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검색

검색영역

룸톤, 이장원, 정세영 <개인주의자의 극장>

‘눈’을 잃은 이들의 어두운 세상

이경미_연극평론가
177호 2020.03.26
객석에 서서 투명한 막 너머로 무대를 건너다본다. 끝이 뾰족하고 기다란 팔 하나가 장착된 흰색 로봇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 로봇 팔은 사방으로 크게 원을 그리며 무언가를 더듬는 듯, 혹은 탐색하는 듯 천천히 움직인다.
객석에 서서 투명한 막 너머로 무대를 건너다본다. 끝이 뾰족하고 기다란 팔 하나가 장착된 흰색 로봇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 로봇 팔은 사방으로 크게 원을 그리며 무언가를 더듬는 듯, 혹은 탐색하는 듯 천천히 움직인다. 정면 벽에는 ‘테이레시아스’라는 글자가, 왼쪽 벽에는 딸의 부축을 받고 걸어가는 그의 모습이 보인다. 그밖에 바닥에 그어져 있는 하얀 선들, 의자 몇 개... 그리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처음 시각장 안에 들어온 로봇과 그림, 문자와 소리 사이에는 딱히 유기적인 연관성이 보이지 않는다. 너무나 이질적인 매체들 사이에서 관객의 시선은 한동안 고정될 곳을 찾지 못한 채 극장을 유영한다. 출렁이는 이 공간에서 그나마 최소한 중첩되는 것이 있다면 바로 테이레시아스다. ‘눈 먼 예언자’, ‘신들의 비밀을 누설한 자’, ‘여성과 남성의 경계를 오간 자’, ‘예언하는 새의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불을 태워 그 연기의 모습으로 미래를 예견할 수 있었던 자’.
 
눈 먼 자 테이레시아스
오이디푸스가 눈이 있어도 볼 수 없는 자였다면, 테이레시아스는 눈이 없어도 모든 것을 보는 자였다. 그는 테베를 혼란에 빠뜨린 역병의 원인이 바로 오이디푸스 본인임을 밝힌 자이며, 크레온에게는 폴리네이케스의 장례를 허락하지 않을 경우 테베가 어떤 혼란에 빠질지를 정확하게 예언한 자였다.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갈 방법을 알기 위해 찾아갔던 이 또한 하데스의 지하세계에 머물고 있던 그였다.
테이레시아스는 인간이지만 인간 너머에 있는 자였다. 그의 존재가 거북했던 아테네의 신들은 그의 눈을 멀게 해 더 이상 자신들의 영역을 넘보지 못 하게 하는 대신, 그를 자신들의 말을 전달하는 메신저로 선택했다. 신들은 눈먼 테이레시아스를 통해 세계를 주조하고 지배하는 자신들의 말을 정확히 파악하고 겸허히 섬기는 것, 그것이 진정한 봄(see), 깨달음이란 것을 인간에게 일러주고 가르쳤다. 자신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진실을 말하는 그를 향해 오이디푸스가 앞을 못 보는 장님이라며 조롱했을 때, 테이레시아스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눈을 뜨고 있으면서도 얼마나 처참한 일에 빠져들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자입니다.” 사실 그것은 테이레시아스의 말이 아니라 인간을 향한 신들의 말이었다. 그러므로 절망의 극점에 달한 오이디푸스가 스스로 자신의 눈을 찌르며 ‘무엇 하러 봐야 한단 말인가’라고 한탄했을 때, 이는 신들의 말을 무시한 오만하고 무지한 인간이었던 자신에 대한 반성이자 자기 응징이었다.
그러나 이후 인간은 테이레시아스를 통해 신의 말을 듣고자 하는 대신, 잃어버린, 아니 잃어버렸다는 자신의 눈을 되찾아 스스로 세상을 보려 했다. 명확하면서도 뚜렷하게 자신과 세계의 현재를 보고 싶다는 열망, 스스로 보고 인식하는 자기 시선에 대한 믿음, 이것은 휴머니즘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주의를 함축한 합리적 주체성의 원리가 발아하는 원천이자, 모든 것이 시각 중심적인 패러다임으로 확실하게 전환되는 계기였다.
개인주의자의 극장, 21세기 테이레시아스들의 극장
전체적으로 특별한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어느 순간, 로봇의 팔이 다른 것으로 교체된다. 새 로봇 팔에는 붉은색 작은 램프들이 부착된 삼각형의 손 같은 것이 달려있다. 이 팔 또한 그 넓은 손의 표면으로 천천히 원을 그리며 극장 안을 훑는데, 그때마다 그 주변이 램프들이 쏟아내는 붉은 색으로 물든다. 팔만 다른 것으로 교체했을 뿐인데 앞서 로봇과 달리 이 로봇이 드러내는 느낌은 전혀 다르다. 붉은빛 때문인지, 공간을 훑는 그 넓은 손의 표면 때문인지, 이 로봇에서는 주변을 제어하고 자기화하려는 어떤 팽창된 열망, 아니 욕망 같은 것이 느껴진다.
 
공연은 이제 본격적으로 자신의 틀을 움직여 관객의 시선을 물리적으로, 기계적으로 분할하기 시작한다. 이 공연이 질문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고, 그에 대한 답은 어떤 것이 될지가 조금씩 드러나는 지점이다. 무대 정면에 서 있던 관객들은 무대의 오른쪽으로 자리를 이동하게 되는데, 이때 달라지는 건 관객의 시선이 닿는 방향만이 아니다. VR을 쓴 두 명의 관객이 안내자에 손에 이끌려 무대 한가운데 놓인 의자에 앉으면서, 이제 공연의 관객은 더 이상 ‘보는 자’라는 단일의 집단이 아니게 된다. 맨눈으로 보는 관객과 VR을 통해 보는 관객, 보는 관객과 보여지는 관객 등으로 연속해서 분할된다. 자동적으로 이들 ‘관객들’이 바라보는 대상 역시 하나이지만 더 이상 하나가 아니게 된다. 스크린에 투사된 동영상은 맨눈으로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에게는 그냥 2D 영상이지만, VR을 쓴 관객에게는 상상 이상의 입체적 가상현실, 극한의 몰입적인 스펙터클일 것이기 때문이다.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대상을 바라보지만 그렇다고 동일한 것을 본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 심지어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넘어 가상이 또 다른 가상으로 분할되는 상황, 그리고 본다는 것과 보여진다는 경계까지도 사라져버리는 상황, 그렇다면 이 공간에서 본다는 것, 보여진다는 것은 대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공연의 질문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번에는 무대 뒤쪽이 관객의 위치가 된다. 다시 한번 보고, 보여지는 극장의 구도가 바뀌는 것인데, 여전히 로봇의 팔은 무대 공간을 천천히 더듬으면서 자신이 쏟아내는 붉은 빛으로 주변을 점유하고 있다. 바로 그때 VR을 쓴 4명의 관객이 안내자의 손에 이끌려 다른 관객들 앞을 지나 무대 위로 올라간다. 그리고 맨눈의 관객들이 볼 수 없는 자신들의 세상 속에 빠져들어 그 안에서 저 혼자 유영한다. 하지만 그들은 안내자의 손을 놓고는 절대 혼자 방향을 잡을 수도, 움직일 수 없다. 비틀거리고 머뭇거리고, 안내자가 잡아끄는 대로 움직이는 모습은 무대 위 테이블에 고정된 채로 연신 팔을 움직여 사방을 더듬는 로봇의 모습과 다르지 않게 다가온다.
테이레시아스. 그는 예언하는 새의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불을 태워 그 연기의 모습으로 미래를 예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항상 한 소년에게 이끌려 극장에 등장했다. 이 공연에 등장한다는 그 여섯 명의 테이레시아스가 누구였는지 비로소 드러나는 순간이다. 하지만 그 여섯 명의 테이레시아스에서 그 여섯이라는 숫자는 이내 이 공연에 참여한 모든 관객의 수로, 아니 그 이상으로 확장된다. 여기 이 극장에 있는 모두가, 그뿐 아니라 이 극장을 둘러싸고 있는 저 바깥세상을 사는 모두가 테이레시아스, 저 눈만 비대할 뿐 혼자서는 절대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로봇이지 않을까 하는 질문이 생기는 순간, <개인주의자의 극장>은 그에 대한 아무 답 없이 관객 뒤에서 자신의 극장 문을 닫는다.
 
정세영과 룸톤, 이장원, 이 세 명의 작가는 그들의 극장을 더 이상 안정적으로 작동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실재와 환영을 구분할 수 없게 되어버린 세상, 어쩌면 그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것조차도 의미가 없어진 지금의 이 세상을 극장 안으로 가져온다. 그리고 극장의 고유한 장소성 및 그 안에서 행해지던 관습들에 대한 질문과 함께, 인간과 세계에 대해 지극히 정치적인 화두를 던진다. 더 이상 자기 서사의 주체가 될 수 없게 되어버린 눈 먼 테이레시아스들의 세상, 혹은 살(corpus)을 잃고 비대해진 눈으로 자아정체성과 자아실현이 아닌 자기충족적인 욕망에 몰두하는 로봇과 같은 개인들, 혹은 더 덧붙이자면 무덤 파는 소리를 수로 공사하는 소리로 착각하며 드디어 자신이 천국 같은 세상을 세운 것으로 알고 죽어가는 눈 먼 파우스트들. 길을 잃은 눈 먼 우리들의 극장, 극장의 불은 어느 때보다 환하지만 어느 때 보다 캄캄하다. 이제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볼 수는 있을까.

[사진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박수환]

개인주의자 극장
일자
2020.02.07.(금) ~ 02.09.(일)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멀티프로젝트홀
Concept, Conceptualization
룸톤, 이장원, 정세영
Direction
정세영
VR
룸톤
Robot
이장원
Producer
신진영
Commissioned and produced by
국립현대미술관
관련정보
http://www.mmca.go.kr/pr/cultureDetail.do?edId=201908200001906&fbclid=IwAR2mKhE_dlmvBpmVFAilDx0MSm2uTApNPZ2ec46H428xRY0bIlY6bq9NUx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