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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x0set프로젝트 <바람없이>

[작품리뷰] 바람을 찾아서: 당신의 기다림이 우리에게 위로가 될 때

김연임
161호 2019.06.13
'바람없이'를 보러 간 날은 마침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었다. 바람의 흔적은 깃발과 교통통제, 공연장으로 질주하는 나의 가쁜 폐에 남았다. 2019년 6월 1일은 토요일이었고, 바람이 불었고, 해가 좋았고, 시위와 축제가 많았다. 용산역-서울역-남대문-종로-혜화동1번지에 이르는 그날의 동선에서, 퀴어퍼레...
질주
<바람없이>를 보러 간 날은 마침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었다.
바람의 흔적은 깃발과 교통통제, 공연장으로 질주하는 나의 가쁜 폐에 남았다. 2019년 6월 1일은 토요일이었고, 바람이 불었고, 해가 좋았고, 시위와 축제가 많았다. 용산역-서울역-남대문-종로-혜화동1번지에 이르는 그날의 동선에서, 퀴어퍼레이드, 보수기독단체의 시위, 어버이연합의 연설, 노동조합원들의 행렬, 또 다른 노동조합원들의 시위, 연극축제의 개막식과 마주쳤다. 모두 달랐지만 모두 같았던 점은, 깃발, 사람, 바람이었다.
깃발
<바람없이>에 도착했다.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7기 동인들의 2019 세월호 연극제 중 ‘신재x0set프로젝트’의 작업이다. <바람없이>에도 역시 깃발과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바람이 통 안 보여 열심히 찾았다. 무대 중심, 아래로 늘어뜨린 다섯 장의 길고 하얀 천에 각기 다른 높이로 초승달 그림자가 비치고 있다. 마치 깃발처럼. 무대 앞면 객석과 슬릿처럼 존재하는 하얀 천 너머 무대 안쪽 객석에는, 보이는 사람을 위한 의자와, 보이지는 않지만 거기 있는 사람을 위한 의자가 그들을 위한 책과 함께 놓여있다. 사람들은 이 흰 깃발의 서로 다른 반대편에 앉아 깃발 너머 사람들을 쳐다본다.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사람인가, 깃발인가. 혹은 그 사이 무엇인가.
사람
캄캄한 어둠 속 목소리 사람들이 말한다.
관찰자. 페미니즘. 매일매일. 운동. 활동. 절망. 공감. 의문. 힘. 고통. 나눔. 바위. 돌멩이. 발자국. 투쟁. 연대. 맘편히. 법. 제도. 혼자. 장애. 차별. 현장. 바꾸기. 마음. 분노. 삶. 이야기. 예술. 역할. 발언. 농성장. 공간. 정의. 연극. 엄마. 아이. 잊혀짐. 두려움. 세월호. 길에 대해.
작은 불빛 아래 몸 사람들이 말한다.
걷고. 느리게 걷고. 눕고. 뛰고. 빠르게 뛰고. 두드리고. 바닥을 두드리고. 바라보고. 벽을 치고. 뻗고. 더 뻗고. 손을 뻗고. 밀고. 당기고. 상체를 기울이고. 숨을 몰아쉬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달리고, 질주하고. 손뼉을 치고. 바라보고. 기다리고. 손끝을 더욱 멀리 뻗고. 멈추고. 먼 곳을 바라보고. 가까운 곳을 바라보고.
목소리 사람과 몸 사람의 소리가 교차하며 나는 소리는, ‘보이지는 않지만 거기 있는 사람들’의 소리다. 깃발에 비친 달그림자가 그믐의 위치에 도착하자 목소리 사람과 몸 사람의 말은 떠났다. 하지만 무대에 남은 ‘보이는 사람들’은 빈 무대에 놓인 작은 돌멩이 무더기를 바라보며 돌멩이 그림자를 하나씩 주머니에 넣어 떠난다. 우리는 고통을 나눌 수 있을까.
바람
그래서 바람은 어디에.
<바람없이>에서는 기필코 바람을 찾지 못하나. 바람은 어디로 갔을까. 도대체 어디쯤 오고 있나. 오긴 오는 건가. 이미 지나갔나. 신재X0set프로젝트는 전자저울을 켠다. 0set 버튼을 눌러 저울의 무게를 0으로 맞춘 다음,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맞춘 다음, 기다린다. 저 깃발 아래, 바람의 무게로 저울의 0이 흔들리는 순간을. 우리가 이곳에 있던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들은 번번이 기다렸고 기다릴 것만 같다. 마치 끝없는 기다림이 자신의 일인 듯.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아직 눈부신 길로 나선다. 도로는 조용하고 시위대와 깃발이 사라진 도로에 차가 씽씽 달린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바람은 공연이 사라지는 순간에 온다.’ 주머니 속의 돌멩이가 달그락거린다.
돌아가 이야기해 줄까. 잠시 고민하다 다시 집으로.
아마 알 거야. 기다리고 있으니.


별책부록: 신재 연출 초미니 인터뷰
연임
관객에게 무엇이 궁금해요?
신재
소리는 잘 들렸는지. 여기저기서 들리는 것 같았는지. 주무시진 않았는지.
연임
(웃음) 미안해요. 저도 첨엔 살짝 졸 뻔했어요.
신재
(웃음) 괜찮아요. 앞부분엔 움직임도 느리고 조명도 어둡고요.
연임
이 작업 왜 만드셨어요?
신재
궁금했어요. 활동가들의 이야기가. 왜 이 일을 하는지. 무엇이 그들을 지속시키는지.
연임
(웃음) 어, 그거 자기한테 물어보고 싶은 거 아니에요?
신재
(웃음) 어, 맞아요. 제가 궁금해서. 인터뷰 정리하고 발췌해서 작업하면서 제게 의미 있는 말들이 훨씬 많았는데, 제게 의미 있는 말들과 공연장에서 관객들과도 함께 들을 수 있는 말들이 일치하지 않기도 해서 고민하면서 선정하게 되었어요. 지금도 좀 많게 느껴질 수 있는데, 더 공유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긴 해요.

(중략)
연임
아까, 공연 이야기 나누다가 ‘최선과 목적’이라는 말을 언급하셨는데요.
신재
아, 공연은 그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잖아요. 그게 매력이자 미덕이기도 하고요. 공연은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되면 무섭다고 생각해요. 저는 물론 이 공연을 위해 공연이 진행되는 그 순간에도 최선을 다 하겠지만요. 공연은 우리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 수단이고, 만나기 위한 수단이고, 사라지는 거고, 통로인거죠. 그 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것. 우리의 관계, 말은 남지만.

[사진제공: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7기동인 ⓒ박동명]

바람없이
일자
2019.05.23(목) ~ 06.02(일)
장소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출연
엠마누엘 사누, 고권금 외
조명
노명준
사운드
정의석
그래픽
황혜준
영상
박동명
드라마터그
강보름
오퍼
김은정
연출
신재
각색/제작
0set프로젝트
관련정보
http://www.playticket.co.kr/ticketDetail.html?idx=891&fbclid=IwAR1gKFKerPdmaYgAdIsLsMBNMzUAsK2B3bcSx9_OgSuuh987Yhp-sgsV9G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