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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서울프린지페스티벌 : 오프라인 페스티벌

깃발이 파도가 될 때

권혜린
186호 2020.09.10
마포구의 문화비축기지로 가는 길, 올해는 입구에 있던 색색의 깃발이 더욱 반가웠다. 평일에 방문한 오프라인 프린지 페스티벌은 비교적 고요한 분위기를 띠고 차분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현장에서의 신중함을 의미할 뿐, 공기 자체가 가라앉았다는 뜻은 아니다.
마포구의 문화비축기지로 가는 길, 올해는 입구에 있던 색색의 깃발이 더욱 반가웠다. 평일에 방문한 오프라인 프린지 페스티벌은 비교적 고요한 분위기를 띠고 차분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현장에서의 신중함을 의미할 뿐, 공기 자체가 가라앉았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희소한 현장의 소중함을 체감하듯 공연 하나하나를 더 집중해서 보게 되었다. 연례행사처럼 당연한 일로 여겼던 축제가 당연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그것이 모두에게 닥친 위기 때문이라는 것이 무력감을 줄 수 있으나, 올해의 프린지 페스티벌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양분함으로써 돌파구를 모색하고자 했다. 깃발 하나하나가 제자리에서 나부끼더라도 멀리서 보면 파도로 보이듯이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여한 모두가 각각의 자리에서 나부끼면서 새로운 파도를, 흐름을 만들어 내는 듯했다.
놀이에서 실험까지
고무의 <놀이:터>는 새로운 놀이터를 찾아 떠나는 한 편의 모험기이다. 여정에서 만난 사물들인 의인화된 돌, 버려진 우산, 쓰러진 의자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동화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이때의 동화는 마냥 밝지만은 않다. 앞서 말한 의인화된 사물들이 소모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기존의 놀이터를 떠난 이유에 할머니의 부재가 중첩되었던 것처럼 새로운 장소는 부재를 메우기 위한 대체재에 해당하지만 결국 그들이 찾는 ‘터’는 없다. 단지 길게 이어지는 ‘놀이:’만 남을 뿐이다. 그러나 놀이야말로 가장 창의적이면서 즐거운 소모가 아닐까. 터를 찾으러 가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놀이로서 무위의 즐거움을 주었다.
다이빙라인의 <^뿔소의 무처럼 가자서 혼라^>는 제목에서부터 놀이이자 실험의 느낌을 준다. 그 대상은 연극 자체이다. 희곡, 배우, 관객이라는 연극의 3요소가 없는 ‘연극실험’이라고 하지만 엄밀히 말해 그 요소는 없다기보다는 희미하다고 봐야 할 것 같다. 희미한 자국으로만 남아 있는 듯한 희곡, 배우, 관객을 통해 연극은 계속된다. 배우들이 늦는다고 하면서 극의 시작점을 교란하여 영상 통화로 극의 3분의 1을 대신하고, 끝나지도 않은 극에 틈입한 질의응답 시간에서는 AI가 주인공이 되며, 비로소 도착한 배우들의 대화에는 마지막 대사가 없다. 이렇듯 머리도 꼬리도 없는, 시작과 끝이 분명하지 않은 이 작품에서는 내용보다도 새로운 형식이 돋보였다. 관객에게 퇴장마저도 유연하게 열어 둔 시도도 흥미로웠다.
근사한 옴니버스들
유희의 <관계자 외 출입금지>는 그리스로마 신화를 현대에 맞게 각색하여 내밀하면서도 사회적인 세 편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또한 누가 ‘관계자’인지 고민하게 한다는 점에서 긴장감도 유발한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나르시시즘에 빠진 인스타그램 중독자가 등장한다. 현장에서 인스타라이브를 함으로써 관객도 자연스럽게 참여자가 되는데, 이후에 다이어트 약의 허위‧과장 광고를 비판하는 친구가 관계자에서 벗어나 ‘출입금지’당하게 된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 집안이 몰락해 지인의 집에 묵고 있는 아이는 인형에만 의존한다. 그리고 그 인형이 피그말리온처럼 사람으로 변했을 때, 아이에게는 병원에 가 보자는 지인의 말도 들리지 않는다. 자신의 집에서 ‘출입금지’당한 지인 역시 관계자에서 벗어난다. 세 번째 이야기에서는 프로크네와 필로멜라로 상징되는 자매가 반성하지 않는 성범죄자를 처단하는 복수극을 벌인다. 범죄자가 언니의 남편이라는 점에서 더 처절하고 강력한 마지막 이야기는 관객마저 ‘출입금지’하려는 듯하다. 그들만의 세계에서 복수를 완성한 결말은 씁쓸했다.
지구옆동네의 <징징거리는 것엔 다 이유가 있다>도 세 명의 인물을 통해 ‘을의 억울함’을 이야기한다. 대마법사에게 구박받는 마법사, 우연히 기적의 돌을 발견했지만 상사에게 공로를 뺏긴 부하 직원, 지시에 따라 무기를 만들었지만 선임 대신 욕받이가 된 연구원이 자신의 사연을 풀어놓는다. 제목에서는 ‘징징거림’이라 표현했지만 이는 갑이나 제3자의 시선에서 나오는 단어일 것이며, 극에서는 을의 고충이 진하게 느껴졌기에 ‘다 이유가 있다’ 쪽에 무게를 두고 보았다. 그러니 이들의 징징거림은 자신을 온전히 잃지 않는 선에서 벌이는 반란일 것이다. 반란의 대상이 동시에 선망의 대상이기도 하기에 비록 반쪽짜리 반란일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접촉
대면이지만 마스크를 쓰고 공연을 보고, 접촉을 최소화해야 하는 상황에서 더 강하게 접촉을 이야기하는 작품들도 있었다. 오구팔프로젝트의 <나는 나를 죽였다>는 근미래에 인간의 감정을 개조하고자 ‘자살금지법’을 제정한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스스로를 죽이겠다고 경찰서에 자수한 뒤 ‘감정교화소’에 들어간 은성이 같은 방에서 생활하는 성현과 만나게 된다. 비교적 ‘온건한’ 감정을 지녔다고 평가받는 은성과 달리 성현은 파괴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평행선을 그리는 것 같은 두 사람 사이는 성현이 자신보다 빨리 출소할 것 같은 은성에게 자신이 찾아가고자 하는 사람에게 대신 가 달라고 말함으로써 가까워진다. 숨 가쁘게 달리던 전광판의 시간이 멈추고, 두 사람의 접촉은 교화/통제 불가능한 순간이 된다.
콜렉티브 뒹굴의 <연기의 해로움에 대하여3>은 팬데믹과 기후 위기 상황에서 ‘해로운’ 공연을 성찰하고 그 흔적들을 그대로 공연으로 보여 준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공연의 내용을 적극적으로 바꾼 것이다. 관객에게 좀비 분장을 해 주고 싶었지만 하지 못하고, 함께 술을 마시고 싶었지만 마시지 못하는 상황이 드러난다. 그러나 그러한 아쉬움을 발화하면서 춤을 추고, 물을 나누어 주고, 밀접하게 접촉하지 않는 선에서 야외 공연장을 관객과 배우가 모두 함께 뒤섞여 걷기도 한다. 이렇게 비접촉해야 하는 상황에서 안간힘을 쓰며 최소한의 접촉을 만들어 가는 과정 역시 이 시대에 필요한, 해롭지 않은 연극으로 보였다. 시대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해로워진 공연을 ‘좀비’ 상태로라도 지속하고자 하는데 기이하게 유쾌했다.
프린지 페스티벌은 늘 소중하지만 올해는 유난히 더 그렇다. 길과 계단들을 다니면서 피부로 공기를 느끼고 밤에 벌레 소리를 듣고 비축기지의 다양한 모양들과 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풀 향기를 맡고 프린지 살롱에서 먹고 마셨던 오감이 모두 축제에 속해 있음을 느낀다.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 등 야외의 환경도 극의 배경이, 일부가 되었던 것도 잊을 수 없는 경험이다. 비록 마스크를 쓴 채였지만 오가는 눈빛들은 다정하고 친밀했다. 이렇게 세밀한 기억들이 계속 이어지고, 마스크를 벗은 채 더 자유롭게 축제를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사진 제공: 서울프린지네트워크]

서울프린지페스티벌 2020
관련정보
https://www.seoulfringefestival.net:5632/
놀이:터
일자
2020.08.13, 08.14, 08.16
장소
문화비축기지 T0
출연
권용찬, 박서연, 이재민, 장신희, 장지원, 정지현
연출
김수민
음악감독
홍석영
무대디자인
이보영
움직임디자인
전예빈
조연출
정재학
작가
최은지
제작
고무
^뿔소의 무처럼 가자서 혼라^
일자
2020.08.13, 08.14, 08.15, 08.16. 08.20, 08.21
장소
문화비축기지 T2(1F) 또는 설비동(B3)
출연
박이슬, 조영래
공동창작
박이슬, 조영래, 이수림
프로듀서
박은지
디자이너
조인희
제작
다이빙라인
관계자 외 출입금지
일자
2020.08.13, 08.14
장소
문화비축기지 T6
출연
임유민, 허주희, 박혜원
연출/작가
임유민, 허주희
기획/스탭
옥예원, 성진민
제작
유희
징징거리는 것엔 다 이유가 있다.
일자
2020.08.13, 08.14
장소
문화비축기지 T6
출연
문종영, 이준길, 최현서
제작
지구옆동네
나는 나를 죽였다.
일자
2020.08.20, 08.21, 08.23
장소
문화비축기지 T4
출연
이유현, 정은혜, 조호성, 이현경, 강성근
연출
윤아진
스탭
김성찬, 안은호, 김진원
극작
이유현
제작
오구팔프로젝트
연기의 해로움에 대하여 3
일자
2020.08.20, 08.21
장소
T0
출연
부진서, 유진영, 김건우, 곽수아, 변승록
제작
콜렉티브 뒹굴: 김정은, 성지수, 유솔범