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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작은신화 <신입사원>

[작품리뷰]내일의 먹이가 된 오늘

김상옥
173호 2019.12.05
자동차 기업 면접장에 선 한 남자, 새로운 사회로 진입하려는 기섭에게 던져진 질문은 ‘행복한가’이다. 3면을 객석으로 두른 소극장 무대에서 면접관들의 자리는 관객과 같은 시선의 방향으로 놓여있다. 그중 한 면접관이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뽑지 않겠다고 말한다. 행복해야 취직이 된다는 사실은, 취직을 해야 행복하다는 기섭의 생각과 어긋난다.......
자동차 기업 면접장에 선 한 남자, 새로운 사회로 진입하려는 기섭에게 던져진 질문은 ‘행복한가’이다. 3면을 객석으로 두른 소극장 무대에서 면접관들의 자리는 관객과 같은 시선의 방향으로 놓여있다. 그중 한 면접관이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뽑지 않겠다고 말한다. 행복해야 취직이 된다는 사실은, 취직을 해야 행복하다는 기섭의 생각과 어긋난다. 이 뒤바뀐 인과관계 앞에서 기섭의 학력, 학점, 스펙 같은 것은 쓸모없어진다. 그가 첫 장면에서 무대를 가로지르며 앞구르기와 발차기를 했던 동작들만큼이나 무의미한 것이다.
<신입사원>은 인과율을 따르는 결정론적 세계관을 계속해서 부정해나간다. 주사위 놀이를 하는 면접관들 앞에서 기섭의 합격은 불확실한 확률의 영역에 놓인다. 첫 번째 면접 끝자락에 그가 받은 질문은 ‘면접관 중 누구에게 차를 팔 것인가’이다. 합격을 좌지우지하는 이 질문은 모바일 기업, 패션 잡지사 등 다른 대기업 면접에서도 변형되어 반복된다. 누가 자사 제품이 아닌 애플을 쓰는 사람일까? 누가 커밍아웃을 한 동성애자일까? 면접은 “도박”이 된다. 기섭은 나름의 주관적인 논리로 성격과 환경을 추측해 한 명을 지목한다. 그때마다 면접관들은 우연의 틀 안에서 예측을 시도하는 그를 비웃기라도 하듯 공간을 떠나버린다. 모든 게 불확실한 이 세계에서 기섭은 어떤 합리적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기섭은 행복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의 현재는 미래의 먹이가 되었다. 취미, 연애, 결혼과 같이 지금 욕망하는 것들은 나중으로 미뤄진다. 기섭이 마주하는 질문은 행복, 정의, 과거에 관한 것이지만 그가 사는 세계는 불행, 불의, 닿지 않은 내일로 가득 차 있다. 공황장애를 겪는 백수 청년은 또 다른 기섭의 현재, 혹은 별로 나아지지 않을 기섭의 미래이다. 둘의 상관성은 길고양이에게 천하장사 소시지를 주었고, 다음부터는 그 길을 돌아서 갔다는 공통적인 일화를 통해 드러난다. 이 고백은 윤리적인 삶마저 취직이라는 미래 이후로 미뤄버린 그(들)의 기억 중 일부이다. 면접관이 던지는 주사위와 잇따르는 질문들은 기섭의 시선을 외부에서 내부로, 미래에서 과거로 돌려놓는다. 개그맨 공채 시험에서 받은 웃음에 관한 질문은 눈물과 죽음, 그리고 어느 소녀의 이미지로 이어진다.
기섭은 자신을 비극적이지만 행복하고자하는 인간이라고 말한다. ‘나’를 향한 성찰은 “슬픔에서 건져 올린” 타자의 “얼굴”로 옮겨간다. 무대 오른편에 놓인 평상 뒤에는 허물어진 담벼락이 있다. 과거 기섭은 보호막이 무너진 그 공간에서 걷지 못하는 소녀를 만났다. 발을 다쳤고, 아빠를 닮은 한쪽 눈을 뽑고 싶고, 친족 성폭력에 시달리는 아이. 그는 자신을 외계인의 이름 같은 ‘츄파춥스’라 소개하며,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규정한다. 소녀는 비극적 인간의 원형인 오이디푸스가 가학적으로 변주된 존재처럼 보인다.
기섭은 그때 도와달라는 소녀의 절규를 회피했다. 어서 가해자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라고 타일렀다. ‘츄파춥스’는 겪고 있는 고통을 분명하게 말했지만, 그 말이 마치 외계어인 것 마냥 외면받는다. 그는 안에서 보호받지 못해 바깥을 떠돈다. 그러나 되돌아갈 곳은 자신을 “아프게”하는 집뿐이다. 우연의 세계에서 미세한 변화는 큰 변화를 불러오기도 한다. 이 우연한 만남에서 기섭이 내린 선택은 소녀를 다시 죽음과도 같은 절망으로 내몰았을 것이다. 절뚝거리던 소녀는 이후에도 삶의 족적을 남길 수 있었을까. 평상 앞에 있는 발자국 두 쌍과 면접장 기섭의 자리 앞에 찍힌 발자국 한 쌍. 오른편 과거의 공간에서 중앙의 현재 공간으로 오기까지, 한 사람의 자취는 사라져있다. 기섭은 4차 면접인 오디션에서 영화가 현실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플로리스트 인영과 함께 죽어도 되살아날 수 있는 VR게임을 한다. 인영은 지친 현실을 위로하는 ‘꽃’ 같은 여성이자, 면접장에서 대답만 해야 했던 기섭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대상이었다. 그런데 원래는 플로리스트가 아닌 동물원 사육사가 되고 싶었고, 증강현실 상에선 잔인하게 좀비를 죽이며 식물이 아닌 동물의 이미지로 전화한다. 그는 기섭을 능가하는 거친 좀비 사냥꾼이 되어 가상현실 영역에서마저 달아나버린다. 인영은 기섭의 데이트 신청을 ‘나중’으로 미뤄왔다. 이 유예된 행복은 기섭의 통제를 받지 않고 흔적 없이 사라진다.
인영을 구하려던 기섭은 과거 자신이 구해내지 못한 소녀와 조우한다. 그가 이 죄의식으로부터 스스로를 구원하는 방법은 가상현실에서 또 다른 평행세계를 발견하는 것이다. ‘츄파춥스’는 여전히 교복을 입고 말없이 과거에 머물러있지만, 기섭은 행정학과 대학생이 된 소녀의 현재와 대화하고자 한다. 하지만 소녀는 상호작용하지 않는 각각의 세계에서 두 갈래로 존재하는 듯 보인다. “여긴, 지옥이야.” 결국 두 사람은 ‘여기’와 ‘거기’로 나뉘는, 서로 다른 세상에 있음이 드러난다. 주인공은 마지막 개그맨 공채시험에 이르러 불합격을 자처한다. 합격과 행복을 갈망하는 그가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은 불합격을 선택하는 것뿐이다. 기섭은 자신이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임을 깨닫고 윤리적인 각성을 거친다.
미국의 만화 스토리 작가 게일 시몬은 남성 인물의 각성과 성장을 위해 강간당하거나 살해되는 여성 캐릭터를 “냉장고 속의 여자(Women in refrigerator)”라고 일컬었다. <신입사원>도 이러한 클리셰를 포함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흔히 청년의 얼굴을 남성으로 상상하듯이, 이 작품 또한 기섭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청년의 현실을 건드린다. 다만 ‘츄파춥스’가 온전히 서사 전개의 재료로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이렇듯 취업 시장에 놓인 남성이 마이너리티 자의식에만 빠져있지 않고, 타자의 얼굴로 시선을 돌린다는 점에서 연극 <신입사원>은 또 다른 가능성을 짚어볼 수 있다.

[사진 제공: 극단 작은신화 ⓒ유아라]

신입사원 - 2019 우리연극만들기 그 열 세 번째
일자
2019.11.21(목) ~ 12.01(일)
장소
스튜디오76
작
황은화
연출
김정민
음악
이승호
조명
박유진
조연출
최신희
출연
장영철, 송윤, 김문식, 성동한, 고병택, 이서연, 김성준 , 박현주, 박다혜
극단 작은신화
관련정보
http://www.playticket.co.kr/ticketDetail.html?idx=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