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IVE틈 <숲에 이르기 직전의 밤>
디어 마이 프렌드
유혜영
178호
2020.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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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비를 맞으며 달려와 너를 돌려세운 한 청년의 독백이었어. 청년은 달리다가 널 본 건지, 너를 보고 달린 건지, 어쨌든 너를 만났으니 이제 이야기를 할 방을 찾아가자고 해. 그를 이방인이게 하는 이 “우스운 도시”를 벗어나서 너와 함께 풀밭과 그늘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고.
공연은 비를 맞으며 달려와 너를 돌려세운 한 청년의 독백이 전부였어. 청년은 달리다가 널 본 건지, 너를 보고 달린 건지, 어쨌든 너를 만났으니 이제 이야기를 할 방을 찾아가자고 해. 그를 이방인이게 하는 이 “우스운 도시”를 벗어나서 너와 함께 풀밭과 그늘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고.
하마터면 숲을 오해할 뻔했어. 거대한 초록의 나무들이 뿜는 신선한 공기와 촉촉한 땅의 이미지, 그리하여 어떠한 안식처나 이상향쯤이 될 거라고 누구도 말하지 않았는데, 고정관념이라는 게 이렇게 무섭다. 숲의 의미는 사실 고민할 것도 없어. “나뭇잎 위로 날아오르는 건 모조리 쏴버리고, 숲 기슭에 나타나는 것, 나무와 색이 다르거나 자기들과 같은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는 건 눈에 띄는 대로 쏴버”리는 곳, 총을 든 장군과 병사들이 조금이라도 다른 것들을 찾아 숲을 휘젓는 중에 모두가 숨죽이며 숨어 있는 곳이라고 대사에 나오거든. 숲은 거의 결정된 유배지야. 청년은 점차 그곳으로 가게 될 거야, 그곳이야말로 최종 목적지고, 풀밭이나 방은 결국 찾을 수 없겠지. 콜테스는 그걸 알고 있고, 그 와중에도 너를 찾아 붙들고 놓아 줄 수가 없는 거야.
베르나르 마리 콜테스의 작품들은 흔히 이 시대의 고전이라고 불릴 만큼 여러 차례 공연되고, 연구되었어. 그럼에도 이 새로울 것 없는 공연을 되돌려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최근 몇 년간 겪고 있는 이 절망적 감정을 어쩌면 이토록 솔직하고 명료하게 관통할 수 있을까 하는 놀라움과 안도 때문이었어. 출구 없음의 좌절과 외로움, 관계를 향한 지독한 갈망, 반복되는 서성거림.
하마터면 숲을 오해할 뻔했어. 거대한 초록의 나무들이 뿜는 신선한 공기와 촉촉한 땅의 이미지, 그리하여 어떠한 안식처나 이상향쯤이 될 거라고 누구도 말하지 않았는데, 고정관념이라는 게 이렇게 무섭다. 숲의 의미는 사실 고민할 것도 없어. “나뭇잎 위로 날아오르는 건 모조리 쏴버리고, 숲 기슭에 나타나는 것, 나무와 색이 다르거나 자기들과 같은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는 건 눈에 띄는 대로 쏴버”리는 곳, 총을 든 장군과 병사들이 조금이라도 다른 것들을 찾아 숲을 휘젓는 중에 모두가 숨죽이며 숨어 있는 곳이라고 대사에 나오거든. 숲은 거의 결정된 유배지야. 청년은 점차 그곳으로 가게 될 거야, 그곳이야말로 최종 목적지고, 풀밭이나 방은 결국 찾을 수 없겠지. 콜테스는 그걸 알고 있고, 그 와중에도 너를 찾아 붙들고 놓아 줄 수가 없는 거야.
베르나르 마리 콜테스의 작품들은 흔히 이 시대의 고전이라고 불릴 만큼 여러 차례 공연되고, 연구되었어. 그럼에도 이 새로울 것 없는 공연을 되돌려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최근 몇 년간 겪고 있는 이 절망적 감정을 어쩌면 이토록 솔직하고 명료하게 관통할 수 있을까 하는 놀라움과 안도 때문이었어. 출구 없음의 좌절과 외로움, 관계를 향한 지독한 갈망, 반복되는 서성거림.

청년이 홀로 선 무대에는 천장에서부터 시작된 쇠파이프들이 중간에 끊어진 채로 매달려 있었어. 일정한 간격을 사이에 둔 기둥들은 마치 땅에 닿지 못한 숲의 나무들 같았지. 이 상태라면 바닥에 이른다고 해도 뿌리내리지 못할 텐데, 그럼에도 끝까지 내려왔으면 하는 조바심이 나더라. 절망일 줄 아는데 그래도 최선을 다해 다다르고 싶은 마음, 그렇게라도 무언가를 갈망하고 뻐기고 주장하고 싶은 마음. 청년이 한참을 중얼거린 슬픈 허세 같은 거였는지도 몰라.
1시간 40여 분을 독백으로 채우는 김상보 배우의 말하기는 생각보다 편안했어. 모노드라마는 배우에게도 도전이지만, 관객에게도 쉽지 않은 거잖아. 특별히 힘쓰지 않는 듯했지만 또렷이 들렸고, 내가 모르는 어딘가로 앞서가지 않는다는 게 좋았지. 속도는 간절했고, 숨기려 하면서도 슬며시 불안해하는 것 같았어. 답답한 내 호흡을 보상해주기라도 하듯 그는 정말 많은 말을 쏟아냈지. 여기서는 할 말을 할 수가 없다고 하면서 계속 말을 이어갔어. 정말 말하고 싶은 건 대체 뭐였을까. 비를 맞았다는 사실을 굳이 의식하지는 않는 것 같더라. 막 달려오는 길이라는 것도. 마지막 대사로 ‘비, 비, 비’를 반복할 때는 오히려 이제 비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어. 어쩌면 그저 너를 만나 말하고 있다는 것, 그걸로 된 거였는지도 모르겠어. 말은 거의 숨이었고, 너를 만나 그 숨통이 트인 거야.
길에서 시작해서 길에서 끝나는 이야기 형식에 ‘로드-’를 붙일 수 있다면, 이 연극도 로드씨어터라고 부를 수 있을까. 보통 로드무비가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며 주인공이 성장해가는 구조이듯, 길에서 시작해 길에서 암전하는 이 연극도 청년의 독백 속에서 몇몇 사람들을 경유하고 있어. 줄곧 어둡던 무대는 그 길목마다 특별히 불을 밝히지만, 단지 집중력을 환기할 뿐, 청년에게는 닿지 못해. 제발 다시 만나고 싶었던 마마, 흙을 먹고 죽어간 창녀와 지하철의 남자들. 그 사람들과의 이야기는 자꾸 단절되고 사라져가는 관계에 대한 불안과 그걸 붙들어보고 싶은 비참한 구걸의 역사야. 이렇게 심화되기만 하는 절망도 성장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공연 말미에 객석이 밝아지고, 청년의 시선은 더욱 직접적으로 관객을 향해 말하기 시작해. 청년은 배우 김상보이기도 해서 이 코로나 시대에 실제로 관객을 기다리는 또 다른 창작자들을 떠오르게도 하더라. 하지만 무대 양쪽에 배치되었던 몇몇 객석의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당황스러웠어. 얼굴의 절반을 덮는 커다란 마스크를 쓰고 섬처럼 따로 앉아서 눈을 껌벅이는 관객들은 청년이 내민 손을 잡아 줄 것 같지도, 함께 풀밭을 찾아 이야기를 들어줄 것 같지도 않았거든. 당혹스럽게 증폭된 고립감은 무대에서도 현실에서도 좀처럼 허물어지지 않음으로 둘 사이의 경계를 허물어 버린 거야.
1시간 40여 분을 독백으로 채우는 김상보 배우의 말하기는 생각보다 편안했어. 모노드라마는 배우에게도 도전이지만, 관객에게도 쉽지 않은 거잖아. 특별히 힘쓰지 않는 듯했지만 또렷이 들렸고, 내가 모르는 어딘가로 앞서가지 않는다는 게 좋았지. 속도는 간절했고, 숨기려 하면서도 슬며시 불안해하는 것 같았어. 답답한 내 호흡을 보상해주기라도 하듯 그는 정말 많은 말을 쏟아냈지. 여기서는 할 말을 할 수가 없다고 하면서 계속 말을 이어갔어. 정말 말하고 싶은 건 대체 뭐였을까. 비를 맞았다는 사실을 굳이 의식하지는 않는 것 같더라. 막 달려오는 길이라는 것도. 마지막 대사로 ‘비, 비, 비’를 반복할 때는 오히려 이제 비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어. 어쩌면 그저 너를 만나 말하고 있다는 것, 그걸로 된 거였는지도 모르겠어. 말은 거의 숨이었고, 너를 만나 그 숨통이 트인 거야.
길에서 시작해서 길에서 끝나는 이야기 형식에 ‘로드-’를 붙일 수 있다면, 이 연극도 로드씨어터라고 부를 수 있을까. 보통 로드무비가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며 주인공이 성장해가는 구조이듯, 길에서 시작해 길에서 암전하는 이 연극도 청년의 독백 속에서 몇몇 사람들을 경유하고 있어. 줄곧 어둡던 무대는 그 길목마다 특별히 불을 밝히지만, 단지 집중력을 환기할 뿐, 청년에게는 닿지 못해. 제발 다시 만나고 싶었던 마마, 흙을 먹고 죽어간 창녀와 지하철의 남자들. 그 사람들과의 이야기는 자꾸 단절되고 사라져가는 관계에 대한 불안과 그걸 붙들어보고 싶은 비참한 구걸의 역사야. 이렇게 심화되기만 하는 절망도 성장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공연 말미에 객석이 밝아지고, 청년의 시선은 더욱 직접적으로 관객을 향해 말하기 시작해. 청년은 배우 김상보이기도 해서 이 코로나 시대에 실제로 관객을 기다리는 또 다른 창작자들을 떠오르게도 하더라. 하지만 무대 양쪽에 배치되었던 몇몇 객석의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당황스러웠어. 얼굴의 절반을 덮는 커다란 마스크를 쓰고 섬처럼 따로 앉아서 눈을 껌벅이는 관객들은 청년이 내민 손을 잡아 줄 것 같지도, 함께 풀밭을 찾아 이야기를 들어줄 것 같지도 않았거든. 당혹스럽게 증폭된 고립감은 무대에서도 현실에서도 좀처럼 허물어지지 않음으로 둘 사이의 경계를 허물어 버린 거야.

주기적으로, 때로는 불현듯 우리가 그저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 일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차가운 불을 밝히는 시절이 반복되고 있어. 그와 더불어 우리가 그저 피와 살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일깨우는 일들도 계속되고 있지. 다행일까 불행일까. 누군가는 습관적 체념으로 하루를 넘고 있을지 모르지만, 너무 짧은 기간에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 아닌가 버겁기만 한 나는, 잘 살고 싶을수록 불평하고 분노하며 불안한 마음으로 중얼대고 있어. 아직 너를 찾지도 못해서 웅얼거리고만 있어.
하지만 만약 이 길모퉁이에서 너를 볼 수 있다면, 나도 달리고 달리고 달려갈거야. 그게 우리가 콜테스를, 그의 절망을 계속 옹호할 수밖에 없는 이유일거야.
하지만 만약 이 길모퉁이에서 너를 볼 수 있다면, 나도 달리고 달리고 달려갈거야. 그게 우리가 콜테스를, 그의 절망을 계속 옹호할 수밖에 없는 이유일거야.
[사진 제공: CREATIVE 틈 ⓒ김호준]
2020극장전_숲에 이르기 직전의 밤
- 일자
- 2020.03.14.(토) ~ 03.22.(일)
- 장소
- 여행자극장
- 작
- 베르나르 마리 콜테스
- 번역
- 임수현
- 연출
- 양정현
- 출연
- 김상보
- 드라마터그
- 방수연
- 조연출
- 남우찬, 김승덕
- 프랑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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