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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살롱 나비꼬리 <오문오방: 무릉도O>

코로나 시대의 관객 사랑

강보름
179호 2020.05.14
취미가 관극인 사람들은 늘 극장 안에서 공연과 ‘인정투쟁’을 한다. 동의할 수 없지만 의견 표현은 허용되지 않는, 잠자코 봐야 하는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대부분은 지고 돌아온다. 도대체 내가 보고 싶은 공연은 어디 있는 건지, 언제까지 이 취미를 지속할 것인지 고민하면서. <
취미가 관극인 사람들은 늘 극장 안에서 공연과 ‘인정투쟁’을 한다. 동의할 수 없지만 의견 표현은 허용되지 않는, 잠자코 봐야 하는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대부분은 지고 돌아온다. 도대체 내가 보고 싶은 공연은 어디 있는 건지, 언제까지 이 취미를 지속할 것인지 고민하면서. <오문오방: 무릉도O>은 그런 면에서 거의 정반대의 스펙트럼에 있는 공연이다. 가장 큰 이유는 공연의 중심을 ‘관객’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창작살롱 나비꼬리의 공연은 2018년 <오문오방: 서울 유토피아>, 2019년 <난지금 난지별> 워크숍에 이어 2020년 <오문오방: 무릉도O>으로 이번이 세 번째였다. 각각의 공연장소는 '의외의조합(충무로)', '난지캠핑장(난지도)', '작은도시(암사동)'로, 이들은 공연장이라기에는 매번 생소한 곳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그리고 관객인 ‘나’는 당일치기 여행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응한다.
일요일 밤 8시 공연. 코로나로 평소에는 외출하지 않는 시간이라 정말 오래간만에 집을 나섰다. 도착하자 형광주황 안전조끼를 입은 스태프들이 맞아주었다. 철거가 예정되어 곧 폐건물이 될 공연장의 분위기와는 잘 맞는데, 무릉도원도 안전이라는 키워드와 연결되는 걸까? 궁금증을 안고 관극을 시작했다.
나비꼬리의 1:1 씨어터는 관객이 공간과 관련된 단어를 하나씩 고르고, 첫 공간이 어디냐에 따라 관극 동선이 정해진다. 모두의 관극 체험이 다를 수밖에 없도록 설계되어 형식에서부터 오로지 나만을 위한 공연이라는 점이 특별하다.
첫 공간인 ‘극장’으로 가니 배우 김은한이 ‘관객-작가‘의 집필 책상을 마련해두었다. 무대 위에 있는 배우 본인과 함께 창단 기념 공연을 만드는 컨셉이었다. 두 사람은 즉흥적으로 떠오른 단어를 결합해 극단의 이름을 짓거나 공연의 플롯을 구성하게 되는데, 이 즉흥성은 배우에게 엄청난 순발력을 요구한다. 작가-관객도 쥐어짜내야 한다. 배우가 땀을 흘리며 응원 호루라기를 불어주는 등 온몸으로 작가-관객의 탄생을 응원하기 때문에 열심히 안 할 수가 없다. 이런 이상적인 협업이 가능하다니!
극단 ‘화성써커스’의 첫 공연은 천도복숭아가 캔모아 빙수집에서 나무토막처럼 썰려 냉장고로 들어갔으나 선녀에 의해 레모네이드가 되는 스토리였다. 공연을 마친 후 함께 커튼콜을 하기 위해 배우의 무대로 올라가 야외극장의 특장점인 밤바람을 맞으며 해단식을 거행했다. 재미 포인트 또 하나는 작가-관객 스스로 공연에 대한 평가를 내리게 한다는 점이다. 주사위를 굴려 나온 대로 공연의 별점이 매겨진다.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공연은 이렇게 가능했다.
배우 강혜련의 ‘자기만의 방’으로 이동했다. 아이패드에는 방에서 배우가 움직이는 영상이 재생된다. 강혜련은 어제 죽은 자신을 대신해 일기를 이어서 쓰거나,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남겨둔 초콜릿을 먹어도 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점점 질문을 하더니 관객이 대답한 대로 이루어진다! 그제야 녹화영상이 아니라 쌍둥이 방에서 이루어진 실시간 영상통화임을 알았다. 어제 죽은 사람이 나의 안부를 묻는 진정성이 최첨단(?)의 형식과 만나는 흥미로운 공연이었다.

다음 공간인 무릉해변은 스태프들이 여행을 갈 수 없는 코로나 시대의 관객들을 위해 해변을 구현한 공간이었다. 미션도 포기한 채 바닷가에 놀러 온 기분을 내며 셀카도 찍고 혼자 놀았다.
다음 공연의 공간은 절벽이 있는 바닷가였다. 그러나 이 바닷가는 보이지 않는다. 눈을 감은 배우 조의진은 관객 역시 눈을 감고 바닷가의 이미지를 함께 상상할 것을 요청한다. 그리고 관객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묘사해주면 그림을 그려주겠다고 제안한다. 눈을 뜨고 꽃잎과 나뭇가지로 이루어진 초상화를 보았을 때 밀려왔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반대로 관객도 눈을 감고 꽃잎을 더듬어가며 배우의 초상화를 만들게 된다.
사실 들어섰을 때 배우가 실제 시각장애인인지 아닌지 궁금했는데 곧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시각을 제외한 세상에 위치해보는 나의 경험이 더 중요한 것임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조심스럽게 오해의 지점을 줄이는 대화 방식이면 어떨까 생각해보았다.

마지막으로 아프리카 천이 걸려있는 댄서 고권금의 공간으로 들어갔다. 흙으로 가득 찬 공간에서 해방감이 느껴졌다. 방호복과 마스크를 쓴 채로, 공원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의 동작을 함께 따라하기도 하고, 춤을 추고 거울처럼 서로를 관찰하고 흙을 던지는 생경한 체험을 했다. 20년 만에 흙놀이터에서 안전하게 놀았다. 댄서 고권금이 안아주며 배웅할 때, 코로나 의료진과 가족이 거리를 지키며 안부 인사를 나누는 이미지가 문득 겹치며 눈물콧물을 흘렸다. 나비꼬리 공연에서 또 울고 말았다.
나비꼬리의 공연은 관객들에게 당신이 곧 연극 자체라고 말한다. 그래서 먹이고, 말하게 하고, 만지게 하고, 걷게 하고, 몸을 던지게 한다. 가장 작은 만남으로 가장 강렬한 밀도를 구현하면서도 이 공간에서는 안전하다는 감각을 잃지 않게 하는 것. 그래서 이 무릉도원으로의 초대를 오래오래 기억하게 하는 것. 공연 이후 관객들은 본인의 꽃잎 초상화를 sns에 올리고, 창작자 또한 40개의 극단 이름과 별점, 한줄평을 공유한다. 그야말로 서로를 기억하고자 하는 사랑의 흔적이다. 1:1 씨어터가 진정성과 만날 때 함께 관람한다는 감각 없이도 관객들끼리 유대감이 생기는 드문 현상을 경험했다. 그래서 코로나 시대 대면 연극의 돌파구이자 관객 사랑의 집약체인 이 공연이 좀 더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진 제공: 창작살롱 나비꼬리]

오문오방: 무릉도O
일자
2020.04.29.(수) ~ 2020.05.03.(일)
장소
작은도시 5층
창작자
강혜련, 고권금, 김은한, 조의진
제작진
김은정, 김현실, 김현지, 리봄, 신은지, 윤지영, 허선혜
주최/주관
창작살롱 나비꼬리
후원
서울문화재단, 작은도시
관련정보
https://www.facebook.com/nabicori/posts/10716114598742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