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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 <(예술로 이야기하는 거 조금 챙피한데) I can't stop!>

여전하지 않게 여전히

손옥주_공연학자
182호 2020.07.09
파트타임 알바와 예술작업 사이, 혹은 맥도날드 감자 포대가 상징하는 자본주의와 그 포대 위에 그려놓은 턱드름(“턱드름 없는 사람이 어딨어!” - <클린룸> 중 작가의 말) 사이를 오가는 일상.
“저는 계속 목소리를 내려고 해요. 그게 저에게 중요하고 사회에 중요해요. 그게 저에게 이롭고 사회에 이로워요.”
작가 신민
파트타임 알바와 예술작업 사이, 혹은 맥도날드 감자 포대가 상징하는 자본주의와 그 포대 위에 그려놓은 턱드름(“턱드름 없는 사람이 어딨어!” - <클린룸> 중 작가의 말) 사이를 오가는 일상. 포대 위에 신문지를 붙이고 붙이고 붙이다가 그 위에 갱지도 붙여보고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형태를 잘라보기도 하고 그 안을 다 끄집어내어보기도 하고 본드를 이용해 자른 부분을 다시 붙여보기도 하는 작업. 삶에 있어서도 예술 활동에 있어서도 굳이 비유나 은유를 필요로 하지 않는 그런 일상, 그런 예술 활동은 그동안 작가 신민에게 특정한 정체성을 부여해온 듯하다. 이는 작가의 삶에 스며든 화두에 대해 ‘예술’과 ‘노동’과 ‘페미니즘’이라는 꽤나 불투명한 개념들을 렌즈 삼아 들여다보려 했던 그간의 비평적 시도들에서도 느껴지는 바이다. 허나 정작 이 같은 거대 개념들의 교차지점을 자가 생성의 매트릭스로 삼는, 구멍 뚫리고, 투박하고, 때로는 조악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작가의 작품들은 한편으로는 너무나 익숙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나 즉흥적이고도 즉물적이어서 꽤나 생경하다. 구멍 뚫린 눈 사이로 향을 피워내는 인형, 겨드랑이 털과 다리털을 여과 없이 드러낸 채 “그냥 그대로”라고 외치며 그로테스크하게 웃는 드로잉 속 인물, 두 눈을 날카롭게 치켜뜬 채 견상 자세를 이어가는 알바생의 모습 속에서 어쩌면 누군가는 앙토냉 아르토가 말했던 제스처와 기호로서의 연극, 마술적으로 독립해 존재하는 공간 그 자체로서의 연극이 지닌 실제 표정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다사다난한 현실을 능가하는 스펙터클로서의 예술이 있다면 그러한 예술을 다시금 능가하는 어떠한 현실이 있다. 마치 외부와 내부의 공간이 구별되지 않는 클라인 병의 구조를 포개어 넣은 것처럼, 작가 신민의 작업은 일상적 삶을 반영하는 동시에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그 일상성을 넘어서거나 흘려보낸다. 그런 작가가 6월의 어느 날, 명동 한복판 금싸라기 땅에 위치한 <클린룸>에 입성했다.
“저는 계속 목소리를 내려고 해요. 그게 저에게 중요하고 사회에 중요해요. 그게 저에게 이롭고 사회에 이로워요.”
<클린룸>
<클린룸>은 한시적으로 작가에게 주어진 작업공간의 명칭이자, 코로나19 시대 속 자발적 자기소외의 필요성을 상기시키는 격리공간의 이름이자, 올해 5월 중순부터 한 달여 간 삼일로창고극장에서 진행된 프로젝트의 제목이기도 하다.
(기획 허영균, 이하 <클린룸>)이라는 제목의 1인 프로젝트에 초대된 6명의 개인 창작자는 각자 일주일간 극장 3층에 위치한 사무실, 즉 <클린룸>에 자가 격리된 상태로 작업을 진행해야만 하는데 여기에는 몇 가지 공통의 방식과 규칙이 적용된다. 그 중 첫 번째 규칙은 다음과 같다: “0. 기획자 및 PD와 대면 미팅 1회, 비대면 미팅 1회로, 메일/카톡 회의 3회 이내 진행. 미팅은 각 1시간 이내 종료.” (출처: 남산예술센터x삼일로창고극장 공식 홈페이지) ‘대면/비대면’이라는 용어로 정의되는 사전 미팅의 형식은 그 자체로 작업 진행을 위한 규칙이 한낱 작업을 위한 예술적 컨셉으로만 치부될 수 없음을 말해준다. 현 상황에서 진행되는 대다수의 행사가 그러하듯, <클린룸>의 공연장소를 비대면적 SNS 채널로 한정시킨 것은 예술적 선택에 앞서 시간의 최소화, 접촉의 최소화, 우연성의 최소화를 요청하는 작금의 매우 예외적인 작업 환경을 반영한 결과에 가깝다. 불가피함을 앞세워 예측 불가능한 것들을 지양하고자 하는 2020년의 새로운 시대정신. <클린룸>에 입성한 작가 신민이 점차 마모되어가는 자신의 관절 상태에 대해 수차례 토로하는 것조차 그와 같은 시대정신 안에서는 하나의 예측 가능한 징후에 가깝다. 그래서일까. 새로운 무엇인가를 만들거나 기대할 수 없는 지금, 마치 쓰고 또 써 닳을 대로 닳아버린 관절처럼 혹은 우릴 대로 우려내버린 곰탕처럼 다시금 현재형으로 도래하고자 하는 자신의 지난 이야기를 작가는 어쩌지 못한다. <클린룸>의 초반에 등장하는 선언, 그동안 해온 과거의 이야기들을 다시 하겠다는 작가의 체념 섞인 그 선언 속에서 문득 시대의 행간을 읽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2020년 6월 19일 저녁 8시부터 약 30여 분간 페이스북과 유튜브 채널로 송출된 <클린룸> 안에서 작가 신민은 무엇을 했을까. 맥도날드의 검정색 상하의 유니폼을 입은 채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배경음악 삼아 발레 동작을 선보이는 작가의 모습, 리본 모양의 검정색 머리망에 구겨 넣어진 머리카락, 양팔 이곳저곳에 울긋불긋 생채기로 남아있는 시간의 흔적들. 몇 장의 스틸컷 안에 각인된 이 같은 이미지들과 함께 작가의 <클린룸>은 시작된다. 일주일간 병가를 내고 이곳에 들어와 작업했다는 작가는 뒤이어 죽을힘도 생기지 않을 정도로 알바를 하며 몸을 혹사했던, 그리고 분노에 휩싸여 피곤한 줄도 모르고 작업에 몰두했던 지난 시간에 대해 덤덤히 이야기한다. 점차 나이가 들며 몸과 마음에 생기는 변화에 대해,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변하지 않는 자본주의 시장에 대한 반감에 대해 고백하는 목소리 또한 꽤나 덤덤하다. 그와 같은 덤덤함은 어쩌면 종이와 연필이 주재료가 되는 작품의 특성상, 물과 불에 취약하고 심지어 그저 시간이 흐르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수분기가 빠지고 흑연이 날아가 버릴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을 때, 말하자면 태생적으로 유약할 수밖에 없는 작품의 운명을 알고 이를 기꺼이 긍정할 때에서야 비로소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작가의 작품이 담긴 몇 장의 스틸컷과 작가의 나레이션이 한동안 평행하게 진행되다가 어느 순간, 화면 속 사진 이미지가 영상으로 전환된다. 두 눈에 구멍이 뚫린 작가의 인형들이 어두컴컴한 스튜디오 안에 가득 차있고, 작가는 불붙은 향을 하나씩 하나씩 인형 안에 놓는다. 그리고 계속되는 작가의 내레이션이 그 모습 위에 놓인다. 어려서부터 인형을 만들고 그 인형과 대화하는 것을 좋아했다는 고백, 트위터를 통해 결성된 재판 연대 모임에 참여해 함께 연대했던 사람들에게 짚으로 만든 인형을 주고 다 같이 판결을 원망하며 인형을 불태웠다는 이야기. <클린룸> 속 작가의 문장은 문법에 맞지 않고 말투는 어리숙하며 내용 전개는 다소 뜬금없다. 그럼에도 작가의 덤덤한 목소리와 두 눈에서 향이 피어오르는 인형들의 모습과 <백조의 호수> 속 극적 배경음악만을 마지막으로 남겨놓은 <클린룸>에는 지금의 무기력함을 기꺼이 넘어서 보려는 작가의 즐거운 의지가 하나 가득 울리는 듯하다.
“저는 계속 목소리를 내려고 해요. 그게 저에게 중요하고 사회에 중요해요. 그게 저에게 이롭고 사회에 이로워요.”
멈출 수 없어
신민 작가의 이번 공연 제목은 <(예술로 이야기하는 거 조금 챙피한데) I can't stop!>이다.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이번 공연에서 작가는 자신이 그동안 진행해온 예술 활동과 현 상황에서의 의욕 없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더 곰탕 우려내듯이 과거 이야기를 하면서라도 계속해서 자신만의 예술 활동을 이어나갈 것임을 피력한다. 무엇보다도 작품 만드는 것도,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는 것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쩌면 창피함에 대한 고백이나 예술을 멈출 수 없다는 선언에 앞서 느낌표(!), 말하자면 예술 활동을 주술적·운명적 행위로까지 확장해 적극적으로 수행해내고자 하는 의지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것을 예술 행위의 목표로 삼기에는 허물어뜨릴만한 둘 사이의 경계 자체가 애시 당초 주어지지 않았기에 관객들에게 보다 직접적이고도 진솔하게 다가오는 예술 작업들이 있다. 병가를 얻어 입주하게 된 <클린룸>에서 멈출 수 없는 오늘을 기꺼이 살아낸 작가가 앞으로의 오늘들을 어떻게 예술 활동 안에 담아나갈지, 필자 또한 그 궁금증을 멈출 수가 없다!

[사진 제공: 신민]

Performance for price: 클린룸 (예술로 이야기하는 거 조금 챙피한데) I can't stop!
일자
2020.06.19
장소
삼일로창고극장
작가
신민
기획
허영균
타이틀영상
HEZ KIM
디자인
김보휘
영상 기술자문/현장 송출
삼인칭시점
PD
김지우
주최/주관
삼일로창고극장 공동운영단
관련정보
http://www.nsac.or.kr/Home/Perf/PerfDetail.aspx?IdPerf=1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