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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아시아문화전당 <나는 광주에 없었다>

여기 내가 있다

전강희
180호 2020.06.04
이 글의 제목 ‘여기 내가 있다’가 말하는 ‘나’는 관객이다. 이 연극에서 관객은 2020년에 있고, 광주에 있고, 극장에 있고, 무대에 있다. 연극의 제목 ‘나는 광주에 없었다’의 ‘나’ 역시 관객이다. 시기는 1980년이며 장소는 광주다.
이 글의 제목 ‘여기 내가 있다’가 말하는 ‘나’는 관객이다. 이 연극에서 관객은 2020년에 있고, 광주에 있고, 극장에 있고, 무대에 있다. 연극의 제목 ‘나는 광주에 없었다’의 ‘나’ 역시 관객이다. 시기는 1980년이며 장소는 광주다. 관객은 그 당시 여기에 없었기 때문에 지금 극장에 있을 수 있다. 연극은 나의 오늘과 과거를, 나의 사적인 하루와 역사적인 그 시간을 한 공간에 배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관객은 극장에 들어서면 자신이 앉을 구역을 선택해야 한다. 객석은 당시 광주의 행정구역처럼 동구, 북구, 서구, 남구 네 군데로 나뉘어 있다. 한 구역을 선택해 플라스틱 상자로 만들어진 객석에 앉는다. 이야기는 1980년 5월에서부터 출발한다. 한 아이가 엄마와 함께 학교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은 오빠를 기다린다. 아이의 시간은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에 가고, 가정을 이루고, 오늘까지 이어진다. 아이와 엄마의 긴 기다림 사이, 극이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시간은 5월 17일부터 27일까지 열흘간 일어난 일이다. 연극의 총 1시간 50분 분량 중 체감상 대략 15분 정도를 제외한 모든 시간이 이 열흘을 보여주는 것에 할애되어 있다.
그때, 그 상황으로 들어가기 위한 준비
관객참여형 공연이라고 명시하고 있는 연극에서 관객은 극이 진행되면서 시민군에 합류하게 된다. 시민군이 되어 어떤 행위를 수행하기 전까지 연극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보기’에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2019년 5월 쇼케이스 무렵만 하더라도 극의 내러티브는 배우들이 전하는 말과 움직임에 전적으로 의지하면서 흘러갔다. 올해 올라간 공연은 움직임으로 상당 부분 대체되어 있었다. 관객이 할 일은 먼저 움직임을 해석해 내는 것이 되었다. 교복을 입은 학생의 몸짓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유연하고 아름다운 동작을 보여주지만, 직선이나 각을 이루는 것으로 구성된 일상적이지 않은 몸짓은 곧 시민이 처하게 될 상황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관객은 군중들 속에서 몇몇 실제 인물들을 찾아내게 되었다. 필자가 찾은 인물은 세 사람이다. 김경철, 5.18 최초 사망자인 그는 청각장애인이었다. 배우들이 죽음을 수어로 알리는 장면을 통해 그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윤상원, 들불야학의 선생님이었던 그는 끝까지 도청을 사수했던 인물로, 고선웅 연출이 5.18를 다룬 작품인 <푸르른 날에>에서도 비슷한 유형을 볼 수 있다. 차명숙, 금남로에서 거리 방송을 진행하며 시민들에게 당시 상황을 알린 상징적인 인물이다. 이렇듯 정확하게 이름이 기억나는 인물들도 있고, 다큐멘터리에서 보았지만 이름을 기억할 수 없는 인물들도 있었다.

앞서 ‘해석’이라는 말을 사용했지만, 이 연극의 목적이 그에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관객들과 함께 그때의 상황으로 들어가 보는 것, 공동체적인 경험을 함께 하는 것, 그래서 하나의 사건을 다시 불러오고 만들어 내는 것이 <나는 광주에 없었다>가 지향하는 지점이 아니었을까. 연극은 이 목표를 충분히 달성했다.
공동체적인 경험을 함께하기 위한 전략
어느 정도 ‘보기’에 익숙해진 관객들은 ‘하기’를 적극적으로 실천한다. 시민군이 되어 배우들의 대열에 합류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자연스럽게 끌어내기 위해 사용된 전략들이 있다. 관객이 시민으로 극에 처음 합류하는 순간은 배우들에게서 “학생들과 민주인사들을 석방하라.” “계엄군은 즉각 철수하라.”와 같은 구호들이 적힌 ‘투사회보’를 받아드는 때이다.

이때 관객은 처음으로 내 옆자리 관객의 목소리를 듣는다. 이후엔 좀 더 과감해진다. 주먹밥을 만들어 시민군에게 건네는 장면은 배우들이 분한 당시의 시민들이 객석에 앉아있는 곧 시민이 될 관객들을 한마당으로 불러내는 데 효과적이었다. 당시의 중년 여성 시민군으로 분한 배우들이 노래자랑 같은 볼거리를 제공하며 관객을 한데 모았다.

극의 후반부에서 관객은 객석으로 사용한 플라스틱 상자를 하나씩 들고 계엄군에 대항할 바리케이드를 배우들과 함께 만든다. 강강술래의 물결에도 동참한다. 이제 관객의 몸은 배우의 몸과 동일선상에 있다.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사라지고, 오늘과 과거의 시간도 섞였다.

언어가 중심에 있지 않았음에도, 극이 자연스럽게 진행될 수 있던 요인으로는 극적 분위기를 잘 살린 긴박하고 무거운 음향뿐만 아니라 선곡 또한 중요한 몫을 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전진하는 5월’, ‘빙빙 돌아라’로 익숙한 아일랜드의 노래 ‘Johnny I Hardly Knew Ye’, 정태춘과 박은옥의 ‘5.18’ 등이 그때 일어난 일들을 상기시켰다. 장면을 하나하나 설명하지 않더라도 사건의 흐름과 정서를 따라가는 것이 가능할 수 있게끔 여지를 만들어 준 것이다.
관객의 역할은 연출가의 의도를 넘어서 새로운 텍스트를 창조하는 작가로까지 확장되지는 않는다. 연극의 구조나 결과에 변화를 가져오는 역할이 아니다. 이 연극에서 관객이 가져가야 할 것은 당대의 사건을 지각하고 오늘의 관점에서 경험하는 것 자체에 있다. 배우와 같은 위치에서 행위자가 되고, 공동체를 이루고,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 기존에 의지하던 시각적인 접근이 아니라 청각과 같은 다양한 감각을 동원해 보고, 옆 사람을 헤아려보는 것, 이를 통해 자신만의 특별한 예술적 경험을 누려보는 것에 관객의 자리가 있다.

[사진 제공: 아시아문화원]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공연 나는 광주에 없었다
일자
2020.05.12.(화) ~ 05.18.(월)
장소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극장1
작
김경주, 안준원, 고선웅
연출
고선웅
출연
황영희, 김난희, 백진철, 유병훈, 이도유재, 호산, 이정훈, 조영규, 견민성, 김영노, 김윤아, 남슬기, 박주연, 강득종, 이지현, 원경식, 이성환, 조용의, 서승현, 서정민, 양예석, 정다함, 홍자영, 김남표, 조영민, 김현동, 박승화, 박해용, 홍준기, 이경구, 이서현, 고영찬, 최은준, 안예림
프로듀서
정인석, 고강민
관련정보
https://www.acc.go.kr/main/performance.do?PID=0102&action=Read&bnkey=EM_00000038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