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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당연히, 극장 <21세기 연극... 말이다>

[세대교차] 연극이 연극을 묻다

이경미(연극평론가)
165호 2019.08.08
배우들이 하나, 둘, 등장한다. 어떤 연극에 대해 말한다. 아니 정확히 말해 시작 시간이 한 참 지났는데도 시작하지 않는 연극. 그럼에도 기다리는 관객, 기대, 불안, 실망, 그리고 기대. 그리고 연극 시작. 몰입, 불만, 잠시 딴생각... 그리고 이 연극 시작. 홉킨스 선생님. 죽은, 아니 ...
배우들이 하나, 둘, 등장한다. 어떤 연극에 대해 말한다. 아니 정확히 말해 시작 시간이 한 참 지났는데도 시작하지 않는 연극. 그럼에도 기다리는 관객, 기대, 불안, 실망, 그리고 기대. 그리고 연극 시작. 몰입, 불만, 잠시 딴생각... 그리고 이 연극 시작. 홉킨스 선생님. 죽은, 아니 사라진 캐롤.
배우들은 객석을 향해 위치를 잡는가 했는데, 45도 각도로 비스듬히 몸을 돌려 오른쪽 무대 구석 어딘가를 바라본다. 무대 한가운데 서 있는가 했더니 객석 맨 앞 열에 앉아 있기도 한다. 몸들은 경직되어 있고 각각의 시선은 마주치는 일 없이 내내 어긋나 다른 곳을 바라본다. 중얼대듯, 소리치듯 뭔가를 말하고 있긴 한데, 문장 자체가 계속 분절되고 중복되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역할로서 말하는 건지, 배우 자신으로 말하는 건지도 불분명하다. 어떤 말을 하건 늘상 양손을 내리고 허리를 곧추세운 상태로 뻣뻣하게 서있는데다가, 감정의 굴곡이란 것도 전혀 묻어나지 않아 더욱 그렇다. 그냥 적어도 연극에 대해 중요한 어떤 말을 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겠다. 말하고 싶은 간절함도 알겠다. 그 이상은 모르겠다.
피터 브룩(Peter Brook)이 그랬다. 어떤 공간을 누군가가 가로질러 걸어가고 그런 그를 다른 누군가가 지켜보는 것, 그것만으로 연극은 충분히 성립한다고. 그러나 아무리 연극의 공간을 비워내고, 연극이라 불리는 틀을 깨고 부수고자 했어도 그는 마지막 한 가지는 남겨 놓았었다. 소통, 행위를 하는 배우와 그걸 바라보는 관객 사이의 소통이라는 거. 미래를 향한 말이라는 거. 그런데 이들은 자신들을 바라보는 관객들을 향해서는 물론이고 배우인 자신에 대한 어떤 것도 포기한 것 같다. 그 이전에 구자혜와 여.당.극이 안겨주었던 그 ‘불편한 배신감’은 이번에 비하면 그나마 양반이었지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래도 연극이기에, 그리고 나는 내 물리적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이곳까지 연극을 보러 온 관객이기에 완강하게 부서져 사방으로 흩어지는 저 무대를 내내 놓지 않고 쳐다보고 또 쳐다본다. 혹시 응큼하게 숨겨놓았을지도 모를 상징과 은유 같은 것이 있을까 싶어, 마치 수수께끼 아니면 별자리를 찾는 심정으로 저들의 발화가 가닿은 곳에 있을 것이라 생각되는 어떤 것을 가늠해보려 애를 쓴다. 그런데 없다. 결국, 무대 구석구석을 훑으며 보는 것을 포기하고 듣는 것을 단념한다. 이런 분위기가 나 말고 내 옆, 앞, 뒤 도처에서 느껴진다. 어쨌든 버틴다. 그냥 저 혼란스러움에 내 몸을 맡기기로 한다.
어느 시대, 어느 곳에나 연극이란 것이 있었다. 그 연극들은 그때그때 세상의 파동에 따라 내내 함께 출렁거렸다. 그 모든 파동을 추동한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의 상징계 밖에서, 상징계에 대한 절대적 부정으로 존재하는 ‘실재(the Real)’를 향한 강한 열망이었다. 전쟁과 혁명, 선언으로 시작된 그 혼란과 광기의 20세기에도 이 열망은 여전히 존재했다. 달랐던 것은 실재에 대한 근대적 열망으로 인해 오히려 가려진 진정한 실재를 복원하는 것이었을 뿐. ‘(진정하지 않은 것의) 파괴를 통한 (기원의) 복원.’ 현대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이를 그 전까지의 열망과 구분해 ‘실재에 대한 열정’이었다고 말한다. 바로 그 열정 안에서 20세기 내내 파괴와 정화, 해체와 창조와 같이 전혀 상반되는 두 힘이 반-변증법적으로 팽팽하게 대립했다. 연극 또한 다르지 않았다. 연극은 실재를 발견하는 데 가장 걸림돌이 되는 현실의 모든 가상을 파괴해 그것에 가려진 실재를 어떻게 해서든 드러내고자 하는 치열한 행동이자 싸움이었다. 급기야 연극이 다른 예술과 경계를 허물고, 기술과 경계를 허물고, 현실과 경계를 허물고, 그것도 모자라 스스로를 과감하게 해체해 기표들로 산포하는 공간으로 만든 것도 그 이유다.
그런데 21세기... 말이다. 그것도 새로운 세기의 문을 열고 들어선 지 19년이 지난 지금 말이다. 안타깝지만 열망이건, 열정이건 그 대상이었던 실재는 증발되어 버렸다. 남은 것이라고는 지금까지 실재라는 이름을 빌어 구성되었던 그 모든 서사의 더는 감출 수 없이 끔찍해진 민낯뿐이다. 혁명의 열정은 사그라 들었고, 개인의 삶은 무감각해졌으며 국가는 무력해지고 있다. 뭐... 한국 사회라고 다를까. 정치, 경제, 그리고 일상까지 극장 밖의 지금 세상 도처에서 발생하는 모든 폭력과 갈등, 악(惡), 부정과 부패, 끔찍한 참사는 지금까지 한국연극이 자신의 모든 상상력을 동원해 가정했던 어떤 갈등, 어떤 클라이맥스도 아주 간단히, 그것도 오래전에 넘어서 버렸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그 모든 것에 대해 늘 같은 방식으로 놀라고, 분노하는데 익숙해져 버렸다. 반복이 가져온 무감각이랄까. 정치권부터 학계, 언론 등등까지 이 사회가 나가야 할 방향점이 무엇인지에 대해 어마어마한 대안들을 쏟아내지만, 그조차 공허한 수사들로 허공을 맴돌다 사라진다. 세상 돌아가는 형국을 보면, 인간은 더 이상 자기 서사의 주체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인간이 예견했던 미래는 점점 더 뒤로 미뤄지거나 어쩌면 아예 도래하지 않을 것 같은 불안이 만만치 않다. 그러는 사이 또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 우리의 일상을 파고든다.
그러고 보니 21세기... 연극 말이다. 그것도 한국연극 말이다. 아니 그것도 한국 사회가 자기 안에 숨어있던 온갖 파렴치한 부패와 뻔뻔스런 악(惡)의 실체와 정면으로 맞닥뜨리기 시작했던, 하지만 그 이후로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이 여전한 2014년 이후 한국연극 말이다. 괜찮은가 말이다. 세상에서 사라진 것들, 억눌린 목소리와 연대하는 무대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뜨겁지만, 그 열기가 극장 벽을 넘어 과연 세상에 얼마만큼 가닿고 있느냔 말이다. 어느 때부터인가 그 모든 것이 그냥 무대 위의 슬픔이고 분노이고, 무대 위에서의 정치적, 윤리적인 올바름으로 남겨지고 있지는 않은가 말이다. 물론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것이라면 그 역시 그냥 무대 위의 죽음이고. 그것으로 우리는 어느새 만족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말이다. 무대를 가득 채운 명징하고 보편적이고 의도된 수사들이 뿜어내는 감정적 카타르시스를 통해 결집된 연대는 연극이 끝나고 커튼콜을 하는 딱 그 순간까지만 지속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말이다. 상황이 이런데 연극이니까, 연극으로 다른 뭔가를 제시하고 설명해야 한다는 그 습관적인 자기 의무감이 앞으로도 여전히 통할 수 있을까 말이다.
그래서 알겠다... 저들의 저 웅얼거림, 머뭇거림, 비틀기는 우선 자기반성이라는 것을. 그리고 21세기가 저들에게 던진 지금, 여기 연극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지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다시 ‘여.당.극’의 선언이라는 것도. 답안? 없다. 모른다. 하지만 이제 엉망인 세상 속에서 마치 연극이라는 이름으로 저 혼자만 답을 가진 듯 행동할 수는 없겠다는 고백이다. 2014년 이후, 사라진 사람들, 파묻힌 목소리를 수도 없이 무대에 불러 그 통증을 더듬어 감각하고자 했지만, 물론 앞으로도 그럴 것이지만, 이 모두가 자기 반복적인 관습적 프레임에 갇히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일종의 자기 점검? 물론 앞으로도 치열하게 넘어지고 망가질 생각이다. 모든 관객을 완벽하게 만족시킬 생각은 하지 않겠다. 그저 뭔가 이 세상에 가능한 한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움직임을, 소리를, 호흡을 찾아갈 생각이다. 이런 우리를 누군가는 분명 오만하다고 비난하겠지만. 모두 떠나도 혼자 남아 내 연극에 대해 마지막 기대와 희망을 놓지 않는 ‘다니엘’만 보고 갈 것이다. 그러면 언젠가는 무대에서 가장 구현하기 힘들다는 그 ‘사막’도 가능하지 않을까.

21세기 연극, 특히 한국연극...말이다. 너를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견딜 수 없는 우리의 ‘다음’을 다시 기대한다.

[사진제공: 여기는 당연히, 극장 ⓒ이강물]

21세기...연극 말이다
일자
2019.07.23(화) ~ 07.28(일)
장소
미아리고개예술극장
작/연출
구자혜
출연
최순진, 이리, 박수진, 박경구, 김효진 조연출 류혜영 조명 노명준 조명오퍼
윤지영
사운드
목소
의상/그래픽디자인
우영주
사진
이강물
영상
박동명
기획/홍보
협동조합 고개엔마을. 희왕, 이채원(홀연)
여기는 당연히, 극장
관련정보
http://ticket.interpark.com/Ticket/Goods/GoodsInfo.asp?GroupCode=19010142
독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