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송곳 <입양인>
[작품리뷰]이산당한 자의 증언과 기억을 위한 연극
박다솔
171호
2019.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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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인, 이방인. 검정 글씨로 쓰인 두 글자가 연극 포스터의 흰 배경 위로 나란히 포개어져 있다. 연극 <입양인>은 1980년대에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되어 가학적인 아동학대와 파양, 노숙, 징역, 한국으로의 강제추방 등을 겪으며 혼란스러운 삶을 살게 된 ‘에릭’과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입양인, 이방인. 검정 글씨로 쓰인 두 글자가 연극 포스터의 흰 배경 위로 나란히 포개어져 있다. 연극 <입양인>은 1980년대에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되어 가학적인 아동학대와 파양, 노숙, 징역, 한국으로의 강제추방 등을 겪으며 혼란스러운 삶을 살게 된 ‘에릭’과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발음상의 아주 작은 차이만 있을 뿐인 입양인과 이방인이라는 두 단어는 그 어떤 표현보다도 에릭의 불안한 삶을, 그가 겪었고 또한 겪고 있는 정체성 분열의 상태를 잘 드러낸다. 무엇보다 이 이야기는 한국 사회가 책임을 외면해온, 잘 알려지지 않은 해외입양의 어두운 이면을 입양인/이방인의 시선으로, 고통의 언어로 증언해낸다.

연극이 시작되기 전, 무대의 오른편에 설치된 스크린에는 이 연극이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창작된 것임을 알리는 문구가 나타난다. 첫 장면은 극 중 인물인 ‘에릭’이 인터뷰에 응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저는 에릭 밀러입니다. 아니, 존 도우라는 이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제 진짜 이름은 저도 찾고 있어요. 지금도, 계속, 평생을 그래왔죠.”
그의 이름이 여러 개인 까닭은, 그가 자신의 진짜 이름을 서른 살이 넘은 지금까지도 찾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가 입양된 순간부터 이 인터뷰에 응하게 된 순간까지도 자신의 정체성이 타인에 의해, 국가에 의해 계속해서 부인당했기 때문이다.
그의 기억은 그가 처음으로 이름을 잃어버리게 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8년, 에릭은 아동학대 및 가족폭력 혐의로 기소된 양아버지 존 밀러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게 된다. 그는 누구보다 그 스스로 아동학대의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입양 형제들을 배신하면서까지 거짓 증언을 하여 양아버지로부터 자신의 존엄성을, 권리를 회복하고자 한다. 그러나 존 밀러는 에릭을 파양하고 그를 거리로 내쫓는 것으로 그의 간절함에 응답한다. 존 밀러의 무죄를 주장하던 변호사의 최종 변론 중 단호한 한 문장이 끝없는 메아리처럼 연신 귓가를 울려대기 시작한 것도 아마 이 순간부터였을 것이다. “입양이란 무엇입니까? 사랑이란, 또 자비란 무엇입니까.” 극 중 이 질문이 처음으로 향하는 곳은 재판석과 배심원석이었지만, 에릭이 자신의 이름을, 존재를 잃어갈 때마다 이 질문은 점점 더 거세게 울려왔다.
그의 기억은 그가 처음으로 이름을 잃어버리게 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8년, 에릭은 아동학대 및 가족폭력 혐의로 기소된 양아버지 존 밀러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게 된다. 그는 누구보다 그 스스로 아동학대의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입양 형제들을 배신하면서까지 거짓 증언을 하여 양아버지로부터 자신의 존엄성을, 권리를 회복하고자 한다. 그러나 존 밀러는 에릭을 파양하고 그를 거리로 내쫓는 것으로 그의 간절함에 응답한다. 존 밀러의 무죄를 주장하던 변호사의 최종 변론 중 단호한 한 문장이 끝없는 메아리처럼 연신 귓가를 울려대기 시작한 것도 아마 이 순간부터였을 것이다. “입양이란 무엇입니까? 사랑이란, 또 자비란 무엇입니까.” 극 중 이 질문이 처음으로 향하는 곳은 재판석과 배심원석이었지만, 에릭이 자신의 이름을, 존재를 잃어갈 때마다 이 질문은 점점 더 거세게 울려왔다.

극 중 에릭이 자신의 이름을, 자신의 정체성을 잃는 순간은 이후로도 여러 번 반복된다. 존 밀러의 집에서 쫓겨나 노숙자 신세가 되었을 때 그는 노숙인들 사이에서 생김새와 출신이 다르다는 이유로 ‘Mr.Kimchi'로 낙인되었고, 존 도우라는 새 이름으로 살아가던 때에는 스무 살 이전에 미국 시민권이 신청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미국 정부로부터 한국으로 강제추방을 명령받는다. 해외입양 시스템의 허점으로 인해 시민권이 없는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추방되어 온 한국에서도 그는 한국어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는, 한국인의 얼굴을 한 이방인으로의 삶을 이어 나간다. ‘진짜 이름’, ‘진짜 엄마’, 그 스스로 자신의 태초를 알지도, 기억하지도 못하고, 그의 삶을 기억하여 자신의 존재를 증언해 줄 이 하나 없는, 어디에도 속할 곳 없는 이 세계에서, 버림받고도 또다시 추방당한 그는 영원한 이방인일 뿐이다.
재일교포 2세 작가 서경식은 그의 저서에서, 어떤 외부의 힘에 의해 이산당한 백성을 현대의 디아스포라라고 정의한다.1) 또한, 디아스포라라는 존재의 모습을 근대 특유의 역사적 소산이라고 분석하고 있다.2) 자의가 아닌 어떤 역사적·문화적 사건들로 인해, 타의로 인해 이산당한 자, 그리하여 역사의 폭력을 몸으로 겪어낸 자, 그의 삶이 역사의 증언이 되는 자, 그것이 에릭의 기원인 것이다.
에릭의 머릿속에 뒤엉켜 있는 이 디아스포라의 기억들, 이산의 역사는 시간의 순서를 따라가지도, 촘촘하게 재현되지도 않는다. 그의 유년 시절은 존 밀러의 재판으로 압축되고, 파양 후의 노숙 생활은 그가 미스터 김치로 명명된 사건만을 보여준다. 이후, 이야기는 그가 한국으로 강제추방 된 전후로 그의 이름을, 권리를 찾기 위해, 그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분투하는 순간들에 집중된다.
재일교포 2세 작가 서경식은 그의 저서에서, 어떤 외부의 힘에 의해 이산당한 백성을 현대의 디아스포라라고 정의한다.1) 또한, 디아스포라라는 존재의 모습을 근대 특유의 역사적 소산이라고 분석하고 있다.2) 자의가 아닌 어떤 역사적·문화적 사건들로 인해, 타의로 인해 이산당한 자, 그리하여 역사의 폭력을 몸으로 겪어낸 자, 그의 삶이 역사의 증언이 되는 자, 그것이 에릭의 기원인 것이다.
에릭의 머릿속에 뒤엉켜 있는 이 디아스포라의 기억들, 이산의 역사는 시간의 순서를 따라가지도, 촘촘하게 재현되지도 않는다. 그의 유년 시절은 존 밀러의 재판으로 압축되고, 파양 후의 노숙 생활은 그가 미스터 김치로 명명된 사건만을 보여준다. 이후, 이야기는 그가 한국으로 강제추방 된 전후로 그의 이름을, 권리를 찾기 위해, 그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분투하는 순간들에 집중된다.

그리고 에릭의 주변에는 또 다른 디아스포라들이 있다. 에릭의 유일한 친구인 필립은 에릭과 마찬가지로 파양의 경험이 있고, 그 또한 이름을 잃었다. 에릭에 비해 필립은 낙관적인 인물이다. 그는 에릭보다 앞서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노력했고, 그 어떤 순간에도 (그것이 자조적이라 하더라도) 유머를 잃지 않았다. 그러나 강제추방 명령이 떨어지던 순간,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에릭 앞에 하얀 재가 되어 나타난다. 그의 낙관도 존재의 부정 앞에선 쉽게 허물어져 버리는 모래성에 불과했다.
반면, 에릭의 양누이인 마리아는 살아서도 죽은 것과 다름없는 삶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마리아는 에릭과 헤어진 이후 지난 10년을 학대의 과거가 오늘이자 곧 내일인 삶, 자유의지를 잃은 생동감 없는 삶을 살아왔다. 성숙한 여인의 몸으로 헬로키티가 프린트된 낡은 잠옷을 입고 “내게 선택권은 없어. 미래는 정해져 있거든.”이라고 말하는 마리아의 초점 잃은 표정에서 분노마저 빼앗긴 텅 빈 공허함을 목격하게 된다. 살아서도 죽은 육신, 행위의 기쁨이 없는 현시는 죽음과 다름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두 사람의 상징적 죽음은 에릭이 자신의 삶을 증언하고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한 싸움을 해나갈 수 있도록 만드는 동력이 되었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프리모 레비는 살아남은 자(생존자)보다 가라앉은 자(사망자)들이 완전한 증인3)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라앉은 자들을 구조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증언한 사람이었다. 에릭은 작품의 첫 장면인 인터뷰에서 자신의 삶이 마블영화처럼 비춰지는 것도 싫고, 자신은 입양인의 대표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인터뷰를 해야 했다고 말한다. 그것은 비단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내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자신보다 앞서 가라앉은 자들을 구조하기 위함일 것이다.
반면, 에릭의 양누이인 마리아는 살아서도 죽은 것과 다름없는 삶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마리아는 에릭과 헤어진 이후 지난 10년을 학대의 과거가 오늘이자 곧 내일인 삶, 자유의지를 잃은 생동감 없는 삶을 살아왔다. 성숙한 여인의 몸으로 헬로키티가 프린트된 낡은 잠옷을 입고 “내게 선택권은 없어. 미래는 정해져 있거든.”이라고 말하는 마리아의 초점 잃은 표정에서 분노마저 빼앗긴 텅 빈 공허함을 목격하게 된다. 살아서도 죽은 육신, 행위의 기쁨이 없는 현시는 죽음과 다름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두 사람의 상징적 죽음은 에릭이 자신의 삶을 증언하고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한 싸움을 해나갈 수 있도록 만드는 동력이 되었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프리모 레비는 살아남은 자(생존자)보다 가라앉은 자(사망자)들이 완전한 증인3)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라앉은 자들을 구조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증언한 사람이었다. 에릭은 작품의 첫 장면인 인터뷰에서 자신의 삶이 마블영화처럼 비춰지는 것도 싫고, 자신은 입양인의 대표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인터뷰를 해야 했다고 말한다. 그것은 비단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내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자신보다 앞서 가라앉은 자들을 구조하기 위함일 것이다.

공연의 마지막 장면은, 30년 전 에릭을 한국에서 미국으로 에스코트했던 김영호와의 만남과 미국 시민권 획득을 위한 항소심 재판 장면이 교차하며 나타난다. 23년 전, 에릭의 양아버지 존 밀러를 변호했던 변호사는 이번에는 에릭의 편에 서서 이렇게 말한다.
“입양이란 무엇입니까. 사랑이란, 또 자비란 무엇입니까. (중략) 한 아이의 미래는, 한 아이의 인생은, 국가도 법도, 우리도 아닌, 그 자신이 결정해야 하는 겁니다.”
이 변론을 끝으로 그의 존재를 증명해 줄 수 있는 양누이 마리아가 법정에 들어서며 장면은 끝이 난다. 에릭은 결국 재판에서 승소하지 못한다. 변호사 루씨는 미국을 대신해 그에게 사과를 건네고, 30년 전 300달러를 받기 위해 그를 미국까지 에스코트했던 김영호도 에릭에게 진심어린 사죄를 구한다. 에릭은 이 두 사람의 사과를 받아들이지만, 이로써 그의 증언이 끝이 난 것은 아니다. 결말은 평화로운 화해를 전망하지 않는다. 사죄나 실질적인 문제해결은 아직 국가 단위에서 이뤄지지 않았고, 국민 개개인의 책임 의식으로만 전가된 것이다.
극이 완전히 끝난 뒤, 이 작품이 창작된 배경인 실재 인물 아담 크랩서씨의 인터뷰 영상이 무대 위에 상영된다. 그는 이 극이 하나의 연극 작품으로만 이해될 것이 아니라, 이를 시작으로 관객들이 입양인들의 역사에, 그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이를 이해하기를 소망했다.
극이 완전히 끝난 뒤, 이 작품이 창작된 배경인 실재 인물 아담 크랩서씨의 인터뷰 영상이 무대 위에 상영된다. 그는 이 극이 하나의 연극 작품으로만 이해될 것이 아니라, 이를 시작으로 관객들이 입양인들의 역사에, 그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이를 이해하기를 소망했다.

신파적 요소가 다분하고 교훈적 메시지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데도, 극은 관객들에게 과도한 감정을 유발하지도, 스스로 그 감정에 침수당하지도 않았다. 입양인들의 언어사용의 분열이 나타나도록 의도한 영어와 한국어의 대사 혼용이 우스꽝스럽게 보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이러한 효과들이 극에 적절하게 몰입될 수 있도록 각 요소들이 잘 배열되어 있다는 인상마저 받았다.
집으로 돌아와 해외입양과 관련된 자료들을 한동안 들여다보았다. 한국은 OECD가입 국가 중 유일한 해외입양을 보내는 나라이며, 해외 입양법의 허술함으로 인해 여전히 미국으로 입양된 한국 입양아 중 20%에 가까운 이들이 시민권 미취득자로 집계된다고 한다. 한국으로 추방당한 한국인 입양인 중 한 사람은 스스로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했다.
오늘날의 연극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덴마크의 작가 아이작 디네센(Isak Dinesen)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모든 슬픔은, 말로 옮겨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에 관해 이야기를 한다면, 참을 수 있다.” 한 시절의 슬픔이 이야기가 되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이야기를 기억하는 것이다. 기억함으로써 그들의 삶을 증언하고, 그들의 존엄을 다시 세우는 것이다. 연극이 한 세계를 온전히 드러내 보이는 일이라면, 나는 기꺼이 극장의 한 켠에서 그 세계를 목도하고 오래도록 기억하며 이야기하는 사람이고 싶다.
집으로 돌아와 해외입양과 관련된 자료들을 한동안 들여다보았다. 한국은 OECD가입 국가 중 유일한 해외입양을 보내는 나라이며, 해외 입양법의 허술함으로 인해 여전히 미국으로 입양된 한국 입양아 중 20%에 가까운 이들이 시민권 미취득자로 집계된다고 한다. 한국으로 추방당한 한국인 입양인 중 한 사람은 스스로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했다.
오늘날의 연극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덴마크의 작가 아이작 디네센(Isak Dinesen)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모든 슬픔은, 말로 옮겨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에 관해 이야기를 한다면, 참을 수 있다.” 한 시절의 슬픔이 이야기가 되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이야기를 기억하는 것이다. 기억함으로써 그들의 삶을 증언하고, 그들의 존엄을 다시 세우는 것이다. 연극이 한 세계를 온전히 드러내 보이는 일이라면, 나는 기꺼이 극장의 한 켠에서 그 세계를 목도하고 오래도록 기억하며 이야기하는 사람이고 싶다.
- 서경식, 「디아스포라의 눈」, 한겨레 출판, 2012년.
- 서경식, 「디아스포라 기행」, 돌베개, 2006년.
- 프리모 레비,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돌베개, 2014.
[사진제공: 극단 송곳]
입양인
- 일자
- 2019.10.24.(목) ~ 11.03(일)
- 장소
- 나온씨어터
- 작
- 이왕혁
- 연출
- 심재욱
- 조연출
- 이정연
- 무대
- 유다미
- 조명
- 강상민
- 의상/그래픽
- 신은혜
- 분장
- 이윤아
- 홍보
- 백요선
-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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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 채우식
- 출연
- 박승우, 이호준, 현재은, 강수진, 박진현, 김현중, 유지안, 존 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