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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체육관 <극동아시아땐쓰>

그러했을지도 모를 지난 시간을 기예로 기억한다는 것

손옥주_공연학자
186호 2020.09.10
캬바레 무대 위 춤추는 여성을 떠올리면 금세 머릿속에 그려지는 몇몇 장면들이 있다. 하나, 1920년대 파리의 밤 문화를 대표하던 캬바레 폴리 베르제(Folies Bergère), 그리고 그곳에서 바나나를 엮어 만든 스커트 차림으로 빠른 리듬에 맞춰 코믹하면서도 기괴한, 거칠면서도 관능적인 춤을 선보이던 검은 피부의 조세핀 베이커.
캬바레 무대 위 춤추는 여성을 떠올리면 금세 머릿속에 그려지는 몇몇 장면들이 있다. 하나, 1920년대 파리의 밤 문화를 대표하던 캬바레 폴리 베르제(Folies Bergère), 그리고 그곳에서 바나나를 엮어 만든 스커트 차림으로 빠른 리듬에 맞춰 코믹하면서도 기괴한, 거칠면서도 관능적인 춤을 선보이던 검은 피부의 조세핀 베이커. 또 하나, 1956년에 발표된 한형모 감독의 영화 <자유부인>, 그리고 영화 속 브라스밴드의 <체리 핑크 맘보> 곡 연주에 맞춰 남자 파트너와 짝을 지어 가볍게 스텝을 밟던 양장 차림의 부인들. 오리엔탈리즘과 인종주의가 극에 달하던 시기 서유럽 한복판의 캬바레 밤무대 위에서 관객의 욕망을 재현해내던 댄서, 그리고 서울 수복 후 명동 등지에 우후죽순으로 지어진 댄스홀에 제 발로 찾아가 스스로 금기의 능선을 넘어버린 여인들. 춤추는 그녀들이 놓인 시공간은 이처럼 달랐으나, 이곳에서도 저곳에서도 캬바레는 부정적이면서도 매혹적인 쾌(儈)의 장소였고 캬바레 무대 위 여성들의 춤추는 몸은 낯설면서도 결코 낯설지만은 않은, 개인과 집단의 욕망과 환상이 교집하던 공간이었다.

그런 캬바레의 여성들에 대해, 더군다나 동아시아의 캬바레 여성들에 대해 리서치를 진행하는 서커스 팀이 있다는 소식을 필자는 이미 작년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의 오픈 스튜디오 행사인 ‘싹 브리핑’을 즈음하여 접한 바 있다. ‘들꽃체육관’이라는 이름의 이 팀은 <극동아시아땐쓰>라는 제목의 쇼케이스를 약 15분간 진행/발표하였는데, 일정상 관람을 포기하게 되어 아쉬웠던 차에 마침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난 올 8월 말 동일한 제목의 공연이 확장된 버전으로 진행된다고 하여 공연장인 행화탕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코로나 확진자 수의 급증으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로 격상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8월 23일의 오후, 인적 드문 도심의 거리는 마스크 속 입김까지 더해져 꽤나 뜨겁게 느껴졌다. 정부 지침에 따라 “관객, 출연, 제작진을 합쳐 총 50인이 넘지 않도록 투입 인원을 조정하였”으며 “장소가 협소하여 객석 간 거리두기는 어”려우니 “조금이라도 불안한 마음이 드신다면 바로 취소 도와드”리겠다는 공연 주최 측의 문자에서는 정확히 100여 년 전의 시간에 대한 탐험을 시도했던 공연자들이 2020년에 처하게 된 상황의 예측 불가능성 앞에서 겪고 있을 고민, 공연 방식의 임계에 대한 그 시대적 고민이 고스란히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공연장에 들어갔고, 그렇게 공연장 중앙에 걸려있던 거대한 에어리얼 후프의 모습과 마침내 마주하게 되었다.
작품의 구성 및 진행방식은 상당히 단출하다. 총 30여 분간 진행된 공연의 중심에는 20세기 중국-일본-한국의 캬바레와 그곳에서 무희로 활동했던 여성들의 서사가 놓여있다. 동서양 무역의 중심지이기도 했던 근대 시기 중국 상하이의 캬바레, 군국주의가 팽창함과 동시에 여전히 보수적인 여성상을 국가 이념화했던 2차 대전 시기 일본 도쿄의 캬바레, 그리고 한국전쟁을 계기로 미국 문화의 유입을 상징화했던 전후 대한민국 서울의 캬바레. 양차 대전과 뒤이은 냉전 시기를 겪으며 침략과 패전, 피해와 동화(assimilation)의 패러다임을 내면화했던 20세기 초, 중반 동아시아 3국의 역사적 변이 과정을 캬바레 무대 위 여성들의 모습 속에 투영시키고자 했던 ‘들꽃체육관’의 창작자들은 이를 위해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그 시간 속 그녀들의 움직임을 상상한다.
전체 공연 시간 대비 각각 1/3씩의 비중으로 구성된 상하이-도쿄-서울의 캬바레 무희들에 대한 에피소드는 스크립트에 담겨 무대 왼편에 앉은 해설자 김보용(연출, 출연, 드라마터그)의 입을 통해 때로는 흥겹게, 때로는 구슬프게, 때로는 담담하게 관객들에게 전해진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퍼포머 이수연(연출, 출연, 미술, 안무, 기획)은 지면과 지상을 오가며, ‘어쩌면 그녀들이 실제 그러했을지 모를’ 과거 시점의 일상 속 행동과 ‘어쩌면 그녀들의 실제와는 무관할지도 모를’ 현재 시점의 에어리얼 후프 기예 사이에 놓인 간극을 촘촘히 묶어낸다.
이처럼 서로 다른 시간, 서로 다른 움직임의 질감, 서로 다른 아픔과 서로 다른 희열을 묶어내며 퍼포머는 둥근 후프를 가로질러 몸을 바르고 곧게 세운 채 제자리에서 빠르게 회전하기도 하고, 반대로 물구나무서듯 후프에 거꾸로 매달린 채 360도로 회전하며 관객들의 눈에 포착되기도 한다. 특히 각 파트별 주제 및 에피소드 내용에 따라 움직임과 코스튬 디자인/색상을 일치시킨 점이 인상적이었는데, 예를 들어 역동적이면서도 빠른 동작을 특징으로 삼았던 첫 상하이 캬바레 파트의 경우, 새빨간 색상의 타이트한 상하의를 활용한 반면, 다소 느리고 정적인 동작이 주가 된 도쿄 캬바레 파트의 경우에는 동작의 제약 조건으로 폭이 좁고 길이가 긴 유카타 복장의 특징을 활용하였다. 이처럼 <극동아시아땐쓰>는 퍼포머의 동작, 그 동작의 배경이 되는 스크립트의 내용, 각 동작의 매개가 되는 코스튬 등 공연을 구성하는 기호들 사이사이마다 단단히 구축되어있던 정합성이 돋보이는 공연이었다.
그럼에도 마스크를 단단히 착용한 채 바닥에 놓인 깔개 위에 앉아 약 30여 분간 이어진 공연을 보며 가장 크게 느낀 점은 감탄 이전에 아쉬움이었다.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덧붙이자면, 이때의 아쉬움은 퍼포먼스나 텍스트 등 공연을 구성하는 요소에 대한 것이 아닌, 에어리얼 후프라는 특정 서커스 종목의 동작 기술에 대한 필자의 무지가 불러온 필연적인 감정이었음을 고백한다.
이번 <극동아시아땐쓰>처럼 공연에서의 동작 문법이 특정 서커스 기술과 오브제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경우, 오랜 기간 매뉴얼처럼 전수/훈련되어온 기술을 퍼포머가 얼마나 숙련된 기술을 바탕으로 얼마나 독창적으로 해석/발전시켜 작품 안에 녹여내는지의 여부를 감각하는 것이야말로 공연을 구성하는 여타 요소들에 대한 감각만큼이나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공중에 매달린 거대한 크기의 후프라는 오브제는 그 자체로 퍼포머의 움직임과 퍼포먼스 공간이 이루어내는 환경 전반에 매우 특수한 한계 조건을 부여하기 때문에, 오브제와 퍼포머 사이에서 미적/기술적 공명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 순간을 관객으로서 포착해보는 것 또한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느끼기 시작한, 이 공연의 특수성에 대한 그런 뒤늦은 깨달음을 계기로 공연 관람 후에 비로소 에어리얼 후프의 기술에 대해 구글링을 시도해보았으나 “후프를 가로질러 몸을 길게 뻗는 ‘머메이드’, 후프에 등을 기대고 몸을 아래로 떨어지듯 눕는 ‘가젤’”(출처: https://www.hidoc.co.kr/healthstory/news/C0000389279) 등 두어 가지 대표 기술에 대한 매우 간략한 소개 외에는 관련 정보를 찾기가 어려웠다. 비교적 친숙한 주제의 공연이 특정 기술에 기반하는 동작 문법과 만날 때, 과연 우리는 어떠한 방식으로 혹은 관점으로 그와 같은 공연을 리뷰할 수 있을까.
이 같은 낯선 질문과 비로소 마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들꽃체육관’의 <극동아시아땐쓰>에 대한 이번 리뷰는 불가피하게 공연 언어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의 발견이자 공연에 대한 관객의 이해 혹은 태도에 대한 한계의 발견이기도 했다는, 필자의 마음속에 남은 지극히 사사로운 감정에 대한 고백으로 마무리해야 할 듯하다.

[사진 제공: 들꽃체육관]

극동아시아땐쓰
일자
2020.08.22 ~ 2020.08.23
장소
복합문화예술공간 행화탕
연출
이수연, 김보용
출연
이수연, 김보용
음악
윤수희
미술
이수연, 황미나
안무
이수연, 김주영
사진
선다은
기획
이수연, 황미나
영상
이동우, 이주헌
드라마터그
김보용
그래픽 디자인
김수진
음향
윤수희
의상
서은재
제작
들꽃체육관
관련정보
https://www.facebook.com/haenghwatang/posts/2635007860086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