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ch <핑크빛은 말이지 사랑이라는 따스한 느낌이야>
[작품리뷰]마지막 춤은 모두 함께
권혜린
174호
2019.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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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긴 제목의 '핑크빛은 말이지 사랑이라는 따스한 느낌이야'는 신촌공원(현 창천문화공원)이라는 장소에 얽힌 10대 퀴어들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아니, 이렇게 단정적이고 안일한 한 줄로 이 작품의 성격을 고정하고 싶지 않다. 이 작품은 빛과 춤과 목소리와 흐름을 통해 사랑을 이야기한다. 방금 나열한 단어들이 추상적이고 모호해 보이지...
다소 긴 제목의 <핑크빛은 말이지 사랑이라는 따스한 느낌이야>는 신촌공원(현 창천문화공원)이라는 장소에 얽힌 10대 퀴어들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아니, 이렇게 단정적이고 안일한 한 줄로 이 작품의 성격을 고정하고 싶지 않다. 이 작품은 빛과 춤과 목소리와 흐름을 통해 사랑을 이야기한다. 방금 나열한 단어들이 추상적이고 모호해 보이지만 그만큼 무규정적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경계 없이 흐려진 핑크빛의 포스터처럼 이 작품은 일관된 서사 없이 분위기 연극처럼 느낌을 전달한다. 물론 하나의 구심점으로서 ‘신촌공원’이라는 장소가 있고, 그 안에서 얽히는 관계들과 감정들이 펼쳐진다. 하지만 극은 단선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나아가 마지막에 창천문화공원으로 모두 함께 이동하는 이동형 연극으로서 행렬이라는 흐름은 자취를 직접 짚고 간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무도회에 초대받은 이들이 무도회에 가는 과정으로서 마지막에 모두 함께 춤을 추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주인공 1, 빛
작품에서 빛은 또 하나의 주인공이다. ‘0장 프롤로그’로 극이 시작하면 무대에 깔린 투명한 풍선들이 비눗방울처럼 빛난다. 빨강, 파랑, 노랑 등 여러 색깔을 지닌 빛들은 개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빛은 조명 자체를 주인공으로 전이한다. ‘1장 자기소개’에서 오른쪽 모서리에서 시작한 조명은 왼쪽에서 등장하는 배우와 균형을 이룬다. 배우는 극장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고 하면서 극장 문을 잠가 시간이 충분하다며 농담을 던지기도 하는데, 높은 곳에 있는 배우와 달리 벽을 타고 이동하는 조명은 시선을 분산되게 한다.
일반적으로 자기소개란 자신을 ‘특별하게’ 보이도록 특별한 점을 이야기하는 자리이지만 대부분 평범한 말들의 나열에 그치게 된다. 이렇게 거의 실패의 경험으로 끝나는 자기소개는 뒤집어 말하면 평범한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주어지는 기회라고 할 수 있다. 배우도 계속해서 요구받는 자기소개에서 돌출되는 오해들 때문에 자기소개를 그만둘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특별함을 벗어나 특이함으로 오해하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평범함을 뚜렷이 조명하고자 하는 의도도 아니다. 그저 자연스럽게 존재하고 싶을 뿐이다. 무대에서 종종 자신의 존재를 은근하게 드러내면서 떠다니는 조명들처럼, 일상의 이야기를 하듯 담담하게 읊는 대사들은 자연스럽게 배우에게 집중하게 한다.
일반적으로 자기소개란 자신을 ‘특별하게’ 보이도록 특별한 점을 이야기하는 자리이지만 대부분 평범한 말들의 나열에 그치게 된다. 이렇게 거의 실패의 경험으로 끝나는 자기소개는 뒤집어 말하면 평범한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주어지는 기회라고 할 수 있다. 배우도 계속해서 요구받는 자기소개에서 돌출되는 오해들 때문에 자기소개를 그만둘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특별함을 벗어나 특이함으로 오해하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평범함을 뚜렷이 조명하고자 하는 의도도 아니다. 그저 자연스럽게 존재하고 싶을 뿐이다. 무대에서 종종 자신의 존재를 은근하게 드러내면서 떠다니는 조명들처럼, 일상의 이야기를 하듯 담담하게 읊는 대사들은 자연스럽게 배우에게 집중하게 한다.
주인공 2, 춤
그러나 무엇보다 배우들의 존재감이 강하게 드러나는 것은 춤을 통해서이다. 조명들이 무대 위에서 춤추는 것처럼 배우 역시 무대에서 춤을 자주 춘다. 춤추는 배경으로 가장 많이 드러나는 장소는 물이다. 바다에 떠내려가는 듯한 막막함, 뿌연 물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 등은 뚜렷한 표식으로 드러나지 않은 인생의 구멍들을 상징한다. 그것은 그대로 10대라는 나이에 겪을 수 있는 혼란스러운 감정을 드러낸다. 가수 보아가 불렀던 ‘아틀란티스 소녀’에 맞추어 헤엄치고, 춤을 배워서 따라 하는 모습이 오랫동안 나온다. 각각의 동작들을 하나하나 익힌 다음 어설프지만 연속적인 동작으로 잇고, 마침내 능숙하게 춤추는 모습들을 반복해 보여 주면서 생이 그저 흘러가지만은 않음을, 그 안에서 어떻게든 나아가려고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주인공 3, 목소리
작품에는 인터뷰가 많이 등장하므로 여러 목소리 역시 또 하나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영상 인터뷰이거나, 목소리만 담긴 인터뷰이거나 어느 쪽이든 생생함을 담고 있다. 귀여운 공룡이 계단을 올라가는 그림을 배경으로 시작한 목소리는 10대 퀴어들의 연애가 별다를 것 없지만 사회적인 편견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인터뷰들은 나아가 적극적으로 10대 퀴어들의 장소였던 신촌공원에 관해 증언한다. 이는 극 속의 표현을 빌리면 길에서 예전의 자신을 마주치는 듯한, 자신의 구멍을 들여다보는 듯한 경험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사랑에 관한 것이다. 닉네임으로 맺는 관계는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만남의 장소인 ‘신공’에서는 정모가 이루어진다. 화장실에서는 더 친밀한 관계가 무르익고 원형 무대에서는 코스프레를 한 이들이 공연한다. 그곳은 머무르는 곳이면서도 다양한 관계들이 ‘발생’하는 곳이기도 하다. ‘일처일처제’만 지키면 되는 그곳은 ‘레즈공원’이라는 딱지로 언론에 조명되면서 ‘불량’의 이미지를 덧입지만, 그 안에서 그들은 진지한 놀이를 한다. ‘가문’이 형성되고 인맥이 확장되며 명예를 위한 싸움이 벌어지는 얽힘의 공간이다. 외부에서는 불량으로 낙인찍는 고정된 장소이지만, 그 안에는 여러 관계가 들끓었던 것이다. 이는 건전/불량의 이분법으로 그들을 재단하는 차별적인 시선에 거리를 두게 한다.
‘3장 톤X혁’에서는 작품의 제목에 걸맞게 팬픽을 낭독한다. 다소 길게 낭독되는 팬픽이 관객들에게 각각 어떤 질감이었을지 개인적으로 궁금했다. 이는 동시대에 향유했던 문화를 상기하면서도 여성 퀴어 서사에 틈입했다는 점에서 모방/반역의 이분법을 넘어선 균열을 느끼게 한다. ‘에메랄드빛 은어’처럼 낭만적이면서 진득한 묘사들이 귀를 파고든다. 제목은 기존의 팬픽에서 가져왔지만 낭독한 작품은 새로 창작한 것이라고 하니 현재성도 있었다.
4장에서는 인터뷰가 다시 이어진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잘못 온 메일에서 네 커플이 자신들의 관계를 증명하는 서명을 한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공감하는 답 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 그것이 공연 제목에 나타나는 ‘핑크빛이라는 따스한 느낌’일지도 모른다. 인터뷰에 따르면 ‘울타리 없이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되었으며 ‘밖에 갇혀 있고 밖에 밀려나는’ 듯하지만 ‘자유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신촌공원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작품을 제작한 ‘(which’에서 괄호의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어 무한대로 열어 두는 것처럼 신촌공원은 물리적인 실체를 넘어선 열림의 장소였던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사랑에 관한 것이다. 닉네임으로 맺는 관계는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만남의 장소인 ‘신공’에서는 정모가 이루어진다. 화장실에서는 더 친밀한 관계가 무르익고 원형 무대에서는 코스프레를 한 이들이 공연한다. 그곳은 머무르는 곳이면서도 다양한 관계들이 ‘발생’하는 곳이기도 하다. ‘일처일처제’만 지키면 되는 그곳은 ‘레즈공원’이라는 딱지로 언론에 조명되면서 ‘불량’의 이미지를 덧입지만, 그 안에서 그들은 진지한 놀이를 한다. ‘가문’이 형성되고 인맥이 확장되며 명예를 위한 싸움이 벌어지는 얽힘의 공간이다. 외부에서는 불량으로 낙인찍는 고정된 장소이지만, 그 안에는 여러 관계가 들끓었던 것이다. 이는 건전/불량의 이분법으로 그들을 재단하는 차별적인 시선에 거리를 두게 한다.
‘3장 톤X혁’에서는 작품의 제목에 걸맞게 팬픽을 낭독한다. 다소 길게 낭독되는 팬픽이 관객들에게 각각 어떤 질감이었을지 개인적으로 궁금했다. 이는 동시대에 향유했던 문화를 상기하면서도 여성 퀴어 서사에 틈입했다는 점에서 모방/반역의 이분법을 넘어선 균열을 느끼게 한다. ‘에메랄드빛 은어’처럼 낭만적이면서 진득한 묘사들이 귀를 파고든다. 제목은 기존의 팬픽에서 가져왔지만 낭독한 작품은 새로 창작한 것이라고 하니 현재성도 있었다.
4장에서는 인터뷰가 다시 이어진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잘못 온 메일에서 네 커플이 자신들의 관계를 증명하는 서명을 한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공감하는 답 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 그것이 공연 제목에 나타나는 ‘핑크빛이라는 따스한 느낌’일지도 모른다. 인터뷰에 따르면 ‘울타리 없이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되었으며 ‘밖에 갇혀 있고 밖에 밀려나는’ 듯하지만 ‘자유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신촌공원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작품을 제작한 ‘(which’에서 괄호의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어 무한대로 열어 두는 것처럼 신촌공원은 물리적인 실체를 넘어선 열림의 장소였던 것이다.

사이, 흐름
그렇게 물처럼 자연스럽게 형성된 신촌공원을 직접 밟는다. ‘5장 #9시에 열리는 무도회’가 시작되면, 무도회에 초대받은 관객들은 무대에 깔려 있는 투명 풍선을 하나씩 들고 오른쪽 모서리를 빠져나온다. 풍선을 하나씩 든 채 창천문화공원으로 향하는 행렬을 통해 하나의 흐름이 형성된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면서 투명한 풍선에 신촌의 간판들과 빛들을 담아 보기도 하였다. 풍선 안에 갇혀 있는 듯하면서도 자유롭게 어그러지는 풍경들이 무대에서 듣고 보았던 말들과 춤들을 닮은 것 같았다.
다시, 빛
공원에 도착하면 무도회가 시작된다. 9시가 되자 ‘#9시에 열리는 무도회’ 영상(https://youtu.be/5tlParY0zjs)을 마주할 수 있었고, 그것을 반원형으로 둘러싼 채 관람했다. 이어지는 인터뷰 영상에는 낯선 관계들이 형성되는 ‘자일 카페’에서의 만남들이 회전문을 힘으로 잘못 열고 들어가는 순간부터 자세하게 나타난다. 설렘과 기대와 긴장 속에서 오가는 대화와 게임은 그들만의 무도회이다. 동시에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관객들을 끌고 들어가는 모두의 무도회이다. 자일을 보며 다른 사람들이 ‘저게 뭐지’라고 할 때 ‘자일은 그냥 자일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그 안에서 그 사람의 다른 속성들과는 관계없이 그 장소 안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솔직하게 터뜨린다. 애인과 함께 살 미래의 집을 그려 보기도 하고, ‘좀 더 성숙한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희망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영상 마지막에는 다시 ‘아틀란티스 소녀’ 음악이 흘러나온다. 불완전하고 나약한 듯하면서도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고 용감한 이들은 그대로 아틀란티스 소녀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전설의 대륙으로서 바닷속으로 사라진 아틀란티스 같은 신촌공원을 수면 위로 건져낸 것이 이 작품이 아닐까. 그렇게 그들이 내·외부의 구분 없이 자신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그릴 때 함께 녹아들어 갈 수 있었다. 무도회가 끝난 뒤에도 관객들은 여흥을 즐기면서 그 자리를 쉽게 떠나지 않았다. 고정된 좌석이 없기에 공연장/무도회장을 떠나는 시간도 정해지지 않았다. 각자 투명 풍선들 속에 여러 풍경을 담아 보기도 하고, 공처럼 하늘로 던져 보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하면서 한동안 머물렀다. 역시, 신촌공원은 여전히 모두가 자유롭게 머무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모두가 함께 춤추는 또 하나의 무도회가 ‘발생’했다. 투명 풍선들 속에 빛이 비친다. 무도회에서 신촌공원이 다시 빛나는 것을 보았다. 극 속의, 극 밖의 현실에 있는 이들이 모두 핑크빛으로 따뜻하게 행복하기를 바라게 하는 작품이었다.
영상 마지막에는 다시 ‘아틀란티스 소녀’ 음악이 흘러나온다. 불완전하고 나약한 듯하면서도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고 용감한 이들은 그대로 아틀란티스 소녀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전설의 대륙으로서 바닷속으로 사라진 아틀란티스 같은 신촌공원을 수면 위로 건져낸 것이 이 작품이 아닐까. 그렇게 그들이 내·외부의 구분 없이 자신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그릴 때 함께 녹아들어 갈 수 있었다. 무도회가 끝난 뒤에도 관객들은 여흥을 즐기면서 그 자리를 쉽게 떠나지 않았다. 고정된 좌석이 없기에 공연장/무도회장을 떠나는 시간도 정해지지 않았다. 각자 투명 풍선들 속에 여러 풍경을 담아 보기도 하고, 공처럼 하늘로 던져 보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하면서 한동안 머물렀다. 역시, 신촌공원은 여전히 모두가 자유롭게 머무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모두가 함께 춤추는 또 하나의 무도회가 ‘발생’했다. 투명 풍선들 속에 빛이 비친다. 무도회에서 신촌공원이 다시 빛나는 것을 보았다. 극 속의, 극 밖의 현실에 있는 이들이 모두 핑크빛으로 따뜻하게 행복하기를 바라게 하는 작품이었다.

[사진 제공: 신촌문화발전소]
핑크빛은 말이지 사랑이라는 따스한 느낌이야 (which
- 일자
- 2019.11.28(목) ~ 11.30(토)
- 장소
- 신촌문화발전소 소극장 외
- 글과 구성
- 이동경
- 무대창작
- 이동경, 이성직
- 영상연출
- 권아람
- 안무
- 이채은
- 출연
- 김현진, 이채은
- 조명
- 고귀경
- 기술
- 최대용
- 그래픽
- 박정수
- (whi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