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영 X 0set프로젝트 <사랑 및 우정에서의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
[작품리뷰] 법 없이 사랑하기
유혜영
164호
2019.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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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우리 모두가 동등한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해줄 수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적용하도록 하는 적절한 태도나 행위 즉, 퍼포먼스를 요청할 수 있다. 공연은 차별 금지에 관한 법률로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그 논제와 퍼포먼스에 있어서는 법을 넘는다. 법이 구제할 수 없는 영역을 끌어들이고, 법이 규정할 수 없는 퍼포먼스를 통해 사실상 인간...
법은 우리 모두가 동등한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해줄 수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적용하도록 하는 적절한 태도나 행위 즉, 퍼포먼스를 요청할 수 있다. 공연은 차별 금지에 관한 법률로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그 논제와 퍼포먼스에 있어서는 법을 넘는다. 법이 구제할 수 없는 영역을 끌어들이고, 법이 규정할 수 없는 퍼포먼스를 통해 사실상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합의’를 이끌어낸다. 사실 우리가 법 없이도 잘 될 수 있다는 것.
1. 호소
관객들이 입장할 때부터 김원영은 무대 안쪽 옴폭하게 들어간 공간에 앉아서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다. 고뇌인지 근심인지, 심각한 표정으로 몇 차례나 한숨을 쉬며 그가 적고 있는 것은 사랑 및 우정에서의 차별을 금지하는 법률의 세부 조항이다. 특히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에게 보여야 하는 “예의바른 무관심”에 관해 적는 중이다. 스크린으로 보이는 내용에 따르면, 다리를 휠체어 안쪽으로 넣어 시야에서 사라지게 할 때, 체중 분산을 위해 몸 전체를 들어 올릴 때, 휠체어에 비스듬히 누워 하늘을 보고 한쪽 다리를 다른 쪽 다리 위에 올리고 있을 때, 불가피하게 바닥에 내려왔을 때 등을 포함한 일련의 행동들에 대해 비장애인들은 무관심해야 한다.
노트북을 내려놓은 그는 방금 글로 적어 넣은 행동들을 순서대로 해 보인다. 실제 휠체어를 사용하는 지체장애인이기도 한 그의 동작들은 매우 자연스럽고 유연하다. 휠체어를 타고 무대에 흩어져 있던 책과 옷을 주워 모은 그는 바닥에 내려와 바지를 입는다. 플라스틱 재질의 판을 돌돌 말아 양 허벅지에 찍찍이로 고정하고 바지를 끌어 올려 입은 후, 두꺼운 책 한 권을 의자 바닥에 깔아 높이를 맞춘 전동휠체어로 옮겨 탄다. 신발을 신고 바지 안쪽으로 넣어 고정한다. 바지를 툭툭 털어 모양새를 다잡는 그는 이 모든 동작에 능숙하다. 그런 듯 보인다. 그러다 신발 한 짝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는 노트북으로 다가가 항목을 추가한다. ‘1. 신발이 벗겨졌을 때.’ 그의 얼굴에 낭패감이 스친다. 이렇게 어디까지 규정할 수 있을까. 객석의 나는 배우인 그를 주목하지만, 실제로는 얼마나 자연스럽게 무관심할 수 있을까. 그는 가장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법을 도구로 감정에 호소하고 있었다. 공연은 처음부터 법의 실패를 말하고자 한다. 그가 오직 두껍다는 이유로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깔고 앉은 것은 아닐 것이다.
노트북을 내려놓은 그는 방금 글로 적어 넣은 행동들을 순서대로 해 보인다. 실제 휠체어를 사용하는 지체장애인이기도 한 그의 동작들은 매우 자연스럽고 유연하다. 휠체어를 타고 무대에 흩어져 있던 책과 옷을 주워 모은 그는 바닥에 내려와 바지를 입는다. 플라스틱 재질의 판을 돌돌 말아 양 허벅지에 찍찍이로 고정하고 바지를 끌어 올려 입은 후, 두꺼운 책 한 권을 의자 바닥에 깔아 높이를 맞춘 전동휠체어로 옮겨 탄다. 신발을 신고 바지 안쪽으로 넣어 고정한다. 바지를 툭툭 털어 모양새를 다잡는 그는 이 모든 동작에 능숙하다. 그런 듯 보인다. 그러다 신발 한 짝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는 노트북으로 다가가 항목을 추가한다. ‘1. 신발이 벗겨졌을 때.’ 그의 얼굴에 낭패감이 스친다. 이렇게 어디까지 규정할 수 있을까. 객석의 나는 배우인 그를 주목하지만, 실제로는 얼마나 자연스럽게 무관심할 수 있을까. 그는 가장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법을 도구로 감정에 호소하고 있었다. 공연은 처음부터 법의 실패를 말하고자 한다. 그가 오직 두껍다는 이유로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깔고 앉은 것은 아닐 것이다.

2. 냉소
짧은 암전 후 다시 등장한 김원영은 차별금지법에 대한 강의를 시작한다. 어떤 경우, 어디까지 법안이 규제할 수 있는지 간단히 설명한 그는 타고난 조건을 이유로 거절당하는 것이 반복되면, 나 스스로도 나를 차별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므로 차별금지법은 꼭 필요하다고 엄격히 주장한다. 그러나 곧 객석으로 이동하여 무대를 마주한 토론자가 된 그는 질문을 던진다.
“사실 우리 모두가 차별적 존재이지 않나요?”
우리는 주관적 선호에 따라 매우 차별적으로 사람을 만나 사귀고, 좋아하고, 친구가 된다. 사랑은 말할 것도 없지 않냐는 그의 사뭇 냉소적인 외침에 누구도 반박할 수 없다. 우리는 공연장이나 영화관을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게 이용할 수 있도록 법에 따라 각종 설비를 할 수 있다. 그러나 더 아름답다고 느끼거나 더 친근하다고 생각하는 감정의 영역에 있어 우리는 언제나 차별적이며, 모든 성별과 종교와 장애와 성적지향 등을 공정하게 좋아하려는 생각은 웃기는 일로 치부된다. 내가 기독교 친구 한 명을 사귀었으니, 조로아스터교 친구 한 명도 반드시 사귀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김원영이 사례를 들자,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진다. 그만큼 말도 안 되게, 우리는 “사랑 및 우정에서” 차별적이다. “사랑 및 우정에서의” 차별을 논할 때, 우리는 그제야 차별하는 존재로서 동등해지고, 사실상 우리의 정체를 확인한다. 텅 빈 무대를 둘러싸고 3면으로 배치된 객석은 관객 모두를 이 논쟁의 장으로 끌어들인다. 평등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나이 든 걸 왜 숨기나, 작은 키를 왜 숨기려고 애쓰나, 장애가 있는 몸을 왜 감추려고 하나. 그는 계속해서 차별하는 존재로서 우리의 행동들을, 우리의 속마음을 논증한다. 공연은 법과 이성과 윤리적 의무 이면에 존재하는 선호의 차별성을 들추고, 이처럼 차별적인 우리가 진정으로 서로에게 우정 또는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질문은 적나라하다. 그러나 빠른 속도로 그의 몸을 훑고 지나가는 길고 긴 법 조항들을 우리가 읽을 수 없는 것처럼, 법은 이 문제에 있어 무용하다.
“사실 우리 모두가 차별적 존재이지 않나요?”
우리는 주관적 선호에 따라 매우 차별적으로 사람을 만나 사귀고, 좋아하고, 친구가 된다. 사랑은 말할 것도 없지 않냐는 그의 사뭇 냉소적인 외침에 누구도 반박할 수 없다. 우리는 공연장이나 영화관을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게 이용할 수 있도록 법에 따라 각종 설비를 할 수 있다. 그러나 더 아름답다고 느끼거나 더 친근하다고 생각하는 감정의 영역에 있어 우리는 언제나 차별적이며, 모든 성별과 종교와 장애와 성적지향 등을 공정하게 좋아하려는 생각은 웃기는 일로 치부된다. 내가 기독교 친구 한 명을 사귀었으니, 조로아스터교 친구 한 명도 반드시 사귀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김원영이 사례를 들자,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진다. 그만큼 말도 안 되게, 우리는 “사랑 및 우정에서” 차별적이다. “사랑 및 우정에서의” 차별을 논할 때, 우리는 그제야 차별하는 존재로서 동등해지고, 사실상 우리의 정체를 확인한다. 텅 빈 무대를 둘러싸고 3면으로 배치된 객석은 관객 모두를 이 논쟁의 장으로 끌어들인다. 평등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나이 든 걸 왜 숨기나, 작은 키를 왜 숨기려고 애쓰나, 장애가 있는 몸을 왜 감추려고 하나. 그는 계속해서 차별하는 존재로서 우리의 행동들을, 우리의 속마음을 논증한다. 공연은 법과 이성과 윤리적 의무 이면에 존재하는 선호의 차별성을 들추고, 이처럼 차별적인 우리가 진정으로 서로에게 우정 또는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질문은 적나라하다. 그러나 빠른 속도로 그의 몸을 훑고 지나가는 길고 긴 법 조항들을 우리가 읽을 수 없는 것처럼, 법은 이 문제에 있어 무용하다.
3. 그렇지만, 해소.

공연이 의도하는 것은 차별적 본성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바로 그 차별적 본성 때문에, 차이가 있는 우리 사이에 우정이 나누어질 수 있다는 긍정적인 전망이다. 이것은 우리가 사랑 및 우정에 있어서 모두에게 동등해야 한다는 불가능에 대한 추구가 아니라, 사랑 및 우정을 나눌 기회를 동등하게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 관한 것이다. 적어도 공연에서 그 기회를 만든 것은 ‘예의바른 주목’이 아니었을까. 김원영의 아름다움은 그를 주목했을 때 발견되었고, 그와 접촉할 수 있는, 장난치고 웃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김원영은 장애인의 이야기를 했다. 그의 몸은 어떠한 상징이나 은유가 아니라 실재이며, 타고난 조건 때문에 경험해야 했던 사랑과 우정에서의 배제가 그의 생각을 이곳까지 이끌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물론, 우리의 사고와 감정을 통제하는 편견은 때로 너무나 강력해서 쉽게 허물 수 없다. 그러나 관계에 있어 편견은 때로는 너무나 쉽게 허물어지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공연은 장애인과 더불어 소수라 불리는 많은 사람, 그리고 사랑과 우정을 나누는 것에 있어 경직된 모든 관계에 대해 사실 우리가 법 없이도 잘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연다.
[사진제공: 제19회 서울변방연극제ⓒ한민주]
사랑 및 우정에서의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
- 일자
- 2019.07.11(목) ~ 07.13(토)
- 장소
- 삼일로창고극장
- 작/출연
- 김원영
- 연출
- 신재
- 기획
- 정소은
- 무대감독
- 임성현
- 기술감독
- 김석기
- 조명디자인
- 고귀경
- 사운드디자인
- 정의석
- 그래픽디자인
- 김은정
- 안무 어드바이저
- 정아영
- 문자통역
- AUD사회적협동조합
- 수어통역
- 장진석
독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