되고, 귀녀의 얼굴에는 고통이 상기된 듯 약한 경련이 인다. 감독은 울고 있는 예진의 얼굴을 장면 연출을 위해 다시 한 번 주문한다. 이러한 외설적 기록은 전시가치를 욕망하는 미디어 속에서 타자들이 어떻게 표상되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어둠 속에서 서로를 알아보는 심해어들처럼 예진과 할머니는 카메라의 눈에서 벗어나 노래방을 찾는다. 공간에는 어느덧 옛 노래가 흐르고, 큰 동선이 없는 이 공연에서 둘은 유일하게 자유로운 움직임을 보여준다. 포트폴리오 영상은 잡음과 운율이 새겨진 그 시간을 역사의 한 장면으로 기록하지 못한다. 연극은 빈 의자를 통해 귀녀의 자리를 마련하고, 동시에 그의 ‘부재’를 인식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결국 포트폴리오는 완성되지 않았고, 지인의 시나리오 작업도 중단되었다. 하지만 작가는 내가 실패하고 말았다는 비애감에 머무르지 않고, 처음부터 다시 쓸 것이라 말한다. 이 미끄러짐은 언제고 반복되겠지만 그 ‘실패’ 속에서도 타자들의 이야기는 이어진다.

[사진제공: 서울시극단]

포트폴리오
일자
2019.3.14.(목)~3.17(일)

장소
세종S씨어터

작 장정아 연출 이준우 출연 김지원, 강주희, 유원준, 최나라, 조용진, 이지연, 김민혜 음악 배승혜 무대/소품 한석경 조명 여국군 의상 최원 영상 김태원 분장 장경숙 조연출 전정욱 제작감독 이재진 기획 장인정 홍보지원 제나영, 임주희

관련정보 http://www.sejongpac.or.kr/performance/view_real.asp?
performIdx=29757&performCode=mspd1902071718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