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검색

검색영역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 <빛나는>

[작품리뷰]무대와 삶의 경계를 넘어 빛나는 순간들

이보람_작가
174호 2019.12.19
‘자꾸 끼어드니까 대사 까먹었잖아!’ 한 배우가 대사를 까먹은 듯 띄엄띄엄 말을 하자 불안했던 다른 배우가 계속 옆에서 추임새를 넣어줬는데, 그것이 오히려 흐름을 방해한 듯, 결국 그 배우는 대사를 완전히 까먹고 말았다.....
‘자꾸 끼어드니까 대사 까먹었잖아!’
한 배우가 대사를 까먹은 듯 띄엄띄엄 말을 하자 불안했던 다른 배우가 계속 옆에서 추임새를 넣어줬는데, 그것이 오히려 흐름을 방해한 듯, 결국 그 배우는 대사를 완전히 까먹고 말았다. 저 말은 대사를 까먹은 배우가 추임새를 넣은 배우에게 외친 말이다. 관객들은 이 절박하고도 태연한 말에 웃음이 날 수밖에 없었다.

‘핸드폰을 버려!’
몰래 핑클 팬미팅을 보러 간 주인공들에게 끈질기게 재활원 선생님이 전화를 걸 때, 내 옆자리에 앉은 관객이 무대를 향해 외친 말이다. 덧붙여 그분은 시설 선생님을 향해서도, ‘위치 추적을 왜 하고 지랄이야?!’ 못난 남편 역할을 한 배우에게도 ‘개새끼!!’ 라고 하셨고, 그 말에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했다.

‘여러분, 오늘 OOO에서 손님이 오셨어요, 인사해주세요!’
내가 보러 간 날 지방의 장애인 단체에서 버스를 대절해 공연을 보러 온 모양이었다. 방금 전 까지 멋지게 대사를 하던 배우 분께서 커튼콜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어느새 호스트가 되어 관객과 관객을 인사시켜주고 그들의 단체를 설명하고 소개하는 훌륭한 사회자가 되어 있었다.
내가 처음 장애인을 위한, 혹은 장애인과 함께 하는 연극을 시작한 계기는 친한 친구가 함께하자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후로 8년이 되는 시간 동안 꾸준히 이 작업을 했던 이유는 이러한 순간들, 그러니까 현실이 무대를 압도하는 순간, 우리 개개인의 삶이 무대 위로 올라가는 순간들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창작자들이 아무리 좋은 공연을 만들어도, 결국 공연을 최종적으로 완성하는 것은 관객의 몫이라는 것을, 그리고 상상이라는 것은 현실과 제대로 살을 맞닿고 있어야만 진정으로 의미가 있다는 것도 장애인 연극을 하면서 배운 것들이다.

극단 춤추는허리의 2019년 정기공연 <빛나는>은 그런 의미에서 즐거운 경험이었다. 대사를 통째로 잊어버려도, 문득문득 배우가 아닌 진짜 본인의 말이 튀어나와도, 관객이 배우를 향해 말을 걸어도, 그 모든 것이 이 연극을 방해하는 단점이 아닌,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장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관객보다는 이 연극을 만드는 창작진의 태도에서 나온 것일 거라 생각한다. 상대 배우의 실수를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무대로 들어오는 관객의 말에 오히려 호응하는 배우들의 모습에서 나는 마치 그들의 집에 초대받은 손님처럼 느껴져서 한결 편해졌다. (호스트가 당당할수록 손님은 편안한 법이다!) 또한, 때로 완성도와 예술성(?)에 매달려서 정작 가장 중요한 관객과의 소통에 소홀했던 것은 아닌지, 나 역시 나의 작업 방식에 대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됐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빛나는>의 소재인 ‘탈시설’은 아주 중요하고 절박한 주제인데, 그러한 주제에 대한 조금 더 깊은 이야기들이 보고 싶었던 나로서는 아무래도 아쉬웠다. 또한 이들의 이야기가 조금 더 연극적인 방식으로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지점도 꽤 보였다. 기왕 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연극이라는 형식으로 풀어내기로 했다면 연극적인 언어와 기술들을 더 적극적으로 차용할 수 있지 않았을까. 우리의 일상과 삶을 더 잘 보게 하기 위해선 때론 더 견고하고 매력적인 허구의 세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잊지마, 내 목소리’
공연의 마지막이자, 가장 주요한 대사였던 것은 결국 ‘내 목소리를 내자’였다. 나는 이미 무대에선 배우들의 모습에서 그 메시지를 듣고 있었다. 희곡이 있고 대사가 있었지만, 그들이 뱉어내는 말과 몸짓들은 정말로 온전하게 그들 자신의 것이었다. 무대에 있는 그들의 모습이 아주 단단하고 큰 나무처럼 보여서 그저 가만히 보고 있는 것 만으로도 참 좋았고, 한편으론 저런 모습으로 저곳에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견뎠을지 알 것 같아서, 마음이 뭉클했다. 아무쪼록 그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잊지 않기를, 그리고 그 목소리가 더 높고 멀리 퍼져나 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사진 제공: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

빛나는
일자
2019.11.28(목) ~ 12.01(일)
장소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이음센터 5층 이음아트홀
출연
서지원, 김미진, 조화영, 최혜미, 김아영, 김상미
작
경민선
연출
이진희, 진성선
조명
강상민
무대/소품/의상
강정화
음악
호늘바당 포스터 이은정
사진
전광훈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
관련정보
https://wde.or.kr/2019%EB%85%84-%EA%B7%B9%EB%8B%A8-%EC%B6%A4%EC%B6%94%EB%8A%94%ED%97%88%EB%A6%AC-%EA%B3%B5%EC%97%B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