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비평집단 시선 『우리가 선택한 좌석입니다』
도래하는 비평의 프롤로그
김슬기
177호
2020.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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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을 쓸 때 나를 숨기는 것이 미덕이라고 배워왔다. 나의 의견이나 신념을 대놓고 드러내는 글이 객관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어느 나이 지긋한 학자가 학생들에게 “나는 ‘나는’이라고 써도 되는데 너희는 안 되지”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는, 글을 쓸 때 나를 숨기는 것이 미덕이라고 배워왔다. 나의 의견이나 신념을 대놓고 드러내는 글이 객관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어느 나이 지긋한 학자가 학생들에게 “나는 ‘나는’이라고 써도 되는데 너희는 안 되지”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래, 나는 지식도 경험도 부족하니 굳이 ‘나’를 내세워 내 글의 신뢰도를 스스로 떨어뜨릴 필요는 없겠지, 싶으면서도, 거 참, 저 정도가 되면 어차피 참 진리를 말하는 사람대접을 받으니 나를 내세울수록 좋다는 건가,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배움과 가르침은 ‘나’를 지우는 행위만으로 ‘나의 관점이 곧 객관적 진실’이 될 수 있다는 마취 상태로 나를 몰아넣었고, 성찰 없는 글쓰기는 오래도록 계속되었다. 『우리가 선택한 좌석입니다』는 ‘나’를 지우던 시대의 글쓰기에 종말을 고하는 책이다.

‘나’를 지우던 시대의 종말
“연극비평집단 시선의 정치적 방향성은 상당히 명확하다. 시선은 가능한 한 기존 평론의 사각지대에 있는 젊은 창작자들의 작품을 찾아보고 그에 관한 리뷰를 작성하며 창작 당사자들과의 소통과 연대를 꿈꾼다. 또한 작품들에게 일률적으로 별점 따위를 매기기보다는 개별 작품들이 오늘날의 사회적 맥락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추적한다. 아울러 페미니즘 연극, 장애인 연극과 같이 사회적 소수자를 다루는 작품과 그 창작자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다루고자 한다. 그러니까 진보와 보수의 구분을 나누자면 명백하게 진보적인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 셈이다. 그건 그러자고 누가 기치를 내걸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평론을 하는 젊은 사람들을 알음알음 모아 보았더니 신기하게도 대개 관심사와 사상이 비슷하더라, 하는 결과론적인 이야기다”
- 최홉,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 中 발췌
사람들은 유독 비평가에게 객관적이길 요구한다. 그런데 비평이야말로 객관에 가까워지려야 가까워질 수 없는 글 아닌가. 어떤 공정함 혹은 사심 없음을 추구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공연을 해석하고 판단하는 데 있어 자신의 주관과 신념, 사상을 지울 수 있는 비평가는 없다. 거칠게 말하자면 비평은 결국, 나의 취향을 고백하고 최대한 설득력 있게 그것을 전달하는 글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연극비평집단 시선’이 택한 전략은 글쓴이를 삭제하지 않는 것, 그럼으로써 비평의 주체와 대상이라는 이분법을 극복하고 비평가와 공연, 그리고 창작자 사이에 상호개입(mutual engagement)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때의 상호개입이란 구조화된 문제의 불합리와 부조리에 접근해가기 위한 적극적 대화의 일환이다. 이들은 연극계의 모든 행위자가 연루되어 있다는 발견을 기반으로, 비평가/창작자의 도식적이고 위계적인 역할 구분을 의심한다. 물론 이러한 방향성은 이들이 모두 ‘젊은’ 비평가들이기에, 그로부터 비롯된 당사자성과 연대의식에 기인한 것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비평을 쓰는 이들이 그것을 전면에 내세운다는 것은, 우리가 이들에게서 기대해야 하는 비평이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것임을 실감케 한다. 이들은 연극을 비평하는 자이기 전에 역동하는 세계의 생활인으로서 현실을 기술한다.
이때의 상호개입이란 구조화된 문제의 불합리와 부조리에 접근해가기 위한 적극적 대화의 일환이다. 이들은 연극계의 모든 행위자가 연루되어 있다는 발견을 기반으로, 비평가/창작자의 도식적이고 위계적인 역할 구분을 의심한다. 물론 이러한 방향성은 이들이 모두 ‘젊은’ 비평가들이기에, 그로부터 비롯된 당사자성과 연대의식에 기인한 것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비평을 쓰는 이들이 그것을 전면에 내세운다는 것은, 우리가 이들에게서 기대해야 하는 비평이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것임을 실감케 한다. 이들은 연극을 비평하는 자이기 전에 역동하는 세계의 생활인으로서 현실을 기술한다.
성찰의 비평, 비평의 성찰

책은 크게, 1. 삐딱한: 의심의 여지없이 고전이라 불려왔던 작품들에 대한 페미니즘 비평, 2. 의심스런: 연극비평집단 시선의 필자로서 자신이 썼던 글에 대한 셀프-메타비평, 3. 나누는: 과정 중심의 프로그램과 공공성에 관한 논의, 4. 예리한: 한 해 동안 연극계를 달궜던 뜨거운 이슈들에 대한 논평, 네 개의 카테고리로 이루어져 있다. 《월간 시선》이 매체의 형태와 글쓰기 방식, 유통의 경로에 있어 가볍고도! 가볍고도! 가벼운! 편지 같았다면, 『우리가 선택한 좌석입니다』는 몇 개의 커다란 성좌를 그리며 동시대 한국연극계의 지형도를 담아낸다. 빈 곳 없이 글이 빽빽해 책의 물성 그 자체만으로, 우리가 당면한 현실이 얼마나 촘촘한 사유의 말들을 소환했는지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이 중 단연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시도는 ‘셀프-메타비평’이 될 터인데, 이들은 각자 자신의 글쓰기를 해체하며 비평 작업이 어떻게 연극을, 그리고 현실을 쇄신하는지 추적한다. 서로가 서로의 비평을 메타비평하거나 다른 관점을 가진 제삼자가 보다 논쟁적인 글을 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이렇게나 통렬히 자기 성찰을 거듭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어쩌면, 기존의 지배적인 비평 양식을 벗어나 자기 비평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대안적 글쓰기를 찾아가는 실천이 아니었을까. 따라서 이들이 탐색하는 비평은 하나의 공연 혹은 어떤 현상에 대한 단순한 진술이 아니라, 글쓴이를 자기 진술에 부합하는 행위에 묶어둔다는 점에서 이미 수행적이다.
한편, 페미니즘 비평은 비교적 최근의 한국 창작극에서부터 시작해 근대 신파극에 이르기까지, 나아가 셰익스피어와 고대 그리스 비극을 넘나들며 소위 고전이라 칭송받던 작품들의 문제적 인물들을 다시 불러낸다. 젊은 창작자들의 작업에 대한 비평이 이제껏 드러나지 않았던 여성의 경험을 번역하고 기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면, 이 글들은 젠더 억압이 재생산되는 메커니즘과 여성의 행위자성이 구성되기 어려운 여건을 구체적으로 질문한다. 지면의 한계상 모두 언급하기는 어렵지만, 이 밖에도 이 책이 톺아본 여러 이슈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었던 것을 분석적 언어로 개념화한다는 점에서, 심지어 그것이 수다의 외양을 가장한 것일지라도, 명백히 비평의 자장 안에 기능하고 있다.
이 중 단연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시도는 ‘셀프-메타비평’이 될 터인데, 이들은 각자 자신의 글쓰기를 해체하며 비평 작업이 어떻게 연극을, 그리고 현실을 쇄신하는지 추적한다. 서로가 서로의 비평을 메타비평하거나 다른 관점을 가진 제삼자가 보다 논쟁적인 글을 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이렇게나 통렬히 자기 성찰을 거듭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어쩌면, 기존의 지배적인 비평 양식을 벗어나 자기 비평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대안적 글쓰기를 찾아가는 실천이 아니었을까. 따라서 이들이 탐색하는 비평은 하나의 공연 혹은 어떤 현상에 대한 단순한 진술이 아니라, 글쓴이를 자기 진술에 부합하는 행위에 묶어둔다는 점에서 이미 수행적이다.
한편, 페미니즘 비평은 비교적 최근의 한국 창작극에서부터 시작해 근대 신파극에 이르기까지, 나아가 셰익스피어와 고대 그리스 비극을 넘나들며 소위 고전이라 칭송받던 작품들의 문제적 인물들을 다시 불러낸다. 젊은 창작자들의 작업에 대한 비평이 이제껏 드러나지 않았던 여성의 경험을 번역하고 기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면, 이 글들은 젠더 억압이 재생산되는 메커니즘과 여성의 행위자성이 구성되기 어려운 여건을 구체적으로 질문한다. 지면의 한계상 모두 언급하기는 어렵지만, 이 밖에도 이 책이 톺아본 여러 이슈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었던 것을 분석적 언어로 개념화한다는 점에서, 심지어 그것이 수다의 외양을 가장한 것일지라도, 명백히 비평의 자장 안에 기능하고 있다.

연극비평집단 시선의 행보는 ‘비평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보다 ‘비평은 무엇이 아닌가’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움직임을 보여준다. 이들의 글쓰기는, ‘비평은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으로부터 ‘비평은 무엇을 하면 안 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행하고 있다. 결국, 비평이란 비평가 개인이 발견한 앎이라기보다 연극계의 실재로부터 추동된 관계적 지식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나는, 그러한 지식이야말로 창작을 풍성하게 하고 다시 이론을 자극하는 단단한 토대가 된다고 믿는다. 하여, 지원사업 결과에 따라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는 이 책, 『우리가 선택한 좌석입니다』의 후속 작업이 부디 오래도록 이어질 수 있길 기대한다. 그간 우리가 믿어왔던 비평, 그것이 강요했던 모든 금언과 준칙 위에 자유롭게 뛰어노는 시선을 기다린다. 나는, 도래하는 비평의 다른 얼굴을 상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