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집단 여기에 있다 〈SPACE : 연극〉
이 시국에 우리는 왜 연극을 보는가
임다영
184호
2020.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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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를 넘기는 마우스 소리가 생생히 들리는 연극을 본 적이 있는지. 한 회차에 일곱 석 규모의 작품을 본 적이 있는지. 배우와 영화 E.T의 손가락 인사를 하고 손을 잡혀 무대 위로 올라간 적 있는지.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에서 공연된 창작집단 ‘여기에 있다’의 은 그런 밀도를 가지고 있었다.
큐를 넘기는 마우스 소리가 생생히 들리는 연극을 본 적이 있는지. 한 회차에 일곱 석 규모의 작품을 본 적이 있는지. 배우와 영화 E.T의 손가락 인사를 하고 손을 잡혀 무대 위로 올라간 적 있는지.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에서 공연된 창작집단 ‘여기에 있다’의 은 그런 밀도를 가지고 있었다. 소극장에서 초소규모로 진행된 공연이었지만, 이번 공연은 어느 때보다도 이 집단의 매력을 여실히 느끼게 했고 그들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향한 진득한 다짐의 순간에 관객으로서 함께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배우가 연극을 사랑하는 마음이 와 닿아서 이때 새삼스레 관객으로 자리하던 나 역시 이 장르를 꽤 아끼고 있음을 깨달았다. 배우의 눈물과 벅찬 감정에서 오는 에너지가 전해져서 내가 왜 연극을 보러 다니는지 자연스레 되묻게 되었기 때문이다. 등장인물이자 실제인물인 ‘대진’은 알베르 카뮈의 연설을 통해 진심 어린 호소를 할 뿐만 아니라,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어?’라며 누군가를 여러 번 부른다. 예술가들은 여기 존재하는데, 관객들도 그곳에 있냐고 계속 물으며 확인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응답은 없다. 배우는 계속해서 외로운 줄타기를 이어갈 뿐이다. 배우들이 퇴장하고 무대 위에 관객만이 남아서 ‘연극이 끝나고 난 뒤’를 듣고 있으면 관객으로 함께 이 사안을 고민해달라는 제안을 받은 기분을 지울 수 없게 된다.
이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것 중 하나는 관객참여형 공연이라는 점이다. 배우가 다가와 손가락 인사를 건네면 그것에 응하게 되고, 손을 잡고 함께 무대로 올라가 자리에 앉게 된다. 배우는 관객이 앉은 의자를 무대 위 이곳저곳으로 움직이기도 하고 등받이를 침대처럼 젖히기도 한다. 이렇듯 단 일곱 명의 사람들이 배우와 차례로 교감하고 무대 위로 올라가는 과정을 겪고, 함께 조명을 받으며 호흡하는 건 일반적인 연극 관람에서는 흔한 일은 아니다. 당시에는 선뜻 배우가 하자고 하는 대로 움직이게 되었는데 돌이켜보면 나는 그 순간을 정말로 즐기고 있었다. 게다가 단 일곱 명의 관객들이 있는 공연인 만큼 작은 공동체가 만들어진 기분이 들었다. 처음 만난 이들과 정말로 우주선이라는 다소 위험(?)한 공간에 함께 탑승하게 되니 일종의 연대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공연을 관람한 직후에 작품의 제목인에서 Space가 곧 연극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인간이 광활한, 미지의 우주를 향해 도전하려고 하는 것에 빗대어 이 집단이 연극을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품의 도입부로 돌아가 보면 이 공연의 첫 대사는 ‘상상력’에 관한 이야기였다. 상상력은 우리가 가보지 못한 곳으로 이끌 수 있고, 우리는 상상력 없이는 나아갈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러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상상력은 곧 연극 내지는 예술을 의미하고 우리는 연극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걸 내포하는 듯했다. 연극을 통해 나아가게 되는 곳이 Space든, 설령 그게 아니라 어느 곳이든지 간에 말이다. 그러니 이렇게 필요한 ‘상상력’을 함께 하자며 관객과 배우라는 구분을 허물고 무대라는 공간에서 함께 하는 형식을 취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공연을 관람한 직후에 작품의 제목인
주변의 꽤 많은 사람이 일 년에 한 번도 공연을 보지 않는다고 말하곤 한다. 언젠가 한 공연장의 관계자는 미세먼지가 심해진 세상에서 관객들이 어떻게 해야 공연을 보러 극장을 찾을 것인가에 대해 함께 고민해달라고도 했다. 공공극장들은 문을 닫고 ‘랜선 연극’을 송출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언택트’의 시대에, ‘라이브’를 추구하는 공연의 미래에 대한 논의는 이미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이전에도 계속해서 존재해왔다. 다만 주목하지 않았을 뿐. 연극을 즐겨보고 어쩌면 업으로 삼게 될지도 모를 입장에서 더 많은 사람이 어떻게 해야 연극을 더욱 자주 접하고 좋아하게끔 할지는 항상 고민스럽다. 그리고 이 고민은 이제 코로나19 이후 본격적으로 마주하게 된 ‘문제’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은 이 ‘시국’에도 연극을 봐야 하는 이유에 대해 정면으로 마주한다. 작중 아나운서는 개기일식으로 달이 태양을 가리는 순간 그때서야 비로소 태양 대기의 가장 바깥층인 코로나를 볼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평소 보이지 않던 것이 개기일식 절정의 순간에 ‘보이게’ 되는 것이다. 나는 연출의 말대로 ‘이 시국에 연극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모두를 만족시킬 답은 없다는 것에 동의한다. 다만,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계속해서 함께 질문하고 생각할 때, 연극이 더욱 빛을 발하며 이것이 지닌 힘이 더 확대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이 고민은 연극인만이 아닌 관객도 함께해야 하는 것일 테고 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도입부에서 이야기했듯이 극장 자체가 작고 오퍼레이터가 객석 가까이에 있는 탓에 큐를 재생하는 클릭 소리가 선명히 들리는 경험을 했다. 이때 문득 긴밀하게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는 이 순간과 배우, 관객, 스태프가 자리하고 있는 공간 자체가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이야기한 코로나19 이후의 연극 관람과 연결 지어 본다면 우리가 이 시국에 연극을 보는 이유는 나와 우리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사진 제공: 창작집단 여기에 있다]
SPACE : 연극
- 일자
- 2020.07.15.(수) ~ 07.19.(수)
- 장소
-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 구성/연출
- 박세련
- 공간연출
- 김지우
- 음악
- 채군
- 작/출연
- 정대진, 이진경
- 창작집단 여기에 있다
독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