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작업실 <방한림전> & 서로낭독페스티벌 <방한림전>
[작품리뷰] 지금, 우리의 목소리로 옛이야기를 읽는 법
예준미
163호
2019.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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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MBC <다모>, 2007년 MBC <커피프린스 1호점>, 2010년 KBS <성균관 스캔들>, 2013년 드라마 <기황후>, 2016년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이들 드라마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여자 주인공이 남장을 한다는 것이다. 남장여자...
2003년 MBC <다모>, 2007년 MBC <커피프린스 1호점>, 2010년 KBS <성균관 스캔들>, 2013년 드라마 <기황후>, 2016년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이들 드라마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여자 주인공이 남장을 한다는 것이다. 남장여자 드라마는 비단 21세기만의 콘텐츠가 아니다. 『이형경전』, 『정수정전』, 『홍계월전』 등 19세기 말경에 유행했던 고전 소설 속에도 여장남자들이 등장한다. 이들 드라마와 소설 속 여자 주인공들은 각자 나름의 이유로 ‘남성의 사회’에 들어가 여러 사건 끝에 능력을 인정받고, 사랑을 쟁취한다. 19세기에도, 21세기에도 대부분의 남장여자 드라마는 여성 주인공이 모든 능력을 인정받은 뒤, 각자의 남성 배필을 찾아 ‘여성의 삶’으로 회귀한다.
그러나 이런 공식에 맞지 않는, 끝내 남성 짝을 찾지 않는 남장여자 드라마가 있다. 바로 작자 미상, 창작 연대 미상(19세기 말 추정)의 『방한림전』이다. 방한림은 남장을 하고 살며 과거에 급제하고, 영혜빙을 만나 결혼한다. 영혜빙은 방한림이 여성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비밀을 지켜 이들은 평생을 지기(知己)로 함께 한다. 출세하고 아이를 입양하며 방한림은 염원했던 모든 것을 이룬다. 어느 날 찾아온 도사가 그에게 음양을 속였으니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 말하니 방한림은 왕에게 자신이 여성임을 밝히고 죽는다. 영혜빙 역시 뒤를 따라 죽는다. 최근 국악그룹 아마씨(AMA-C)는 음악으로, 정혜린은 낭독극으로 『방한림전』을 새롭게 읽어냈다. ‘옛 이야기’는 음악과 연극이라는 서로 다른 체계를 가진 창작자들의 무대에서 각각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을까.
그러나 이런 공식에 맞지 않는, 끝내 남성 짝을 찾지 않는 남장여자 드라마가 있다. 바로 작자 미상, 창작 연대 미상(19세기 말 추정)의 『방한림전』이다. 방한림은 남장을 하고 살며 과거에 급제하고, 영혜빙을 만나 결혼한다. 영혜빙은 방한림이 여성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비밀을 지켜 이들은 평생을 지기(知己)로 함께 한다. 출세하고 아이를 입양하며 방한림은 염원했던 모든 것을 이룬다. 어느 날 찾아온 도사가 그에게 음양을 속였으니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 말하니 방한림은 왕에게 자신이 여성임을 밝히고 죽는다. 영혜빙 역시 뒤를 따라 죽는다. 최근 국악그룹 아마씨(AMA-C)는 음악으로, 정혜린은 낭독극으로 『방한림전』을 새롭게 읽어냈다. ‘옛 이야기’는 음악과 연극이라는 서로 다른 체계를 가진 창작자들의 무대에서 각각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을까.
예술가의 작업실 - <방한림전>(신재훈+아마씨)
정동극장의 기획 의도에서 알 수 있듯, 예술가의 작업실은 ‘창작의 과정’을 관객에게 선보이는 무대이다. 약 30분가량의 쇼케이스와 관객과의 질의 시간이 이어졌다. 아마씨는 『방한림전』의 일부를 낭독하거나, 해당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한 뒤 이를 모티프로 창작된 곡을 선보였다. 원작 이야기에 노래 형태의, 일종의 코멘트를 덧붙이는 형식은 마치 아니리와 창이 오가는 판소리를 보는(혹은 듣는) 듯한 즐거움을 주었다.
(사진제공: 정동극장 ⓒ김정엽)
이들은 방관주와 영혜빙을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사회의 여성으로 보고, 이들 이야기를 여전히 가부장적인 사회의 체계 속에 갇힌 현대 여성들의 이야기로 확장한다. 원작 소설에서 영혜빙을 묘사하는 구절을 읽으면, 무대 뒤편 스크린에 현대 사회에서 여성을 묘사하는 언어들이 영사되고 이후 이들이 창작한 음악을 실연하는 식이다. ‘이런 영웅 같은 여자를 봤나’라는 원전의 구절이 음악 가사에서 직장, 육아, 결혼 등을 모두 부담하는 ‘영웅 같은’ 현대 여성의 삶을 묘사하는 노래로 확장되는 등 이들의 창작곡은 원작 『방한림전』에서 완전히 벗어나 그들이 보고 느낀 여성의 삶으로 자유롭게 표현된다.
원작은 노래 가사 속에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가사 주제의 아이디어로 존재한다. 그럼에도 방한림과 영혜빙이 남성과 여성이라는 완고한 젠더 이분법의 틀과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겪어야 했던 여성의 한계 혹은 부담이 현대 사회에서 다른 형태와 체계로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 끊임없이 상기된다. 『방한림전』을 언급하지 않고 이들의 노래만을 계속 불렀더라도 이들의 공연은 하나의 미니 콘서트로 완성되었겠지만 이들은 원작을 적극적으로 관객들에게 상기시키며 자신들의 창작곡에 새로운 레이어를 덧붙인다.
원작은 노래 가사 속에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가사 주제의 아이디어로 존재한다. 그럼에도 방한림과 영혜빙이 남성과 여성이라는 완고한 젠더 이분법의 틀과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겪어야 했던 여성의 한계 혹은 부담이 현대 사회에서 다른 형태와 체계로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 끊임없이 상기된다. 『방한림전』을 언급하지 않고 이들의 노래만을 계속 불렀더라도 이들의 공연은 하나의 미니 콘서트로 완성되었겠지만 이들은 원작을 적극적으로 관객들에게 상기시키며 자신들의 창작곡에 새로운 레이어를 덧붙인다.
(사진제공: 정동극장 ⓒ김정엽)
여성의 목소리로 부르는 현대 여성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또 이들이 국악을 자신들의 표현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노래는 가치가 있다. 나아가 아마씨는 쇼케이스의 마지막 곡으로 ‘부를까요’라는 곡을 선보이기 전, 방한림과 영혜빙의 결혼, 그리고 이를 통해 만들어진 동성 공동체에 집중하며 인공 자궁과 여성만으로 구성된 도시를 잠시 꿈꾼다. ‘전통’의 부류에 속하는 소설과 음악을 바탕으로 현재의 이야기를 넘어 미래까지 꿈꾸는 이들의 무대를 보며 과연 ‘『방한림전』의 이야기를 따라 이들의 플레이리스트가 완성되었을 때 그 음악들과 무대는 어떤 모습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이들의 작업은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유되고 있다.
서로낭독페스티벌 - <방한림전>(정혜린 연출)
정혜린 연출의 <방한림전>은 각색을 통해 원전의 일부를 걷어내고 낭독극으로 무대에 올랐다. 테이블에 둘러앉은 배우들은 흔히 사용하는 종이에 인쇄된 대본이 아닌 노트북으로 대본을 보고 있었다. 이들이 옛 어투로 여성은 집 밖을 나가지 못하는 당대 사회를 이야기할 때에도, 방한림과 영혜빙의 혼사를 논할 때에도 노트북은 배우들의 얼굴을 비추며 지금 현재의 시간을 명확하게 상기시키고 있었다.
(사진제공: 서촌공간 서로 ⓒ나승열)
『방한림전』의 특이점 중 하나는 극 중 갈등이 초반 방한림과 유모의 사이의 남장-여장의 문제, 혼사를 앞둔 방한림의 내적 갈등 정도에 그칠 뿐, 이후에는 방한림의 군담이 이어져 그의 성취를 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원작의 서사를 따라간 낭독극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서사의 흐름은 어느 순간 독자 혹은 관객의 시선을 갈등과 사건보다도 방한림이라는 인물에게 집중시킨다. 여기에 별도의 분장 없이 무대에 오른 배우들이 더해져 또 다른 재미가 생긴다. 작품의 중요한 소재의 하나인 ‘남장’을 시각적으로 보여주지 않은 채 관객들로 하여금 방한림의 존재를 믿게 만들어 남녀의 성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낸 것이다. 이전까지의 많은 연구에서 방한림은 모순된 현실을 뛰어넘는 새로운 관점이나, 가부장제를 해체하여 비판하려는 시도의 아이콘처럼 읽혀왔다. 그러나 이 무대에서 방한림은 여성과 남성이라는 성적 구분을 완전히 벗어나 욕망하고 성취하는, 살아있는 인물이 된다. 입신양명하고 부모의 후사를 밝히는 데에는, 다시 말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데에는 그가 여성인 것이 중요하지 않다. 무대 위에서 특별한 변화를 주지 않은 채, 그저 있는 모습 그대로 방한림으로 분하는 배우의 모습은 방한림을 온전한 인간으로 느끼게끔 만들고, 젠더 이분법을 무색하게 만든다.
(사진제공: 서촌공간 서로 ⓒ나승열)
원전의 서사를 그대로 따라가며 새로운 내용을 더하지 않은 만큼 이 작품은 대안을 제시한다거나, 현대적 관점에서의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다만 사람 자체로 살아가는 방한림의 모습을 보이며 성 역할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또 동시에 얼마나 삶을 옥죄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원작 소설이 가진 상상력에 무대를 통한 물질화, 단순한 연출을 통한 평면화의 과정이 더해지며 젠더 이분법과 성 역할에 대한 묵직한 질문이 피어난다.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남겨진 예술작품들의 현대적 수용은 지금껏 그래왔듯 앞으로도 많은 예술가의 과제로 남겨질 것이다. 그러나 위의 두 사례를 통해 보았듯 정해진 답이 없다. 그저 지금 현재의 예술가들이 읽고 느끼는 대로, 자신들의 체계로 풀어내는 것이 각각의 답일 것이다. 원전을 참고로 전혀 새로운 형식과 내용을 만들어내든, 이를 있는 그대로 내보이며 현재와의 차이를 의식하게끔 하든, 각자의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풀어낼 수 있다면 그 각각의 시도는 충분한 가치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남겨진 예술작품들의 현대적 수용은 지금껏 그래왔듯 앞으로도 많은 예술가의 과제로 남겨질 것이다. 그러나 위의 두 사례를 통해 보았듯 정해진 답이 없다. 그저 지금 현재의 예술가들이 읽고 느끼는 대로, 자신들의 체계로 풀어내는 것이 각각의 답일 것이다. 원전을 참고로 전혀 새로운 형식과 내용을 만들어내든, 이를 있는 그대로 내보이며 현재와의 차이를 의식하게끔 하든, 각자의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풀어낼 수 있다면 그 각각의 시도는 충분한 가치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예술가의 작업실_방한림전
- 일자
- 2019.05.24(금) ~ 05.25(토)
- 장소
- 정동극장 내 정동마루
- 연출
- 신재훈
- 출연
- 아마씨(AMA-C) 이보나, 심소라, 백소망
- 무대
- 남경식
- 조명
- 노명준
- 음악
- 이원만
- 주최/제작
- (재)정동극장
서로낭독페스티벌_방한림전
- 일자
- 2019.06.20(목) ~ 06.23(일)
- 장소
- 서촌공간 서로
- 연출
- 정혜린
- 각색
- 김지현
- 도움
- 강동호
- 출연
- 김정운, 백지혜, 유유진, 이우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