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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짝 프로젝트 <젊은 연극 : 가제>

[작품리뷰]<젊은 연극 : 가제>를 보러 갔다가 떠올린 '젊은 연극의 과제'

최서윤
173호 2019.12.05
‘젊은 연극’이란 무엇일까? 쿵짝 프로젝트가 혜화동 1번지에서 공연한 '젊은 연극: 가제'를 보기 전,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랐다. ‘기성’과 다른 것을 보여주려 애쓰는, 그래서 어떻게든 새로운 형식과 화법을 실험하는 장을 말하는 걸까?....
‘젊은 연극’이란 무엇일까? 쿵짝 프로젝트가 혜화동 1번지에서 공연한 <젊은 연극: 가제>를 보기 전,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랐다. ‘기성’과 다른 것을 보여주려 애쓰는, 그래서 어떻게든 새로운 형식과 화법을 실험하는 장을 말하는 걸까? 그 바람에 연극계 바깥의 사람이 보기 난해하거나 지루하지는 않을까? 혹은 이 모든 섣부른 기대를 지르밟고 가뿐히 뛰어넘는 작품이 되어줄까?
백문이 불여일견. 직접 본 <젊은 연극: 가제>는 앞서 생각한 바에 반쯤 벗어나 있었다. (반쯤은 예상과 다르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극은 두 배우가 등장해 각각 독일어와 영어로 관객을 맞이하며 시작된다. 한국의 청년들이 제 2언어에 능통해야만 사회적으로 ‘쓸모’ 있어지는 현실을 꼬집는 것으로 보였다. 의도는 알겠다만, 그렇게까지 길 필요가 있었을까…. 한참을 외국어로 말하던 두 배우는 제4의 벽을 넘나든 뒤, 다시 무대로 돌아가 누군가를 기다리며 대본 연습을 한다. 상징 가득한 추상적인 대사가 잔뜩 오고가는 시간. 이때 내 표정은 꽤나 어두워졌을 것이다. 앞으로 연극이 계속 이런 식이면 어쩌지….

“나는 갈매기에요. 아니, 배우에요.” 세 번째 배우가 등장하면서부터 극에 몰입할 수 있었다. 두 배우에게 젊은 연극에 대해 한 수 배우려 찾아왔다는 그는, 별안간 제4의 벽을 뚫고 배우 ‘본체’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39세인 자신의 마음은 아직 젊고 새로운 것에 열려있는데, 더는 사회가 규정한 젊음에 속하지 못할 것 같아 복잡한 심정이라는 것. 연극만 하며 지내온 젊은 날인데, 남은 것은 뚜렷이 손에 잡히지 않고, 앞날은 흐릿해 불안하다는 것. 게다가 예전에는 배우가 연기만 잘하면 됐는데 이제는 다재다능하기까지 해야 한단다. “지금 이 독백도 작가가 요구해서 직접 썼어요”라는 배우의 한숨 섞인 말에 관객들은 크게 웃었다. 나도 웃었다. 배우의 능청스러운 태도가 마음을 말랑거리게 했다. 이 배우의 이름은 한혜진이고, 극 중 맡은 배역은 자기 자신이다. 때때로 다른 자아가 빙의할 때도 있지만, 앞서 등장한 두 배우 백소정과 양대은 역시 각각 자신을 자기 이름으로 연기했다. (덕분에 배우들의 이름을 오래 기억할 것 같아 좋다)
어두웠던 무대가 다시 밝아지자 혜진이 왼손에 청기, 오른손에 백기를 들고 엉거주춤 서 있다. 소정과 대은은 각각 혜진의 왼쪽과 오른쪽 뒤에 뒷짐 지고 서서 ‘조련’을 시작한다. 마치 기성세대가 빙의라도 한 것처럼. “청기 들어”, “백기 들지 마”, “백기 들지 말고 청기 들지 말고 백기 들어”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갔다 나 갖다가 너는 밤낮 장난하나? 어쩌라는 건지 모호하고 자주 바뀌는 지침, ‘젊음’에 대한 기성세대의 벅찬 요구를 풍자한 이 장면은 웃기면서도 슬프다. 너무나 적확한 메타포이기에.

기성세대에 대한 매서운 풍자는 점차 연극계를 향해 집중된다. 아방가르드 하면서도 대중을 포용하는 작품, 실험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연극미학 등, ‘젊은 연극’은 함께 성취하기 어려운 두 가지 속성을 동시에 갖추기를 요구받는다. 두 가지를 병렬해 놓으면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형용모순이 될 지경임에도. 이토록 실현 불가능한 것도 ‘스피릿’이 있으면 다 할 수 있다며, 기성세대에 빙의한 배우들은 ‘제사’의 벽에 절을 올린다. 제4의 벽에 제사 지내는 것부터 유교 꼰대 냄새가 솔솔 났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들이 말하는 스피릿은 “나 때는 돈 없어도 열정으로 다 했는데 요즘 젊은 애들은”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었다. Latte is a horse.
연극계를 향한 풍자는 더욱 구체화된다. 이들 극단이 연극 관련 공모에 탈락하며 받은 심사평을 전시하며 심사위원을 놀리는 식. ‘양손 프로젝트’나 ‘크리에이티브 VaQi’의 사례를 참고하라는 내용의 심사평을 비춘 뒤, 배우들은 곧장 양손 프로젝트와 크리에이티브 VaQi의 스타일을 과장해 패러디한다. 마치 “이렇게요? 이렇게 하라는 것 맞죠?”라고 깐족대며 묻는 것 같다. 이어 크리에이티브 VaQi의 성수연 배우와 젊은 연극의 시조격인 그린피그 윤한솔 연출가를 찾아가 촬영한 인터뷰를 벽에 영사하고, 영상 속 연출가의 입에서 고선웅 연출가가 언급되자 “고선웅? 마방진?”을 입을 모아 외치고는 극공작소 마방진의 연기 스타일을 천연덕스럽게 모사한다.

여담이지만, 이때 나는 스스로 ‘연극 무식자’임을 절감했다. 연극계에서는 매우 유명한 것으로 보이는, 그래서 대부분의 관객이 반가워하며 박장대소하는 양손프로젝트, 크리에이티브 VaQi, 극단 마방진을 잘 몰랐다. (그래도 체호프는 알아서 다행이다) 하지만 뭔지 몰라도 웃을 정도로 배우들의 희극 연기, 성공적.

교육 효과도 있었다. 요 몇 년 연극계의 트렌드는 이런 것이었나 보다 학습했고 집에 돌아와 유튜브에서 언급됐던 이름들을 찾아 복습했다. <젊은 연극:가제>가 효과적으로 레퍼런스를 활용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형식적으로 새로운 연극’이 <젊은 연극: 가제>의 지향이 아님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새로운 형식에 대한 기대 역시 억압일 수 있다는 것. 기대에 부합하려 애쓰는 짓, 더는 못 해먹겠다를 외치는 한바탕 난장이 창작의 의도였다는 것. 그 난장은 보기 즐겁고 통쾌했다.
그런데 기성세대 비웃기 한마당이 정리되고, 이것을 본 기성세대의 반응까지 예측해 보여준 뒤에도 연극이 끝나지 않는다. 가상의 시상식이 길게 이어진다. 클라이맥스는 벌써 지났고 이미 볼 거 다 본 기분인데, 별로 안 궁금한 에필로그를 너무 길게 보여주는 느낌이랄까? 상을 타 소감을 말하는 상황을 가정하며 배우 자신의 얘기를 펼치는데, 농담이라고 던지는 말이 웃기지 않았고, 배우가 별안간 흘리는 눈물에 공감할 수 없어 당황했다. 관객이 좇을 틈을 주지 않은 채 배우 본인의 감정에 급히 빠져버린 듯 보였고, 때문에 이전의 능청맞은 유쾌함이 퇴색되는 듯 느껴져 아쉬웠다. 잘 모르는 사람들의 이름도 여러 차례 등장했다. 오래 연극을 보아왔고 연극 하는 사람들을 많이 아는 연극계 ‘고인물’이었다면 뭔가 감동을 느꼈을지 모르지만, 수상 소감을 말하는 배우들로부터 느낀 것은 소외감이었다. 혹시 관객에게 소외감을 주는 연출도 연극계 트렌드이고 다 의도된 것인데 내가 무식해서 언짢았던 것일까? 어쨌든 ‘내 취향’은 아니었다.

<젊은 연극: 가제>는 기대 이상으로 웃기고 통렬했지만, ‘고인물 잔치’라는 감상을 주며 마무리됐다는 점이 아쉽다. 연극을 보기 전 우려했던 바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일 년에 연극을 서너 번 볼까말까 한 사람이 투정부리면 안 될 것 같다. 내가 창작자 입장이라도 자주 연극 보러 오고 연극을 꿈꾸며 사랑하는 고마운 사람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것 같거든. 다만 이를 위해 점점 깊고 좁게 파고들다 대중에게서 더욱 멀어지는 결과를 낳을까 우려된다. 물이 고이는 환경이 꼰대를 양산하고, 기성의 힘을 굳건히 다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연극계에 물이 들고나는 작은 구멍을 무수히 뚫는 것이 어쩌면 ‘젊은 연극’의 가장 앞선 과제 아닐까?

[사진 제공: 쿵짝 프로젝트 ⓒ박태양]

젊은연극: 가제 - 혜화동1번지 7기동인 2019가을페스티벌 '영콤마영(0,0)'
일자
2019.11.21(목) ~ 12.01(일)
장소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
쿵짝 프로젝트 공동창작, 구성/연출
임성현
드라마투르그
신효진
영상
이성직
의상
임누리
기술감독
김진우
출연
백소정, 양대은, 한혜진
관련정보
http://www.playticket.co.kr/ticketDetail.html?idx=9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