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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집 『여자는 울지 않는다』

[작품리뷰]때로는 울어야 할지라도

유혜영
176호 2020.02.20
희곡집 『여학생』을 출판하기도 했던 ‘제철소’가 최근 4명의 작가가 쓴 4편의 희곡을 묶어 『여자는 울지 않는다』를 펴냈다. 제철소의 다른 희곡집들보다 『여학생』이 먼저 떠오른 이유는 둘 다 사진작가 마리아 스바르보바(Maria Svarbova)의 ‘In the Swimming Pool’ 시리즈를 표지로 하기 때문이다. 네모반듯한 타일 벽과 직선의 수영장 ...
희곡집 『여학생』을 출판하기도 했던 ‘제철소’가 최근 4명의 작가가 쓴 4편의 희곡을 묶어 『여자는 울지 않는다』를 펴냈다. 제철소의 다른 희곡집들보다 『여학생』이 먼저 떠오른 이유는 둘 다 사진작가 마리아 스바르보바(Maria Svarbova)의 ‘In the Swimming Pool’ 시리즈를 표지로 하기 때문이다. 네모반듯한 타일 벽과 직선의 수영장 레인을 관통하여 곧게 선 여자의 굴곡진 몸은 아름다운 균열을 일으킨다. 책 제목만큼이나 눈길을 끄는 문구 ‘ZAKAZ SKAKANIA’는 ‘다이빙 금지’라는 뜻이라는데, 왠지 여자는 다이빙할 준비를 마친 것만 같다.
자신을 ‘폭로’하기로 결단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하고 싶은 이야기”가 고백이 아니라 폭로로 다가오는 이유는 이후 분명히, 어느 정도의 사나운 아픔과 슬픔과 책임을 홀로 감수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까운 가족에게, 때론 그저 세상에, 특히 스스로에게 자신을 솔직히 드러내는 순간은 모두에게 찾아온다. 『여자는 울지 않는다』가 감행하는 폭로가 현재형일 수 있는 이유는 장르가 ‘희곡’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바로 지금 내가 겪는 일이기 때문이다. 폭로는 단지 우리가 세상과 ‘더불어’ 살고자 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더불어 살기 위해서 우리가 먼저 택하는 것이 자신을 감추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자는 울지 않는다>(이보람)의 ‘여자’는 성폭력을 겪었던 자신의 과거를 적극적으로 대면하고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듯 보인다. “훈장”이라는 표현은 정확하게 씁쓸하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그래왔듯 사건이 있었던 날 남편에 대해서도 ‘아무 일 없었다’는 거짓말로 평범하게 살고 싶다. <개인의 책임>(이오진)의 진영은 끝도 없이 핑계를 댄다. 원래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었고, 다들 있는 만큼의 능력도, 돈도, 그들에게는 없고, 아마 아이도 행복하지 않을 것이고, 등등. 그녀의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계산에 끄덕거리지 않을 이유가 없지만, 그게 정말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일까? <전화벨이 울린다>(이연주)의 수진은 심지어 연기를 배운다.
“그냥 웃을 수 있게만 해줘요. [...] 상대방 기분을 좋게 만들게 해줘요. 난 기분이 안 좋은데 상대방은 내가 기분이 좋은 줄 알았으면 좋겠어요. 상대방이 나한테 화를 내도 기분이 안 나쁘고요.”
<밤에 먹는 무화과>(신효진)의 70대 비혼여성 윤숙이 호텔에 머무는 이유, 자유롭게 떠도는 섬인 척하는 이유도 윤숙의 ‘처지’에서라면 그런 방식의 가장(假裝)이 세상이 그녀를 좀 더 너그럽게 받아들이도록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나를 위해 선택한 일종의 거짓말들은 그것이 거짓말이기에, 안전하지 않다. 우리는 결국 “괴물”이 되어 갈 것이다. 이들에게 폭로가 필요한 이유다. 다행히도 작품의 인물들은 사실과 마주하기를 선택한다. 모든 폭로가 요란한 굉음을 내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수줍고 조용하게, 서서히 하지만 단단하게, 애수에 젖어 일어나기도 한다.
<여자는 울지 않는다>는 ‘여자’가 자신을 폭로하는 과정을 따라가는 작품이다. 마지막 장면의 “물이 끓었음을 알리는 주전자 소리”는 이미 시작된 폭로에 대한 축포다. ‘여자’는 엄마를, 의부를, 남편을 차례로 마주하여 묻고, 또 답한다. 모든 물음이, 그리고 대답이 그녀를 비로소 드러나게 한다. “제가 찌를까 봐 무서웠“음을, “내가 죽였을까 봐” 두려웠음을, 그리고 또 “진짜 너무 외로”웠음을. ‘여자’는 여전히 생생한 자신의 상처를 비로소 드러낸다. 날 사랑하냐고 먼저 묻고, 먼저 “응”하는 진영의 대답 또한 그 많은 핑계만큼이나 간절하게 계속 사랑하고 싶은 욕망을 폭로한다. 수진의 폭로는 지은으로부터 비롯된다. 지은의 극단적 선택은 수진이 사실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눈뜨게 한다. 수진은 “차라리 암흑을 헤매”일 자신을 선택한다. 때로는 그것이 모니터의 점수를 깎아내릴지라도, 눈을 떴다 감았다 반복하며 서서히 앞으로 나서는 불안한 걸음이 그녀다운, 사람다운 삶임을 수진은 알고 있다. 윤숙은 있는 그대로 꽃이었고, 열매였고, 모두가 잠시 머무는 그곳이 윤숙에게는 집이었다. 그녀가 호텔의 방이 아닌 로비에 머물렀던 시간은 계속해서 그 사실을 그녀 자신과 세상에 폭로하는 순간이었다. 결혼에 대하여, 여성에 대하여, 윤숙에게는 단지 다른 정의가 필요했음을, 그녀는 언제나 모두를 초대하고 싶었음을.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일이 스스로에게 가하는 폭로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언뜻 평평한 직선으로만 이루어진 세상에 자신의 곡선을 드러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는 세상과 잘 어울려 살고 싶고, 그러자니 가끔은 가장을 한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우리를 숨길 수 없을 것이다. 때론 길을 잃어 고립되고, 지금보다 더 고통 받아야 할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직선을 관통하는 곡선, 그것이 우리가 마리아 스바르보바의 작품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이유다. 『여자는 울지 않는다』는 때로 울지라도, 솔직해지기를 애쓰는 사람들의 편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