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아일랜드 <난폭과 대기>
Show Must Go On?
강훈구_작가, 연출가
178호
2020.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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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연습하던 우리의 연습실로 중국 우한 지역에서 창궐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국에 상륙했다는 속보가 날아들었다. 이럴 줄 알고 제가 <오이디푸스 왕>을 고른 거예요, 어색한 농담으로 뒤숭숭한 연습실을 안심시키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지난 2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연습하던 우리의 연습실로 중국 우한 지역에서 창궐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국에 상륙했다는 속보가 날아들었다. 이럴 줄 알고 제가 <오이디푸스 왕>을 고른 거예요, 어색한 농담으로 뒤숭숭한 연습실을 안심시키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역병은 테베가 아니라 서울로, 그리고 전국으로, 아니, 전 세계로 속절없이 퍼져나갔다. 마음 같아서는 역병을 멈출 신탁을 받으러 그리스로 떠나고 싶었지만, 비행기 티켓을 알아보기도 전에 극장이 폐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럴 줄 알고 <오이디푸스 왕>을 고른 건 아닌데, 연습은 중단되었고, 본의 아니게 나는 셀프 자가 격리에 돌입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연극은 유튜브 링크로 떠도는 것이 되지는 않을까. 대학로에는 연극 박물관이 들어서겠지. 옛날에는 여기서 연극 같은 걸 했대. 와, 정말요? 왜 그랬대요? 혼자 온갖 염세적 상상을 거듭하다가, 웹진 연극in의 리뷰 청탁을 받았다. 아니, 지금 이 시국에 연극이 올라간다고요? 그렇다네요. 역시 옛말 틀린 게 하나도 없다. ‘쇼 머스트 고 온’, 연극정신은 살아있다고, 연극은 절대 죽지 않는다, 되뇌며 나는 한 달 만에 자가격리를 해제하고 대학로로 나섰다.

이토록 안온한 한국 연극의 집
그렇게 프로젝트 아일랜드의 <난폭과 대기>가 코로나 시대의 내 첫 연극이 되었다.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 <고독한 목욕>으로 유명세를 얻은 ‘프로젝트 아일랜드’에서 조연출을 맡던 연출가 곡수인씨가 이 작품으로 입봉을 하는 모양이었다. 고작 한 달이었을 뿐인데, 참새방앗간처럼 드나들던 선돌극장이 입구부터 무척 낯설었다. 감염을 대비하여 나는 개인정보와 체온을 제출해야 했고, 대신 일회용 비닐장갑을 받았다. 마스크와 비밀 장갑을 착용하고 들어선 극장 안의 풍경은 더욱 기묘했다. 온몸을 가린 관객들은 한자리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앉아야 했다. 어쩌면 곧 등장할 배우들의 눈에는 우리가 얼굴을 가린 극장의 유령들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가 관객의 표정을 볼 수 없는 시대. ‘시체 관극’을 넘어 ‘귀신 관극’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객석 사이에 몸을 끼워 넣고 배우의 침을 맞아가며 연극을 보던 시절은 이제 전설처럼 회자될지도 모른다. 갑자기 떠오른 들뢰즈의 유명한 말.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 말 그대로 일상이 되어버린 (재난)영화가, 그것도 초대형 블록버스터가, 극장 안까지 들어와 객석에 앉았다. 어떤 연극이 감히 여기에 대적할 수 있을까. 이제 연극은 패배를 정확히 예감하면서도 전장으로 걸어 들어가는 희랍비극 영웅의 운명을 짊어지게 된 것인가. 나는 흥미진진한 마음으로 곧 이곳에서 펼쳐질 신인(新人)의 새로운 싸움을 기다렸다.
연극은 정확했다. 배우들은 말 그대로 열심히 연기하며 그들의 완연한 젊음을 자랑했다. 조명은 필요할 때 켜지고, 필요 없을 때 꺼졌다. 알맞은 음향이 적당한 타이밍에 흘러나왔다. 희곡을 있는 그대로 무대에 세운 것이다. 아마도 이것은 우리에게 참으로 익숙한 연극의 발전 모델이 생산한 결과물일 테다. 연출을 지망하는 청년이 도모할 수 있는 가장 안정적인 방식. 유명한 (외국) 희곡을, 충실히, 만드는 극단에서, 조연출 생활을 하다가, 유명한 (외국) 희곡을. 있는 그대로, 연출하여 데뷔하는, 그리고 그것으로 안정적인 연출력(이라기보단 신망)을 인정받고, 다시 다른 (외국) 희곡을 찾아서 다음 공연을 준비하는 일련의 과정. 여기는 수많은 연극인들이 살았으며, 지금도 살고 있는, 한국 연극의 집이다. 그러나 여기서 전쟁이 벌어진 것은 아주 오래전 일이다.
연극은 정확했다. 배우들은 말 그대로 열심히 연기하며 그들의 완연한 젊음을 자랑했다. 조명은 필요할 때 켜지고, 필요 없을 때 꺼졌다. 알맞은 음향이 적당한 타이밍에 흘러나왔다. 희곡을 있는 그대로 무대에 세운 것이다. 아마도 이것은 우리에게 참으로 익숙한 연극의 발전 모델이 생산한 결과물일 테다. 연출을 지망하는 청년이 도모할 수 있는 가장 안정적인 방식. 유명한 (외국) 희곡을, 충실히, 만드는 극단에서, 조연출 생활을 하다가, 유명한 (외국) 희곡을. 있는 그대로, 연출하여 데뷔하는, 그리고 그것으로 안정적인 연출력(이라기보단 신망)을 인정받고, 다시 다른 (외국) 희곡을 찾아서 다음 공연을 준비하는 일련의 과정. 여기는 수많은 연극인들이 살았으며, 지금도 살고 있는, 한국 연극의 집이다. 그러나 여기서 전쟁이 벌어진 것은 아주 오래전 일이다.

제로세대 희곡의 역설
사실 연극은 공연이 시작하기 직전, 공연 팸플릿을 비닐장갑 낀 손으로 힘겹게 펼쳤을 때부터 무너지고 있었다. “이 연극의 배경은 일본의 버블 경제 시대를 겪고 자란 제로세대 청년들의 이야기로 경제적, 사회적 압박으로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한국의 N포세대 청년들과 닮아 있다.” 제로세대라니, 새천년이 되고도 이십 년이 지났지만, 코로나가 전 세계를 휩쓰는 중에도, 제로세대 연극은 죽지도 않고 또 돌아왔다.
제로세대란, 많이들 아시겠지만, 19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사이에 태어났으며 2000년대(그러니까 20년 전)에 들어오면서 일본 예술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세대를 이르는 말이다. 제로세대가 한국에 일본 연극의 새로운 조류로 소개된 건 대략 2010년(그러니까 10년 전)부터다. 그리고 수많은 “제로세대” 작가들이 수입됐다. <3월의 5일간>의 오카다 토시키(1973년생), <손>의 이와이 이데토(1974년생), <가모메>의 타다 준노스케(1976년생), <위대한 생활의 모험>의 마에다 시로(1977년생)부터 <우리 별>의 시바 유키오(1982년생), <점과 점...>의 후지타 다카히로(1985년생)까지.
제로세대는 60년대 후반생부터 85년생까지 퉁치는 놀라운 마법인 것이다. 이 밖에도 제로세대 딱지를 달고 수많은 일본의 희곡들이 수입되었고 공연되고 있다. 제로세대 연극은 한국 연극의 집이 뚝딱 만들어 내놓을 수 있는 대표 음식이 된 것이다. (이러니 한국의 작가들은 어떻게 외국에 소개될까 안 궁금해질 수가 있나. 김은성, 구자혜, 이경성과 같은 연극인들은 다 같이 한국의 이십대 문화를 선도하는 ‘N포 세대’ 작가일까. ‘이 공연은 한국의 IMF 경제 시대를 겪고 자란 N포 세대 청년들의 이야기로 경제적, 사회적 압박으로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우리 청년들과 닮아있다.’라고 소개되려나.)
제로세대란, 많이들 아시겠지만, 19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사이에 태어났으며 2000년대(그러니까 20년 전)에 들어오면서 일본 예술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세대를 이르는 말이다. 제로세대가 한국에 일본 연극의 새로운 조류로 소개된 건 대략 2010년(그러니까 10년 전)부터다. 그리고 수많은 “제로세대” 작가들이 수입됐다. <3월의 5일간>의 오카다 토시키(1973년생), <손>의 이와이 이데토(1974년생), <가모메>의 타다 준노스케(1976년생), <위대한 생활의 모험>의 마에다 시로(1977년생)부터 <우리 별>의 시바 유키오(1982년생), <점과 점...>의 후지타 다카히로(1985년생)까지.
제로세대는 60년대 후반생부터 85년생까지 퉁치는 놀라운 마법인 것이다. 이 밖에도 제로세대 딱지를 달고 수많은 일본의 희곡들이 수입되었고 공연되고 있다. 제로세대 연극은 한국 연극의 집이 뚝딱 만들어 내놓을 수 있는 대표 음식이 된 것이다. (이러니 한국의 작가들은 어떻게 외국에 소개될까 안 궁금해질 수가 있나. 김은성, 구자혜, 이경성과 같은 연극인들은 다 같이 한국의 이십대 문화를 선도하는 ‘N포 세대’ 작가일까. ‘이 공연은 한국의 IMF 경제 시대를 겪고 자란 N포 세대 청년들의 이야기로 경제적, 사회적 압박으로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우리 청년들과 닮아있다.’라고 소개되려나.)
이쯤 되면 제로세대 딱지는 한국연극이 일본희곡을 수입할 때 동봉하는 공인인증서다. 놀랍게도 이 공인인증서는 영원한 젊음이 담겨있음을 보증하는 품질보증서 역할도 한다. 당신이 한국의 신인 연출가라면, 제로세대 희곡을 꼭 읽어보세요. 마치 당신 이야기 같지 않나요. 내 이야기는 아니지만 마치 내 이야기 같은 희곡들을 ‘충실히’ 올리는 것으로, 수많은 한국의 젊은 연극인들은 청년성을 획득하고, 문제의식을 대체하는데 성공했다. <난폭과 대기>는 아주 좋은 예다. 잠깐 구글에서 검색해 봐도, 국내에서 서로 다른 단체에 의해 수차례 공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작가 모토야 유키코는, 공연 팸플릿에는 “일본의 20대 문화를 선도하는 도발적 작가”라고 소개되어있지만, 그녀도 1979년생이니 한국 나이로 마흔둘이다. 2005년에 첫 공연된 희곡이 여전히 청년 문화를 선도하려니 제로세대 희곡들은 바쁘다. 중년의 다선 국회의원이 스스로를 젊은 후보라고 우기는 한국의 선거철 풍경처럼, 한국 연극에선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제로세대 작가들의 희곡이 젊은 연극으로 둔갑한다. 아니, 사실 우리가 둔갑시켰다.
불황은 미세먼지처럼 전 세계에 퍼져있고, 우리는 모두 자가 격리 중이라, 새로운 청년(新人)들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불황은 그렇게 퉁칠 수 있는 것인가? 각자 불황을 새롭게 감각하는 일본의 예술가들을 제로세대로 퉁치는 것은, 그래서 우리가 겪고 있는 이 불황을 다시 그 퉁쳐진 제로세대로 퉁치는 것은, 젊은 연극을 “사회에 대한 불신”, “인간관계의 단절”, ‘소통의 부재’ 같은 말로 퉁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삶을 퉁치는 것이다. 청년성을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우리의 연극은 우리(청년)의 삶을 은폐하는 역설의 늪에 잠긴다.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라는 말. 세월호, N번방, 코로나 사태를 거치며 이 비장한 선언은 우리에게 퍽 익숙한 표현이 되었다. 하지만 대개 우리는 이 말을 읊조리면서도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다. 알다시피 ‘이전의 삶’은 무척 자성이 셀뿐만 아니라, 안온하기 때문이다. 그럼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전처럼 살면 안 된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그만 퉁치는 것이다. 전력을 다해서.
오이디푸스는 직접 눈을 찌른 것도 신의 뜻이냐는 코로스의 질문에, ‘가련한 나 자신’이 눈을 직접 찔렀다는 그 유명한 대답으로 응수한다. N포 세대는 계속해서 포기하는 수동적이고 무력한 존재로 보인다. 그러나 사실 포기는 ‘하지 않겠다’는 적극적인 행위 아닌가. 난데없는 역병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세상은 우리가 포기할 만해서 포기한 것임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사랑하는 연극이 후일담에 머물게 하지 않으려면, 세상보다 조금이라도 먼저 우리에게 도착하려면, 정들었던 것들을 이제는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쇼 머스트 고 온!’이 아니라 언제나, ‘쇼 머스트 고 온?’이다.
오이디푸스는 직접 눈을 찌른 것도 신의 뜻이냐는 코로스의 질문에, ‘가련한 나 자신’이 눈을 직접 찔렀다는 그 유명한 대답으로 응수한다. N포 세대는 계속해서 포기하는 수동적이고 무력한 존재로 보인다. 그러나 사실 포기는 ‘하지 않겠다’는 적극적인 행위 아닌가. 난데없는 역병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세상은 우리가 포기할 만해서 포기한 것임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사랑하는 연극이 후일담에 머물게 하지 않으려면, 세상보다 조금이라도 먼저 우리에게 도착하려면, 정들었던 것들을 이제는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쇼 머스트 고 온!’이 아니라 언제나, ‘쇼 머스트 고 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