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답변] 세월호 연극 연습일지
백소정_배우
163호
2019.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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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연출이 혜화동1번지에서 작업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첫 작품이 세월호를 주제로 한 것이라는 것도. 나는 덜컥 겁이 났다. 내가 세월호를 말할 수 있을까.
2018년 12월.
연출이 혜화동1번지에서 작업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첫 작품이 세월호를 주제로 한 것이라는 것도. 나는 덜컥 겁이 났다. 내가 세월호를 말할 수 있을까.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기획초청공연
[2019 세월호-제자리] 포스터
[2019 세월호-제자리] 포스터
2019년 7월.
세월호 기획공연을 끝낸 지 2달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 글을 쓰게 되었을 때에서야 다시 세월호를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재현의 가능성’에 대해 논의하던 때의 열기와 긴장감이 세월호에 대한 것이었는지 이제는 정리하고, 생각해야 할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하며, 그리고 적절한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으려고 노력하며 가능한 솔직하게 이 글에 임하려고 한다.
2019년 2월.
황정은 작가의 『디디의 우산』이라는 작품으로 결정됐다.1) 초반 단계에 ‘재현의 윤리’에 대한 고민 끝에 우리는 참사 생존 작가인 프리모 레비와 홀로코스트를 주제로 정했다. 우리가 지금 세월호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 재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한걸음 물러난 것이었다. 그러나 이내 ‘우리의 위치’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남은 자들로서 그리고 아직도 풀리지 않은 세월호의 진실에 대해서, 그 찝찝함이 당연해진 시대에 살고 있는 자들로서의 접점에서 우리는 『디디의 우산』과 만났다.
2019년 4월.
공연이 끝났다. 1월부터 이어진 길고 지난한 과정으로 남은 대본과 연습노트를 집 구석에 보관할 수 있다는 것이 꽤나 후련했다. 무엇보다 짓눌렸던 무거운 마음을 털어버리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했다. 그렇다. 나는 세월호에 대해 생각을 멈출 수 있는 사람이었다.
2019년 2월.
제작을 위한 회의를 하며 생각했다. ‘세월호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어?’ 나는 아주 오만한 태도로 제작에 임하고 있었고, 그 생각은 곧 무너졌다. 내가 머릿속으로 경멸하듯 한 사람은 바로 나이다. ‘내가 세월호를 말할 수 있을까?’로 시작한 고민은 ‘내가 왜 세월호를 말하기를 두려워할까?’로 이어졌다.
2019년 4월.
무대 위에 오르기 전, 나 혼자 분장실에 10분 정도 남아있는 시간이 있었다. 평소 같으면 공연에 집중하려 호흡도 하고, 먼저 극을 이끌어가는 동료의 대사를 따라가려 했을 테지만 이번 공연은 그러질 못했다. 매번 주문을 외듯 첫 대사를 외웠다. 호흡을 가다듬고 처음 조명 안으로 발을 뗄 때까지도 나는 첫 대사를 곱씹었다.
그저 달렸다. 욕심이나 걱정 없이. 바로 옆 트랙에서 출발한 경쟁자나 골라인이나 기록에 대한 관심도 없이. 불필요한 움직임이나 괜한 버릇도 없이 꼭 필요한 동작만으로
- <디디의 우산> 중에서
내가 연기한 인물 서수경은 그런 사람이었다. 실제로는 너무 떨리는 마음에 걸음을 헛디디거나 호흡이 가빠져 전달을 잘 못하기도 했지만, 나는 서수경의 그 마음으로 공연에 임하고 싶었다. 내 인물을 대하는 나의 진심이 관객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나의 어떤 판단이나 태도보다 한 인물의 서사에서 관객들이 세월호를 향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기를 바랐다.
2019년 3월.
연습이 한창. 연습노트를 가득 채운 ‘힘을 빼라’는 연출가의 요구. 나는 그 요구가 내가 연기하는 인물의 진심을 다 전달하지 못하게 하는 것 같아 서운했다. 무대 위 배우의(특히 재현 연기를 하는) 감정이 과해질 때, 관객은 사실을 전달받거나 감정을 느끼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연출가가 서술자로서 대사할 때, 내용 전달과 설명에 더 집중하라는 것이 무슨 말인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연습이 진행될수록 넓게 보지 못하고 내가 연기하는 인물로 시야가 좁아지면서 나는 연출가와 내내 줄다리기를 했던 것 같다.
2019년 4월.
내가 서수경으로 표현하는 것들이 거짓되어 보이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재현 연기에 대한 두려움을 사라지게 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무대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당장이라도 멈출 수 있다면 멈추고 싶은 마음이었다.
<디디의 우산>(2019, 임성현x쿵짝프로젝트)
2019년 7월.
세월호 가족 극단의 공연 <장기자랑>을 보고 돌아와 원고를 정리한다. 세월호 공연에서 웃을 수 있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오늘의 공연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아직도 세월호 사건에 버둥거리던 나와 관객들에게 무대 위의 어머니들이 마음껏 울고 웃으라고 손을 내밀어줬기 때문이다. 그들만이 무대에서 전달할 수 있는 호흡을 연극계는 단단히 빚을 지고 있다.
지난 4월, 무대 위에 선 나는 관객들의 시선이 참 싸늘하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그 시선들이 참 냉정하고, 야속하다고 생각했다.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평을 내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 모든 생각이 나의 과대망상이었고, 두려움이 변질된 방패막이였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세월호에 대해 생각을 멈출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 지금에서야 나는 계속해서 세월호를 말해야하는 사람이라는 것, 그렇지 않으면 또다시 나에게서 멀어진 세월호를 발견하고 날 선 방패막을 세우리라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지난 4월, 무대 위에 선 나는 관객들의 시선이 참 싸늘하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그 시선들이 참 냉정하고, 야속하다고 생각했다.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평을 내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 모든 생각이 나의 과대망상이었고, 두려움이 변질된 방패막이였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세월호에 대해 생각을 멈출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 지금에서야 나는 계속해서 세월호를 말해야하는 사람이라는 것, 그렇지 않으면 또다시 나에게서 멀어진 세월호를 발견하고 날 선 방패막을 세우리라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 연극in 리뷰 ‘[세대교차]의제화의 딜레마’ 2019.05.15. http://webzine.e-stc.or.kr/01_guide/actreview_view.asp?SearchKey=&SearchValue=&rd=&flag=READ&Idx=1325
[사진제공: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7기동인 ⓒ이영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