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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버그 <프로젝트 해시태그 2020>

#사라지지도, 돌아오지도 않는 #강남적인 #강남

손옥주_공연학자
185호 2020.08.20
매력과 혐오(attraction and repulsion). 서로 상충되는 양가적 척도가 동시에 하나의 도시 공간을 점유한다. “누구나 입성하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누구나 허물고 싶어 하는”(<프로젝트 해시태그 2020> 팸플릿 내용 중) 곳.
*필자 첨언: 아래 링크를 클릭하신 후, 음악을 들으며 글을 읽어보실 것을 추천 드립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27h6uzCFJ8E
강남, 그리고 오류들
매력과 혐오(attraction and repulsion). 서로 상충되는 양가적 척도가 동시에 하나의 도시 공간을 점유한다. “누구나 입성하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누구나 허물고 싶어 하는”(<프로젝트 해시태그 2020> 팸플릿 내용 중) 곳. 마치 카프카의 소설 <성> 속 주인공 K가 그러하듯, 들어가겠다는 의지와 그 의지에 반하는 입장 불허의 경계 위에서 그야말로 멀어지지도 그렇다고 가까워지지도 않는 불락(不落)의 지대. 그동안 강남은 지역적 특성과 더불어 매우 구체적인 이미지들을 통해 상징화되어왔지만, 정작 그와 같은 상징들 안에서 강남에 대해 되물으려는 시도는 꽤나 파편적이고도 모호하게 이루어져 온 듯하다. 강남의 문화, 강남의 예술 현장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 걸까. 혹은 강남이라는 지역 자체를 예술 작업의 주제로 삼을 수는 없을까. 그렇다면 그 형식은 어떠해야 할까. 테북과 테남(테헤란로를 기준으로)을 품에 안고 구룡마을을 휘돌아 저 멀리 세곡동까지 뻗어나가는 강남구의 구획도를 바라보노라면, 계획도시 강남만큼이나 계획되지 않은 오류들로 촘촘히 직조된 공간이 또 있을까 싶다. 그 오류는 비단 사회, 정치, 경제 전반에 걸쳐 강남으로 상징되는 헤게모니의 역설에 국한되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강남이 삶의 공간으로 경험될 때 발생할 수 있는 개인의 서사 혹은 개인의 관점들이 복수형의 오류를 만들며 그 공간이 지닌 동시대성을 역으로 드러내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또한 자칭 강남 출신의 버그, 즉 강남에서 나고 자랐으나 예상치 못한 오작동의 결과라고 자기 정체성을 진단하는 예술가 콜렉티브 ‘강남버그’의 네 작가 김나연, 박재영, 이경택, 이정우(가나다 순)의 작업에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강남버그 <오르고 또 오르면>
프로젝트 해시태그 2020
‘강남버그’의 작업은 <프로젝트 해시태그 2020>의 일환으로 7월 24일부터 9월 30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전시된다. <프로젝트 해시태그>는 국립현대미술관이 현대자동차의 후원을 받아 새로이 진행하는 사업으로 5년간 장르 제한 없이 매해 두 팀씩 선발하여 지원할 계획인데, 그 첫 해인 2019년에 ‘강남버그’와 ‘서울퀴어콜렉티브’가 선발되어 각각 강남 지역과 종로3가 지역을 중심에 두고 리서치를 진행하였다. 그 중 ‘강남버그’의 작업은 각각 <오르고 또 오르면>, <천하제일 뎃생대회>, <강남버스>, <마취 강남>이라는 부제가 붙은 네 편의 하위 프로젝트를 엮어내는 방식으로 기획, 발표되었는데, 시각예술, 건축, 영상, 기획 등 작가들의 각기 다른 활동 영역 및 표현 매체가 동일 주제에 대한 이질적 시선의 기반을 이룬다. 7, 80년대 경제부흥기의 아파트 건설 광풍에서부터 2026년 완공 예정인 삼성동 현대차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높이: 569m)에 이르기까지의 개발 서사. 석고 데생으로 상징되는 과거 입시 미술의 기억 속에서 편린을 드러내는 사교육 메커니즘. 상징의 층위를 벗겨낸 지점에서야 비로소 드러나는 경제적 빈부의 공존. 강남의 안과 밖뿐만 아니라 강남 지역 내의 이곳과 저곳을 ‘노선’이라는 형식 안에서 균등하게 묶어내는 시내버스의 경로처럼, 작가들의 시선은 낯설도록 익숙한 이 지역의 환경을,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담론의 변화 과정을 차근히 조감한다. 마치 <오르고 또 오르면>에 등장하는 드론의 광각 안으로 저 멀리서부터 빽빽하게 포섭되는 메가시티 강남의 모습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강남버그’의 작가들은 이처럼 시점의 위도를 높임으로 리서치의 방향성을 예측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들의 작업은 강남에 대한 옹호와 비판의 갈림길에 서서 스스로에게 선택과 포기를 종용하는 대신에, ‘강남적’이라 통칭되는 사회 현상의 역사를 추적하며 그와 같은 신화적 담론이 2020년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더 나아가 가족이라는 집단 구성단위가 점차 소멸할 미래 사회에 이르기까지 과연 ‘강남’이 ‘강남적’으로 잔존할 수 있을지 예민하게 되묻는다.
강남버그 <천하제일 뎃생대회>(좌), <마취 강남>(우)
스스로를 기억할 수 없는 공간에 대한 기억
슈베르트의 가곡 <아틀라스(Der Atlas)> 속 힘찬 선율을 따라 코엑스 트레이드 타워를 천천히 오르고 또 오르던 카메라의 시선은 화면 속 숫자가 ‘569’를 가리키자 더 이상 오르지 않고 멈춰 선다. 뒤이어 마치 프리츠 랑의 영화 <메트로폴리스(Metropolis)> 속 장면들처럼, 과잉을 통해 역으로 진공의 상태를 만들어내는 듯한 서울 도심 한복판 강남의 모습이 극도로 희미해진 카메라의 초점 안에서 포착된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빌딩 숲의 외관은 완전히 사라지지도 완전히 돌아오지도 않은 마취 상태 속에서 어느새 개발과 파괴의 욕망을 내면화해버린 도시 공간을 형용하는 듯하다. 혁신은 개발을, 개발은 파괴를, 파괴는 망각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강남버그’의 이번 전시는 작가들이 지닌 ‘버그’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통해 ‘스스로를 기억할 수 없는 공간에 대한 기억’을 시도해보려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다음은 ‘강남버그’의 멤버이자 <마취 강남> 프로젝트를 담당한 건축가 이경택의 글 일부이다. 전시 공간 벽면 한 켠에 쓰여 있던 이 글을 인용하는 것으로 이번 리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마취란 무감각 또는 통증에 대한 인지능력이 없다는 말이다. 여기에는 통증의 소실과 더불어 의식의 소실도 내포하고 있다. 기억 상실처럼. (중략) 강남은 지금도 집도가 끊이질 않는다. 그 과정에서 광막한 사이트가 비워졌다. 이는 다음 시술을 위한 마취 단계. 깨어나지 못한 도시. 강남이다.”
강남버그 <강남버스>

[사진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프로젝트 해시태그 2020
일자
2020.07.24. ~ 2020.09.30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작가
강남버그, 서울퀴어콜렉티브
주최
국립현대미술관
후원
㈜현대자동차
관련정보
https://www.mmca.go.kr/exhibitions/exhibitionsDetail.do?exhId=202001090001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