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SPAF 서울괴담 <보이지 않는 도시>
[세대교차]미래도시라 솔파미레도
임승태
170호
2019.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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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에 놓은 작은 무대는 바퀴가 달려 있어 마치 중세의 패전트 무대를 연상케 한다. 누군가의 허름한 단칸방으로 꾸며져 있다.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화분 여러 개로 구성된 텃밭이 보인다. 가구도, 심어진 채소들도 영락없는 노인의 살림이다.....
중앙에 놓은 작은 무대는 바퀴가 달려 있어 마치 중세의 패전트 무대를 연상케 한다. 누군가의 허름한 단칸방으로 꾸며져 있다.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화분 여러 개로 구성된 텃밭이 보인다. 가구도, 심어진 채소들도 영락없는 노인의 살림이다. 왼쪽에는 그의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 몇 가지 악기가 놓여 있다. 아무래도 공연 중에 직접 연주를 할 모양이다.
그제야 무대 위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어떤 형체가 보인다. 얼굴은 사람 같지만 두툼한 털옷을 걸친 모양새가 마치 늙은 고양이 같다. 낡은 집에 깃든 늙은 정령 같은 존재는 방에서 한가롭게 노닐다가 이윽고 할머니가 들어오자 벽장 안으로 유유히 들어가 사라진다. 무언가 환상적인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대를 품게 만든다.

할머니가 단출하게 밥상을 차린다. 곁들여 먹을 고추와 푸성귀를 따러 텃밭에 나갔다가 철거반원들을 목격하고 객석에 몸을 숨긴다. 마을 재개발이 시작되어 다른 주민들은 이미 퇴거한 상황에서 할머니만 여전히 집에 머물고 있다. 철거반원들이 곧 할머니를 발견하고 그를 설득/종용하기 위해 찾아온다. 그들은 의외로 날랜 할머니와 예의 정령에게 여러 번 골탕을 먹지만, 마침내 할머니를 밖으로 내보내고 철거를 시작한다. 집을 나온 할머니는 길목 이정표에서 어디로 갈지 살펴보지만, 000 타워팰리스, 000 스카이프라자, 000 리버타운 등 뜻 모를 이름들에 갈 바를 알지 못한다. 결국, 할머니는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이대로 집은 철거되는 것일까, 아니면 할머니에게 어떤 특별한 구원이 기다리고 있을까.

단순한 이야기에 길지 않은 공연이었지만, 보고 들을 거리가 풍성했다. 이동식 무대 장치와 더불어 라이브 음악, 가면을 쓴 배우들의 연기술, 트랩 도어를 비롯한 각종 무대 장치는 사실주의라는 거대한 연극 재개발 사업에 밀려나 잊힌 예전 연극의 매력을 상기시켰다. 북소리는 어떤 공연에서든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효과가 있지만, 이 작품에서는 둔탁한 그 소리와 진동이 마치 공사 현장의 해머 소리같이 들려왔다.
세상을 극장에, 인생을 연극에 비유하곤 하지만 철거와 재건축이야말로 극장과 매우 친숙한 일이다. 무대는 아무리 잘 만든 것이어도 공연 기간이 끝나면 철거해야 한다. 아니 무대는 세우기 전에 철거 일정부터 잡는 게 보통이다. 자신이 참여한 무대야 철거하는 것이 아쉬울 수밖에 없지만, 내가 다음 팀이라면 앞선 팀이 최대한 빨리 무대를 허물고 빠져주길 바랄 것이다. 도시재정비, 때로는 ‘재생’이란 이름으로 진행되는 재개발 사업도 어떤 위치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생각이 달라진다. 관객은 이 연극을 보며 철거반원들의 비인간적인 행태에 분노할 수 있다. 하지만 관객 중에는 오랜 고생 끝에 재개발 아파트를 분양받은 사람들도 있을 수 있고 그들은 퇴거에 불응하는 할머니를 보고 있는 게 다른 의미에서 불편할 수 있다.

철거반원들이 방에 있던 할머니의 살림을 하나씩 밖으로 내간다. 할머니가 할 수 있는 저항이라곤 문을 가로막는 것뿐이다. 철거반원들이 할머니를 힘으로 제압하지 않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연극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폭력적인 방식으로 그들의 일을 이어간다. 할머니 방 삼면에 설정되어 있던 가상의 벽을 허물고 그쪽으로 집기를 내보낸 것이다. (벽이 있다는) 상상이 아니라 (벽이 없다는) 현실에 따른 안타고니스트의 공격을 프로타고니스트가 연극 안에서 막아낼 방법은 없다. 우리가 집이라는 장소에 부여하는 모든 상징적 가치와 정서적 의미 역시, 마치 무시해도 좋을 연극적 상상인 것처럼 재개발 사업의 회계 장부 어느 곳에도 기재되지 않는다.
본격적인 철거 작업을 위해 무대 천정에서 여러 개의 쇠줄이 내려온다. 연극사적으로 보자면 기중기를 타고 주인공을 구원하는 신(deus ex machina)이 내려와야 하지만, 이 연극에선 아무도 내려오지 않는다. 할머니의 텃밭 화분이 쇠줄에 매달려 공중으로 올라간다. 땅에 있어야 할 것이 중력을 거슬러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다. 이로 보건대 그 기계는 아무래도 맘몬이라는 이름의 돈의 신이 부리는 것 같다. 건물주의 수호신 맘몬이 세입자를 구원해줄 리 없다. 10년 전 겨울 경찰특공대가 탄 컨테이너를 건물 옥상으로 끌어 올렸던 것도 돈의 신이 아니었던가.

가장 현실적인 결말은 할머니가 집을 잃고 쫓겨나는 것이었을 터다. 관객은 할머니에게 깊은 연민을 느끼는 한편 그의 불행을 바라만 보아야 하는 무력감을 맛보아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공연은 의외의 방향으로 흘러갔다. 철거반원들은 철거 과정에서 할머니가 집을 떠날 수 없는 이유가 가족사진 속 가족들임을 발견한다. 잠시 철거 작업이 중단된다. 심지어 배우들은 오퍼석에 신호를 보내 무대 조명까지 내리고 잠시 대책 회의를 한다. 그리고 지극히 연극적인 해결책을 마련한다. 철거반원들은 가족사진 속 인물들을 객석에서 찾기 시작한다. 한 사람, 한 사람씩, 때로는 세 사람씩 떼 지어 철거반원들의 손에 이끌려 무대 위 할머니의 방으로 들어간다. 어쩌다 보니 나도 그중 한 사람으로 무대에 올라갔다. 할머니와 포옹을 하고 할머니에게서 귤과 과자를 선물 받았다. 수레 무대는 그렇게 할머니와 돌아온 가족들을 태운 채로 빙글빙글 돌았다. 한참을 돌고 돌아 어디에 이른 걸까? 바퀴가 멈추고 방문이 다시 열리자 밝은 조명이 비쳤다. 박수로 환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들어갈 때는 내가 아는 도시였는데, 나온 곳이 어디인지는 확실치 않다. 극장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 곳곳에 여전히 타워크레인이 서 있는 것을 보니 다른 곳은 아닌 듯하다. 무대가 빙글빙글 돌아갈 때 옅지만 확실한 현기증을 느꼈다. 결과적으론 할머니의 불행을 멈추는 데 뭐라도 이바지할 수 있어서 기뻤지만, 어지러워 뭘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어쩌면 거기서 더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어지러웠던 것 같다.
들어갈 때는 내가 아는 도시였는데, 나온 곳이 어디인지는 확실치 않다. 극장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 곳곳에 여전히 타워크레인이 서 있는 것을 보니 다른 곳은 아닌 듯하다. 무대가 빙글빙글 돌아갈 때 옅지만 확실한 현기증을 느꼈다. 결과적으론 할머니의 불행을 멈추는 데 뭐라도 이바지할 수 있어서 기뻤지만, 어지러워 뭘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어쩌면 거기서 더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어지러웠던 것 같다.

어지러운 상태에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살던 집에서 쫓겨난 게 아니더라도 나와 상관없는 일이 아니다. 내가 예전에 살던 집들이 이제는 대부분 사라지고 없다. 5층짜리 아파트는 차례로 고층 아파트로 변했고, 대학 시절에 살았던 다가구 반지하 자취방은 ‘00빌’ 이라는 이름의 빌라가 되었다. 그 후에 잠시 살았던 용산의 한 단층집도 얼마 전 지나갔을 때 깨끗하게 사라진 채 기초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눈을 감으면 아직도 그 집들의 내외관이 기억나건만 그것이 실재했던 일인지 확인해줄 물적 토대는 사라지고 없다. 지금 사는 동네에서도 재건축이 한창이다. 올 초에만 해도 있던 집들이 다 허물어지고 지금은 황량한 언덕만 남아 있다. 집(住)에 기억을 새기는 것이 배(舟)에 새기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이 되고 말았다. 도시는 우리의 과거를 지우고 있다. 내 기억도 쇠줄에 매달린 화분처럼 위태롭다.
[사진 제공: 2019 SPAF ⓒ옥상훈]
2019 SPAF_보이지 않는 도시
- 일자
- 2019.10.13.(일) ~ 10.15(화)
- 장소
-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 연출
- 유영봉 프로듀서 이정은 홍보 고나연 미술 문창혁, 이민영 조명 정대원 음악 이진화 출연 김성환, 오선아, 길덕호, 허진 서울괴담
- 서울괴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