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파리드리 <깨진 손톱>
[작품리뷰] 용서받지 못한 폭력의 기억을 고백한다면
박다솔
174호
2019.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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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순간들 중 어떤 기억들은 예고도 없이 섬광처럼 번뜩이며 나타나 생생하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애써 붙잡고 있으려 해도 멀리 달아나는 기억이 있는 반면,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쫓아내려 해도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좀처럼 벗어날 수 없게 되는 기억도 있다......
과거의 순간들 중 어떤 기억들은 예고도 없이 섬광처럼 번뜩이며 나타나 생생하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애써 붙잡고 있으려 해도 멀리 달아나는 기억이 있는 반면,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쫓아내려 해도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좀처럼 벗어날 수 없게 되는 기억도 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한 장면처럼 진한 홍차에 마들렌을 한 입 베어 물며 아득했던 한때의 장면을 불러낼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만약 그것이 당신의 코를 찌르는 시큼하고 부패한 냄새로 소환되는 기억이라면, 심지어 그 기억 속에 놓인 자신이 비겁하고 폭력적인 모습이라면 당신은 어떤 식으로든 이 기억과 사투를 벌여야만 할 것이다. 연극 <깨진 손톱>은 수치스러운 과거의 기억을 마주하게 된 인물 ‘기범’의 고백이자, 그가 변제되지 못한 폭력의 기억과 어떻게 화해해야 하는지 묻는 작품이다.
1인극 <깨진 손톱>은 스물세 살의 공익근무요원 김기범이 시청 사회복지과에 근무하게 되면서 우연한 사건을 통해 자신이 유년시절에 폭력을 가한 적이 있는 옛 친구와 대면하게 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작품의 작가이자 연출, 그리고 김기범 역을 연기한 정효진은 이 작품이 자신이 실제 경험한 이야기를 단편소설로 창작한 뒤 일인극으로 재구성한 것임을 프로그램에서 밝히고 있다. 이러한 까닭인지, 이 연극에는 일본의 사(私)소설적 특징이 눈에 띠게 드러난다. 이 작품이 작가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작품임을 밝히고 일인칭 화자를 사용한 점과 이 화자가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고백하듯 들려준다는 점이 그러하다. 더불어, 무대 위에서 대사로 발화되는 상황이나 인물심리에 대한 묘사, 행동 지문 등에서 문학적 비유와 문어체 표현을 빈번하게 사용하여 소설 읽기의 효과를 의도한다.
무대는 단출하다. 무대 위 양 옆에는 작은 나무 의자가 하나씩 놓여있고, 이 의자는 때에 따라 오브제가 되거나 극 중 인물로 설정된다. 공연을 올린 산울림소극장 무대에 있는 두 개의 기둥도 공연에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기둥 뒤에 작은 소품들을 숨겨 놓았다가 꺼내는 등 무대 동선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여러 인물을 연기할 때에는 기둥 뒤에 몸을 숨기거나 무대 상하수를 오가며 시간차를 두는 방식으로 다양한 목소리를 연출해 일인 다역을 무리 없이 연기해낸다.
무대는 단출하다. 무대 위 양 옆에는 작은 나무 의자가 하나씩 놓여있고, 이 의자는 때에 따라 오브제가 되거나 극 중 인물로 설정된다. 공연을 올린 산울림소극장 무대에 있는 두 개의 기둥도 공연에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기둥 뒤에 작은 소품들을 숨겨 놓았다가 꺼내는 등 무대 동선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여러 인물을 연기할 때에는 기둥 뒤에 몸을 숨기거나 무대 상하수를 오가며 시간차를 두는 방식으로 다양한 목소리를 연출해 일인 다역을 무리 없이 연기해낸다.

기범은 책임과 의무를 강제하는 군대라는 체제 안에 속해 있다. 그는 시청의 사회복지과, 그 안에서도 자원봉사센터에서 여러 잡다한 일을 맡아 하고 있지만, 그가 가장 곤란해 하는 것은 자원봉사 현장 일이나 자원봉사자를 교육하는 일이다. 기범은 ‘동정하지 말라’, ‘사람을 편견 없이 대하라.’ 등 봉사자들에게 주지시키곤 하는 봉사의 ‘기본적인’ 태도를 이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자신이 교육하고 행동해야 함에 거부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는 이 거북함을 피하기 위해 혹은 편한 군생활을 위해 바른 청년이라는 그럴듯해 보이는 사회적 가면을 쓰게 된다. 외면할 수도 없고, 부인하고자 도망치면 범법자가 되어 버리는 시스템 안에서 그는 차라리 위장을 선택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이 역할 연기에 점점 빠져들고, 뻔뻔하게 겸양을 떠는 소심한 위선자가 되어 있었다. 그런 기범의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은, “땀 냄새, 입 냄새, …(중략)…, 노숙자, 노인들을 부축하고 만지고, 사람 몸에서 나는 퀴퀴한 냄새를 맡을 때”이다. 이 퀴퀴한 냄새 앞에서, 기범은 자신이 가진 혐오가 들통날까봐, 자신이 쓴 가면이 벗겨질까봐 불안해한다.
그런 기범의 앞에 불현듯 나타난 ‘김경수’라는 이름은 기범의 혐오가 폭력으로 이어졌던, 잊고 지냈던 아홉 살의 어느 날에 대한 기억으로 기범을 강력하게 끌어당긴다. 경수는 급우들 사이에서 ‘깜둥이’, ‘거지새끼’ 등으로 불리던, ‘매일 똑같은 옷을 입고 학교에 오던’ 아홉 살 기범의 짝꿍이었다. 기범은 자신이 담당하게 된 집수리 사업의 리스트에서 자신과 동일한 나이로 기재된 경수의 이름을 발견하고, 그가 잊고 지냈던, 1995년 가을 운동회가 펼쳐지던 날의 일들을 뚜렷이 기억하게 된다. ‘깜둥이 친구’, ‘깜둥이 짝꿍’으로 불리는 것이 싫었던 기범은 경수 엄마가 운동회에서 자신에게 건넨 피자빵을 아이들과 경수가 보는 앞에서 패대기치고 발로 짓밟으며 경수를 모욕하고, 이에 분노한 경수가 자신에게 달려들자 바닥에 짓이겨진 피자빵처럼 경수를 곤죽이 되도록 흠씬 두들겨 팬다. 무대 위, 거칠게 내팽개쳐 엎어져 있는 의자의 형상에서, 웅크린 채 숨을 죽이고 있는 경수의 모습이 보인다. 이 맹렬한 기억의 끝은 이렇다. 다음날 경수는 결석을 하고, 기범의 짝꿍은 다른 사람으로 바뀐다.
그런 기범의 앞에 불현듯 나타난 ‘김경수’라는 이름은 기범의 혐오가 폭력으로 이어졌던, 잊고 지냈던 아홉 살의 어느 날에 대한 기억으로 기범을 강력하게 끌어당긴다. 경수는 급우들 사이에서 ‘깜둥이’, ‘거지새끼’ 등으로 불리던, ‘매일 똑같은 옷을 입고 학교에 오던’ 아홉 살 기범의 짝꿍이었다. 기범은 자신이 담당하게 된 집수리 사업의 리스트에서 자신과 동일한 나이로 기재된 경수의 이름을 발견하고, 그가 잊고 지냈던, 1995년 가을 운동회가 펼쳐지던 날의 일들을 뚜렷이 기억하게 된다. ‘깜둥이 친구’, ‘깜둥이 짝꿍’으로 불리는 것이 싫었던 기범은 경수 엄마가 운동회에서 자신에게 건넨 피자빵을 아이들과 경수가 보는 앞에서 패대기치고 발로 짓밟으며 경수를 모욕하고, 이에 분노한 경수가 자신에게 달려들자 바닥에 짓이겨진 피자빵처럼 경수를 곤죽이 되도록 흠씬 두들겨 팬다. 무대 위, 거칠게 내팽개쳐 엎어져 있는 의자의 형상에서, 웅크린 채 숨을 죽이고 있는 경수의 모습이 보인다. 이 맹렬한 기억의 끝은 이렇다. 다음날 경수는 결석을 하고, 기범의 짝꿍은 다른 사람으로 바뀐다.

“누군가에게 겁을 줄 수 있다는 것은, 기분 더러운 일이었다. (중략) 경수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미워하는 것도 아니었다.”
기범은 자신이 저지른 과시적 폭력에 스스로도 불쾌감을 느꼈었지만, 이후 기범의 행동을 통해 관객들은 그가 과거에 경수와 화해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 폭력의 기억이 용서받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기범은 집수리 공사 현장에서 마주친 경수의 엄마가 자신의 손을 잡고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자 공사 현장을 빠져나와 동네를 빙글빙글 돌며 정처 없이 뛰어다닌다.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과거를 피해 달리고 달리다가, 그만 더 이상 달려 나갈 수 없는 벽에 부딪혀 손톱이 깨진다. 산울림극장의 작은 무대를 동그랗게 달리고 또 달려 결국 제자리를 맴도는 기범의 모습은, 비겁하고 나약하다.
그때, 기범을 부르는 경수의 목소리가 들린다. “기범아, 나 경수야. 기억 안 나니?” 묻는 경수를 향해 “잘못 보셨어요. 착각하신 것 같은데요. 아닙니다.”라고 대답하는 기범은 1995년 가을 운동회 때 장난감 칼을 손에 쥐었던 자신도, 배를 움켜쥐고 땅에 쓰러졌던 경수도, 2009년의 그 어느 누구도 제대로 마주할 수 없는, 자신이 쓴 가면을 스스로 벗을 수 없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그는 그저 깨진 손톱을 쥐고 무참하게 울 뿐이다.
그때, 기범을 부르는 경수의 목소리가 들린다. “기범아, 나 경수야. 기억 안 나니?” 묻는 경수를 향해 “잘못 보셨어요. 착각하신 것 같은데요. 아닙니다.”라고 대답하는 기범은 1995년 가을 운동회 때 장난감 칼을 손에 쥐었던 자신도, 배를 움켜쥐고 땅에 쓰러졌던 경수도, 2009년의 그 어느 누구도 제대로 마주할 수 없는, 자신이 쓴 가면을 스스로 벗을 수 없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그는 그저 깨진 손톱을 쥐고 무참하게 울 뿐이다.

공연은 이렇게 끝난다. 기범이 깨진 손톱을 쥐고 울며 경수를 마주하는 것으로. 그러나 나는 이 이야기가 이렇게 끝이 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었다. 깨진 손톱은 곧 아물 것이다. 새살이 깨진 손톱을 밀어 올릴 것이고, 곧 손톱깎이에 깎여 잘려 나갈 것이다. 자꾸만 자라나는 손톱에 난 작은 생체기는 아무에게도 해를 입히지 않을 만큼 사소하지만, 경수가 겪은 폭력이 그만큼 사소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극이 작가의 자기 고백을 담은 사소설적 작품이란 사실을 다시 상기하면서, 결국 이 작품은 기범이 경수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가 관객에게 자신의 수치를 고백함으로써 변제받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의 주인공은 죽지 않으면서 자신이 과거의 악행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자신의 죄를 낱낱이 고백하는 것이라 믿는다. 연극 <깨진 손톱>에서, 기범이 경수에게 폭력을 행사했던 그 날의 기억뿐만 아니라 15년 뒤 경수를 마주하고도 자신을 부인하고 도망쳐버린 사건까지를 수치의 기억이라고 본다면, 작가는 결국 도망친 자의 비겁함을 관객들에게 고백함으로써 자신이 이 기억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의 주인공은 죽지 않으면서 자신이 과거의 악행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자신의 죄를 낱낱이 고백하는 것이라 믿는다. 연극 <깨진 손톱>에서, 기범이 경수에게 폭력을 행사했던 그 날의 기억뿐만 아니라 15년 뒤 경수를 마주하고도 자신을 부인하고 도망쳐버린 사건까지를 수치의 기억이라고 본다면, 작가는 결국 도망친 자의 비겁함을 관객들에게 고백함으로써 자신이 이 기억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발터 벤야민은 『베를린 연대기』에서 기억하려는 자의 태도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묻혀 있는 자신의 고유한 과거에 가까이 가려는 사람은 땅을 파헤치는 사람처럼 행동해야 한다. … 진정한 기억에서는 똑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떠올리는 것을 기피해서는 안 된다. … 왜냐하면, 기억의 내용은 내부에 진짜 귀중품들이 묻혀 있는 성층이나 지층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진짜 귀중품들은 아주 꼼꼼한 탐사를 통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1) 벤야민은 과거의 기억을 깊고 촘촘하게 반복적으로 떠올려보는 과정을 통해야만 과거의 어떤 때의 완전한 모습과 마주할 수 있다고 말한다. <깨진 손톱>은 2015년에 창작되어 몇 차례 재공연을 거쳤다. 기범의 손톱은 그사이 몇 번이나 다시 깨지고 아물었을까.
극의 마지막에 대한 아쉬움은 남는다. 도망치던 기범은 관객을 만나 고백함으로서 죄를 구하지만, 경수의 기억은 어떻게 치유되어야 할까 하는 의문과, 기범의 고백이 관객들에게 기억으로의 탐사를 시작할 수 있는 도화선이 되기엔 다소 성긴 이야기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에 나와 자신의 과거를 거듭 고백해야만 했던 기범에게, 이 배우에게, 자신의 과거와 마주한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극의 마지막에 대한 아쉬움은 남는다. 도망치던 기범은 관객을 만나 고백함으로서 죄를 구하지만, 경수의 기억은 어떻게 치유되어야 할까 하는 의문과, 기범의 고백이 관객들에게 기억으로의 탐사를 시작할 수 있는 도화선이 되기엔 다소 성긴 이야기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에 나와 자신의 과거를 거듭 고백해야만 했던 기범에게, 이 배우에게, 자신의 과거와 마주한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 발터 벤야민,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베를린 연대기』 윤미애 역, 도서출판 길, 2007, 191p.
[사진 제공: 이파리드리]
깨진 손톱
- 일자
- 2019.11.27(수) ~ 12.01(일)
- 장소
- 산울림소극장
- 작/연출
- 정효진
- 예술감독
- 손상규
- 미술
- 김성경
- 조명
- 윤혜린
- 홍보
- 박혜연
- 그래픽디자인
- 김영윤
- 출연
- 정효진
- 이파리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