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두 <지하철 존재론-춤추듯 춤추지 않는>
[작품리뷰]존재론적 불안에 관한 이미지 보고서
남지수
171호
2019.11.07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Ctrl + V, 붙여넣기해서 사용하세요
망원역 2번 출구 뒷골목, 낡고 오래된 주택을 개조한 소위 ‘힙한’ 상점들이 모여 뉴트로 바람을 일으킨 이곳에 새롭게 둥지를 튼 극장이 있다. 이것이 대학로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인지 자발적 이주인지는 알지 못하겠으나, 연극으로 밀집한 혜화동을 벗어나 공연예술에 대한 접근성이 부족한 공간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그 용기에 일단 응원을 보낸다....
망원역 2번 출구 뒷골목, 낡고 오래된 주택을 개조한 소위 ‘힙한’ 상점들이 모여 뉴트로 바람을 일으킨 이곳에 새롭게 둥지를 튼 극장이 있다. 이것이 대학로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인지 자발적 이주인지는 알지 못하겠으나, 연극으로 밀집한 혜화동을 벗어나 공연예술에 대한 접근성이 부족한 공간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그 용기에 일단 응원을 보낸다. 낯선 공간에서 홀로 점이 되어 시작한다는 것은 언제나 두렵고 떨리는 일이지 않은가. 신촌, 서촌, 홍대 등 공연예술이 낯선 영역으로 침투해 안착한 극장 사례들이 간간히 있어왔지만, 여전히 대학로를 벗어나 연극을 한다는 것, 그곳에서 오롯한 정체성을 가진 극장으로 거듭난다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일 것이다.
이것은 바로 “이 행성의 이행성에 관한 극장”이라는 입구에 걸린 글귀가 단박에 시선을 사로잡는, 망원동 낡은 건물 지하를 개조해 새롭게 오픈한 극단 두(동이향 연출)의 “이행성극장”에 관한 이야기다. (이곳은 공연연습실이자 작은 극장이라 소개되는데, 촘촘히 조명기를 달 수 있도록 무척 공들여 천정설비까지 한 걸 보니 극장의 기능을 어느 정도 충실히 수행할 수 있게 계획된 공간으로 보인다.) 과연 그들은 이 행성에서 어떠한 이행으로 우리와 이행하는 연극을 꿈꾸고 있을까?
이것은 바로 “이 행성의 이행성에 관한 극장”이라는 입구에 걸린 글귀가 단박에 시선을 사로잡는, 망원동 낡은 건물 지하를 개조해 새롭게 오픈한 극단 두(동이향 연출)의 “이행성극장”에 관한 이야기다. (이곳은 공연연습실이자 작은 극장이라 소개되는데, 촘촘히 조명기를 달 수 있도록 무척 공들여 천정설비까지 한 걸 보니 극장의 기능을 어느 정도 충실히 수행할 수 있게 계획된 공간으로 보인다.) 과연 그들은 이 행성에서 어떠한 이행으로 우리와 이행하는 연극을 꿈꾸고 있을까?

그 첫 번째 시도로, 극단 두는 ‘몸과 말로 쓰는 이미지 연극’ <지하철 존재론-춤추듯 춤추지 않는>을 선보였다. 사실 연출가 동이향은 그간 극작가로서 연극작업을 시작했단 사실을 종종 잊게 할 만큼 감각적인 이미지를 통해 그 서사를 구축하는데 특별한 관심을 보여 왔다. 그런 그가 더욱 감각적이고 물질적이며 육체적인 세계 안으로의 탐험을 선언하듯 몸과 말로 빚어낸 존재론에 관한 공연적 글쓰기를 시도한다.
<지하철 존재론>은 ‘지하철이란 공간을 통해 본 세계와 인간에 관한 존재론적 탐구’라는 말로 풀어 설명될 수 있겠다. 동이향 연출은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것 같지만 그 이상한 공간에서 서로의 차이와 동질감을 끊임없이 나누는”1) 지하철 공간에 관심이 있었다고 밝히는데, 그것은 가장 일상적이고 중립적인 공간으로 다양한 세대, 계급, 취향을 가진 불특정한 사람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굳이 독일의 사회학자 게오르그 짐멜의 표현을 빌자면- 대도시의 전형적인 ‘축소판’이기 때문일 것이다. 공연은 지하철 공간 속 존재와 현상들을 다양한 매체의 감각하는 방식으로 포착한다. 70대 후반의 남자, 50대 초반의 여자, 40대 후반의 남자 등 세대와 성별만으로 간략하게 기호화된 배우들은 각자의 신체적 상태를 전시하는 행동을 수행하고, 무대 위에 놓인 오브제(화분, 옷, 옷걸이, 티비 등)와 접촉하기도 한다. 또한, 오브제를 다양한 맥락으로 확장해 활용하며, 사라졌다 등장하고 눕거나 기대거나 끌거나 문지르는 등 각자의 방식으로 행위를 확장시키며 공간을 점유해 나간다.
이러한 배우들의 행위 위로 “서고 앉고 걷고 눕고 멈추고 걷고 서고”와 같이 동사들을 죽 나열하는 기계음의 내레이션과 구형 컴퓨터에서나 쓰였을 법한 폰트의 글자가 티비 화면에 간헐적으로 등장하며 언어와 행위 사이에 균열을 일으킨다. 침묵의 상태에서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배우들의 행위, 움직임을 지시하나 그것과 자꾸만 어긋나고 이질감을 생산해내는 기계음의 내레이션, 글자 끝에서 계속해서 깜박이는 커서가 만들어내는 인위적 자극/불안한 신호, 기계적인 패턴으로 그려지는 소리와 소음, 강렬한 암전과 희미하게 번져가는 조명 등은 저마다의 발화를 펼치고 포개어내면서 공간에 파동과 움직임을 일으켜 나간다. 이러한 파편적인 몸짓과 이미지들은 어떤 의미를 해체한다기보다 그것을 그 자체로서 지각하게 만드는데, 즉, 몸, 사운드, 빛, 침묵, 미디어, 텍스트 등의 이미지 기호들은 관객들의 연상과 상상, 기억과 느낌, 경험 등과의 자유로운 결합을 통해 복수의 의미를 생성할 수 있는 기표들인 것이다.

“지하철 존재론”에 관해 쓰인 보고서 내용 중 일부가 발췌되어 티비 자막과 내레이션을 통해 서술된다. 그 보고서를 쓴 ‘나’가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그는 지하철에 탑승한 존재들을 때론 관조적인 시선으로 밋밋하고 건조하게, 때론 관음적인 시선을 장착하여 찰나적 순간이나 신체의 부분들까지 무척 디테일하게 서술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에게 눈길조차 줄 수 없는 분주함, 벗어날 수 없는 서로의 반경 안에서 몸을 부딪치지 않기 위해 잔뜩 애쓰는 긴장감, 애써 누군가의 신발이나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하는 불편함, 타인의 행위를 훑는 시선의 은밀함, 시선과 시선이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긴장감 등이 묘사된다. 지하철 속의 강렬한 무관심과 익명성, 소음의 압도에도 불구하고, 청각, 촉각, 후각, 시각 등 결코 침묵하지 않는 감각기관을 통해 지하철 살풍경에 담긴 여러 감정들이 예리하게 포착되는 것이다.

불편함, 불안함, 긴장감, 불쾌감, 경계심, 소외감, 고독감 등으로 가득한 지하철(대도시)의 존재들, 세계와의 불화를 경험하는 존재들이 결국 ‘세포분열’에 이르는 서사로 귀결되는 것은 존재론적 불안에서 기인하는 동요 때문일 것이다. 하여 인간의 육체는 변화(퇴화 혹은 진화?)를 일으키고, 종국에는 “외피뿐만 아니라 내부도 뼈로 이루어진 이상한 진화생물”2)인 물건-갑각류가 되어버린다. 이것은 핸드폰 화면에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힘도 쓰지 않음으로 촉각을 상실해서 생긴, 혹은 핸드폰 길 찾기에 익숙해져 버려 현실의 공간감을 낯설게 인지하는 시각의 부적응으로 생긴 퇴화 현상일까. 아니면 불안을 주입하는 외부환경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고 자신의 욕망과 욕구를 지켜내기 위한 일종의 진화된 현상일까. 인간 존재를 감정으로 환원하고, 감정을 다시 감각들로 조각내고 분해한 자리에서 맞닥트리게 되는 물건-갑각류의 이미지, 이것은 길들여져 버린 일상 속 지루함과 권태감을 웅변하듯 시종일관 무대 중앙에 놓여있던 누렇게 비쩍 메말라버린 식물의 -마치 아메바와 같은- 변형(변종)은 아닐까. 아... 이 파편적인 이미지들이 빚어내는 현실 속에서 너무나 익숙한 무감각으로 자리하고 있던 내 안의 불안과 권태, 공허와 고독의 파편이 불쑥 올라옴을 느꼈다면, 그것은 이 이미지들이 진실하게 느껴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일상을 초월해 버린 존재로서 물건-갑각류로 묘사되는) 이 지각 불가능한 이미지에 대한 폭력성(당혹감 또는 매혹?) 때문이었을까.

- 동이향, <지하철 존재론> 공연리플렛.
- 동이향, <지하철 존재론> 공연대본.
[사진제공: 극단 두]
지하철 존재론-춤추듯 춤추지 않는
- 일자
- 2019.10.23(수) ~ 10.26(토)
- 장소
- 이행성극장(마포구 망원동 57-369, B1)
- 구성/연출
- 동이향
- 무대
- 손호성
- 사운드
- 카입
- 영상/기술감독
- 김석기
- 의상
- 이소희, 임윤진
- 기획
- 유현진
- 조연출
- 노연주
- 출연
- 이은정, 노희석, 하치성, 이소희, 김석기, 임윤진, 하동국
- 제작
- 극단 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