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라리얄라 <돼지떼>
무수한 소음들이 입을 막아도
차슬기
182호
2020.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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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떼’라는 제목에서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소음이 연상되어서일까, 막연히 꽉 찬 무대를 상상하고 들어선 극장 안에는 여백이 가득하다. 긴 테이블과 의자, 높은 스툴 하나, 그리고 두 명의 배우. <돼지떼>의 단출한 무대 구성은 압축과 생략이 도드라지는 공연의 특색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러니까 이건, 사람에 관한 이야기
‘돼지떼’라는 제목에서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소음이 연상되어서일까, 막연히 꽉 찬 무대를 상상하고 들어선 극장 안에는 여백이 가득하다. 긴 테이블과 의자, 높은 스툴 하나, 그리고 두 명의 배우. <돼지떼>의 단출한 무대 구성은 압축과 생략이 도드라지는 공연의 특색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2020 산울림 고전극장 프로그램의 두 번째 작품인 <돼지떼>는 두 개의 이야기가 교차한다. ‘사람’의 범주에 여자는 포함되지 않던 시대에 사람으로서 살고자 했던 작가 조르주 상드의 이야기. 그리고 절망과 상실의 어둠 속에서 비로소 자신의 반짝거림을 발견한 예술가 에밀리의 이야기. 두 이야기는 각각 ‘상드'와 '에밀리'로 분한 두 배우의 입을 빌어, 대사의 중첩과 조명의 전환을 통해 느슨하게 얽혔다 흩어진다. 점진적인 인물 설명과 순차적인 스토리 전개를 과감하게 생략하고, 압축적인 대화로 인물의 특징과 상황의 맥락을 전달하며 <돼지떼>는 마치 점프 컷처럼 빠른 호흡으로 두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그 속도감에 눈앞이 조금 어지러워지기도 하지만, 두 이야기가 만나는 종착지는 하나다. 자유롭게 살고자 했던 사람의 이야기. 그러니까 이건,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2020 산울림 고전극장 프로그램의 두 번째 작품인 <돼지떼>는 두 개의 이야기가 교차한다. ‘사람’의 범주에 여자는 포함되지 않던 시대에 사람으로서 살고자 했던 작가 조르주 상드의 이야기. 그리고 절망과 상실의 어둠 속에서 비로소 자신의 반짝거림을 발견한 예술가 에밀리의 이야기. 두 이야기는 각각 ‘상드'와 '에밀리'로 분한 두 배우의 입을 빌어, 대사의 중첩과 조명의 전환을 통해 느슨하게 얽혔다 흩어진다. 점진적인 인물 설명과 순차적인 스토리 전개를 과감하게 생략하고, 압축적인 대화로 인물의 특징과 상황의 맥락을 전달하며 <돼지떼>는 마치 점프 컷처럼 빠른 호흡으로 두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그 속도감에 눈앞이 조금 어지러워지기도 하지만, 두 이야기가 만나는 종착지는 하나다. 자유롭게 살고자 했던 사람의 이야기. 그러니까 이건,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사람1 : 조르주 상드
<돼지떼>는 19세기 프랑스 작가 조르주 상드로부터 출발한다. 조르주 상드는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여성이자 작가로 많은 소설과 희곡, 동화, 수필 등을 남긴 예술가였으나 세간은 그를 뮈세와 쇼팽, 들라크루아, 플로베르와 같은 남성 예술가들의 뮤즈이자 애인으로만 호명한다. <돼지떼>는 늘 부적절한 이름으로 불려야 했던 조르주 상드를 무대 위로 불러내어 그 손에 펜을 쥐여준다.
극의 초반, 여자가 ‘감히’ 글을 쓴다는 이유로 쏟아지는 비난에 분노한 ‘상드’가 등장한다. 작품에 대한 정당한 비평이 아닌 여성혐오로 가득 찬 문장들이 소음처럼 ‘상드’와 그의 작품을 에워싼다. 힐난의 이유는 단 하나. 그가 ‘제자리’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자신을 비가시화한다는 조건으로 제자리를 부여받는다. 어둠과 침묵에서 벗어나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면서 동등한 ‘사람’으로서 목소리를 내는 순간, 여성은 위험하고 불결한 ‘것’이 된다. 가정 안의 천사로 남기를 명령하는 소음들에 귀를 막고 ‘상드’는 불순한 작가가 되어 꿋꿋이 글을 써 내려간다. "……이 이야기는 아멜리가 입을 열면 시작한다. 입을 열면 목소리를 내야 한다. 목소리를 내는 사람에겐 돼지떼들이 들러붙는다.……" ‘상드’의 목소리를 빌어 동화 <말하는 떡갈나무>는 에밀리의 이야기로 변주되고 <돼지떼>의 본격적인 막이 오른다.
극의 초반, 여자가 ‘감히’ 글을 쓴다는 이유로 쏟아지는 비난에 분노한 ‘상드’가 등장한다. 작품에 대한 정당한 비평이 아닌 여성혐오로 가득 찬 문장들이 소음처럼 ‘상드’와 그의 작품을 에워싼다. 힐난의 이유는 단 하나. 그가 ‘제자리’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자신을 비가시화한다는 조건으로 제자리를 부여받는다. 어둠과 침묵에서 벗어나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면서 동등한 ‘사람’으로서 목소리를 내는 순간, 여성은 위험하고 불결한 ‘것’이 된다. 가정 안의 천사로 남기를 명령하는 소음들에 귀를 막고 ‘상드’는 불순한 작가가 되어 꿋꿋이 글을 써 내려간다. "……이 이야기는 아멜리가 입을 열면 시작한다. 입을 열면 목소리를 내야 한다. 목소리를 내는 사람에겐 돼지떼들이 들러붙는다.……" ‘상드’의 목소리를 빌어 동화 <말하는 떡갈나무>는 에밀리의 이야기로 변주되고 <돼지떼>의 본격적인 막이 오른다.

사람2 : 에밀리
<말하는 떡갈나무>는 말년의 조르주 상드가 두 손녀를 위해 집필한 동화로, 마을에서 천대받던 고아 소년 ‘에미’가 주변 인물들과 만남을 통해 삶의 지혜를 배우고 마침내 훌륭한 어른이 되어 어엿한 성원으로 인정받는다는 이야기다. <돼지떼>는 동화 속 남성 인물을 여성 인물로 변용하여, 귀환과 안착의 성장 서사가 아닌 떠남과 발견의 서사를 그려낸다.
원작의 미성숙하고 불완전한 소년 ‘에미’는 자신의 조력자이자 후견인이자 훗날 양아버지가 되는 농부 ‘뱅상 아저씨’를 만나 공동체 내부에 성공적으로 정착한다. 반면 소녀 ‘에밀리’는 그 역시 목공을 가르쳐주는 조력자 ‘소피 언니’를 만나지만 어느 하나의 세계에 편입되지 않는다. 연대라는 교집합으로 ‘에밀리’는 ‘소피’와 이어지지만, 언제든 다시 헤어질 수 있는 여지를 남긴 채 어디에도 귀속되지 않는 자신만의 여정을 펼쳐나간다.
독립을 위해서는 돈이, 돈벌이를 위해서는 기술이, 효율적인 생계 도구를 갖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소피’는 역설하지만, ‘에밀리’는 양자택일의 삶을 선택하지 않는다. 더욱 쉽게 돈을 벌기 위해 가구를 만들지도, 목공에 집중하기 위해 사랑하는 연인을 포기하지도 않는다.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아가씨가 아닌, 좋아하는 마음으로 좋아하는 것을 계속하는 한 명의 예술가로 ‘에밀리’는 살아간다. 그러나 극의 후반,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 같은 ‘에밀리’의 삶은 연인 ‘올리비에’의 죽음으로 인해 예기치 못한 떠밀림을 경험한다. 절망과 좌절로 절뚝거리며 정처 없이 방황하던 ‘에밀리’는 모든 것이 상실되고 부재한 상황에서 최후의 정박지로 자신의 ‘존재’를 발견한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애정을 담아 새기던 나무 조각처럼, 어둠 속에서 조용히 반짝이고 있던 자신이 거기 있었다.
<돼지떼>는 생략과 압축을 통해 다소 거칠게 ‘에밀리’의 여정을 그림으로써, 어디에도 완전히 포섭될 수 없는 존재의 잔여와 그로 인해 가능한 자기 긍정의 과정을 강조한다. 극의 마지막, ‘에밀리’의 시선은 이야기 바깥의 ‘상드’에게로 가 닿는다. 에밀리 이야기 한편에서 끊임없이 주어진 ‘경로’를 이탈하던 ‘상드’에게,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 살기 위해 제자리를 벗어나던 ‘상드’에게, 여성이자 작가이자 사람으로서 무수한 소음들을 뒤로하고 목소리를 내던 ‘상드’에게로. 둘의 시선이 마주치고 서로를 발견한다. ‘에밀리’와 ‘소피’가 그러하였듯, ‘에밀리’와 ‘상드’가 그러하였듯 시선의 교환과 느슨한 만남의 찰나에서, 인정이 아닌 긍정의 세계가 펼쳐진다.
원작의 미성숙하고 불완전한 소년 ‘에미’는 자신의 조력자이자 후견인이자 훗날 양아버지가 되는 농부 ‘뱅상 아저씨’를 만나 공동체 내부에 성공적으로 정착한다. 반면 소녀 ‘에밀리’는 그 역시 목공을 가르쳐주는 조력자 ‘소피 언니’를 만나지만 어느 하나의 세계에 편입되지 않는다. 연대라는 교집합으로 ‘에밀리’는 ‘소피’와 이어지지만, 언제든 다시 헤어질 수 있는 여지를 남긴 채 어디에도 귀속되지 않는 자신만의 여정을 펼쳐나간다.
독립을 위해서는 돈이, 돈벌이를 위해서는 기술이, 효율적인 생계 도구를 갖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소피’는 역설하지만, ‘에밀리’는 양자택일의 삶을 선택하지 않는다. 더욱 쉽게 돈을 벌기 위해 가구를 만들지도, 목공에 집중하기 위해 사랑하는 연인을 포기하지도 않는다.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아가씨가 아닌, 좋아하는 마음으로 좋아하는 것을 계속하는 한 명의 예술가로 ‘에밀리’는 살아간다. 그러나 극의 후반,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 같은 ‘에밀리’의 삶은 연인 ‘올리비에’의 죽음으로 인해 예기치 못한 떠밀림을 경험한다. 절망과 좌절로 절뚝거리며 정처 없이 방황하던 ‘에밀리’는 모든 것이 상실되고 부재한 상황에서 최후의 정박지로 자신의 ‘존재’를 발견한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애정을 담아 새기던 나무 조각처럼, 어둠 속에서 조용히 반짝이고 있던 자신이 거기 있었다.
<돼지떼>는 생략과 압축을 통해 다소 거칠게 ‘에밀리’의 여정을 그림으로써, 어디에도 완전히 포섭될 수 없는 존재의 잔여와 그로 인해 가능한 자기 긍정의 과정을 강조한다. 극의 마지막, ‘에밀리’의 시선은 이야기 바깥의 ‘상드’에게로 가 닿는다. 에밀리 이야기 한편에서 끊임없이 주어진 ‘경로’를 이탈하던 ‘상드’에게,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 살기 위해 제자리를 벗어나던 ‘상드’에게, 여성이자 작가이자 사람으로서 무수한 소음들을 뒤로하고 목소리를 내던 ‘상드’에게로. 둘의 시선이 마주치고 서로를 발견한다. ‘에밀리’와 ‘소피’가 그러하였듯, ‘에밀리’와 ‘상드’가 그러하였듯 시선의 교환과 느슨한 만남의 찰나에서, 인정이 아닌 긍정의 세계가 펼쳐진다.

이건 좀 당연한 얘기인가
잠시 ‘상드’로 다시 돌아와 본다. 여자는 작가가 될 수 없었던 시절의, 여자는 법정에 설 수 없었던 시절의, 여자는 자유로운 연애를 지성의 증표로 삼을 수 없었던 시절의, 여자는 사람이 될 수 없었던 시절의 이야기로 돌아와 본다.
‘사람’을 투명한 의자 위에 앉혀놓고 눈에 띄지 말라고, 설치지 말라고, 떠들지 말라고, 말하지 말고, 생각하지 말라고, 윽박지르던 돼지떼의 소음들을 생각해본다. ‘~하지 말 것’ 혹은 ‘~해야 할 것’이라는 정언명령으로 무수히 선을 긋고, ‘사람’을 한정된 장소에 한정된 자격과 한정된 역할로만 주문하는 소음들을.
그 시절로부터, 그 소음들로부터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사람’의 자격은 얼마나 당연한 것이 되었을까. 누구나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명제는 너무 당연해서 좀 뻔한 것 같지만, 이 뻔한 이야기를 새삼스레 해야 하는 상황들을 여전히 목격하고 있지는 않나. 오래 묵은 고전을 다시 꺼내 동시대 무대 위에 올리는 이유는, 어쩌면 아직도 그 이야기들이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 아닐까. 무수한 소음들이 입을 막아도 다시 한번 입을 떼야 하는 이야기. 그러니까 이건,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사람’을 투명한 의자 위에 앉혀놓고 눈에 띄지 말라고, 설치지 말라고, 떠들지 말라고, 말하지 말고, 생각하지 말라고, 윽박지르던 돼지떼의 소음들을 생각해본다. ‘~하지 말 것’ 혹은 ‘~해야 할 것’이라는 정언명령으로 무수히 선을 긋고, ‘사람’을 한정된 장소에 한정된 자격과 한정된 역할로만 주문하는 소음들을.
그 시절로부터, 그 소음들로부터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사람’의 자격은 얼마나 당연한 것이 되었을까. 누구나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명제는 너무 당연해서 좀 뻔한 것 같지만, 이 뻔한 이야기를 새삼스레 해야 하는 상황들을 여전히 목격하고 있지는 않나. 오래 묵은 고전을 다시 꺼내 동시대 무대 위에 올리는 이유는, 어쩌면 아직도 그 이야기들이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 아닐까. 무수한 소음들이 입을 막아도 다시 한번 입을 떼야 하는 이야기. 그러니까 이건,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참고한 글들
조르주 상드 저, 이재희 역, 『말하는 떡갈나무 신성한 꽃』, 지만지, 2008
류은숙, 『여자들은 다른 장소를 살아간다』, 도서출판 낮은산, 2019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문학과지성사, 2015
조르주 상드 저, 이재희 역, 『말하는 떡갈나무 신성한 꽃』, 지만지, 2008
류은숙, 『여자들은 다른 장소를 살아간다』, 도서출판 낮은산, 2019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문학과지성사, 2015
돼지떼
- 일자
- 2020.06.24(수) ~ 07.05(일)
- 장소
- 소극장 산울림
- 작/연출
- 이은비
- 출연
- 김소정, 박수진
- 드라마투르그
- 김소정
- PD
- 박유나
- 사운드 디자인
- 조연하
- 조명 디자인
- 정순혁
- 홍보물 디자인
- 유진선
- 조명 크루
- 강하주, 김수려
- 조명 오퍼레이터
- 김민주
- 제작
- 얄라리얄라, 소극장 산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