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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음악극축제 Geoff Sobelle <HOME>

[작품리뷰] 사람이 만드는 집, 사람이 만드는 연극

예준미
160호 2019.05.30
개인 방송이 제법 큰 규모의 수요와 공급을 이루는 시장으로 발전하며 다양한 콘텐츠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중 심심치 않게 보이는 컨셉이 흉가, 혹은 폐가를 방문하는 공포체험이다. 간간이 폐가를 방문한 이들이 시체를 발견했다거나, 귀신을 보았다거나 하는 기사도 뜬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 버려두어 낡은 집이라니. 따지고 보면 ‘집’은 참...
개인 방송이 제법 큰 규모의 수요와 공급을 이루는 시장으로 발전하며 다양한 콘텐츠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중 심심치 않게 보이는 컨셉이 흉가, 혹은 폐가를 방문하는 공포체험이다. 간간이 폐가를 방문한 이들이 시체를 발견했다거나, 귀신을 보았다거나 하는 기사도 뜬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 버려두어 낡은 집이라니. 따지고 보면 ‘집’은 참으로 이상한 단어다.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면 “사람이나 동물이 추위, 더위, 비바람 따위를 막고 그 속에 들어 살기 위하여 지은 건물”, 즉 건물 자체를 의미하기도 하고, “가정을 이루고 생활하는 집안”, 특정한 기능을 하는 다소 폐쇄적인 내적 ‘공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듯’과 같은 관용적 표현에서는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이렇듯 집이라는 단어는 건물이라는 물리적 의미와 공간과 사람과의 관계성에 관한 의미를 포함한다. 2019 의정부음악극축제의 공식 폐막작 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집에 관한 이야기이다. 작품은 묻는다. “집은 어디이며, 무엇인가.” 사뭇 진지한 작품의 질문과 달리, 공연되는 110분간은 화려한 볼거리와 라이브 음악, 관객의 참여에서 비롯된 유쾌한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다. 작품의 내용은 간단하다. 사람이 집을 만든다. 따라서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공간의 의미 변화를 읽어냄으로써 우리는 단순한 시각적 즐거움을 넘어서 이 작품의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물리적으로, 만들기
‘무대’는 현실적 공간인 동시에 어떤 공간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공간이다. 무대의 공간에는 현실과 똑 닮은 세계가 세워질 수도, 현실을 초월하는 공간이 구성될 수도 있으며, 공연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에는 누군가의 작업, 노동 공간이 될 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무대는 중립적 공간이라 칭할 수 있다. 또한 공연이 진행되는 그 시점에, 무대는 많은 관객들 앞에 노출되어 있고, 이들은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지켜보게 된다. 다시 말해, 공적인 성격을 갖는다.
텅 빈 무대의 중앙으로 걸어 나온 배우는 나무 프레임과 방수포로 벽을 만든다. 배우의 키를 훌쩍 넘어가는 세 폭의 임시 벽에 잠시 가려졌던 무대에는 어느새 하나의 문과 침대가 놓여 있다. 집이라기보다는 방에 가까운 그림이다. 결국 이 공간은 무대라는 공적 공간 위에 잠시 구성된 사적 공간, 혹은 연극이라는 형식에 의해 노출된 개인의 생활공간이 된다.
이 소박한 방은 시공 인부의 등장과 함께 사라지고 뼈대만 있는 집이 등장한다. 텅 비어있던 공간은 싱크대와 오븐, 냉장고 따위의 주방가전이 들어서며 주방이 되고, 2층의 작은 방에는 변기와 샤워커튼이 설치되며 화장실이 된다. 뼈대만 있던 건물은 사람이 생활할 수 있는 물리적 ‘집’으로 완성된다. 이 공간에서 배우들은 일상적 행위를 한다. 건물이라는 의미의 집은 사람의 일상적 행동을 통해 사람이 사는 집이 된다. ‘사람이 집을 만든다’고 했을 때, 그 의미는 두 가지로 읽힐 수 있을 것이다. 인력으로 건축물을 만든다, 그리고 특정한 공간을 점유하고 생활의 공간으로 영위한다.
‘집’에서 일어나는 일상적 행위는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행위자들에 의해 중첩되며, 정신없을 만큼 숨 가쁘게 표현된다. 여러 명의 배우들은 동시에 같은 동선과 행동을 반복하는데, 이 모습은 마치 다중 노출 혹은 연속 사진과 같은 역동성을 주며, 반복되는 그들의 움직임은 어느새 생활의 모방보다는 하나의 안무처럼 기능하고 표현되어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거나, 다른 거주자들을 의식하는 등의 상호작용 없이 일상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같이 사는 사람들이 아닌, 같은 공간에서 각자가 살아가는, 작품의 소개를 빌리자면 ‘시공간을 초월하는’ 거주자들이다. 한 공간에 축적된 시간을 동시에 보여주어, ‘집’을 통시적으로 관찰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겠다.
물리적 건축물로서의 집은, 사고 팔 수 있으며, 타인에게 대여하거나 양도할 수도 있고 투기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아무리 ‘집’이라는 공간에 애착을 느끼고 평안을 느낀다 하더라도 그 공간에는 내가 아닌 다른 거주자들의 일상이 있었고, 내가 그 집을 떠나간다면 다른 누군가의 새로운 일상이 생겨날 것이다. 물리적으로 완성된 집의 한계는 여기에 있다. 건물 ‘집’은 온전히 나의 것이 아니다. 이러한 허망함을 보여주는 듯, 분주했던 집이 잠잠해지면 해가 떠오르듯 따듯한 조명이 켜지고, 침대에서 일어난 배우는 멍하니 빛을 응시한다.
정서적으로, 만들기
조용해진 집에 혼자 남은 어린 배우는 객석으로 내려와 한 명의 관객을 무대 위로 초대한다. 배우의 손에 끌려 무대로 올라온 관객은 요청에 따라 부엌에서 마실 것을 내어오고 손님을 맞이하여 다른 이들에게 소개해주는 등 호스트의 역할을 맡게 된다. 배우와 관객들이 하나 둘 식탁으로 모이고, 이들이 서로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잔을 부딪치며 어느새 집에서는 파티가 시작된다. 또 다시 집은 북적이지만, 앞선 장면의 북적임과는 다른 북적임이다. 비로소 이들은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 ‘집’이라는 공간은 물리적, 행동적 리듬을 벗어나 인간적 교류와 교감, 경험이 발생하는 공간으로 변화한다. 이 변화가 이전까지의 변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물리적 건축적 변화보다도 그 공간을 점유하는 ‘인간 공동체’에 의한 변화라는 것이다. 실로, 많은 배우와 관객들이 북적이는 와중에 계단의 난간이 설치되었는데, 이전까지 집을 보수하고 건축적으로 완성하는 과정에서는 물리적 움직임이 주로 보였던 반면, 이제는 그 난간을 설치하기 위해 힘을 합치는 사람들의 모습이 더욱 눈에 띌 뿐, 구조적 변화는 사람들의 합동을 이끌어내는 수단이 되었다.
단순히 먹고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던 파티는 학위 가운을 입은 배우와 관객들을 축하하는 졸업식으로, 턱시도를 입고 면사포를 쓴 두 관객의 느닷없는 결합을 축하하는 결혼식으로, 누군가의 서프라이즈 생일파티로 이어지며 ‘인생의 이벤트’로 확장된다. 물리적으로, 건축적으로도 허망하게 지나버렸던 진정한 ‘집’의 의미가 사람들의 네트워크와 함께 존재하며 경험하는 시간, 그리고 인생의 이벤트들로 인해 완성되는 것이다. 집이 단순히 물리적, 건축적 의미를 떠나 하나의 상징으로 완성되기 위해서는 또 다시 ‘사람이 집을 만들어야’ 한다. 단순히 일상을 반복하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 나의 경험과 사람들을 끌어들여 의미를 창출하고 생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적인 교감과 경험이야말로 ‘집’이 가지는 세 층위의 의미를 모두 담아낼 수 있는 마지막 과정이다. 함께 파티를 열고, 교감하며, 인생의 이벤트를 공유, 경험하는 그 시공간은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은 또 다른 ‘집’을 만들어낸다.
한 관객의 죽음과 그에 대한 추모로 파티는 종료되고, 사람들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너저분한 파티의 흔적을 치우는 것을 시작으로, 집은 비워진다. 여전히 건축물의 구조는 남아있고, 사람들은 그 안에서 움직이지만 예전의 북적이는 에너지는 사라졌다. 상자에 담겨 무대 앞에 놓인 물품들은 다소 초라하다. 삶의 에너지는 공간을 채웠던 물건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었으리라. 상자 위에 놓이는 ‘소품을 가져가지 마세요’가 쓰여 있는 팻말은 정신없이 집의 속성을 탐색했던 긴 꿈을 깨우는 메시지이다. 누군가의 집을 채우고 생활을 영위하게끔 했던 그 생활 물품들이 공연의 ‘소품’이 되는 순간 우리는 다시 극장으로 돌아온다. 속옷 차림의 배우가 멋쩍은 웃음을 지었던, 중립적이고 공적인 공간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잠깐 전까지 파티를 벌이고, 소속감과 일종의 연대감을 느꼈던 그 공간과 2층의 구조물은 다시 ‘무대’가 되었다.
우리가 목도하고 경험하고 감각했던 그 다차원의 ‘집’은 모두 연극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무대 위에 나무 프레임이 집의 형태로 세워지고, 그 공간을 채운 사람들이 일생을 산다. 텅 빈 무대 위에 무대 세트가 들어서고, 배우들이 연기를 하고, 이를 관조하는 경험, 그러니까 연극을 경험하는 과정은 집을 만들고, 소유하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점유하고 있는 극장 안 그 객석의 의자는 그 순간에 온전한 나의 것일지라도, 과거와 미래에는 다른 이들이 점유한 혹은 점유할 유한한 나의 영역이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더욱 쉽다. 그리고 사람이 없는 극장 또한 상상하기 어렵다. 건축적으로 건물은 극장의 구조를 갖고 있을 것이고, 극장이라 불리겠지만, 관객도, 창작자도 없다면 제 의미와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극장일 것이다. 같은 시공간 안에 사람들이 북적이며 함께 교감하고 각자의 의미를 창출할 때, 연극도 진정한 의미의 이벤트가 될 수 있다.

‘집’과 연극은 제법 닮았다.

[사진 제공: 의정부음악극축제]

HOME
일자
2019.5.18.(토) ~ 5.19(일)
장소
의정부 예술의전당 대극장
예술감독
Darcy Grant
크리에이터
Geoff Sobelle
출연
Sophie Bortolussi, Josh Crouch, Jennifer Kidwell, Elvis Perkins, Justin Rose, Geoff Sobelle, Ching Valdes-Aran, 바스커션, 에릭 세바스찬 테일러
세트
Steven Dufala
연출
Lee Sunday Evans
음악
Elvis Perkins
조명
Christopher Kuhl
음향
Brandon Wolcott
의상
Karen Young
일루션자문/조연출
Steve Cuiffo
안무
David Neumann
드라마트루기
Stefanie Sobelle
예술자문
Julian Crouch
무대매니저
Lisa McGinn
프로덕션매니저/기술감독
Christopher Swetcky
조무대매니저
Kevin P. Hanley
의상관리
Stephen Smith
음향협력
Tyler Kieffer
대역
Isabella Sazak
작품개발/제작
Jecca Barry
제작
Beth Morrison Project
관련정보
http://www.umtf.or.kr/program/performance_view.php?idx=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