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영 X 0set 프로젝트 <사랑 및 우정에서의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
[작품리뷰] 연극보기의 3요소: 질문하기, 구체화하기, 행동하기
이지혜
165호
2019.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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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영은 많은 수식어를 가진 사람이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2018)의 저자이자, 칼럼니스트, 지체장애 1급의 장애인, 변호사, 연극배우 등 장애인으로서 자신이 처한 현실과 문제들에 사회적?문화적 실천들로 질문해왔기 때문이다. 0set프로젝트 역시 연극을 만들면서,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는 창작집단이다. 20...
김원영은 많은 수식어를 가진 사람이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2018)의 저자이자, 칼럼니스트, 지체장애 1급의 장애인, 변호사, 연극배우 등 장애인으로서 자신이 처한 현실과 문제들에 사회적·문화적 실천들로 질문해왔기 때문이다. 0set프로젝트 역시 연극을 만들면서,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는 창작집단이다. 2016년 이후, ‘장애’에 대한 현실을 조사하고 그 과정을 공연과 워크숍으로 공유하면서 연극작업을 통해 사회적·제도적 실천에까지 주목해오고 있다. 2019년 19회 서울변방연극제 마지막 공연이었던 <사랑 및 우정에서의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은 김원영과 0set프로젝트가 함께 만든 공연이다.
공연은 ‘강연’을 컨셉으로 강연의 준비과정인 프롤로그와 차별금지법을 다루는 강연 장면, 그리고 법(法) 언어로서는 결코 다 전달할 수 없는 ‘사랑차별금지법’에 대한 강연자 자신의 퍼포먼스 장면으로 구성된다. 이번 공연에서 0set프로젝트는 리서치-공연-실천의 단계로 이루어졌던 기존의 방식을 공연 형식의 내부로 가져왔다. 약 45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관객은 질문하고, 고민하고, 행동하는 과정으로서 연극이 말하는 차별의 문제를 체험할 수 있었다.
공연은 ‘강연’을 컨셉으로 강연의 준비과정인 프롤로그와 차별금지법을 다루는 강연 장면, 그리고 법(法) 언어로서는 결코 다 전달할 수 없는 ‘사랑차별금지법’에 대한 강연자 자신의 퍼포먼스 장면으로 구성된다. 이번 공연에서 0set프로젝트는 리서치-공연-실천의 단계로 이루어졌던 기존의 방식을 공연 형식의 내부로 가져왔다. 약 45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관객은 질문하고, 고민하고, 행동하는 과정으로서 연극이 말하는 차별의 문제를 체험할 수 있었다.
‘자기’로 연극하기
돌이켜보면, 최근 5-6년간 자기 이야기를 직접 말하는 당사자의 연극들을 꽤 많이 본 것 같다. 시대적 요구인지, 연극 제작상의 흐름인지 어느 하나로 말할 수 없지만, 리얼한 이야기가 더 리얼한 존재를 통해 발화되는 것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김원영 X 0set프로젝트의 <사랑 및 우정에서의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 역시 그러한 흐름에 놓여 있는 공연이다. 공연의 내용적으로 김원영은 ‘사랑차별금지법’의 법률적인 필요와 제도 제정을 주장하는 강연자이면서 해당 법률의 당사자가 된다. 실제로는 법률이라는 체계가 김원영의 직업과 직결되고, 그 법률의 내용이 김원영 자신이 받았던 차별을 다루고 있다. 차별을 말할 수 있는 법률적 지식을 갖춘 실제 법조인으로서, 그리고 차별의 상황을 실제로 경험한 당사자로서 무대 위에 선 김원영은 구태여 스스로를 주장하지는 않지만, ‘여기, 있다.’는 사실만으로 연극을 현실의 문제로 확장하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연극을 마주했을 때, 더 많은 질문과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질문하기: ‘차별이란 무엇일까?’
공연은 시종일관 차별에 대해 말한다. 영상에 투사되는 법률 체계와 강연자의 말은 ‘사랑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하지만 김원영의 몸으로 구성되는 공연의 장면들은 차별에 깔려있는 모순들을 연극적 방식으로 드러낸다. 차별에 대한, 차별을 대하는, 차별을 결정짓는 순간들에 대한 체계를 세우기 위해 노력하지만, 사실상 사랑차별금지법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역설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불가능할 것을 왜 말하고 있는 것일까? 도대체 차별은 무엇이고, 왜 금지되어야 하는가? 그것은 왜 불가능한 것인가? 이에 대해 공연은 차별의 여러 면을 말하기로 선택했다. 이제 질문은 연극의 관객을 향해 날아든다.
공연은 차별의 대상이나 상황에 대한 분명한 예시들을 말과 몸의 방식으로 반복해서 보여준다. 공연이 시작되기도 전, 무대 깊숙한 곳에는 엎드린 채로 노트북에 무언가 작성 중인 김원영이 있다. 공연이 시작되고 무대 뒷벽에는 원영의 노트북 화면이 투사된다. <사랑 및 우정에서의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약칭: 사랑차별금지법)>의 세부 조항들이다. 법의 보호 대상을 정하고, 장애인에 대한 공정한 대우에 관해 서술하던 중, 해당 조항들을 작성하던 김원영이 직접 그 내용을 수행해 보인다. ‘공정한 사랑과 우정의 성립을 위하여’, ‘휠체어를 탄 사람에 대한 예의바른 무관심을 유지해야 한다.’는 화면의 글자들이 극장에, 무대 위에 펼쳐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어지는 상황이 너무 문제적이다. 사랑차별금지법의 체계를 만들어가던 김원영이 차별을 피하기 위한 두툼한 갑옷을 갖춰 입기 시작한다. 두 허벅지에는 판판한 플라스틱 파일을 덧댄다. 여기에 바지를 입으면 넉넉한 바지통을 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허리춤에는 두꺼운 책 두 권을 받쳐 앉는다. 조금 더 보통의 눈높이를 만들기 위함이다. 결국, 사랑차별금지법은 한낱 환상이었던 걸까? 행복한 상상이었을까? 이어지는 강연 장면은 다시 한번, 차별에 대한 문제를 심화시킨다.
공연은 차별의 대상이나 상황에 대한 분명한 예시들을 말과 몸의 방식으로 반복해서 보여준다. 공연이 시작되기도 전, 무대 깊숙한 곳에는 엎드린 채로 노트북에 무언가 작성 중인 김원영이 있다. 공연이 시작되고 무대 뒷벽에는 원영의 노트북 화면이 투사된다. <사랑 및 우정에서의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약칭: 사랑차별금지법)>의 세부 조항들이다. 법의 보호 대상을 정하고, 장애인에 대한 공정한 대우에 관해 서술하던 중, 해당 조항들을 작성하던 김원영이 직접 그 내용을 수행해 보인다. ‘공정한 사랑과 우정의 성립을 위하여’, ‘휠체어를 탄 사람에 대한 예의바른 무관심을 유지해야 한다.’는 화면의 글자들이 극장에, 무대 위에 펼쳐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어지는 상황이 너무 문제적이다. 사랑차별금지법의 체계를 만들어가던 김원영이 차별을 피하기 위한 두툼한 갑옷을 갖춰 입기 시작한다. 두 허벅지에는 판판한 플라스틱 파일을 덧댄다. 여기에 바지를 입으면 넉넉한 바지통을 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허리춤에는 두꺼운 책 두 권을 받쳐 앉는다. 조금 더 보통의 눈높이를 만들기 위함이다. 결국, 사랑차별금지법은 한낱 환상이었던 걸까? 행복한 상상이었을까? 이어지는 강연 장면은 다시 한번, 차별에 대한 문제를 심화시킨다.
구체화하기: 차별의 개념
연극의 강연 장면은 ‘차별, 장애, 사랑 및 우정’ 등의 상대적인 개념들이 구체화되기를 기대하는 연극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상황이나 입장 등에 따라 여러 가지로 설명되는 개념들을 하나의 시선으로 보여주기보다는 강연이라는 형식이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원영이 보여주는 1인 2역의 강연 장면은 차별(및 차별금지법)에 대한 여러 의견을 보여준다. 홀로 무대와 객석을 옮겨다니며 주고받는 강연자와 청중의 대화는 관객이 강연 내용에 몰입하기보다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고민할 수 있게 한다. 강연 장면을 통해 관객은 스스로 차별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차별금지법’을 주제로 하는 이 강연에서 김원영이 강연자이자 동시에 청중의 한 명을 연기한다. 강연자는 차별을 만들어내는 우리의 인식을 비판하고, 그로 인한 결과들에 반성적 태도를 요구한다. 차이는 인정하되, 그로 인한 차별은 금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청중은 그러한 태도가 이상적 환상임을 지적한다.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는 있지만, 과연 인간이 근본적으로 차별 없음을 실현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사랑 내지 우정 등의 사적 영역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게 차별의 행동들이 실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화 가운데 관객들의 반응이 흥미롭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피식’ 조소하는 등, 자기만의 반응을 만들어갔다. 어떤 문장에는 동의를 표하고, 어떤 문장에는 지루하다는 듯 몸을 비틀기도 했다. 결국, 강연자와 청중의 논쟁은 결론 맺지 못한 채 모호하게 겹쳐지면서 끝난다. 물론 결론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강연의 말들, 강연자와 청중이 주고받은 문장들이 조금은 비켜나 있던 관객에 의해 새롭게 직조될 것이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을 주제로 하는 이 강연에서 김원영이 강연자이자 동시에 청중의 한 명을 연기한다. 강연자는 차별을 만들어내는 우리의 인식을 비판하고, 그로 인한 결과들에 반성적 태도를 요구한다. 차이는 인정하되, 그로 인한 차별은 금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청중은 그러한 태도가 이상적 환상임을 지적한다.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는 있지만, 과연 인간이 근본적으로 차별 없음을 실현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사랑 내지 우정 등의 사적 영역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게 차별의 행동들이 실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화 가운데 관객들의 반응이 흥미롭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피식’ 조소하는 등, 자기만의 반응을 만들어갔다. 어떤 문장에는 동의를 표하고, 어떤 문장에는 지루하다는 듯 몸을 비틀기도 했다. 결국, 강연자와 청중의 논쟁은 결론 맺지 못한 채 모호하게 겹쳐지면서 끝난다. 물론 결론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강연의 말들, 강연자와 청중이 주고받은 문장들이 조금은 비켜나 있던 관객에 의해 새롭게 직조될 것이기 때문이다.

행동하기: 장애와 마주하기
끝내 사랑차별금지법은 법률이나 논리, 지식의 공유로 해결되지 않는다. 아무리 단단히 세워진 체계에도 빈틈은 있고, 자기 삶의 주체라 여겨지는 인간 역시도 매번 이성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공연은 연극적 맺음을 시도한다. 공연 내내 법(法)언어와 개인의 언어 사이를 진동하던 김원영이 마침내 연극의 언어로 관객에게 손을 내밀었다.
강연 장면이 끝나고, 김원영의 몸 위로 잡을 수 없는 법률 조항들이 지나간 뒤, 원영은 갖춰 입었던 갑옷을 벗어 던지고 바닥을 구르며 춤을 추었다. 휠체어에서 몸을 들어 올렸던 강인한 두 팔은 있는 힘껏 바닥을 두드렸고, 사방으로 구르며 움직이는 원영의 몸이 긴 시간 관객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객석에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시선을 거두어야 하는지 잠시 고민하기도 했는데, 점점 격해지는 그의 춤이 온몸이 뿜어내는 비명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움직임이 중단되고, 휠체어 발판에 걸터앉은 원영이 손을 내민 채 관객석을 빙 둘러 본다. 무대 뒷벽에는 ‘단, 휠체어 위에 올라앉고자 하나 어려움이 있는 경우에는 지원할 수 있다.’라는 자막이 나타난다. 그 때, 작은 기적 같은 순간이 만들어진다. 한 관객이 조금은 민망하게, 그렇지만 웃으며 원영의 손을 잡았다. 원영이 휠체어에 앉을 수 있도록 끌어 올리는데, 그가 관객에게 무언가 속삭였다. 이내 두 사람은 함께 무대 바닥을 구른다. 작은 웃음소리들이 극장을 채우기 시작했다. 김원영의 손을 잡은 관객과 그 손에 의지하여 바닥을 구르는 두 사람의 모습이야말로 이 공연이 기대하며 다가갔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 순간은 법이라는 공적 체계나 사랑 및 우정 등의 개인적 기준이 아닌, ‘자기’를 드러내 보인 김원영의 진솔함에 대해 ‘자기 자신’으로서 응답한 관객에 의해 완성되었다.
결국, 연극이 관객과 공유하고자 했던 것은 법도, 사랑 및 우정도 아니었다. 그들 이전에 행동하는 자기 자신이 있다는 사실이다. 법이라는 체계는 완벽하지 않다. 사랑 및 우정의 방법 또한 완전하지 않다. 그러나 손을 내밀고, 그 손을 잡아주는 행동은 분명 무엇인가 변화시킬 수 있다. 적어도 나는 김원영과 0set프로젝트의 만남이 보여준 그 기적 같은 순간을 믿고 싶다.
강연 장면이 끝나고, 김원영의 몸 위로 잡을 수 없는 법률 조항들이 지나간 뒤, 원영은 갖춰 입었던 갑옷을 벗어 던지고 바닥을 구르며 춤을 추었다. 휠체어에서 몸을 들어 올렸던 강인한 두 팔은 있는 힘껏 바닥을 두드렸고, 사방으로 구르며 움직이는 원영의 몸이 긴 시간 관객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객석에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시선을 거두어야 하는지 잠시 고민하기도 했는데, 점점 격해지는 그의 춤이 온몸이 뿜어내는 비명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움직임이 중단되고, 휠체어 발판에 걸터앉은 원영이 손을 내민 채 관객석을 빙 둘러 본다. 무대 뒷벽에는 ‘단, 휠체어 위에 올라앉고자 하나 어려움이 있는 경우에는 지원할 수 있다.’라는 자막이 나타난다. 그 때, 작은 기적 같은 순간이 만들어진다. 한 관객이 조금은 민망하게, 그렇지만 웃으며 원영의 손을 잡았다. 원영이 휠체어에 앉을 수 있도록 끌어 올리는데, 그가 관객에게 무언가 속삭였다. 이내 두 사람은 함께 무대 바닥을 구른다. 작은 웃음소리들이 극장을 채우기 시작했다. 김원영의 손을 잡은 관객과 그 손에 의지하여 바닥을 구르는 두 사람의 모습이야말로 이 공연이 기대하며 다가갔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 순간은 법이라는 공적 체계나 사랑 및 우정 등의 개인적 기준이 아닌, ‘자기’를 드러내 보인 김원영의 진솔함에 대해 ‘자기 자신’으로서 응답한 관객에 의해 완성되었다.
결국, 연극이 관객과 공유하고자 했던 것은 법도, 사랑 및 우정도 아니었다. 그들 이전에 행동하는 자기 자신이 있다는 사실이다. 법이라는 체계는 완벽하지 않다. 사랑 및 우정의 방법 또한 완전하지 않다. 그러나 손을 내밀고, 그 손을 잡아주는 행동은 분명 무엇인가 변화시킬 수 있다. 적어도 나는 김원영과 0set프로젝트의 만남이 보여준 그 기적 같은 순간을 믿고 싶다.
[사진제공: 제19회 서울변방연극제ⓒ한민주]
사랑 및 우정에서의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
- 일자
- 2019.07.11(목) ~ 07.13(토)
- 장소
- 삼일로창고극장
- 작/출연
- 김원영
- 연출
- 신재
- 기획
- 정소은 무대감독 임성현
- 기술감독
- 김석기
- 조명디자인
- 고귀경
- 사운드디자인
- 정의석
- 그래픽디자인
- 김은정
- 안무 어드바이저
- 정아영
- 문자통역
- AUD사회적협동조합
- 수어통역
- 장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