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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집단 날 <반도체소녀 시즌2>

[작품리뷰]무대가 아닌 객석에서 주는 울림

송김경화_낭만유랑단
174호 2019.12.19
모두가 기피하는 3D 산업이라면 높은 임금을 책정하고, 사람을 고용해야만 할 것 같은데, 기업들은 값싼 노동력을 찾아 전 세계를 누빈다. 그래. 싸게 만들어서 비싸게 팔아야 장사가 되니까. 그게 부자들의 부자 되는 비결이니까......
Difficult, Dangerous, Dirty 그리고 cheap
모두가 기피하는 3D 산업이라면 높은 임금을 책정하고, 사람을 고용해야만 할 것 같은데, 기업들은 값싼 노동력을 찾아 전 세계를 누빈다. 그래. 싸게 만들어서 비싸게 팔아야 장사가 되니까. 그게 부자들의 부자 되는 비결이니까. 정부는 너희가 망하면 나라가 망하는 것처럼 다국적 대기업을 독려하지만, 나라가 망해도 대기업은 절대 안 망한다. 동시대성 꾹꾹 눌러 담은 2019년 <반도체소녀 시즌2>에는 베트남 국적의 반도체 소녀가 편지가 되어 한국으로 날아와 노동자들을 위로한다.
또 하나의 가족
<반도체소녀 시즌2>에는 또 하나의 가족이 등장한다. 월남 참전 당시 부친의 외도로 구성된 베트남 가족-반도체 소녀를 통해, 사촌지간까지 함께 모여 사는 비정상 가족 간의 갈등을 드러낸다. 밤성의 하청업체 사장인 큰 아빠와 현직 간호사 고모, SKY 다니는 고모 아들, 아이돌 출신 작은아빠 딸이 저마다의 사정으로 같은 세대를 이루며 살고 있지만, 실상은 돌아가신 부모님의 유산인 집을 혹여 누가 먼저 팔아먹고 도망갈까 서로를 견제하기 위해 엉덩이를 들이밀고 있는 것이다. 출구 없는 현실 앞에서 이 집은 가족들의 유일한 희망이다. 이렇듯 비정상적인 의도로 모인 정상 가족은 또 하나의 가족인 반도체 소녀의 죽음 앞에서 유일한 유산인 아파트의 지분을 똑같이 나눠주어야 하는지 갈등하는 모습을 통해 관객에게 인간의 존엄을 묻는다.
그건 정말 사랑이었을까.
베트남의 반도체 소녀는 한국 가족들의 주변을 맴돌며 자본주의의 모순에 쓰러져가는 노동자들과 인간 존엄을 상실한 인물들을 향해 저항의 말을 쏟아내지만, 듣는 이 없는 소녀의 말은 공허하기만 하다. 마찬가지로 비정상 가족의 출구 없는 현실을 설득력 있게 드러내기 위해 장면을 할애하느라 작품의 구심점인 반도체 소녀는 공연 내내 무대 위에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핵심 인물로서 중심에 가 닿지 못하고 주변부를 맴돈다. 인물의 대사가 진주 같이 빛나도 서사적 설득력을 갖지 못하니 무용할 뿐이다. 동시대의 노동 현안들이 씨줄과 날줄로 얽혀있지만, <반도체소녀 시즌2>에 반도체 소녀가 없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는 서사적 근거를 위해 마련된 또 하나의 가족에 대한 He-story 때문일 것이다. 월남전 참전 군인의 ‘정말 사랑이었다’는 러브스토리와 본처의 신파주의적 ‘그래도 다시한번’은 “의도치 않게” 가부장제와 전시폭력을 미화하거나 정당화하는 모습으로 비춰진다. 동시에 이 “의도치 않게” 때문에 노동을 다루는 연극의 핵심가치인 인간의 권리와 존엄성을 배반한다는 점 또한 밝힌다. 국가폭력과 자본가의 권력에 저항하는 행동이 ‘대의’라는 명분으로 가정폭력을 행사해도 구제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구시대적이다. 폭력은 정당화 될 수 없다. 그것이 사랑이라고 할지라도.
위기의 노동자들
1인 13역을 맡은 배우가 배우노동에 대해 이야기 한다. 13개의 역할 중 베트남 의사 역의 베트남어 만은 못할 것 같다고 배우의 노동권을 발휘해 한국어로 하겠노라 연출에게 요구했다고. 그가 재현해야하는 현실 노동자들의 무게값은 1인의 배우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큰 것임은 분명하다. 배우의 얼굴에 깊게 그려진 “다크서클”로 대변되는 동시대의 노동자들은 의사, 집배원, 편의점주, 배달원, 영화 조감독, 간호사 등 모두 휴무 없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면서, 동시에 산재로 인한 죽음과 가까운 인물들이다. 그들은 매일 누군가의 일상을 움직이며 존재하고 있지만, ‘노동’은 있되 ‘사람’은 없는, 그리하여 스스로 ‘존엄’하기를 바라면서도 타자를 위한 ‘존엄’은 상실된 우리의 어리석음을 잘 보여준다. 관객들은 타들어가고 있는 13역의 노동자 중 하나이면서 동시에 어리석은 소비자인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모순을 들여다본다. 우리가 싸워야할 대상은 옆이 아니라 위라는 사실 또한 말이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기념관 울림터라는 울림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기념관 울림터의 객석 분위기는 언제나 참 놀랍다. 관객의 울림이 무대를 울린다. 노동을 말하는 공연과 노동의 현장을 응원하는 마음들로 극장이 채워진다. 그 따듯한 마음이 옆에서 옆으로 전해진다. 계속해서 동시대의 노동을 이야기 해주기를 바라는 이 객석의 울림은 창작자를 더 나아가게 한다. 그것은 노동을 말하는 공연에 대한 확신이자 더 좋은 공연을 만들어야겠다는 의지이다. 지친 공연예술 창작자들을 한껏 북돋아주는 이 감각은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기념관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임은 분명하다.

[사진 제공: 문화창작집단 날]

반도체소녀 시즌2
일자
2019.11.22(금) ~ 12.01(일)
장소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 울림터
작/연출
최철
프로듀서
최현
음악
이지향
의상
장남주
디자인
윤단비
드라마터그
홍영은
안무
조주경
무대미술
허혜윤
회계
오진화
배우
범, 정서연, 오훈서, 이대은, 손유하, 설유경
문화창작집단 날
관련정보
https://www.taeil.org/performance/detail?id=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