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순례길 2019
[작품리뷰] 기억은 언제나 현재와 만난다
박희정_4.16세월호참사작가기록단
159호
2019.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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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직후 터져 나온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은 이상했다. 참사의 충격으로 떨리는 몸을 멈출 수 없던 때였다. 그날의 기억에 대한 감각이 무뎌진다는 신호가 오기도 한참 전인 그때, 왜 사람들은 잊지 않겠다는 다짐부터 떠올렸을까. 그것은 과거의 참사들이 빠른 속도로 지워졌던 것에 대한 우리의 공포와 죄의식을 담아낸 말이었다. 그러나 어떤 이들...
세월호 참사 직후 터져 나온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은 이상했다. 참사의 충격으로 떨리는 몸을 멈출 수 없던 때였다. 그날의 기억에 대한 감각이 무뎌진다는 신호가 오기도 한참 전인 그때, 왜 사람들은 잊지 않겠다는 다짐부터 떠올렸을까. 그것은 과거의 참사들이 빠른 속도로 지워졌던 것에 대한 우리의 공포와 죄의식을 담아낸 말이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곧 다음과 같은 질문도 떠올려야 했다.
‘도대체 무엇을 잊지 않겠다는 것인가? 잊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에게 일어난 일이 과연 무엇인지, 이 일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면 ‘잊지 않겠다’는 외침은 공허한 것이었다. 우리의 외침은 기억의 박제가 아니라 사유하지 않음에 대한 투쟁 선언이어야 했다.
나는 참사가 일어난 해 6월부터 4.16 세월호 작가기록단에 참여하고 있다. 당시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세월호 참사를 해결하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물었을 때 가장 쉽게 연결된 답이었다. 결과적으로 지금은 그때의 내 선택에 안도한다. 기록은 늘 '지금 우리가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가'라는 질문과의 씨름이었다. 빈자리를 찾는 눈을 나에게 억지로 뜨게 한 것은 그 누구보다 나를 위해 좋은 일이었다.
작가기록단은 세월호 1주기, 2주기, 3주기에 책을 펴냈다. 각각 세월호 단원고 희생학생의 부모, 희생학생과 형제자매, 또 다른 재난참사 피해자의 목소리를 담은 책이다. 그리고 이번 5주기에 4.16 가족협의회와 함께 또다시 단원고 희생자 가족의 목소리를 기록한 책을 펴냈다. 이번 책은 ‘그날’보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에게 ‘5년’이란 시간이 무엇을 의미했는가에 초점을 맞추었다. 우리 사회는 재난 유가족들의 변해버린 삶에 대해 묻지 않았다. 그들의 5년을 묻는 일이 생소한 것은 우리가 어떤 한 사건을 5년간 꾸준히 들어본 적이 없다는 말과도 같다. 기억의 장소들은 사라지고 기억을 지속하는 힘은 약해져 가는 시기에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다양한 주체들은 어떻게 기억을 붙잡고자 하는가. 궁금했다. 나는 그래서 <안산순례길>의 다섯 번째 걸음에 함께 했다.
<안산순례길>은 안산이라는 도시를 걸으며 세월호를 몸과 감각으로 기억하고 사유하고자 2015년에 시작한 도보순례 프로젝트이다. 연극인, 설치 및 퍼포먼스 작가, 디자인그룹, 제작그룹, 시인, 기획자 등으로 구성된 여러 장르 예술가 콜렉티브 ‘안산순례길개척위원회’가 기획과 진행을 맡아 매년 5월에 개최하고 있다. 2019년에는 고주영, 그린피그, 심보선, 아쿠마노시루시x제로랩, 언메이크랩, 윤한솔, 잣 프로젝트가 참여했다.
나는 참사가 일어난 해 6월부터 4.16 세월호 작가기록단에 참여하고 있다. 당시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세월호 참사를 해결하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물었을 때 가장 쉽게 연결된 답이었다. 결과적으로 지금은 그때의 내 선택에 안도한다. 기록은 늘 '지금 우리가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가'라는 질문과의 씨름이었다. 빈자리를 찾는 눈을 나에게 억지로 뜨게 한 것은 그 누구보다 나를 위해 좋은 일이었다.
작가기록단은 세월호 1주기, 2주기, 3주기에 책을 펴냈다. 각각 세월호 단원고 희생학생의 부모, 희생학생과 형제자매, 또 다른 재난참사 피해자의 목소리를 담은 책이다. 그리고 이번 5주기에 4.16 가족협의회와 함께 또다시 단원고 희생자 가족의 목소리를 기록한 책을 펴냈다. 이번 책은 ‘그날’보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에게 ‘5년’이란 시간이 무엇을 의미했는가에 초점을 맞추었다. 우리 사회는 재난 유가족들의 변해버린 삶에 대해 묻지 않았다. 그들의 5년을 묻는 일이 생소한 것은 우리가 어떤 한 사건을 5년간 꾸준히 들어본 적이 없다는 말과도 같다. 기억의 장소들은 사라지고 기억을 지속하는 힘은 약해져 가는 시기에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다양한 주체들은 어떻게 기억을 붙잡고자 하는가. 궁금했다. 나는 그래서 <안산순례길>의 다섯 번째 걸음에 함께 했다.
<안산순례길>은 안산이라는 도시를 걸으며 세월호를 몸과 감각으로 기억하고 사유하고자 2015년에 시작한 도보순례 프로젝트이다. 연극인, 설치 및 퍼포먼스 작가, 디자인그룹, 제작그룹, 시인, 기획자 등으로 구성된 여러 장르 예술가 콜렉티브 ‘안산순례길개척위원회’가 기획과 진행을 맡아 매년 5월에 개최하고 있다. 2019년에는 고주영, 그린피그, 심보선, 아쿠마노시루시x제로랩, 언메이크랩, 윤한솔, 잣 프로젝트가 참여했다.

순례길은 안산역에서부터 시작했다. 순례자들은 안산의 이미지를 대표적으로 구성하고 있는 ‘다문화거리’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갔다. 100여 개 나라에서 온 다양한 외국인들로 넘쳐나는 원곡동 일대는 ‘거리’라고 불리기엔 어색한 정도의 큰 규모였다.
순례길은 안산이라는 도시의 역사를 걷는 길이었다. 안산은 대표적인 계획도시 중 하나이다. 1970년대부터 국가 주도의 계발계획 아래 인구수 30만 명의 거주지를 포함한 공단 개발이 진행되었다. 다문화거리는 1980년대 반월공단과 시화공단이 조성되고 1990년대 말 인력난 해소를 위해 이주노동자가 유입되면서 형성되었다. 당시 조성된 주거지는 세월이 흐르면서 ‘낡은 집’이 되었다. 순례자들은 재건축이 예정된 연립주택을 지나 단원고 희생자들이 뛰어놀았을 놀이터와 골목을 거쳐 화려하게 재개발된 고층 아파트 거리를 지나갔다. 풍경의 간극은 시대의 변화 속에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라난 욕망의 크기를 체감하게 했다. 재개발된 도시는 현재의 풍경이자 안산이라는 도시가 품은 욕망의 미래였다.
사이사이 고등학생으로 분한 배우들이 마치 그들이 살아서 그 거리에 있는 양 그들의 모습을 재현해냈다. 순례자들은 희생자들이 이 거리와 어떻게 호흡하며 존재 했을지를 마음속으로 상상할 뿐만 아니라 그들과 함께 걸었다. 그것은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다. 나는 연출가가 세심하게 조율한 ‘거리’에 대해 놀랐다. 우리는 그들을 멀리서 보았고, 때로는 곁을 스쳤다. 그들은 때때로 우리에게 나타났다. 순례자들은 시간과 공간을 선형이 아닌 다양한 변형으로 경험했고, 그 변형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사유의 자리가 생겨났다. 그들은 어디에 있는가. 그들은 왜 여기에 있지 못하는가. 그들이 여기에 있지 않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인가. 그들의 모든 발자국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면, 그것이 바로 안산 그 자체라는 사실에 나는 새삼스레 소름이 돋았다.
순례길은 안산이라는 도시의 역사를 걷는 길이었다. 안산은 대표적인 계획도시 중 하나이다. 1970년대부터 국가 주도의 계발계획 아래 인구수 30만 명의 거주지를 포함한 공단 개발이 진행되었다. 다문화거리는 1980년대 반월공단과 시화공단이 조성되고 1990년대 말 인력난 해소를 위해 이주노동자가 유입되면서 형성되었다. 당시 조성된 주거지는 세월이 흐르면서 ‘낡은 집’이 되었다. 순례자들은 재건축이 예정된 연립주택을 지나 단원고 희생자들이 뛰어놀았을 놀이터와 골목을 거쳐 화려하게 재개발된 고층 아파트 거리를 지나갔다. 풍경의 간극은 시대의 변화 속에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라난 욕망의 크기를 체감하게 했다. 재개발된 도시는 현재의 풍경이자 안산이라는 도시가 품은 욕망의 미래였다.
사이사이 고등학생으로 분한 배우들이 마치 그들이 살아서 그 거리에 있는 양 그들의 모습을 재현해냈다. 순례자들은 희생자들이 이 거리와 어떻게 호흡하며 존재 했을지를 마음속으로 상상할 뿐만 아니라 그들과 함께 걸었다. 그것은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다. 나는 연출가가 세심하게 조율한 ‘거리’에 대해 놀랐다. 우리는 그들을 멀리서 보았고, 때로는 곁을 스쳤다. 그들은 때때로 우리에게 나타났다. 순례자들은 시간과 공간을 선형이 아닌 다양한 변형으로 경험했고, 그 변형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사유의 자리가 생겨났다. 그들은 어디에 있는가. 그들은 왜 여기에 있지 못하는가. 그들이 여기에 있지 않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인가. 그들의 모든 발자국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면, 그것이 바로 안산 그 자체라는 사실에 나는 새삼스레 소름이 돋았다.

순례자들은 그 이후 4.16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가 있는 도로에 세워진 거대한 세월호 리본 앞에 멈추었다. 검은 우산을 펼쳐 들고 기억과 행동에 대해 말했다. 검은 우산의 행진은 안산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인 NC백화점 앞에서도 이어졌다. 기억과 행동은 몸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걸 다시 깨달으며 우리의 여정은 기억교실로 향했다. 안산역에서 시작해 안산의 역사와 희생자들의 역사를 교차해 체감하며 걸어온 순례자들은 ‘기억교실’에서 그들의 부재를 온전히 실감했다. 그들이 과거가 되지 못함을, 될 수 없음을, 우리가 여전히 어떠한 ‘욕망’들과 싸워야 함을. 생명안전공원 예정부지에서 마무리된 순례길은, 기억이 끊임없이 현재의 과제를 확인하는 작업이라는 걸 깨닫는 길이었다. 반복된 말들은 사람을 무디고 지루하게 만든다. 낡은 기억이 되지 않게 하는 법, 새로운 기억이 되도록 하는 것은 빈 곳을 찾아내고 다른 의미를 창출하는 것이다. 풀로 가득한 생명안전공원 터에는 유가족과 시민들이 만든 작은 꽃밭이 있었다. 그 곁에 작은 표지판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마저도 일부 훼손되어 있었다. 건설까지 갈 길이 멀다는 사실 앞에 한숨이 나오지만 동시에 묘한 생명의 힘과 조우한다. 들풀의 연약함과 함께 그 연약함이 만들어낸 뜨거운 힘을 마주해서였으리라. 긴 길을 함께 걸어온 이들의 연대를 확인했기 때문일 것이다.

순례길은 전체적으로 흥미롭고 뜻깊은 경험이었다. 그러나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순례가 시작되며 행해진 국민체조는 그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몸 풀기’로만 쓰기에 ‘국민’체조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었다.
생명안전공원으로 대형 목조 구조물을 옮기는 반입프로젝트는 당황스러운 사건이었다. 무엇보다 그 구조물을 들어 옮기는 과정이 위험했다. 구조물에 많은 사람이 다닥다닥 붙어서 움직이느라 앞사람 뒤꿈치를 밟지 않기 위해 신경 써야 했고, 그마저도 제대로 걷기 힘들었다. 시야를 제대로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지시대로만 움직이다 보니 가로등과 도로 분리대에 서너 번쯤 부딪힐 뻔했다. 솔직히 무서웠다. 게다가 S자로 만들어진 산책용 나무데크에서 이동을 위해 길가에 심어진 낮은 꽃나무와 풀들을 잔뜩 짓밟아야 했던 순례자들은 프로젝트의 중지를 요구했다. 생명을 짓밟으며 생명안전공원으로 갈 수는 없었다.
안타까웠던 것은 퍼포먼스를 진행하던 사람들이 보인 첫 대응이었다. 그들은 당황한 듯 보였고, 순례자들의 제안에 경직된 채 한동안 우왕좌왕했다. 조정이 유연하게 진행되지 않자 순례자들 사이에서 누군가 이런 취지의 말을 했다. 힘쓰는 남자 열 명 정도가 나무 데크가 아닌 벌판을 가로지르는 방법으로 구조물을 옮겨가자고. 어려운 구간을 그렇게 통과한 후 다시 다른 사람들이 함께 들어 목적지까지 옮기는 게 어떻겠냐고. 그건 최악의 방법이었다. 그러나 순례길을 어쨌든 마무리되어야 했다. 다행히 남자들만 남아 그걸 들어 올리지는 않았다.
순례길이 마무리된 후 리플렛을 펼쳐보고 ‘반입프로젝트’에 관한 설명을 읽었다. 어떠한 공간으로 반입이 어려운 구조물을 ‘공동의 힘과 지혜’로 반입하는 것. 큰 물음표가 남을 수밖에 없었다. 반입프로젝트의 핵심은 ‘공동의 힘과 지혜’를 모으는 것에 있다. 그러나 순례자들이 그 과정을 주체적으로 고민하고 수행하는 과정은 퍼포먼스의 설계에서 애초에 누락 되어 있었다. 다행인 것은 순례자들이 그것을 스스로 해냈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납득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 상황을 멈추고 질문을 던졌다. ‘반입프로젝트’는 어쨌든 길을 찾아가긴 한 것이다.
‘반입프로젝트’는 한편으로 퍼포먼스 참가자의 기본값이 어떻게 설정되어 있는지 질문하게 했다. 그것은 와스타디움에서 대형 천을 들고 걷는 퍼포먼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무엇인가를 들고 걸을 수 있는 사람만이 참여할 수 있는 퍼포먼스, 너무 키가 작거나 크면 힘들어지는 퍼포먼스였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의 순례참여에 걸림돌이 된 것이 도보의 턱이 아니라는 사실이 씁쓸했다.
몇 가지의 아쉬움을 적은 것이 순례길 전체에 대한 평가로 인식되지 않기를 바란다. 사유의 빈자리를 확인하는 것은 또 다른 사유의 시작이다. 내년 순례길을 기다리며 이 글을 마친다.
생명안전공원으로 대형 목조 구조물을 옮기는 반입프로젝트는 당황스러운 사건이었다. 무엇보다 그 구조물을 들어 옮기는 과정이 위험했다. 구조물에 많은 사람이 다닥다닥 붙어서 움직이느라 앞사람 뒤꿈치를 밟지 않기 위해 신경 써야 했고, 그마저도 제대로 걷기 힘들었다. 시야를 제대로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지시대로만 움직이다 보니 가로등과 도로 분리대에 서너 번쯤 부딪힐 뻔했다. 솔직히 무서웠다. 게다가 S자로 만들어진 산책용 나무데크에서 이동을 위해 길가에 심어진 낮은 꽃나무와 풀들을 잔뜩 짓밟아야 했던 순례자들은 프로젝트의 중지를 요구했다. 생명을 짓밟으며 생명안전공원으로 갈 수는 없었다.
안타까웠던 것은 퍼포먼스를 진행하던 사람들이 보인 첫 대응이었다. 그들은 당황한 듯 보였고, 순례자들의 제안에 경직된 채 한동안 우왕좌왕했다. 조정이 유연하게 진행되지 않자 순례자들 사이에서 누군가 이런 취지의 말을 했다. 힘쓰는 남자 열 명 정도가 나무 데크가 아닌 벌판을 가로지르는 방법으로 구조물을 옮겨가자고. 어려운 구간을 그렇게 통과한 후 다시 다른 사람들이 함께 들어 목적지까지 옮기는 게 어떻겠냐고. 그건 최악의 방법이었다. 그러나 순례길을 어쨌든 마무리되어야 했다. 다행히 남자들만 남아 그걸 들어 올리지는 않았다.
순례길이 마무리된 후 리플렛을 펼쳐보고 ‘반입프로젝트’에 관한 설명을 읽었다. 어떠한 공간으로 반입이 어려운 구조물을 ‘공동의 힘과 지혜’로 반입하는 것. 큰 물음표가 남을 수밖에 없었다. 반입프로젝트의 핵심은 ‘공동의 힘과 지혜’를 모으는 것에 있다. 그러나 순례자들이 그 과정을 주체적으로 고민하고 수행하는 과정은 퍼포먼스의 설계에서 애초에 누락 되어 있었다. 다행인 것은 순례자들이 그것을 스스로 해냈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납득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 상황을 멈추고 질문을 던졌다. ‘반입프로젝트’는 어쨌든 길을 찾아가긴 한 것이다.
‘반입프로젝트’는 한편으로 퍼포먼스 참가자의 기본값이 어떻게 설정되어 있는지 질문하게 했다. 그것은 와스타디움에서 대형 천을 들고 걷는 퍼포먼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무엇인가를 들고 걸을 수 있는 사람만이 참여할 수 있는 퍼포먼스, 너무 키가 작거나 크면 힘들어지는 퍼포먼스였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의 순례참여에 걸림돌이 된 것이 도보의 턱이 아니라는 사실이 씁쓸했다.
몇 가지의 아쉬움을 적은 것이 순례길 전체에 대한 평가로 인식되지 않기를 바란다. 사유의 빈자리를 확인하는 것은 또 다른 사유의 시작이다. 내년 순례길을 기다리며 이 글을 마친다.
[사진제공: 안산순례길개척위원회]
안산순례길 2019
- 일자
- 2019.5.5(일)
- 장소
- 경기도 안산시 일대(안산역 출발)
- 안산순례길개척위원회
- 고주영, 그린피그, 심보선, 아쿠마노시루시x제로랩, 언메이크랩, 윤한솔, 잣 프로젝트,
- 4.16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