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다빈나오 <소리극 옥이>
옥이와 나와 장애인 연극
정진세_본지 총괄에디터
166호
2019.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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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다빈나오의 <소리극 옥이>는 장애인의 삶을 다루고, 장애인 예술가가 등장하며, 장애의 상황이 극의 형식으로 활용된다. 단순한 차원에서 이러한 맥락들이 작동하는 것을 넘어 세심한 감성과 입체적인 표현으로 관객들을 유혹하는데, 비장애인 관객의 입장과 장애인 관객의 입장이 잘 어우러지도록 연출되어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극단 다빈나오의 <소리극 옥이>는 장애인의 삶을 다루고, 장애인 예술가가 등장하며, 장애의 상황이 극 형식으로 활용된다. 단순한 차원에서 이러한 성격이 발휘되는 것을 넘어 세심한 감성과 구체적인 표현들을 갖추고 있는데, 비장애인과 장애인, 그리고 관객의 입장이 잘 어우러지도록 연출되어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누구나 웃고 즐길 수 있는 하나의 공연예술 작품으로 손색이 없는 셈이다.
공연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앞뒤와 좌우로 공간 분할된 아기자기한 무대. 장애인 배우의 등퇴장을 고려한 미술장치이면서, 동시에 수어전달자와 악사들의 위치를 고려한 공간 설정이 눈길을 끈다. ‘배리어 프리’ 방식을 통해 연극의 상황, 배우의 심리, 장면의 전환을 말로써 설명해주는데, 이 또한 특이하고도 재미있는 경험이다. 무대를 상상하기 싫을 때, 눈에 보이는 것을 누군가 말로 다 설명해주길 바랄 때, (비장애인) 관객으로써 객석에서 온통 긴장해 있을 때, 그러한 이에게 말을 거는 아주 친밀한 방식인 셈이다. 이어지는 국악선율의 부드럽고 정겨운 라이브 음악은 관객의 들뜬 호흡도 편안하게 가라앉혀 주었다. 그러고 보니 장애예술을 마주한 나의 마음이 괜시리 비장했던 탓일까.
공연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앞뒤와 좌우로 공간 분할된 아기자기한 무대. 장애인 배우의 등퇴장을 고려한 미술장치이면서, 동시에 수어전달자와 악사들의 위치를 고려한 공간 설정이 눈길을 끈다. ‘배리어 프리’ 방식을 통해 연극의 상황, 배우의 심리, 장면의 전환을 말로써 설명해주는데, 이 또한 특이하고도 재미있는 경험이다. 무대를 상상하기 싫을 때, 눈에 보이는 것을 누군가 말로 다 설명해주길 바랄 때, (비장애인) 관객으로써 객석에서 온통 긴장해 있을 때, 그러한 이에게 말을 거는 아주 친밀한 방식인 셈이다. 이어지는 국악선율의 부드럽고 정겨운 라이브 음악은 관객의 들뜬 호흡도 편안하게 가라앉혀 주었다. 그러고 보니 장애예술을 마주한 나의 마음이 괜시리 비장했던 탓일까.

작품의 주인공은 시각장애인 ‘옥이’이지만, 그를 둘러싼 인물들이 꽤 등장한다. 트랜스젠더 은아, 옥이의 오빠 맹봉학, 저승사자, 호랑이 그리고 엄마의 사연까지 저마다의 이야기가 균형적으로 배치되었다. 시각장애인으로 나오는 옥이의 사연만큼이나, 그를 돌보는 엄마의 이야기도 궁금했고, 그 엄마를 돌보는 비장애인 오빠의 사정도 알고 싶었던 필자의 호기심(?)을 자극했달까. 이들 모두 누군가를 돌봐야 하는 책임과 그로부터 기인한 주변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 제 삶도 버거운 상황에서 남의 삶을 챙겨야 하는 현실을 당사자인 자기 목소리로 발화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더욱 주목할 만한 것은 식물인간이 된 엄마를 위해 황천길을 떠난 옥이가 만난 저승의 인물들이다. 저승의 입구를 지키는 저승사자와 전생에 카사노바였다가 저승에선 망자를 위협하는 호랑이는 자신의 장애적 특징을 그대로 드러내며 역할에 임한다. 제 키보다 세배는 더 길어 보이는 대나무봉을 활용한 상황이나, 앞이 보이지 않는 옥이에게 자신의 외모를 과장하며 허세를 부리는 저승사자의 캐릭터(신강수 분)는 시종일관 코믹함을 드러내며 극을 무겁지 않게 만들었다. ‘사랑, 그것은 병이요~’ 라고 조소하는 저승사자의 말은 극 안팍의 상황을 되새기게 했는데,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누구나 갖고 있는 관계에 대한 결핍과 그에 대한 맹목적인 바람을 환기시켜 주었다.
휠체어를 타고 움직이는 호랑이(황철호 분)는 옥이의 사정을 이용해 자신의 욕망을 노골적으로 실현한다. 다짜고짜 같이 살자고 협박하고 애를 낳아달라는 주장(?)은 분명 거칠고 무례하지만, 그의 어눌한 표현 속에서 그가 가진 ‘결핍’ 또한 제시되고 있다. 따라서 묘하게 인물의 설득력을 갖추게 되는데, 이는 ‘어리고’, ‘작고’, ‘여린’ 이미지가 아닌, ‘어른스럽고’, ‘차분하고’, ‘단단한’ 이미지를 가진 옥이 캐릭터(전인옥 분)와 균형을 맞춘다. 이미지가 소비되는 방식에 있어서 장애를 가진 소녀성을 일부러 택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바리데기 설화를 비롯한 우리의 전통서사들이 일방적으로 어린 여성주체의 희생을 강요하는 이야기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옥이를 보내주며 자신의 휠체어를 내어주는 호랑이의 모습에선 ‘질병 같은 사랑’의 쓰라린 순간들이 실감나게 그려진다. 정상성으로 미화된 사랑의 장면에선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넘어갔던 지점들이 새로이 포착되는 것이다. 서로를 보듬어주면서 지속해나갔던 사랑의 결과가 종국엔 ‘헤어짐’일 뿐이지만, 그 시간들을 통해 상대를 이해하는 법을 배웠다면 그것 또한 의미가 있을 터. 그러하기에 옥이에게 휠체어 사용법을 알려주며 그를 떠나보내는 호랑이의 모습이 더더욱 애처롭다. 물론 거기서도 연극은 유머를 잃지 않는다. 시각장애인 배우의 퇴장을 조마조마 바라보는 관객의 마음을 알기라고 하듯, 나쁜남자 스타일로 무뚝뚝하게 방향을 일러주는 호랑이의 모습은 관객의 웃음을 자아낸다.
더욱 주목할 만한 것은 식물인간이 된 엄마를 위해 황천길을 떠난 옥이가 만난 저승의 인물들이다. 저승의 입구를 지키는 저승사자와 전생에 카사노바였다가 저승에선 망자를 위협하는 호랑이는 자신의 장애적 특징을 그대로 드러내며 역할에 임한다. 제 키보다 세배는 더 길어 보이는 대나무봉을 활용한 상황이나, 앞이 보이지 않는 옥이에게 자신의 외모를 과장하며 허세를 부리는 저승사자의 캐릭터(신강수 분)는 시종일관 코믹함을 드러내며 극을 무겁지 않게 만들었다. ‘사랑, 그것은 병이요~’ 라고 조소하는 저승사자의 말은 극 안팍의 상황을 되새기게 했는데,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누구나 갖고 있는 관계에 대한 결핍과 그에 대한 맹목적인 바람을 환기시켜 주었다.
휠체어를 타고 움직이는 호랑이(황철호 분)는 옥이의 사정을 이용해 자신의 욕망을 노골적으로 실현한다. 다짜고짜 같이 살자고 협박하고 애를 낳아달라는 주장(?)은 분명 거칠고 무례하지만, 그의 어눌한 표현 속에서 그가 가진 ‘결핍’ 또한 제시되고 있다. 따라서 묘하게 인물의 설득력을 갖추게 되는데, 이는 ‘어리고’, ‘작고’, ‘여린’ 이미지가 아닌, ‘어른스럽고’, ‘차분하고’, ‘단단한’ 이미지를 가진 옥이 캐릭터(전인옥 분)와 균형을 맞춘다. 이미지가 소비되는 방식에 있어서 장애를 가진 소녀성을 일부러 택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바리데기 설화를 비롯한 우리의 전통서사들이 일방적으로 어린 여성주체의 희생을 강요하는 이야기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옥이를 보내주며 자신의 휠체어를 내어주는 호랑이의 모습에선 ‘질병 같은 사랑’의 쓰라린 순간들이 실감나게 그려진다. 정상성으로 미화된 사랑의 장면에선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넘어갔던 지점들이 새로이 포착되는 것이다. 서로를 보듬어주면서 지속해나갔던 사랑의 결과가 종국엔 ‘헤어짐’일 뿐이지만, 그 시간들을 통해 상대를 이해하는 법을 배웠다면 그것 또한 의미가 있을 터. 그러하기에 옥이에게 휠체어 사용법을 알려주며 그를 떠나보내는 호랑이의 모습이 더더욱 애처롭다. 물론 거기서도 연극은 유머를 잃지 않는다. 시각장애인 배우의 퇴장을 조마조마 바라보는 관객의 마음을 알기라고 하듯, 나쁜남자 스타일로 무뚝뚝하게 방향을 일러주는 호랑이의 모습은 관객의 웃음을 자아낸다.

극중에서 가장 울림이 큰 장면은, 옥이가 염라대왕을 만나기 위해 번호표를 뽑고 대기하는 대목이다. 자기 순서를 볼수 없어 아예 대면조차 할 수 없게 된 순간, 옥이는 소리를 높여 자신의 분노를 드러낸다. 죽음 이후의 세계에서도 차별의 조건이 여전하다는 점은, ‘죽음’이나 ‘구원’, ‘회복’이라는 관념들조차도 장애인에게는 불리하게 설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고 있다. 과연, 죽음 이후에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가 사라지는 것일까. 생명과 죽음 사이에 놓여있는 무수한 장애의 상황이나 (불)가능성을, 단순하고도 성급하게 ‘일반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죽음을 통해, 죽음 이후에, 모든 것이 온전해질 것이라는 바람은 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성찰 차원으로만 감춰두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옥이가 최종단계에서 만난 염라대왕이 옥이의 엄마라는 설정의 의아함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의 가족으로) 자신의 삶이 규정당한 존재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건 본 공연의 미덕이다. 엄마가 떠난 후 홀로서기 해야 하는 장애인 주체의 어려움은 예상되지만, 그 난국은 사회가 함께 감수해야할 몫이리라. 극중에서는 성적인 소수자와 장애를 가진 소수자가 소통하는 방식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현대인의 삶이 갖고 있는 취약성이 다수-소수의 문제를 넘어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옥이가 최종단계에서 만난 염라대왕이 옥이의 엄마라는 설정의 의아함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의 가족으로) 자신의 삶이 규정당한 존재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건 본 공연의 미덕이다. 엄마가 떠난 후 홀로서기 해야 하는 장애인 주체의 어려움은 예상되지만, 그 난국은 사회가 함께 감수해야할 몫이리라. 극중에서는 성적인 소수자와 장애를 가진 소수자가 소통하는 방식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현대인의 삶이 갖고 있는 취약성이 다수-소수의 문제를 넘어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장애인의 연극을 통해 다루고 있는 문제들은 한결같이 현대사회의 딜레마들을 품고 있다. 주체와 대상의 문제, 돌봄과 돌봐짐의 문제, 정상성과 비정상성에 대한 문제 등등. 당사자성과 피해자성, 소수자성을 가진 다중-주체가 존재하기 때문에, 장애인 연극에서는 그 입장을 유심히 살펴야 한다. 그러하기에 장애인 연극에서 가장 눈여겨보게 되는 것은 창작자의 태도와 윤리이고, 그런 연유로 장애인 연극은 즐기기에는 썩 어려운 편이다.
그러나 <소리극 옥이>는 어떤 면에서 이러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나’와 공연을 즐기고 있는 ‘나’와의 낯선 조우를 허락케 했다. 장애의 윤리, 돌봄의 윤리, 재현의 윤리 등 자격과 역할을 논하는 만큼이나, 공연예술은 나를 위한 놀이이고, 나를 위한 예술이어야 한다는 것을 되새기게 해준 것이다. (그리고 나름의 유머 또한 갖추고 있다) <소리극 옥이>와의 만남은 장애인 연극을 해온 이력만큼이나 나름의 창작방법론을 충실하게 갖추고 있는, 극단 다빈나오의 저력을 체감케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소리극 옥이>는 어떤 면에서 이러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나’와 공연을 즐기고 있는 ‘나’와의 낯선 조우를 허락케 했다. 장애의 윤리, 돌봄의 윤리, 재현의 윤리 등 자격과 역할을 논하는 만큼이나, 공연예술은 나를 위한 놀이이고, 나를 위한 예술이어야 한다는 것을 되새기게 해준 것이다. (그리고 나름의 유머 또한 갖추고 있다) <소리극 옥이>와의 만남은 장애인 연극을 해온 이력만큼이나 나름의 창작방법론을 충실하게 갖추고 있는, 극단 다빈나오의 저력을 체감케한 시간이었다.
[사진제공: 극단 다빈나오]
소리극 ‘옥이’
- 일자
- 2019.08.15(목) ~ 08.24(토)
- 장소
- 이음아트홀(이음센터 5F)
- 작
- 이보람
- 연출
- 김지원
- 작곡
- 민소윤
- 출연
- 전인옥, 맹봉학, 방기범, 신강수, 황철호, 김지윤, 이윤신, 송윤, 박훈빈
- 해금/노래
- 최민지
- 대금
- 민소윤
- 피아노
- 강민규
- 베이스
- 김용원
- 타악
- 장석원
- 무대
- 정선하
- 조명
- 김영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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