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아트센터 <녹천에는 똥이 많다>
[작품리뷰] 우리는 어느 곳에 담겨 있는가
백두산_연극평론가
161호
2019.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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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후시딘'(윤미현 작, 2014)에서 재치 있게 그려보였듯, 된장은 항아리에 담기고, 강아지는 개집에 담기며, 사람은 집에 담겨야 사람이다. 항아리나 개집과 사람의 집이 그나마 다른 점이 있다면, 인간을 담는 ‘그릇’으로서 집은 시대와 계층이 욕망하는 화장술에 따라 그 의장을 시시때때로 바꾸어 나간다는...
모든 존재는 어딘가에 담겨 정체를 주장한다.
<젊은 후시딘>(윤미현 작, 2014)에서 재치 있게 그려보였듯, 된장은 항아리에 담기고, 강아지는 개집에 담기며, 사람은 집에 담겨야 사람이다. 항아리나 개집과 사람의 집이 그나마 다른 점이 있다면, 인간을 담는 ‘그릇’으로서 집은 시대와 계층이 욕망하는 화장술에 따라 그 의장을 시시때때로 바꾸어 나간다는 것.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존재와 ‘그릇’의 본성이 있다면, 된장이 항아리에서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익어가듯, 인간 역시 집의 의장과 의미에 걸맞도록 자신을 부단히 변화시켜 나간다는 것. 욕망은 눈으로 만족되고, 존재의 변화는 코로 감각된다. 슬프게도 눈의 욕망에 집착하여 자기를 담은 그릇을 바라보는 시대의 인간은, 그 안에서 일어나는 존재의 변화가 된장이 익어가는 향을 내는지 오물이 썩는 악취를 풍기는지 후각의 마비로 알지 못한다. 이창동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는 87년 이후 녹천역 주변에 건설된 대단지아파트에 몸을 욱여넣은 삼십 대 중반의 교사 준식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시대가 어느 곳에 담겨 있으며, 또한 어떠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는지 이야기한다.

1970년 본격적 대단지아파트의 시대를 연 한강맨션아파트 건설 이후, 강남과 신도시의 대단지 아파트 건설 붐으로 이어진 ‘아파트’는 중산층이라는 정체 안에 몸을 구겨 넣기 위해 한국인들이 마련한 욕망의 그릇이었다.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는 1987년 이후의 대한민국,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개발 중인 녹천에 23평의 아파트를 마련하고 몸을 구겨 넣은 삼십 대 중반의 교사 준식(조형래 분)이 후각을 회복하는 고통과 부끄러움을 그린 작품이다. 연극은 오랜만에 해후한 배다른 형제, 준식과 민우가 지하철을 타고 녹천역에 내려 아파트 단지까지 걷는 여정으로부터 시작한다. 일주일 전 아홉 번의 도전 끝에 운 좋게 강북의 녹천 아파트단지로 이주한 준식 가족의 일상에 민우가 스며든다. 민우는 주변 아파트 공사장에 화장실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똥냄새가 진동하는 녹천역을 천연덕스럽게 “시적(詩的)”이라 이야기하는 청년이다. 그 천연덕스러운 순수함은 준식이 애써 보지 않으려 했던 이면을 자연스레 비춘다.
무균질의 진실처럼 살았고, 학생운동에 투신하여 지금은 쫓기는 신세인 민우의 존재는 준식이 상실한 삶의 품위를 비추는 거울이기에 그의 존재는 형에게 거북하다. 민우는 곧 준식의 가정을 변화시킨다. 준식의 아내 미숙(김신록 분)은 생존을 위해 못내 버려두었던 삶의 순수함과 품위를 그리워한다. 그리하여 미숙은 이제까지 쌓아왔던 준식과 가족의 삶, 생존의 투쟁, 23평 중산층 아파트로의 진입을 일갈한다. “이게 어디 사는 거예요?” 거북함은 두려움으로 바뀐다. 흔들리는 정체 속에서, 준식은 자신의 성채를 지키기 위해 민우를 경찰에 고발한다. 민우와 함께 도망치다 녹천의 똥밭을 구르는 준식의 오열은 상실과 오욕이 가득한 지난 한 시대를 애도하는 울음이다.
무균질의 진실처럼 살았고, 학생운동에 투신하여 지금은 쫓기는 신세인 민우의 존재는 준식이 상실한 삶의 품위를 비추는 거울이기에 그의 존재는 형에게 거북하다. 민우는 곧 준식의 가정을 변화시킨다. 준식의 아내 미숙(김신록 분)은 생존을 위해 못내 버려두었던 삶의 순수함과 품위를 그리워한다. 그리하여 미숙은 이제까지 쌓아왔던 준식과 가족의 삶, 생존의 투쟁, 23평 중산층 아파트로의 진입을 일갈한다. “이게 어디 사는 거예요?” 거북함은 두려움으로 바뀐다. 흔들리는 정체 속에서, 준식은 자신의 성채를 지키기 위해 민우를 경찰에 고발한다. 민우와 함께 도망치다 녹천의 똥밭을 구르는 준식의 오열은 상실과 오욕이 가득한 지난 한 시대를 애도하는 울음이다.
인간 존재는 어딘가에 담겨 그 정체가 드러난다.
작품은 준식이 담겨있었던 공간과 감각을 묘사하는 것으로 그의 정체를 묘파한다. 두 가지 공간의 기억과 감각이 그를 지배한다. 준식은 어머니가 좌판을 벌여 오뎅과 김밥과 빵공장에서 빼돌린 빵을 팔았던 시장통에서 영원히 살고 있다. 훔친 빵의 껍질을 핥으며 느낀 단맛, 장사를 위해 몰래 앉은 자리에서 변의(便意)를 해소하여 시장골목에 풍겨놓은 지독한 어머니의 똥냄새가 이 공간 속에 얽혀 있다. 생존은 악취를 신경 쓰지 않을 정도의 고된 전투였다. 준식은 또한 열일곱에 시작한 고등학교 급사시절 몸을 구겨 넣은 학교 계단 밑 작은 골방에서 영원히 살고 있다. 학교 급사에서 야간학교를 거쳐 기술교사가 되기까지 그를 담았던 공간들은 낮고 좁은 곳으로, 준식은 낮은 천장 때문에 머리를 들 수 없어 늘 구부정한 자세로 살아야 했다. 전교조 교사를 유심히 살펴보라는 교장 앞에서, 보충수업 참여교사들에게 돌리는 돈 봉투 앞에서, ‘이것이 사는 것인가’ 반문하는 아내 미숙 앞에서, 준식의 몸은 다시 그 골방으로 돌아가 구부정해진다. 배우 조형래의 연기는 악취를 신경쓰지 않는 듯 포장된 준식의 무신경과 구부정함, 분노와 배신, 자기혐오의 낙차를 그의 몸을 통해 썩 잘 드러내어 인상적이었다.

공간묘사와 과거 회상의 비중이 높은 원작소설을 각색하는 과정에서 작품은 ‘소리들’(코러스)의 활용과 무대공간, 오브제의 배치로 사건을 연극 특유의 직관의 감각으로 전달하고자 노력하였다. 무대의 좌우로 마이크가 장치된 자리에 앉아 들을 수 있는 ‘소리들’은 원작소설에 나타난 녹천 대단지 아파트의 풍경과 심리의 묘사를 풀어내며 관객의 청각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한편으로 준식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 민우를 사랑한다고 믿는 아내와의 비참한 성관계, 전교조 교사를 둘러싼 비굴함과 오욕의 사건 등은 ‘소리들’의 움직임과 소리를 통해 무대 위에 재현된다. 이를 통해 원작소설에서 방대하게 묘사된 언어는 소리의 형태로 관객들에게 제공되지만, 나로서는 그 방식이 최근 소설을 각색한 연극에서 자주 접했던 풍경이었기에 그리 흥미로운 것은 아니었다. 원작소설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원작은 준식의 내면묘사와 그의 현재 모습이 있기까지를 설명하기 위한 많은 회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것이 작품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연극이라는 장르로 풀어내기에는 많은 애로 사항이 있었기 때문”(「각색의 글」, 『녹천에는 똥이 많다』 팜플렛, 6면)이라는 각색자의 말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 순간, 수많은 말을 꿰차고 깨닫게 되는 직관의 순간이 언어를 통해 쉽게 해소되었던 불편함은 못내 내뱉어야 하겠다. 체홉을 우리시대의 이야기로 각색하였던 그의 전작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기대했을 터이니 아쉽다.
한편으로 준식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 민우를 사랑한다고 믿는 아내와의 비참한 성관계, 전교조 교사를 둘러싼 비굴함과 오욕의 사건 등은 ‘소리들’의 움직임과 소리를 통해 무대 위에 재현된다. 이를 통해 원작소설에서 방대하게 묘사된 언어는 소리의 형태로 관객들에게 제공되지만, 나로서는 그 방식이 최근 소설을 각색한 연극에서 자주 접했던 풍경이었기에 그리 흥미로운 것은 아니었다. 원작소설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원작은 준식의 내면묘사와 그의 현재 모습이 있기까지를 설명하기 위한 많은 회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것이 작품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연극이라는 장르로 풀어내기에는 많은 애로 사항이 있었기 때문”(「각색의 글」, 『녹천에는 똥이 많다』 팜플렛, 6면)이라는 각색자의 말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 순간, 수많은 말을 꿰차고 깨닫게 되는 직관의 순간이 언어를 통해 쉽게 해소되었던 불편함은 못내 내뱉어야 하겠다. 체홉을 우리시대의 이야기로 각색하였던 그의 전작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기대했을 터이니 아쉽다.

반면 무대공간과 오브제, 배우가 어우러진 직관의 순간은 이 연극을 특별하게 만들기에 흥미로웠다. 무대는 죽은 화분들이 즐비한 베란다와 중산층의 상징처럼 보이는 소파와 낮은 식탁이 놓인 거실, 미숙이 애지중지하는 화장대가 놓인 안방이 일(一)자로 펼쳐진 23평 아파트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아파트의 왼쪽 현관 자리에는 변기와 오물 무더기처럼 보이는 검은 흙더미가 놓여, 아파트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이 오물을 밟고 들어와야 하는 형색이다. 연극에서 미숙은 이 아파트를 끊임없이 쓸고 닦는다. 마치 오물의 세계에서 자신의 성채를 지키기 위한 강박처럼. 연극의 마지막 장면에서 미숙은 걸레에 오물을 잔뜩 묻힌 채 쓱 하고, 거실을 가로질러 길고 검은 선을 밀어낸다. 이 한 번의 행위는 “어마어마한 쓰레기의 퇴적층 위, 온갖 오물과 증오와 버려진 꿈들을 발아래에 두고 저 까마득한 허공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23평짜리의 내 보금자리”(이창동, 「녹천에는 똥이 많다」, 『녹천에는 똥이 많다』, 창작과 비평사, 1992, 182면)라는 독백보다 더 직관적이어서 마음을 흔든다. 청결로 위장된 화장술에 덧칠된 오물의 선. 아, 똥냄새가 가득하다!

<녹천에는 똥이 많다>는 87년을 거쳐 간 86세대의 죄책감을 다루는 작품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먹고 살기 위해 순수한 후각을 교과서 안으로 가두어버린 시대는 비단 과거의 일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열 속에서 극장을 나온 나와 당신, 준식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먹고 살기 위해 똥밭을 구르는 삶 속에서 우리는 어디에 담겨 있는가.
[사진제공: 두산아트센터]
녹천에는 똥이 많다
- 일자
- 2019.5.14(화) ~ 6.8(토)
- 장소
- 두산아트센터 Space111
- 원작 이창동
- 각색 윤성호
- 연출 신유청
- 출연 송희정, 박희은, 김신록, 이지혜, 조형래, 우범진, 하준호, 김우진
- 무대디자인 박상봉
- 조명디자인 강지혜
- 의상디자인 홍문기
- 기획/제작 두산아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