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북새통 <래러미 프로젝트>
[작품리뷰] “우리는 더 이상 비밀스럽게 죽지 않을 거예요”
김지혜
168호
2019.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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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 들어서자마자 당황했다. 45개의 의자가 무대여야 할 중앙 공간에 원형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자리를 고르는 데 신중해야 했다. 이렇게 무대가 가까운데 갑자기 말이라도 시키면 어쩌나 걱정하면서, 가능한 시선과 몸을 숨길 수 있는 구석자리를 찾았다. 빈 의자가 많이 보였다. 전석 매진이라더니 어떻게 된 일일까 궁금해 하며 두리번거리던 중 갑자기.....
제목은 극 중 등장하는 희곡 『미국의 천사들』(토니 쿠쉬너, 1993)에 나오는 말로 이 작품의 홍보물에 사용되었다.
극장에 들어서자마자 당황했다. 45개의 의자가 무대여야 할 중앙 공간에 원형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자리를 고르는 데 신중해야 했다. 이렇게 무대가 가까운데 갑자기 말이라도 시키면 어쩌나 걱정하면서, 가능한 시선과 몸을 숨길 수 있는 구석자리를 찾았다. 빈 의자가 많이 보였다. 전석 매진이라더니 어떻게 된 일일까 궁금해 하며 두리번거리던 중 갑자기 모든 자리에 사람이 차더니 연극이 시작되었다.
연극 <래러미 프로젝트>는 내 앞에 그리고 주변에 마치 관객인 듯 앉아있던 8명의 배우가 한 명씩 일어나 대사를 하며 시작된다. 빈자리는 배우들의 것이었고, 그들의 말은 ‘대사’라기보다는 ‘이야기’였다. 한 대학생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무참하게 폭력을 당하고 죽음에 이른 사건, 그리고 그 사건이 발생한 마을에 극단의 단원들이 방문해 시작한 인터뷰에 관한 이야기.
미국 와이오밍주의 ‘래러미’라는 이 작은 마을이 얼마나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인지 묘사하는 주민들의 말은, 곧 매튜 셰퍼드가 무자비한 구타로 피를 흘리며 울타리에 묶인 채 인적 없는 곳에 버려져 있다가 결국 죽음에 이른 사건의 잔혹성과 대비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연극을 관통하는 질문을 쫓는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연극 <래러미 프로젝트>는 내 앞에 그리고 주변에 마치 관객인 듯 앉아있던 8명의 배우가 한 명씩 일어나 대사를 하며 시작된다. 빈자리는 배우들의 것이었고, 그들의 말은 ‘대사’라기보다는 ‘이야기’였다. 한 대학생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무참하게 폭력을 당하고 죽음에 이른 사건, 그리고 그 사건이 발생한 마을에 극단의 단원들이 방문해 시작한 인터뷰에 관한 이야기.
미국 와이오밍주의 ‘래러미’라는 이 작은 마을이 얼마나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인지 묘사하는 주민들의 말은, 곧 매튜 셰퍼드가 무자비한 구타로 피를 흘리며 울타리에 묶인 채 인적 없는 곳에 버려져 있다가 결국 죽음에 이른 사건의 잔혹성과 대비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연극을 관통하는 질문을 쫓는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어쩌면 간단한 답이 이미 있었다. 두 청년 에런 캐키니와 러셀 핸더슨이 사건 직후 피의자로 특정되고 재판이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래러미 프로젝트’는 그 두 명의 범인이 아니라 매튜와 범인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을 쫓는다. 매튜의 대학 친구, 조교, 교수, 농장주, 경찰, 신부, 목사, 바텐더, 리무진 기사, 정치인, 의사, 디제이, 자동차 수리공, 판사, 기자 등 60여 명에 이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110분 동안 쏟아진다.
“그건(동성애) 신이 의도하신 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전 동성애자를 미워하지 않고요.”
“게이건 아니건 와이오밍 사람들은 신경을 안 써. 그냥 관심을 딱 끊어. 이게 내가 말하고 싶은 거거든. 관심 없어.“
“아무도 상관을 안 하죠. 왜냐하면 게이나 레즈비언들은 대부분 누구랑 이야기해야 하는지를 엄청 잘 알거든요. 만약 그 선에서 벗어난다면 자초한 거죠.”
극 중 조너스 슬로너커가 설명하듯, “날 안 건드리면 나도 너 안 건드린다.”고 말하는 주민들 사이에서, 래러미의 게이와 레즈비언들은 자신들을 휩싼 공포에 대해 말한다. 재키 새먼의 말처럼 “어디선가 우리 중 누구한테라도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으니까.” 도무지 누가 위험하다는 건지 헷갈리게 하는 대화가 이렇게 오간다. 주민들은 동성애자가 자신들에게 다가올 것을 두려워하고, 동성애자들은 누구라도 다가와 그들을 공격할까봐 두려워한다.
결국 <래러미 프로젝트>가 긴 인터뷰를 통해 드러내는 사실은 동성애를 둘러싼 이 ‘평화로운’ 마을의 ‘공포’에 관한 것이었다. 표면적으로 ‘평화’를 지탱하던 침묵은 매튜의 죽음으로 깨어졌고, 이제 사람들은 동성애에 관해 이야기하며 감춰 두었던 공포를 드러냈다. “미워하지 않고” “관심 없고” “상관 않는다”고 했던 동성애는, 사실 그만큼 외면하고 싶고 곁에 두기 싫고 ‘생각하기조차 싫은’ 불쾌한 일이었음을, 사람들은 너무나 ‘선량한’ 표정으로 고백하고 있었다.
동시에 주민들은 마을을 휩싸고 있는 은밀한 ‘동성애 혐오’를 증언함으로써, 자신들이 에런 매키니와 러셀 핸더슨이 저지른 증오 범죄와 무관하지 않음을 관객에게 알려준다. 매튜의 죽음 앞에서도 매튜가 자신의 ‘생활방식’을 참회했어야 한다고 말하는 한 침례교 목사의 대사에, 나는 강한 둔기로 맞은 듯한 고통을 느꼈다. 주민들의 공포가 단지 ‘낯선 것’에 대한 실체 없는 공포임에 비해, 동성애자의 공포는 그런 주민들 속에 살며 이미 일상적으로 경험되는 언어적, 심리적 폭력의 연장선 위에 있는 현실적 위협이었다.
1998년 10월에 일어난 매튜 셰퍼드의 죽음은 그 공포 뒤에 숨었던 침묵을 깨웠고 어떤 이들을 행동하게 했다. 이 죽음이 ‘단지 하나의 사건’이 아님을 상기시키는 행진이 연극에서 묘사하듯 백 명에서 오백 명으로 늘고, 이후 2009년에는 그의 이름을 딴 증오범죄법이 연방의회를 통과한다. 2016년 올랜드 게이클럽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건과 같이 아직도 미국 사회에서 동성애 혐오는 계속되고 있지만, 그사이 더 많은 사람들이 커밍아웃하여 활동하고 2015년부터는 동성결혼이 미국 전역에서 인정되었다.
연극 <래러미 프로젝트>는 이처럼 비극적인 소재를 다루면서도 감정을 부러 자극하지 않으면서 풀어 가는데, 정작 연극이 끝나고 불이 켜질 때 묵직한 슬픔을 더럭 안겨준다. 2000년 2월에 덴버에서 초연했던 이 연극을 2019년 서울의 무대에서 보면서, 이 모든 일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을 실감하면서 극장을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한국 사회는 동성애에 대한 공포를 묵인하고 방조하며 그저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외면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제야 비로소 무대의 의미를 깨닫는다. 내 옆에, 앞에 혹은 뒤에 앉아 나에게 몸을 돌리고 눈을 맞추며 래러미에 관해 이야기를 건네는 배우들에게 나는 어떤 감정을 가졌던가. 내게 말을 걸까봐 두려워하는 그 마음이 래러미 주민들의 침묵과 닮아 있는 게 아닐까. 연극이 만들어준 시공간적 초월성은, 관객들에게 래러미의 이야기를 지금 바로 곁에서 건네진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체험하게 했고, 이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숙제로 안겨 주었다.
결국 <래러미 프로젝트>가 긴 인터뷰를 통해 드러내는 사실은 동성애를 둘러싼 이 ‘평화로운’ 마을의 ‘공포’에 관한 것이었다. 표면적으로 ‘평화’를 지탱하던 침묵은 매튜의 죽음으로 깨어졌고, 이제 사람들은 동성애에 관해 이야기하며 감춰 두었던 공포를 드러냈다. “미워하지 않고” “관심 없고” “상관 않는다”고 했던 동성애는, 사실 그만큼 외면하고 싶고 곁에 두기 싫고 ‘생각하기조차 싫은’ 불쾌한 일이었음을, 사람들은 너무나 ‘선량한’ 표정으로 고백하고 있었다.
동시에 주민들은 마을을 휩싸고 있는 은밀한 ‘동성애 혐오’를 증언함으로써, 자신들이 에런 매키니와 러셀 핸더슨이 저지른 증오 범죄와 무관하지 않음을 관객에게 알려준다. 매튜의 죽음 앞에서도 매튜가 자신의 ‘생활방식’을 참회했어야 한다고 말하는 한 침례교 목사의 대사에, 나는 강한 둔기로 맞은 듯한 고통을 느꼈다. 주민들의 공포가 단지 ‘낯선 것’에 대한 실체 없는 공포임에 비해, 동성애자의 공포는 그런 주민들 속에 살며 이미 일상적으로 경험되는 언어적, 심리적 폭력의 연장선 위에 있는 현실적 위협이었다.
1998년 10월에 일어난 매튜 셰퍼드의 죽음은 그 공포 뒤에 숨었던 침묵을 깨웠고 어떤 이들을 행동하게 했다. 이 죽음이 ‘단지 하나의 사건’이 아님을 상기시키는 행진이 연극에서 묘사하듯 백 명에서 오백 명으로 늘고, 이후 2009년에는 그의 이름을 딴 증오범죄법이 연방의회를 통과한다. 2016년 올랜드 게이클럽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건과 같이 아직도 미국 사회에서 동성애 혐오는 계속되고 있지만, 그사이 더 많은 사람들이 커밍아웃하여 활동하고 2015년부터는 동성결혼이 미국 전역에서 인정되었다.
연극 <래러미 프로젝트>는 이처럼 비극적인 소재를 다루면서도 감정을 부러 자극하지 않으면서 풀어 가는데, 정작 연극이 끝나고 불이 켜질 때 묵직한 슬픔을 더럭 안겨준다. 2000년 2월에 덴버에서 초연했던 이 연극을 2019년 서울의 무대에서 보면서, 이 모든 일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을 실감하면서 극장을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한국 사회는 동성애에 대한 공포를 묵인하고 방조하며 그저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외면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제야 비로소 무대의 의미를 깨닫는다. 내 옆에, 앞에 혹은 뒤에 앉아 나에게 몸을 돌리고 눈을 맞추며 래러미에 관해 이야기를 건네는 배우들에게 나는 어떤 감정을 가졌던가. 내게 말을 걸까봐 두려워하는 그 마음이 래러미 주민들의 침묵과 닮아 있는 게 아닐까. 연극이 만들어준 시공간적 초월성은, 관객들에게 래러미의 이야기를 지금 바로 곁에서 건네진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체험하게 했고, 이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숙제로 안겨 주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많은 죽음을 나는 한국의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본다. 2003년 4월 ‘육우당’이라는 필명을 쓰던 청소년이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사회를 비판하며 자살했고,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는 16년째 그의 죽음을 추모하고 있다. 생명을 잃는 것이 아니더라도 수많은 성소수자들이 오늘도 ‘죽은 듯’이 살라고 요구받는다. 이 연극의 홍보 전단은 “우리는 더 이상 비밀스럽게 죽지 않을 거예요.”라고 적고 있다. 그 죽음을 만들어내는 동성애 혐오와 싸우기 위해 모두가 더 이상 외면하지 말고 ‘행동하라’고, 이 연극은 지금의 한국 사회에 말한다.
[사진 제공: 플랜큐PlanQ ⓒ마민지]
래러미 프로젝트
- 일자
- 2019.08.22(목) ~ 08.25(일) / 2019.09.05(목) ~ 09.15(일)
- 장소
- 강남씨어터 / 선돌극장
- 작
- 모이세스 코프먼, 텍토닉 씨어터프로젝트(2000)
- 연출
- 남인우 번역 마정화
- 조연출
- 홍단비
- 시노그래퍼
- 여신동 의상/소품 오현희
- 조명
- 홍유진
- 사운드디자인
- 서희숙
- 제작/기획
- 고주영, 김진희
- 출연
- 김소리, 박세정, 주혜원, 백동현, 배해률, 백지혜, 윤동원, 최다은
- 주관
- 플랜큐
- 제작/주최
- 극단 북새통, 강남문화재단
독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