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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프린지페스티벌2019

[작품리뷰] 사방에는 열정들이

권혜린
167호 2019.09.05
개인적으로 장소에 관한 상상력을 끌어내는 페스티벌에 우호적이다. 프린지페스티벌은 축제라는 사건뿐만 아니라 장소에 관한 기억이 강렬한 축제였는데, 작년이 월드컵경기장에서 하는 마지막 프린지 페스티벌이라는 말을 듣고 진한 아쉬움을 느꼈었다. 그러나 올해 22회를 맞이하는 2019년 프린지페스티벌이 새롭게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린다는 말을 듣고 반가웠다. 올...
성에서 마을로, 원에서 방사형으로
개인적으로 장소에 관한 상상력을 끌어내는 페스티벌에 우호적이다. 프린지페스티벌은 축제라는 사건뿐만 아니라 장소에 관한 기억이 강렬한 축제였는데, 작년이 월드컵경기장에서 하는 마지막 프린지 페스티벌이라는 말을 듣고 진한 아쉬움을 느꼈었다. 그러나 올해 22회를 맞이하는 2019년 프린지페스티벌이 새롭게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린다는 말을 듣고 반가웠다. 올해의 주제가 ‘예술아지트 : 프린지’라 기지라는 공간과 잘 어울렸다.
몇 년 동안 방문했던 월드컵경기장을 지나쳐 문화비축기지로 향했다. 월드컵경기장이 계단을 올라가 이곳저곳 침입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성채 같은 곳이었다면, 문화비축기지는 오르막길을 올라가자 방사형으로 T1부터 T6까지의 석유탱크가 곳곳에 퍼져 있었다. 하나의 마을 같았다.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공연이 벌어지는 낯선 감각은 다소 사라졌지만 기지 곳곳을 알차게 이용하는 것은 유지되어 개방감을 느낄 수 있었다. 중심에는 프린지 살롱과 휴식 공간이 있어 편하게 쉬어 가는 원두막 또는 사랑방 같은 느낌도 들었다. 공연을 보다가 잠깐씩 쉼표를 찍으며, 비가 올 때는 비를 그으며 여유와 자유를 한껏 즐겼다.
의심의 영역들
  • 상식연대기(극단 공백)
  • 아기라는 생명체(이한솔)
<상식연대기>(극단 공백)는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에피소드를 통해 ‘상식’을 재고해 보게 했다. 보편성을 띤 지식을 의미하는 것 같은 상식을 누가, 어떻게 정립했는지 파고들다 보면 의문이 생긴다. ‘과거’에서는 지구가 네모나다는 상식을 믿는 이와 시간에 관한 연구를 상식으로 만들고 싶은 이가 세상 끝으로 갔을 때, 그들을 파괴하는 자 역시 자신의 상식을 믿는 것이라는 점이 아이러니했다. ‘현재’에서는 어른스러움의 상식을 일탈하는 엄마를 보면서 어른을 유예하고자 한 딸이 자신만의 방식/상식을 찾는다. ‘미래’에서는 인문학이 배척되는 시대에 과학이라는 상식을 의심하고 분투하는 ‘너무나도 인간적인’ 교사 아버지와 상식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너무나도 과학적인’ 딸의 간극이 파국이 되면서 상식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아기라는 생명체>(이한솔)는 로봇만 사는 3019년에 아기가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사건을 그린다. 최연소 배우인 아기가 실제로 등장하였는데 몰입도와 호응도를 동시에 높였다. 최초의 기억을 묻기도 하고, 아기가 사라진 이유를 적은 포스트잇을 읽어 주기도 하는 등 관객 참여가 높았던 공연이었다. 아기의 존재를 의심했던 로봇 단테가 아기를 돌보면서 노키즈존의 불편함을 느끼기도 하고, 아기가 사라지자 우는 모습은 ‘아기라는 생명체’가 왜 필요한지 돌아보게 한다. 아기가 인간으로 자란다는 사실, 불완전하지만 가능성을 품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 로봇이라는 다른 존재로 관점을 바꾸었을 때 다시금 보이는 것이다.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아기를 낳은 후 연극 활동의 범위가 좁아지자 ‘아기가 있음에도 할 수 있는 연극’을 만들었다고 하면서 아기라는 생명체와 연극 자체의 관계도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끝까지 하고 싶은, 하겠다는 마음
  • 끝따라는 딴까지 간다(느리게걷기×14squad)
  • 겉돌며 맴도는 회전으로서(매머드머메이드)
<끝따라는 딴까지 간다>(느리게걷기×14squad)는 글자를 묘하게 바꾸어 놓은 제목이 공감을 준다. ‘끝까지 따라서 간다’ 또는 ‘끝을 따라 간다’는 뜻으로 읽히는 것이다. 억압적인 연출가인 쇼맨이 잠든 사이에 그룹 ‘팅커벨’은 자기들끼리 즐겁게 놀기 시작한다. 화려한 가발을 쓰고 강한 화장을 하고 인디언 치마를 입은 모습은 광대를 연상하게 해서 노는 모습 자체가 공연처럼 보인다. 특별한 의미가 없는 이름을 반복하는 것이 곧 대사가 되는 것은 여백을 상상하게 한다. 트램펄린 위에서 역동적인 동작을 하기도 하고, 가발이 벗겨지도록 열정적으로 춤추고 노래하면서 앙코르까지 이어진다. 음악 <딴따라는 끝까지 간다>는 ‘딴따라는 끝까지 간다 해낼 거야 할 수 있어’라는 가사와 멜로디가 반복되어 관객들도 쉽게 따라 할 수 있었다.
<겉돌며 맴도는 회전으로서>(매머드머메이드)는 관객의 평가에 집착하게 되는 것을 역발상으로 뒤집어 별 반 개짜리 연극, 지나치게 별로이며 관객이 보다가 중간에 나가도 좋다는 연극을 만들었다. 역설적이게도 40명 이상의 관객으로 꽉꽉 찬 좁은 공간에서 배우는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을 들려준다. 이야기하면서도 중간중간 시계를 보는 등 배우 역시 그 시간을 버티고, 견디는 것처럼 보였다. 여러 인물의 처절한 모습을 연기하면서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도 자아내지만 이는 궁극적으로 ‘연극의 지속성’을 고뇌하는 작품처럼 보인다. 극 속에서 컴퓨터 조립이 제대로 안 되면 나사가 회전한다고 말하듯이, 현재 그의 연극은 ‘겉돌며 맴도는 회전’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회전을 멈추게 할 수 있는 것은 별 반 개짜리라고 할지언정 이 연극을 널리 퍼뜨려 주는 파발꾼으로서의 관객뿐이라는 메시지가 남았다.
지옥에서 올라온 종북페미마녀 송아영씨의 신나는 쑈쑈쑈!(씨베리안 탠저린)
<지옥에서 올라온 종북페미마녀 송아영씨의 신나는 쑈쑈쑈!>(씨베리안 탠저린)는 넘치는 에너지로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오해를 맛깔스럽게 풀어낸 스탠드업 코미디이다. 유럽 여행을 갔다가 발목의 같은 자리를 여러 번 삐면서 생긴 에피소드들을 사진, 도구들과 함께 이끌어 가서 지루할 틈이 없다. ‘종북페미마녀’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오해를 받는 단어들도, 코미디를 통해 풍자되는 내용들도 센 편이지만 현실에서 비껴나간 내용들은 아니기에 허무맹랑하다는 느낌은 없다. 얘기를 듣다 보면 ‘씨베리안 탠저린’이 새롭게 그려 낸 지옥의 풍경도조차 지루한 천국보다 나아 보일 정도로 통쾌함을 준다. 불편함을 불편하다고 말할 수 있는 장이 희소하므로 이 작품처럼 때로는 은근함보다 정면 타격이 와 닿을 때가 있다.
고독하지만 즐거운
  • 마녀의 인형놀이(미수킹)
  • 미룸의 방〔미ROOM〕(자유표현집단 20도씨)
<마녀의 인형놀이>(미수킹)는 인형극이라는 형식을 사용해서 마녀의 감정에 주목한다. 타의에 의해 배척되어 강제로 고독하게 된 마녀는 비눗방울을 불기도 하고, 관객들과 풍선을 공처럼 주고받기도 한다. 그러다가 인형극을 하는데, 나무에 올라가는 사람과 자유롭게 움직이는 마녀와 관객들에게도 살포시 내려앉는 나비와 줄무늬로 변신하며 기어가는 지렁이가 등장하는 인형극은 생동감이 넘친다. 관객들과 교감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혼자 주도하는 놀이들이다. 결국 혼자 노는 것에 지친 마녀는 마지막에 관객들과 프리 허그를 하면서 한마디씩 건넨다. 고독으로 상징되었던 마녀가 사랑을 추구하는 존재였다는 것을 흥미롭게 보여 주었다.
<미룸의 방〔미ROOM〕>(자유표현집단 20도씨)은 미루는 것을 좌우명으로 삼은 가족들이 아버지의 주식을 파는 것조차 미루면서 벌어지는 해프닝들을 유쾌하게 그렸다. 벽에 쏜 영상으로 아버지와의 영상 통화를 표현하고, 옆 공간으로 이동해 일방형의 무대가 아니라 사각형의 무대 전체를 골고루 이용하였다. 두 줄로 길게 앉은 관객들에게 무대를 360도로 보게 한다는 의도였으나, 뒤에 앉았을 때 앞쪽의 무대가 잘 보이지 않아 시야가 생각보다 좁은 아쉬움이 있었다. 그러나 비교적 예측 가능한 이야기를 배우들의 열정적인 연기와 신나는 춤으로 표현해서 즐거움만큼은 미루지 않고 그 자리에서 마음껏 느낄 수 있었다. 유대감보다는 각각의 개성이 살아 있어 각자 사는 느낌을 주는 가족들이 마지막에 조화되는 모습을 집중해서 보았다.
오퍼튜니티(콜렉티브 뒹굴)
<오퍼튜니티>(콜렉티브 뒹굴)는 공간을 잘 이용했던 작품이었다. 화성 무인탐사 로버 ‘오퍼튜니티’에 관한 DASA의 소식지를 받아 다 같이 오퍼튜니티의 역사를 한 줄씩 겹쳐 읽기도 하고, 끼어들어서 읽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문장을 반복해서 읽기도 하였다. 라디오가 혼선되듯이 목소리들이 중첩되는 과정이 한동안 이어졌다. 탐사하는 모습은 훌라후프를 돌리거나 돌아다니는 모습 등으로 나타나며 천장에는 탐사하는 시간의 흐름이 새겨지고, 자연적으로 들리는 풀벌레 소리조차 우주에서 들리는 듯했다. 옆 공간으로 이동한 뒤에도 야광봉을 쏘거나, 돈을 날리거나, ‘원/ONE/原/Circle’ 등의 글자들에 불을 켜면서 시야를 여러 곳에 두게 한다. ‘뒹굴’이라는 이름처럼 이들의 방향은 직선이 아니라 원을 향해 있다. 탐사에 관한 고민은 연극에 관한 메타포로서 연극을 계속할 수 있을지, 무엇을 해야 할지에 관한 것처럼 보였다. 화성을 상징하는 수박을 잘라 다 같이 나누어 먹으며 아기자기한 분위기에서 끝났다.

장소는 달라졌지만 올해에도 자유와 열정은 여전히 사방에 살아 있는 프린지페스티벌을 마음껏 즐겼다. 내년에도, 앞으로도 계속 이 열정에 기꺼이 전염되고 싶다. 마지막으로, <오퍼튜니티> 소식지에 나왔던 문구 중 개인적으로 반복해서 읽었던 말을 남기고 싶다. “우리 다시 만나.”

[사진 제공: 서울프린지페스티벌2019 사무국ⓒ김명집, 김성일, 박종일, 이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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