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검색

검색영역

전시 <새일꾼 1948-2020: 여러분의 대표를 뽑아 국회로 보내시오>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시대에 예술은

손옥주_공연학자
178호 2020.04.16
코로나 시대에도 선거철은 돌아온다. 바야흐로 ‘선거’라는 키워드를 구글링하면 제일 상단에 ‘제21대 국회의원선거 특집 홈페이지’의 링크(www.nec.go.kr)가 투표 일정에 대한 세세한 정보와 함께 자동 검색되는 시기가 다시금 도래한 것이다.
코로나 시대에도 선거철은 돌아온다. 바야흐로 ‘선거’라는 키워드를 구글링하면 제일 상단에 ‘제21대 국회의원선거 특집 홈페이지’의 링크(www.nec.go.kr)가 투표 일정에 대한 세세한 정보와 함께 자동 검색되는 시기가 다시금 도래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듯 아무렇지 않게 예정된 일정에 맞춰 도래한 정치의 시기, 소속 정당의 시그니처 컬러 점퍼를 입고 KF94마스크를 단단히 쓴 후보자들이 동네 공원을 돌며 주민들에게 손 소독제를 뿌려주는 이 시기에 예술은 어떠한가. 투표소로 향하는 유권자들의 자발적 이동을 전제하는 직접 선거의 메커니즘이 전 국민의 자가격리를 독려하는 사회적 예외상황과 만나고 있는 2020년의 봄, 예술은 과연 안녕한 것일까. 사실 얼핏 중립적인 것 같기도 한 이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은 대부분의 행사 일정이 하순으로 미뤄지거나 취소된, 그야말로 예외상황의 바로 그 ‘예외성’을 현실로 부딪히고 있는 예술계에서는 결코 낙관적일 수 없다 - 아시다시피, 그리 안녕하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예외성에 대응할 수 있는 예술현장 혹은 그것을 반영할 수 있는 예술작업은 전연 불가능한 것일까. 예측 불가능한 시간을 서성일 수밖에 없는 올봄, 예술현장에서는 대체 어떠한 작업을 만날 수 있는 것일까.
<새일꾼 1948-2020 : 여러분의 대표를 뽑아 국회로 보내시오> 티저영상(출처:유튜브)
코로나 시대에도 선거철은 돌아오고 전시는 진행된다. 주제는 다름 아닌 ‘선거’다. 아마도 올 상반기에 접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대규모 예술행사 가운데 하나일 일민미술관의 <새일꾼 1948-2020: 여러분의 대표를 뽑아 국회로 보내시오>(이하 <새일꾼>) 전시가 바로 그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일민미술관의 공동 주최라는, 여느 시각예술 전시회에서 보기 힘든 조합 안에서 6월 중순경까지 약 3개월간 이어지는 이 전시는 4월 15일로 예정된 국회의원 선거를 시의적으로 반영한 행사라 할 수 있겠는데, 사실 그동안 국내 예술현장에서 동시대 이념이나 시대정신에 내재하는 정치성을 드러내는 다양한 전시나 공연은 종종 접해온 반면, 이처럼 선관위와의 협력하에 이념으로서의 정치성이 아닌 실제 정치 행위를 대주제로 내세운 예술행사는 처음 접하는 듯하다. 전시의 전체 형식은 프로그램 서문에도 나와 있듯이 ‘아카이브형 사회극’을 표방한다. 사실 ‘아카이브’가 요청하는 연대기적 시간성과, 정치적/예술적 담론으로 재발굴되는 ‘사회’라는 주제와, 시공간이 교차하는 장르로서의 ‘극’형식의 접합이 생소하면서도 다소 모호하게 다가왔지만, 일민미술관의 1층 전시실과 6층 미디어라운지 사이를 거닐며 앉고, 밀고, 찍어 누르고, 돌고, 넘기는 동안 전시의 형식이 왜 그렇게 정의되어야만 했는지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전시 전경
전시 <새일꾼>의 형식은 매우 명료하면서도 결코 명료하지 않다. 나누어진 주제와 아카이브 자료들, 그리고 나누어지지 않은 예술작품의 스타일이 한 공간에 공존하기 때문이다. 일민미술관 1, 2, 3층의 전시공간에는 각각 <애국자가 누구냐>, <한 표 찾아 팔도강산>, <지금 대단히 OOO한 투표가 진행되고 있습니다>라는 부제가 붙어있는데, 각 부제는 각 전시공간의 아카이브 자료에서 추출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애국자가 누구냐> 전시관을 예로 들자면, 최초의 근대적 선거였던 1948년의 제헌 국회의원선거를 비롯해서 해방 직후의 국민국가 정체성 만들기 작업 안에서 국가의 정체성과 결부된 형태로 발견되기 시작한 개인의 정체성이 소위 ‘국민의 대표’화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선거 초기의 사료들이 전시의 중심에 놓여있다. 또한 <한 표 찾아 팔도강산>의 중심에는 표심을 얻기 위한 정치인들의 각종 홍보자료가, <지금 대단히 OOO한 투표가 진행되고 있습니다>의 중심에는 과거에 횡행했던 부정선거의 사례를 보여주는 실제 선거함을 포함한 다양한 사료들이 놓여 전시라는 형식 안에서 선거의 각 과정을 다양한 각도로 면밀히 조명한다.
전시 전경
그런데 만약 이처럼 ‘실제 사건’을 ‘면밀히 조명하는’ 방식으로만, 다시 말해 하나의 내러티브로 환원 가능한 방식으로만 전시가 구성되었다면 이번 전시는 국내외에서 행해지는 여타 아카이브 소장자료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심지어 일민미술관 5층에는 신문 출판과 관련해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자료들을 다수 소장, 상설전시하고 있는 신문박물관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말하자면, 이 지점, 그러니까 단 하나의 내러티브로만 환원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번 <새일꾼> 전시는 우선 독특하다. 전시에는 선관위가 소장 중인 약 400여 점의 선거 관련 사료들과 더불어 현재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예술가 21팀이 참여해 “설치, 퍼포먼스, 문학, 드라마, 게임, 음악 등 다양한 예술적 형식으로 갈등과 경합, 그리고 축제의 장을 펼쳐 보인다”(<새일꾼> 공식 프로그램 서문)고 하는데, 이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부분은 이들의 작업을 전시하는 방식이 매우 임의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시 형식이 가변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선거’라는 대주제를 중심축으로 삼음에도, 전시공간을 구성하는 작업을 선택하고 공간 안에 위치시키는 실제 과정 안에서 거대 담론이 사실상 해체된 듯한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21팀의 작가들이 구현해낸 예술작업들은 각 공간을 지배하는 선거의 형식과 그 역사성에 매우 밀착되어있거나 혹은 그것으로부터 의도적으로 끊임없이 이탈하거나 혹은 딱히 그와 연관이 없어 보이는 등, 사실상 이들을 한데 묶어 관통시킬 수 있는 실질적인 ‘주제’를 찾기 어렵다. 그것은 마치 20대 초중반에서부터 60대에 이르는 참여 작가들의 나이가 만들어내는 서로 다른 세대의 축, 그리고 전통 회화와 디지털 회화가 만들어내는 서로 다른 매체의 축이 한 공간 안에서 동시에 저마다의 궤도를 그리며 움직일 때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다성의(polyphonic) 상태와도 같다. 모든 전시작품은 어떤 방식으로든 선거에 대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며, 어쩌면 반드시 그럴 필요도 없을지 모른다.
전시 전경
그래서일까.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이 만들어낸 관점의 광각은 저마다 꽤나 다른 듯하다. 누군가는 투표 행위 자체에 관심을 기울이기도 하고, 누군가는 입구만이 노출되어있는 기표함의 외관에 주목하기도 하며, 누군가는 투표에서 배제된 또 다른 생명체들을 떠올리기도 한다. 또 누군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투표 행위 그 자체에 선행하는 국민 기본권으로서의 ‘투표권’의 의미에 천착하여 그것이 지니는 역사적 함의에 대해 고찰해보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1인 1표제가 상징하는 다양성과 공정성을 선거라는 특정 사건의 콘텍스트를 넘어선, 보다 일반적인 사회 현상 안에서 사유해보기도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이 그려내는 궤적은 어떤 경우에는 단 한 줄의 공약 문구에, 또 어떤 경우에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또 어떤 경우에는 규격화된 픽셀의 조합에 제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예를 들어, 1층 전시실에서 만난 천경우 작가의 에는 제목 그대로 의자가 등장하는데, 관객은 둥글게 원형을 그리며 놓인 서로 다른 24개의 의자에 앉은 후 그 위에 놓인 헤드셋을 통해 익명의 타인이 전하는 약 3분 내외의 짧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취업난에 힘겨워하는 누군가의 이야기, 어린아이를 키우는 누군가의 이야기, 60대가 되어 삶을 돌아보는 누군가의 이야기, 나에겐 외국어인, 그러나 그녀에게는 모국어일 낯선 언어로 무엇인가 전하고자 하는 누군가의 이야기. 모르는 이가 들려주는 결코 모를 수 없는 삶의 서사, 그러니까, 말하자면, 한 번쯤 들어보거나 경험해봤음직한 개인의 서사가 이해와 오해, 공감과 단절의 경계를 넘어서서 어떠한 대표성을 띠게 되는 지점에서 지금, 여기의 Listener's Chair는 헤드셋 너머의 예측 불가능한 시공간 속 Speaker's Chair와 비로소 만나게 되는 셈이다.
천경우
서로 다른 시공간을 매우 독창적인 방식으로 연결 짓는 시도는 2층 전시장 외부에 설치된 놀공의 관객 참여형 게임 <반드시 해내겠습니다!!!>를 통해서도 경험해 볼 수 있다. 주한독일문화원과의 협력 작업인 <빙 파우스트>를 통해 이미 공연계에서도 큰 주목을 받은 바 있는 놀공의 이번 작업은 참여 관객으로 하여금 스크린을 클릭하는 방식으로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총 19번의 대통령선거를 오로지 입후보자들의 공약만으로 재경험하게 한다. 각 참여자는 성별, 나이, 직업 등의 신상정보를 입력한 후, 후보자의 이름과 소속 정당 등의 주요 정보가 삭제된 채 오로지 붉은색과 푸른색으로만 나뉘어 기재된 두 후보의 선거 공약만을 보고 투표하듯 19번의 클릭을 수행한다. 여담이지만 필자의 경우, 처음에는 그야말로 무의식적으로 색깔에 따라 특정 후보자를 재빠르게 클릭하다가, 어느 순간 게임의 특성상 색깔과 정당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게끔 프로그래밍 되어있다는 것을 문득 깨닫고는 부지불식간에 구축되어버린 정치적 무의식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며 잠시 황망해하기도 했다. 작업의 제목에서처럼 ‘반드시 해내겠다’는 정치인들의 슬로건은 1940년대에도, 2000년대에도, 전쟁 전후에도, 경제 위기 속에서도, 심지어 코로나 시대에도 늘 있어왔다. 다만 변한 것이 있다면 “못 살겠다, 갈아보자!”(신익희의 민주당 대선 포스터 문구)와 “가러봤자 더 못 산다”(당시 익명의 애국청년이 남긴 한탄) 사이의 끝 모를 대립이 지난날의 정치를 상징하는 반면, 2020년의 유권자-관객은 전시장에 비치된 손소독제를 바르고 방역용 마스크를 쓴 채로 그와 같은 항구적 슬로건을 게임 프로그램 안에서 예술적으로 전유하며, 그것이 어떤 맥락에서 개인의 삶의 지표에 가닿을 수 있는지 클릭하고, 수치로 정렬된 클릭의 결과를 투표용지 형식에 출력할 뿐이라는 사실, 바로 그것이다.
놀공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전시장 출구를 주목해본다. 출구 바로 옆에는 실제 기표소가 마련되어있는데, 이곳에서 매주 특정 사회 이슈에 대한 관객 투표, 즉 ‘위클리 보트(Weekly Vote)’가 진행된다. 입장 시에 받은 투표용지에 기표한 후, 마치 실제 투표처럼 옆에 준비되어있는 투표함에 표를 넣으면 되는데 이처럼 모인 투표지들은 매주 일요일 5층 신문박물관에 마련된 전시실에서 실제 선관위의 투표지 분류기를 사용하여 개표되며 그 결과는 모든 전시 관람객이 볼 수 있도록 게시판에 기재된다. 실제 선거에서라면 후보자들의 이름 사이에서 단 하나의 ‘예’를 찾아 서성였을 <새일꾼>의 관람객들은 가령, “나는 공중파 뉴스보다 유튜브를 신뢰한다”와 같은, 그 주에 주어지는 단 하나의 이슈를 앞에 두고 ‘예’와 ‘아니오’라는 두 선택지 사이를 서성이게 된다. 그리고 그와 같은 서성임 끝에 자신의 의지에 따라 마침내 기표와 투표의 과정을 실행하는 순간, 다시 말해 전시의 메커니즘을 관람에서 참여로 전환하는 순간, ‘아카이브형 사회극’을 표방하는 <새일꾼>의 의미는 비로소 경험 가능한 것이 된다. 이동과 참여 대신 격리와 거리두기가 필수불가결한 삶의 조건이 되어가는 예외적인 시간. 그와 같은 시간 안에서 이처럼 경험 가능한 것으로서의 예술에 대해 주목하고자 하는 열망은 어쩌면 그 자체로 ‘코로나 시대의 자기소외’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두 조건 사이를 서성이는 예술계의 현재를 반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전시 전경

[사진제공 : 일민미술관 ⓒ 2020 Ilmin Museum of Art]

새일꾼 1948-2020: 여러분의 대표를 뽑아 국회로 보내시오
일자
2020.3.24.(화) ~ 6.21(일)
장소
일민미술관, 신문박물관
참여작가
김대환, 김을지로, 놀공, 박혜수, 안규철, 양경렬, 업체eobchae, 옵티컬레이스, 윤현학, 이동시, 이미정, 일상의 실천, 정윤선, 조은하, 천경우, 최이다, 최하늘, 한솔, 홍유경, OOO, Sasa[44]
주최/주관
일민미술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협력
신문박물관
관련정보
http://ilmin.org/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