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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극단 <함익>, 떼아뜨르 봄날 <햄릿>

[응답하라] 사느냐 죽느냐를 묻기 전에

임승태
158호 2019.04.25
축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지난 월드컵 때 한국 대표팀이 독일팀을 크게 이겼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독일의 충격적인 패배를 은근히 기뻐했던 나라가 있었으니, 바로 유럽 예선에서 탈락해 본선에도 오르지 못한 이탈리아였다고 한다. 그때 이탈리아에서는 “누구나 각자의 꼬레아가 있다”라는 말이 유행했다고 전해진다. 축구장에 저마다의 꼬레아...
연극in은 지난 공연을 기억하고, 다시 보고, 발견하는 즐거움을 공유하고자 다양한 형태의 리뷰를 제안합니다. [응답하라]는 공연 창작자들의 메타 비평을 의도하고 기대하는 리뷰입니다. - 연극in 편집부
축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지난 월드컵 때 한국 대표팀이 독일팀을 크게 이겼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독일의 충격적인 패배를 은근히 기뻐했던 나라가 있었으니, 바로 유럽 예선에서 탈락해 본선에도 오르지 못한 이탈리아였다고 한다. 그때 이탈리아에서는 “누구나 각자의 꼬레아가 있다”라는 말이 유행했다고 전해진다. 축구장에 저마다의 꼬레아가 있다면, 연극 무대에는 저마다의 햄릿이 있다. 햄릿 하면, 응답을 기다리는 저 유명한 질문이 떠오르기 마련인데, 마침 지난 한 달간 이러저러한 햄릿들이 던지는 질문이 내 귀에 들어오고 있던 터였다. 식상하다면 식상할 이 질문이 이번 달 ‘응답하라’를 고민하던 내게는 뭔가 특별하게 다가왔다.
언젠가부터 4월은 내게 햄릿의 달처럼 느껴진다. 근거가 없지는 않다. 이 글이 공개될 주간에 셰익스피어의 기일이 있다. 4월 23일은 셰익스피어가 태어난 날이라고 추정되는 날이기도 하다. 그러니 4월에는 셰익스피어가 언급될 일도, 탄생과 서거를 기념하는 공연도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럴 때 가장 자주 공연되는 게 <햄릿>이다 보니 4월-햄릿 고리가 있다는 주장이 완전히 허황되지만은 않다. 여기에 특별히 지난 5년 동안 국내 무대에 오른 햄릿이 ‘애도의 부재’라는 주제를 강조할 수밖에 없었던 맥락이 더해지면 이 고리는 더욱 단단해진다. 구하지도 못했을뿐더러 마음껏 슬퍼할 수도 없었던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것이 우리 시대 햄릿에게 주어진 새로운 명령이었기에 <햄릿>은 4월을, 그리고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슬픈 현실을 떠올리게 했다.
애도가 우리 자신의 문제가 될 때 비로소 햄릿의 질문도 우리에게 보다 구체적으로 다가올 수 있었다. 영어 be 동사에 정확히 대응하는 우리말 동사가 없는 관계로 저 유명한 질문은 번역부터 난제였다. 하지만 이제는 예전처럼 ‘사느냐 죽느냐’인지 아니면 ‘죽느냐 사느냐’인지 그것도 아니면 ‘존재할 것이냐 말 것이냐’인지를 놓고 무엇이 더 옳은지 다투는 일은 줄었다. 대신 그 질문이 지금 우리 주변의 비극적 상황 앞에서 무엇을 묻고 있는지에 집중하고 또 그 질문에 어떻게 답변할지 주목하는 공연이 늘었다. 예를 들어 구의역 김군을 기억하는 <임영준 햄릿>은 “살아남을 것이냐, 사라질 것이냐”라고 질문을 바꾸었고, 월세방에서 굶주림과 병에 시달리다 숨진 채 발견된 시나리오 작가 최씨를 떠올리게 했던 <고시원의 햄릿 공주>에선 “사느냐 죽느냐”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되 그것이 오늘날 청년(예술가)들이 직면한 현실임을 드러내고자 했다.
이번 4월에 공연되는 두 편의 <햄릿>을 기다리며 나는 기대했다. 이번에는 “To be, or not to be”에서 be 동사의 주체가 누구일지, 혹시 be 동사 뒤에 형용사나 명사를 더하는 시도는 없을지, 아니면 완전히 다른 동사로 대체하지는 않을지 궁금했다. 고백하건대 순수한 호기심은 아니었다. 그들의 질문을 잘 전달하는 것으로 이번 달 ‘응답하라’의 질문을 대신하고 싶었던 것이다. 공연은 내 예상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그래서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햄릿의 질문과 고민을 새로운 각도에서 만날 수 있어 반가웠다.

(사진제공: 서울시극단)

초연 이후 3년이 지나는 동안 관객의 젠더 프리 캐스팅에 대한 열망은 더 커지고 재벌이나 교수의 갑질에 대한 비판 의식은 더 깊어졌기에 <함익>은 무대 위에 놓인 거울처럼 오늘날 한국 사회의 여러 면면을 잘 비추고 있었다. 흥미로운 건 호감에 있어 상충할 수 있는 요소가 모여 있는 함익 캐릭터에 대한 관객의 반응이었다. 함익이 갑의 위치에서 행하는 부당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여성 햄릿 ‘함익’과 그의 분신 ‘익’이 만들어 내는 앙상블에 호응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은 현시점에서 관객이 무엇을 보기 원하는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국에서 비극을 전공하고 돌아온 재벌 2세 함익은 아버지가 이사장인 대학의 연극영화과 교수가 되어 학생들의 정기공연 <햄릿>을 지도한다. 함익은 독단적으로 캐스팅은 물론 연출 라인에 개입하게 되고 결국 학생들의 반발을 사게 된다. 그때 함익은 말한다. “니들이 비극을 알아?” 비극이 특권층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아 고전 비극만 공부한 듯하지만, 아무튼 함익의 말에 각성한 학생들은 공연의 내용을 완전히 바꾸어 새로운 작품을 내어놓는다. 그들이 준비한 정기공연 <햄릿>은 “누구냐?”를 무한 반복하면서 시작한다. 원작의 첫 대사이자 버나도가 상대방이 사람인지 유령인지 불확실한 상태에서 던진 이 질문은 함익의 앞선 질문 다음에 반복 배치됨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비극이 무엇이냐는 질문, 그리고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 역시 우리 삶의 수많은 문제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답이 달라지는 것이다. 우리도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왕자도 재벌도 아닌 나에게 비극이란 무엇인가? 내가 이 작품에서 감정이입해야 할 대상은 과연 누구인가? 어쩌면 이 질문은 무대 너머 어두운 곳에 앉아 있는 관객에 대한 창작자들의 걱정 섞인 호기심을 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은 우리의 친구인가, 적인가. 팬인가, 결점을 찾으러 온 평론가인가. 정치적 올바름에 민감한가. 당신은 재벌에게 호의적인가, 적대적인가. 당신이 보고 싶은 것은 어떤 남자, 혹은 여자인가.

(사진제공: 떼아뜨르 봄날, ⓒ전진아)

<함익>이 인물의 심리를 파고드는 반면 떼아뜨르 봄날의 <햄릿>은 이 작품에 일반적으로 부여되는 심리적 기대치를 부숴버리겠다는 결의가 돋보인다. 햄릿의 질문을 “있어야 할 것인가 없어야 할 것인가”라든지 “살아야 할 것인가 살지 말아야 할 것인가”라고 패러프레이즈(paraphrase)하는 것까지야 특별할 게 없으나 이내 이러한 질문 자체를 비웃어 버리는 데 이 작품의 반(反)비극적 특성이 드러난다. 비극이 심오한 질문에 답하는 심오한 예술이라는 우리의 통념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수인의 연극에서 빠질 수 없는 말장난과 음악이 이번 공연에서는 특별히 <햄릿>에 대한 아우라를 제거하기 위해 총동원된 느낌이다. “약한 자여 그대의 이름은”에서 대사를 멈춘다거나 “한 번도 없었던 꿈”과 “모든 곳에 존재하지 않는 신”에 안녕을 고하는 등 텍스트는 결정적인 곳에서 생략되거나 부정되었다. 음악 역시 비극적 정서를 끌어내기 보다는 차단하고 패러디하는 노래와 리듬을 택했다. 비극이 담아야 할 것이 존재, 신, 의미 같은 것이 아니라, 그저 재미있으면 된다고 외치면서 엄숙한 척하는 모든 것을 비웃는다. 궁극적으로 “to be, or not to be”에 대해서는 “바람만이 아는 대답”이라면서 답을 회피한다. 하지만 관객 퇴장 하우스 음악으로 밥 딜런의 를 사용함으로써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완전한 무질서나 허무주의는 아님을 드러낸다. 이 점에서 떼아뜨르 봄날의 <햄릿>은 햄릿의 질문이나 그 질문에 답하는 것을 전적으로 무의미하다고 여기기보다는, 지난 400여 년간 반복되어 온 질문과 대답에 대해 판단 정지를 선언하고 관객들에게 직접 자기만의 질문과 답변을 찾아보라고 요청하는 것 같다.
햄릿이 왕의 양심을 포착하기 위해 “쥐덫”이라는 이름의 연극을 준비하듯, 모든 <햄릿> 공연은 기본적으로 관객의 양심을 사로잡기 위한 쥐덫이다. 이 사실을 잠시 망각하고 순진하게 그들이 어떻게 질문하고 답변할지 기대하며 극장을 찾았던 나는 두 편의 연극에서 연달아 덫에 걸리고 말았다. 그들은 내게 되물었다. 너는 누구이며 어떤 질문을 가지고 극장을 찾았냐고. 머쓱해진 나는 이 질문이 나를 향한 것이 아닌 양 시선을 옆으로 돌린다. ‘나에게만 해당되는 질문이 아닌 것 같네요’라는 표정을 지으며.
함익
일자
2019.4.12.(금) ~ 4.28(일)
장소
세종M씨어터
작
김은성
연출
김광보
출연
최나라, 오종혁, 조상웅, 이지연, 강신구, 주성환, 장연익, 구도균, 박기덕, 송철호, 이정주, 조아라, 이하주, 박진호, 김유민, 장석환, 오재성, 김수지, 이강민, 김솔빈, 이상승, 김민혜, 신근호, 정홍구, 최종헌, 박정수, 최하현 무대
박동우
음악
장한솔
의상
홍문기
분장
이동민
소품
정윤정
안무
금배섭
조명
김정태
음향
남윤수
무대감독
장연희
조연출
김하늬 김주희
제작감독
이재진
기획
장인정
홍보마케팅
제나영 임주희
서울시극단
관련정보
http://www.sejongpac.or.kr/performance/view_real.asp?performIdx=29723&performCode=smpd1901091753001
햄릿
일자
2019.4.10.(수) ~ 4.21(일)
장소
나온씨어터
재구성·연출
이수인
출연
조은데, 엄태준, 강지완, 김덕환, 최두리, 윤대홍, 차승욱, 김선중, 이진주, 임서영, 김치몽, 이혜리, 송은지
기타연주·음향
엄태훈
무대·조명
강경호
의상
이명아
소품·분장
장승연
안무
고애리
노래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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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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