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스 최하은>
[작품리뷰]최하은은 사랑입니다
최서윤
175호
2020.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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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스 최하은>에는 최하은만 나온다. 한 시간 동안 혼자 춤추고 노래하고 연기한다. 그럼에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하은의 춤과 노래와 연기가 굉장해서?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야기의 힘이 받쳐주지 못했다면 그토록 빛나지는 않았으리라......
<프로듀스 최하은>에는 최하은만 나온다. 한 시간 동안 혼자 춤추고 노래하고 연기한다. 그럼에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하은의 춤과 노래와 연기가 굉장해서?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야기의 힘이 받쳐주지 못했다면 그토록 빛나지는 않았으리라.

이야기는 하은이 노래에 맞춰 준비된 안무를 펼치며 시작된다.
“Call me love, Call me love, Call me love↘
Call me love, Call me love, Call me love↗(음 이탈 느낌 나게 끝 음을 올리는 게 포인트)”
공연이 2주가 지났음에도 후렴구가 입에 맴도는 ‘Call me love’는 그가 직접 가사를 쓰고 녹음한 창작곡이다. 분홍빛 가발과 짧은 교복 치마를 착용한 채 걸그룹 스타일의 안무를 마친 하은은 거친 숨을 내쉬며 아이돌을 ‘리스펙트’ 한다.
자연스레 화제가 아이돌 지망생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으로 전환됐다. <프로듀스 101>의 참가자들은 철저하게 상품으로 취급되며 가학적인 훈련 과정을 견뎌야 했고, 피라미드로 상징되는 혹독한 경쟁은 연습생들이 ‘국민 프로듀서’에게 애걸하도록 만들었다. 한참 뒤, 합격자가 내정되어있었다는 진실이 밝혀지고 애청자였던 하은은 가책을 느낀다. 이는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왜 이런 프로그램을 좋아했을까? 도출된 키워드는 ‘동경’이다. 아름답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선택받고 사랑받는 아이돌에 대한 동경.
“Call me love, Call me love, Call me love↘
Call me love, Call me love, Call me love↗(음 이탈 느낌 나게 끝 음을 올리는 게 포인트)”
공연이 2주가 지났음에도 후렴구가 입에 맴도는 ‘Call me love’는 그가 직접 가사를 쓰고 녹음한 창작곡이다. 분홍빛 가발과 짧은 교복 치마를 착용한 채 걸그룹 스타일의 안무를 마친 하은은 거친 숨을 내쉬며 아이돌을 ‘리스펙트’ 한다.
자연스레 화제가 아이돌 지망생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으로 전환됐다. <프로듀스 101>의 참가자들은 철저하게 상품으로 취급되며 가학적인 훈련 과정을 견뎌야 했고, 피라미드로 상징되는 혹독한 경쟁은 연습생들이 ‘국민 프로듀서’에게 애걸하도록 만들었다. 한참 뒤, 합격자가 내정되어있었다는 진실이 밝혀지고 애청자였던 하은은 가책을 느낀다. 이는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왜 이런 프로그램을 좋아했을까? 도출된 키워드는 ‘동경’이다. 아름답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선택받고 사랑받는 아이돌에 대한 동경.
2019년 1월, 하은은 결심한다. 스스로를 아름답게 프로듀싱 해보자! 프로듀싱에는 체중감량도 포함된다. 하지만 인생에서 계획대로 되는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2020년 1월, 그는 관객들을 앞에 두고 체중계 위에 올라 현재의 체중을 드러낸다. 목표 체중과의 거리는 더욱 벌어져 있다.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다. 그가 했던 홈 트레이닝이 무대 위에서 재현된다. 이 악물고 6분가량 운동하는 하은을 코앞에서 지켜볼 때 다가오는 불편함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참여자들을 볼 때 느껴지는 감정과 유사하다.
아름다움을 위해 고통을 참으며 노력하는 이유는 뭘까? 그리고 이 아름다움의 기준은 어디서 온 것일까?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 <프린세스 메이커>의 테마 음악이 흐르며 2장이 시작된다. 하은과 또래 소녀들이 즐겨한 고전 게임 <프린세스 메이커2>와 <프린세스 메이커3>. 게임에서 육성의 대상인 ‘딸’은, ‘비만’ 상태에 처하면 예쁜 드레스를 입을 수 없고 ‘매력’ 수치도 절로 하강한다. <프린세스 메이커2>에서 비만의 기준은 '신장 x 0.95 - 87 - 딸의 나이'라는 공식의 결괏값을 초과할 때다. 그러니까 하은의 키 158cm의 경우, 45.2kg을 초과하면 비만이다. <프린세스 메이커3>의 기준은 더욱 혹독하다. 키와 상관없이 48kg만 넘으면 비만이란다.
이와 같은 미적 기준을 내면화한 소녀들은 자라서 <프린세스 메이커>의 ‘딸’이 세상에 나서는 나이가 된다. 하은은 신촌에 위치한 대학의 신입생이 됐고, 새로운 퀘스트를 부여받는다. 연애다.
같은 세대로서 당시를 회상해보면 한국 사회 전체가 미쳐있던 것 같다. 아주 연애에 미쳤었다. 연애 상태를 정상으로 취급하며 연애하지 않으면 낙오자가 된다고 윽박지르는 분위기 속에 있다 보면, 딱히 연애를 욕망하지 않던 사람도 슬슬 초조해진다. 조바심은 분별력을 흩뜨린다. <프린세스 메이커>의 원피스를 닮은 옷을 걸친 마네킹 뒤에 선 하은은 원피스의 단추를 풀며 속삭인다. “이상한 병이 생겼습니다. 사람을 가리지 않는 병. 누군가 나를 원한다면 얼마든지 나를 내어줄 수 있는 병. (...) 나를 떨이 상품으로 내놓고 원래 과일은 못생긴 게 더 맛있대요, 라며 퍼주는 병.”
1학년의 끝에 찾아온 겨울, 잔뜩 술에 취한 학교 선배의 집에서 나서는데 선배가 하은을 붙잡았다. 그는 만져지며 생각했다. ‘이것이 연애의 시작인 걸까? 이로써 나도 ‘정상’의 트랙 위에 오르는 걸까?’
하은은 한 손으로 붙든 마네킹을 바닥에 끌며 무대를 거닌다. 마네킹이 질질 끌리는 소리가 새벽에 홀로 선배의 집을 나와 버스정류장으로 걸으며 하은이 느꼈을 감정을 헤아리게 한다. 별다른 무대 장치가 없어도 골목길의 정경이 보인다. 그 거리는 신촌에 있었다. 공연 장소로 신촌극장을 택한 이유다. “여기서 저곳을 바라보며 이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도 끝나지도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 뒤 선배는 사랑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며, 술기운이었다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혼란스러웠다. 하은은 술을 먹지 않았고, 적극적으로 거부하지 않았다. 그래서 합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에도 감지되는 거리낌은 있었다. 언어화할 수 없었을 뿐이다. 페미니즘의 눈으로 사회를 보게 된 이제는 그게 무엇인지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또 다른 혼란이 생겨났다. 나는 왜 이 사회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면서도, 잘못된 사회가 주입한 욕망을 버리지 못하는가? 왜 나는 모두가 끔찍해 하는 성적 대상화에 해당하지 못함에 치욕감을 느끼는가? 이런 내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여겨도 되는 걸까?
무대 위로 변진섭의 ‘희망사항’이 감미롭게 흐른다. “밥을 많이 먹어도 배 안 나오는 여자. 내 얘기가 재미없어도 웃어주는 여자. 난 그런 여자가 좋더라” 지금 관점에서 들으니 감미로운 개소리다. ‘희망사항’은 점차 사이키델릭한 전자음악과 뒤섞이고, 하은이 직접 들은 말로 짐작되는 음성들이 끼어들기 시작한다. “살만 좀 빼면 예쁠 것 같은데” “좀 더 자기관리를 해봐” “여자는 예쁘고 싹싹해야지, 똑똑한 게 무슨 상관이야.”

어지러운 사운드를 배경으로 바쁘게 움직이며 여러 옷가지들을 겹쳐 입던 하은은, 결국 겹겹이 쌓이는 옷에 질식해 쓰러져 절규한다. “관객 프로듀서 여러분, 여러분께서 보신 최하은은 어떤가요? 사랑받을만한가요? 사랑해주시겠어요? 여러분의 최하은에게 투표해주세요. 사랑을 담아서 투표해주세요.”
투표는 공연 시작 때 받은 장미를 던지는 것이다. 고민의 순간이다. 이제까지 들은 하은의 이야기에, 삶의 무게와 감정들에 이 장미꽃 하나로 응답해도 되는 걸까? 장미꽃을 ‘던지는’ 행위는 오히려 하은을 구경거리이자 평가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것 아닐까? 무엇이 진정 하은을 위하는 행위일까? 머뭇거리다 “그만 노력해도 된다고 말해주세요”라는 외침에 쫓기듯, 흐트러진 분별력과 격앙된 감정으로 장미를 던졌다. 많은 관객들이 이 시점에서 함께 움직였다. 곧 음악이 멎었다. 혈흔 같은 장미로 둘러싸인 하은은 죽은 듯 고요했다. 관객석 뒤편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하은은 다시 태어난다. 일어나 걸치고 있던 옷들을 하나씩 벗어던지며 살풀이춤을 춘다. 끝으로 “사랑받기 위해” 걸쳤던 교복도, 분홍빛 가발도 벗어 던진 하은은 검은 속옷 차림으로 묻는다. “What would you call me?" 마지막 장의 이름이다. ‘Call me love’로 시작된 공연과 서로 닿은 끝이다. 그러니까, 이런 것을 ‘답정너’라고 하는 거지? 하지만 기쁘게 수긍할 수 있는 답이다.
수치심, 모멸감, 구속감, 죄책감, 울분, 후회….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이라면 공감하기 쉬운 감정들이다. 하지만 그 감정이 도출되기까지 우리는 각자 다른 이야기를 통과했을 것이고, 그중에는 내뱉기 망설여지는 것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고 느껴 외롭고 불안한 사람들이 서로의 존재를 발견한다면, 그로써 개인의 문제가 개인의 것만이 아니게 된다면…. 이해받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끌어안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하은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상처 준 사람보다 상처받은 사람에게 혹독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조금은 덜 아플 수 있었으면 좋겠다. 결국엔 다 행복해지자고 하는 짓 아닌가.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직접 대본을 쓴 하은이 대본집에 남긴 말이다. <프로듀스 최하은> 덕에 해방감과 행복에 가까워진 관객들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최하은을 사랑이라 부르겠다.

‘나’의 얘기를 함으로써 듣는 이들도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고픈 욕망이 들게 하는 공연을 좋아한다. 모순되거나 분열되거나 경계에 위치한 존재가 더 많이 이야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쪼록 2020년에 그런 이야기를 더 많이 만날 수 있기를. 시작이 괜찮다.
[사진 : 김지영]
프로듀스 최하은
- 일자
- 2020.1.2(목)~1.5(일)
- 장소
- 신촌극장
- 극작/연출/출연
- 최하은
- 조연출
- 고유빈
- 기획/안무
- 김민지
- 드라마터그
- 이소연
- 음악
- 김승민
- 조명디자인
- 이수진
- 의상/소품디자인
- 이예원
- 그래픽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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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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